미우나 고우나, 그래도 떠나는 대통령엔 박수쳤는데……
  • 감명국 기자 (kham@sisapress.com)
  • 승인 2017.03.12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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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6공 출범 이후 역대 대통령 7인의 퇴임 후 사저 입성 풍경···박근혜 전 대통령 제외하곤 모두 박수 속 퇴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을 당한 지 이틀 만인 3월12일 오후 7시경 결국 청와대를 나왔다. 1988년 6공화국 출범 이후 역대 대통령 중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중도에 하차한 첫 대통령이라는 불명예 속에, 박 전 대통령이 과연 언제 청와대를 나올까 하는 것은 또 다른 초미의 관심사였다. 헌법재판소 탄핵 선고가 내려진 3월10일 11시 20분부터 대통령직을 상실한 박 전 대통령이지만, 그는 이후에도 계속 청와대 관저에 머물러 왔다. 규정이나 관례가 없는 탓에 박 전 대통령 스스로 청와대를 나오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당초 3월13일 청와대를 나설 것이란 예상과는 달리 하루 전날인 휴일 저녁, 전격적으로 이동한 것만으로도 박 전 대통령의 사저를 향한 퇴임길이 지금 국민들로부터 얼마나 싸늘한 시선을 받고 있는지를 짐작케 했다. 뿐만 아니라 끝내 국민들에게 사과를 하지 않은 채 지지자들을 향해 사실상의 ‘불복’ 입장을 표명함으로써 논란의 불씨를 더욱 키우는 모습이었다. 그래도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마지막 충정을 기대했던 국민들은 다시 한 번 실망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렇다면 역대 대통령들의 퇴임 후 사저 입성 풍경은 어땠을까.

 

2008년 2월25일 퇴임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관계자들의 박수를 받으며 청와대를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가장 떠들썩했던 전두환 퇴임, 그러나 9개월 만에 ‘유배’  

 

5년 단임제 대통령직선으로 새 정부가 출범한 1988년 이후 신임 대통령과 3부 요인 등 관계자들의 박수 속에 청와대를 걸어 나왔던 전직 대통령들은 모두 6명이 있었다. 그 가운데 가장 퇴임식이 떠들썩했고, 뜨거운 환영을 받았던 이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었다. 단임을 실천한 최초의 대통령이라는 역사적 평가를 받은 탓이다. 지금으로선 당연한 일이지만, 당시엔 그조차도 환영을 받을만한 일이었다.

 

1988년 2월25일 전두환 전 대통령은 자신의 친구이자 후계자인 노태우 신임 대통령의 취임식에 참석한 후, 노 대통령과 3부요인들의 환송을 받은 채 청와대를 떠나 곧바로 연희동 사저로 향했다. 전 전 대통령 내외는 어린 손녀의 손을 잡고 연희동에 도착했고, 시민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기도 했다. 실제 사저 앞 골목에서는 차에서 내려 이동했으나, 인파의 환호로 걸음을 옮기기조차 힘들 정도였다. 전 전 대통령은 연희동 주민들이 동네 놀이터에 ‘이임잔치상’을 차려 놓았다는 얘기를 듣고 곧바로 발길을 돌려 그곳에서 주민들이 건네는 막걸리잔을 단숨에 들이켰고, 박수 환호를 받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채 9개월도 안 돼 5공 비리와 광주 민주화 항쟁의 진실 등이 드러나면서 백담사로 ‘유배’를 떠나기 위해 연희동 사저를 쫓겨나다시피 나와야 하는 운명을 맞았다.

 

5년 후 노태우 전 대통령 역시 임기를 마치고 연희동 사저로 향했다. 노 전 대통령은 임기 마지막 날인 1993년 2월24일 국립묘지에 들러 참배했다. 25일 김영삼 신임 대통령 취임식 직후 연희동 사저로 돌아온 노 전 대통령은 가장 먼저 동사무소에 들러 전입신고를 하는 것에서부터 야인으로서의 신고식을 치렀다. 이 날 역시 노 전 대통령 내외는 주민들의 뜨거운 환영을 받았다. 사저에 미리 기다리고 있던 노 전 대통령의 팔순 노모가 아들 부부를 맞았고, 이날 저녁 노 전 대통령의 부인 김옥숙 여사는 주민들에게 감사와 신고의 뜻으로 떡을 돌리기도 했다.

 

 

김영삼, IMF 위기로 인한 국정지지율 급락으로 조용한 퇴임

 

첫 여야 정권교체가 이뤄진 1998년 2월25일, 김영삼 전 대통령의 퇴임 당시 분위기는 앞선 두 차례와는 달리 별로 좋지 못했다. IMF 외환위기를 초래하며 임기 말 국정지지율이 급락하고, 경제위기로 인한 시위가 이어지는 등 당시의 여론이 악화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도동 김 전 대통령 사저 근처에도 경찰력이 동원되어 시위에 대비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은 김대중 신임 대통령 취임식 전날인 24일 오후 5시가 조금 넘은 시간, 업무를 마치고 청와대를 떠나 사저에 도착했다. 앞선 두 전직 대통령보다 하루 앞서 먼저 나온 것이다. 하지만 이후부터는 이것이 또 하나의 관례가 되기도 했다. 비록 퇴임 시 김 전 대통령에 대한 국정 지지율은 많이 떨어졌지만, 그래도 국민들은 ‘문민정부’의 문을 연 김 전 대통령의 퇴임을 차분히 지켜봤다. 상도동 주민들은 임기를 마치고 돌아온 김 전 대통령을 환영하며 동네 놀이터에서 환영식을 갖기도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노무현 신임 대통령 취임식을 하루 앞둔 2003년 2월24일 저녁, 동교동 사저로 돌아왔다. 전임 김영삼 전 대통령 만큼은 아니었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 역시 아들과 측근들의 비리 의혹 등으로 임기 말 지지율이 다소 떨어졌다. 하지만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사상 첫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는 등 퇴임 당시 비교적 높은 지지율을 유지했다. 24일 대통령 마지막 업무 후 바로 동교동 사저로 퇴근, 장남인 김홍일 의원과 박지원 전 비서실장 등 가족·측근들과 함께 ‘국민의정부’ 5년을 정리했다. 이튿날 취임식 행사 참석 후에는 ‘김사모’ 등 전국의 지지자들이 동교동 사저 앞에서 마련한 퇴임 기념행사에 참석해 자신의 60년 정치 역정을 회고하기도 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13년 2월25일 박근혜 신임대통령의 환송 인사를 받고 있다. ⓒ 연합뉴스


노무현, 사상 첫 지방행으로 또 다른 퇴임 풍경 연출

 

2008년 2월, 16대 대통령 임기를 마치고 청와대를 나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앞선 전직 대통령들과는 또 다른 퇴임 풍경을 연출했다. 최초로 서울이 아닌 지방으로 향했기 때문이다. 2월25일 오전 이명박 신임 대통령의 취임식 행사 참석 후 노 전 대통령은 곧바로 서울역에서 KTX를 타고 퇴임 후 머물 고향인 경남 김해 봉하마을로 향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의 귀향길에는 노무현 정부 내각과 청와대 비서관, 또 노 전 대통령의 동문과 지인 등 160여 명이 동행하기도 했다.

 

첫 지방행을 택한 전직대통령의 선택에 ‘노사모’ 회원 등 지지자들과 밀양 김해 등 지역민들의 환영 분위기는 뜨거웠다. 노 전 대통령 측은 1만명분의 국밥을 준비해 참석자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당시 한나라당 소속의 경남지사였던 김태호 지사는 환영사를 통해 “노 전 대통령이 낡은 관행을 뜯어고친 것은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며 노 전 대통령의 귀향을 환영하는 인사말을 하기도 했다.

 

2013년 2월 퇴임한 이명박 전 대통령은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 하루 전인 24일 오후 4시경 사저가 있는 논현동으로 돌아왔다. 이 전 대통령은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했다는 보고를 드리고자 한다”며 지지자들에게 퇴임을 보고했고, 많은 지지자들은 “이명박 대통령”을 연호하며 환영하기도 했다. 특히 어떤 지지자들은 이 전 대통령을 향해 “장로님”을 외쳐 눈길을 끌었다.

 

2월24일 강남구 논현동 사저 주변에는 오후 3시부터 주민들 및 지지자들이 모여들어 사저 인근 공원에서 마련된 환영식에 입장하기 위한 비표를 건네받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이날 신연희 강남구청장이 “이 대통령은 5년이란 찰나의 순간에 경제대국·수출대국·문화대국·체육대국·관광대국이란 위업을 달성했다”고 환영사를 했고, 새누리당 이재오·주호영 의원, 안상수 전 대표, 김효재 전 정무수석, 이동관 전 홍보수석, 정종환 전 국토부 장관 등 친이계 인사들도 자리를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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