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순 전 경제부총리 “이젠 국가를 ‘리빌딩’해야 할 때”
  • 유지만 기자 (redpill@sisapress.com)
  • 승인 2017.03.14 09:19
  • 호수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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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중심 경제구조의 실패’ 역설한 조순 前 경제부총리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인용하면서 탄핵 정국이 일단락됐다. 이제 관심은 앞으로 60일 이내에 치러질 대통령선거로 자연스럽게 옮겨가게 됐다. 사상 첫 대통령 보궐선거로 치러질 이번 대선 승자는 정권인수위원회 과정 없이 곧바로 국정을 이끌어야 한다.

 

‘최순실 국정 농단 의혹’에서 시작해 박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끝난 일련의 과정을 두고 ‘국가 시스템의 한계’ 내지는 ‘민주주의 실패’로 규정하는 이들이 많다. 그만큼 새로운 대통령에겐 무너진 시스템을 바로 세우고, 국가 통합을 이뤄야 하는 짐이 지워졌다.

시사저널은 박 전 대통령의 탄핵 선고가 나온 3월10일 오후 조순 전 경제부총리를 만났다. 1928년생인 조 전 부총리는 서울시장을 지냈으며, 정치권에선 한나라당 총재를 역임한 바 있다. “탄핵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라는 조 전 부총리는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을 ‘실패’로 규정했다. 그는 “이제는 국가를 새로 만드는 리빌딩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순 前 경제부총리 © 시사저널 이종현

대통령 탄핵이 결정됐다. 어떤 느낌인가.

 

사상 초유의 일이다. 하지만 심판하기 어려운 케이스는 아니었다. 누가 보더라도 탄핵이 가능한 사안이었다. 감정적으로는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대통령이란 자리가 무엇이냐는 관점에서 봤을 때는 상식적으로 봐도 탄핵 인용은 아주 자연스러운 결과다.

 

 

대통령 혹은 리더 자리는 무엇이 중요한 것인가.

 

자신의 사명을 알아야 한다. 내가 어떤 목적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것을 어기면 안 된다. 그런 사명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는 부족했던 것이다. 난 박 전 대통령과 모르는 사이는 아니다. 하지만 이번 사안은 어찌해 볼 도리가 없을 정도로 명백했다.

 

 

박 전 대통령이 파면에 이르게 된 원인을 무엇이라고 보나.

 

이번 일은 박 전 대통령이 자신의 사명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것에서 비롯됐다. 마치 사기업을 운영하는 듯한 행위를 한 것에서 이 모든 사태가 시작된 것이다. 이념과는 관계없다.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대한 사명감이 없었던 것이다.

 

 

“박근혜, 사기업 운영하듯 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합쳐서 9년 정도 보수정권이 들어섰다. 어떻게 평가하나.

 

이명박 정권도 성공한 정권은 아니다. 박근혜 정권도 성공하지 못했다. 둘 모두 사실상 실패한 정권이다. 보수세력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사실은 보수가 나라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나라의 기본을 지키는 임무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전혀 그러지 못했다.

 

 

현재 보수정당이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두 개로 갈라졌다. 한나라당 총재를 역임했던 입장에서 보수세력이 어디로 가야 한다고 보나.

 

보수는 현재 어렵게 됐다. 이 나라의 정체성이 상당히 흔들리고 있다. ‘대한민국은 무엇이냐’ ‘한국 사람은 누구인가’에 대해 답하기 힘들 정도로 정체성이 흐려져 있다. 누가 보수정당을 해도 힘들 정도로 국가의 정체성이 희미한 상태다. 우선 종교로 보면 불교 국가인지, 유교 국가인지, 기독교 국가인지, 천주교 국가인지 알 수 없다. 또 역사가 있는 나라인지 없는 나라인지 모르겠다. 몇 천 년의 역사가 있다고는 하지만, 수도 서울에 고적(古跡)도 별로 없다. 전통을 살리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현대적인 국가로 변모하지도 않았다. 한국이 어떤 나라인가에 대한 답이 나오기 힘든 상황이다.

 

 

결국 ‘보수의 실패’를 겪고 있는 셈인가.

 

실패다. 완전히 실패했다. 보수가 아니라 수구(守舊)로 변질됐다. 자신의 이권만을 지키는 데 집착한 것이다. 내가 정치권에 몸담았던 시절보다 나아지지 못했다. 사실 보수의 실패는 1공화국 때부터 시작됐다. 초대 이승만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만들어가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임기를 연장하기 위해 3선 개헌을 하고, 부정선거에까지 걸렸다. 이 때문에 하야했고, 외국으로 도망쳤다.

 

 

반대로 진보진영은 성공한 것인가.

 

그들 역시 실패했다. 난 대한민국의 진보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다. 진보라는 것은 문제를 제기하고 이를 해결하는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의 진보는 분명치 않다. 보수 없는 진보가 없듯, 진보 없는 보수도 없다. 우리나라는 진보와 보수 모두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결국 초대 대통령 시절부터 기초를 튼튼히 세우지 못한 결과를 맞이했다는 의미인가.

 

‘네이션 빌딩(Nation Building)’이라는 말이 있다. 이 작업은 오랜 시간 해야 한다. 미국을 봐도 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 등 초기의 인물들이 상당히 잘했다. 이 과정에서 국가 기초를 닦을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초대 대통령이 실패했고, 2대 대통령은 잘못한 것도 없는데 군대가 나라를 장악했다. 3공화국부터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독재가 시작됐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경제를 살렸다고 말하지만 이는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다. 경제는 국가가 아니라 국민이 살리는 것이다. 법을 잘 만들어서 적용하면 국민이 알아서 잘한다. 재벌 중심의 경제구조를 만들어놓고 ‘한강의 기적’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결국에는 실패한 셈이다.

 

 

경제상황은 어떠한가. 여전히 어려운 상황인데.

 

나라의 기초를 튼튼히 한 뒤에 경제성장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실제 경제도 기초가 없다. 그나마 조금 남아 있던 경제 기초를 이명박·박근혜 대통령 시절에 다 날려버리게 됐다.

 

 

대선이 가시화됐다. 이번 대선에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보나.

 

‘네이션 리빌딩’이다. ‘국가 다시 만들기’라고 할 수 있다. 국가 건설에 실패했으니, 다시 쌓아야 한다. 국민 지지를 받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본인의 자질이 문제다. 자신의 사명을 잘 모르고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면 모두 헛노릇이다. 하지만 현재 대통령을 할 만한 후보가 보이지 않는다.

 

 

과거의 대통령 중에 현 시대상황과 맞을 만한 인물이 있었나.

 

굳이 따지자면 김영삼·김대중 대통령 정도다. 비교적 나은 인물이었지만 네이션 리빌딩은 제대로 하지 못했다.

 

 

현 대선 주자들을 평가한다면.

 

평가에 앞서 시대적 과제를 제대로 수행할 만한 후보가 보이지 않는다. 후보자 개인에 대한 평은 따로 하지 않겠다. 자신을 모두 던질 각오를 가지고 국가를 바꿀 후보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조순 전 경제부총리가 3월3일 서울 영등포구 중소기업중앙회관에서 열린 동반성장국가혁신포럼 창립대회에서 축사를 마친 뒤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의 부축을 받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내각제, 민주주의에 가장 근접”

 

개헌 이슈도 있다. 어떤 방향이 옳다고 생각하나.

 

지금까지 나온 개헌 논의는 모두 신통치 않다. 이를테면 이원집정부제는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한 사람은 내치(內治)를 하고 한 사람은 외치(外治)를 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내치와 외치는 분리될 수 없다. 내각제를 하는 것이 가장 좋은데 지금껏 내각제를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가장 필요한 것이 내각제다. 내각제를 하게 되면 총리가 모든 책임을 지게 된다. 총리의 책임은 대통령보다도 훨씬 강하다. 박 전 대통령은 책임지지 않고 4년 정도 집권했지만 총리는 뭔가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당장 쫓겨날 수 있다. 책임이 강화되기 때문에 내각책임제가 민주주의하고 가장 가깝다. 대통령책임제는 왕을 만드는 것이지, 민주주의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국가를 다시 세우는 데 가장 우선시하는 분야는 무엇인가.

 

교육과 정치다. 현재의 교육 시스템으로는 장래가 없다. 대학에서부터 유치원에 이르기까지 통제하는 시스템은 필요 없다. 교육은 사람을 만드는 과정이다. 영어 단어를 외우는 것이 아니다. 몸과 마음을 가꾸도록 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그런 교육이 없다. 지식이라고 해도 쓸모없는 것만 가르친다.

 

 

경제상황도 좋지 않다.

 

경제가 매우 나쁘긴 하지만 경제상황이 나아진다고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다. 경제는 경제대로 보살피면서 다른 분야도 손봐야 한다. 밥만 먹고 살 수 없지 않은가. 조금 더 나은 상황을 만들 수 있는 철학이 있어야 한다. 박 전 대통령에게는 전혀 철학이 없었다.

 

 

촛불집회와 탄핵 반대 집회가 갈라졌었는데, 이들이 통합할 수 있을까.

 

탄핵 반대 집회 측의 생각은 잘 모르겠다. 촛불집회가 싫어서 나선 것인지, 박 전 대통령을 지키려 했던 것인지 모르겠다.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모르겠다. 통합 과제가 있겠지만, 리더십만 확고하게 세운다면 통합에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국민이 어떤 자세로 이 시대를 임해야 할까.

 

남에게 기대하지 말고, 오늘보다 조금 더 나은 내일을 만드는 방법을 각자 찾아야 한다. 중국 은나라 시조인 탕왕은 자신의 세숫대야에 ‘구일신 일일신 우일신(苟日新 日日新 又日新)’을 새겨놓았다. 이는 ‘날로 새롭고, 나날이 새롭고, 또 날로 새롭다’는 뜻이다. 매일 얼굴을 씻듯이 나날이 새롭게 돼야 한다는 각오였다. 국민들도 이 같은 자세로 노력했으면 한다. 그렇게 노력하면 결국 이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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