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한 범죄 아동학대,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
  • 김경민 기자․신수용 인턴기자 (kkim@sisapress.com)
  • 승인 2017.03.14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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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혜정 아동학대방지시민모임 대표 인터뷰

2015년 12월. 인천의 한 슈퍼마켓에서 맨발 상태의 11살 여자아이가 허겁지겁 과자를 집어먹다 발견됐다. 120cm의 키에 몸무게는 4살 평균인 16kg에 불과했다. 아이의 갈비뼈는 금이 간 상태였고, 온몸은 상처투성이였다. 아버지와 동거녀의 학대에 시달리다가 가스 배관을 타고 집에서 탈출한 ‘학대 아동’이었다. 

 

아이가 받아온 학대는 경찰 조사 결과 더욱 선명하게 실체를 드러냈다. 조사 결과 아이는 3년간 학교에도 가지 못한 채, 집에 감금된 상태로 친아버지와 계모의 상습폭행에 시달린 사실이 밝혀졌다. 일명 ‘인천 아동학대 사건’이다. 

 

충격에 빠진 정부는 그해 12월 장기결석아동에 대한 전수 조사를 실시했다. 교육부와 보건복지부, 경찰청이 모여 정당한 이유 없이 7일 이상 장기결석한 아동을 조사했다. 그리고 그 결과를 2016년 2월 발표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8살짜리 아이 98명이 초등학교 입학식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 아이들이 어디에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게 발표 내용이었다. 전국 초등학교에서 장기결석중인 아동은 총 287명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아동의 소재 불명으로 신고된 사례는 총 59건이었으며, 현재까지 소재가 확인되지 않은 사례는 4건이었다. 

 

실제로 아동학대 신고건수는 2014년 약 1만7000건, 2015년 1만9000건, 2016년 2만9000건으로 매년 증가 추세다. 신고 된 사건 중 아동학대로 판명 난 것은 신고건수의 약 59%인 1만27건(2014년), 2015년엔 신고건수의 약 58%인 1만1000건, 2016년엔 신고건수의 약62%인 1만8000건이었다. 10건의 신고 사건 중 6건이 실제 아동학대였던 셈이다. 교육부와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조사 대상을 확장해 전국의 1만여개 초중고교의 장기 결석 아동 현황 파악에 나서기로 했다. 교육부가 매년 집계하는 ‘학업중단학생’ 통계로는 아동 학대 등으로 인한 결석이나 학업 중단 등의 현황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아동학대방지시민모임 '하늘소풍' 공혜정 대표 ⓒ 시사저널 박정훈

10개 신고사건 중 6건이 아동학대로 밝혀져

 

장기결석 아동이 이렇게 많으며, 학대를 당하고 있는 아이들이 이토록 많다는 사실은 한국 사회에 충격파를 던졌다. 그리고 의문을 안겨줬다. ‘정말 이게 아동학대 싵태의 전부일까. 더 많은 아이들이 고통받고 있지는 않을까.’ 시사저널은 2월28일 여의도 국회에서 아동학대 문제 해결을 위해 싸워온 공혜정 아동학대방지시민모임(이하 아시모) 대표를 만나 아동학대 실태와 이를 근절시키기 위한 방안을 물었다. 

 

공 대표는 “착잡한 심경”이라며 운을 뗐다. 그는 “한 번의 전수조사로 사망한 아이들이 많이 발견됐다”며 “향후 수년간 우리는 이 전수조사 결과가 드러내는 비극을 반복적으로 마주해야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공 대표는 2013년 11월6일 처음 아시모를 만들었다. ‘울산계모사건’이 계기였다. 같은 해 10월 계모 박씨가 8세 의붓딸을 자신의 집에서 주먹과 발로 무차별적으로 수차례 가격해 폐 파열로 숨지게 한 사건이다. 박씨는 의붓딸을 1시간 동안 머리, 가슴, 배 등 급소를 포함한 신체 주요 부위를 집중적으로 수없이 때리고 발로 찼으며, 이 과정에서 의붓딸의 갈비뼈 16개가  부러지며 폐가 손상됐다. 수사과정에서 이전부터 의붓딸에 대한 학대가 지속적으로 이뤄져왔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공 대표의 방송통신대학 재학시절 함께 공부하던 스터디 일원 중 하나가 당시 이 사건 피해 아동의 생모였다. 공 대표는 “아시모 결성은 마치 준비된 우연 같았다”고 말했다. 그는 “울산계모사건의 가해자인 계모에게 사형 대신 징역 18년이 선고됐다”며 “(계모가)멀쩡하게 공인중개사 시험을 준비한다는 말에 화가 났다”고 말했다. 아동학대에 대한 처벌이 너무 약하다는 주장이었다. 

 

그는 현재 자식을 죽인 부모에 대한 형량이 지나치게 가볍다는 점을 지적했다. 공 대표는 “부모를 죽이거나 형제간에 발생하는 살인의 형량에 비해 자식을 죽인 부모에 대한 형량은 크지 않다”며 “심지어 죽은 피해 아동의 나이가 어릴수록 형량이 내려가는게 현실이다”고 말했다. 아동 연령에 상관없이 아동학대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강화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2013년 3월30일 일명 '울산계모사건'의 피의자 계모(가운데 파란색 외투) 박씨의 현장검증이 진행되고 있다. ⓒ 연합뉴스

“아시모 대표로서 전국에서 열리는 아동학대와 관련된 재판과 현장검증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은데, 재판에 가보면 아이들이 얼마나 다양한 방법으로 죽어갔는지 알 수 있다”는 그는 피해자 지원 요청이 오면 가리지 않고 찾아간다. 공 대표와 함께 아시모 활동 중인 바오밥나무 서울(닉네임)씨는 “공 대표님도 그렇고 이 일을 하면서 가해자 측으로부터 고소와 협박을 많이 당한다”며 “경호원이 필요하다 싶을 때도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가해자 측으로부터 오는 숱한 협박과 회유에도 3년이 넘도록 이 단체를 지켜온 것은 오직 ‘희생된 아이들’에 대한 일종의 책임감이었다. 처음 이 단체를 만들때 붙였던 ‘하늘소풍’이란 이름도 ‘아이다 학대로 죽기 전에 지켜내자’라는 마음을 담아 아시모로 바꾼 것이라고 공 대표는 말했다. 

 

아시모 회원들은 무엇보다 “​일상에서 쉽게 지나치던 것들을 지나치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친부와 계모가 7살 신원영 군을 학대 끝에 숨지게 하고 시신을 암매장한 ‘원영이 사건’을 처음 세상에 알린 것도 평택에 사는 아시모 회원이었다. 당시 원영이가 취학예정이었던 학교에 나오지 않자 이 학교의 교감이 실종 신고 접수했다. 길을 가다 이 실종신고 전단지를 발견한 평택의 아시모 회원은 원영이의 부모가 실종신고를 하지 않았던 점을 이상하게 여겨 아동학대 의심 신고를 했다. 그리고 실종신고 20일 만에 경찰이 원영이를 공개수배를 하면서 ‘원영이 사건’의 전모가 세상에 드러난 것이다. 

 

 

‘재학대 악순환’ 연결고리 끊어야

 

“서현이(울산계모사건의 피해아동) 친부가 출소하는데 걱정이다.”

ⓒ 일러스트 오상민
아동학대 사건은 대부분 최초의 아동학대가 재학대로 이어지며 반복되는 특징을 보인다. 공 대표는 아동학대가 피해 아동의 죽음으로 이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이 ‘재학대’ 악순환부터 끊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동학대 사건의 또 다른 특징은 서서히 지속적으로 진행된다는 점이다. 피해아동에 대한 신체적 정신적 학대가 장기간 반복적으로 이뤄지는 과정에서 많은 경우 피해자가 죽음에 이른다. 

 

피해 아동이 생존하더라도 트라우마로 인해 평생을 고통받는 경우가 많다. 자라나면서 부모의 폭력을 피해 가출청소년이 되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공 대표는 “멍든 아이를 발견하면 신고하는, 이 간단한 행위만으로도 (학대의 지속성을) 한 번 끊어 줄 수 있다”며 학대아동에 대한 관심과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당부했다. 

 

그는 “아동학대 수사를 하고 나면 아이들은 학대를 당하던 그 가정으로 돌아가게 된다”며 사정당국 및 관계 기관의 재학대 방지 노력을 요청했다. 이를 위해 관계 기관에서 해당 가정을 지속적으로 방문하거나 피해 아동을 전담에 돌봐줄 모니터링 요원을 둘 필요가 있다고 그는 설명한다. 

 

 

아동학대 방지 위해 부모교육 활성화해야

 

무엇보다 부모에게 올바른 자녀 양육방법을 교육해야한다는 게 공 대표의 평소 지론이다. 말하자면 ‘부모 되는 법’의 제도화다. 그는 “부모란 되기 힘든 게 아니라 그 노릇을 제대로 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말한다. “준비되지 않은 부모 아래에서 자란 아이들이 올바른 부모상을 만들지 못한 채 부모가 되는 경우 (아동학대와 같은) 불행한 사태로 이어지곤 한다. 따라서 성인들에 대한 아동학대 방지 교육을 활성화해야 한다.” 정부가 성인인 국민을 대상으로 인성이나 리더십, 기술 교육만 할 것이 아니라 올바른 자녀 양육방법을 알려주는 ‘부모 교육’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서기 어렵다면 마트‧백화점 문화센터나 주민센터 등 민간차원에서의 교육에 대한 지원이라도 해야한다는게 공 대표의 주장이다. 나이에 따른 아이의 특성과 발달 단계에 따른 양육 방법을 가르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공 대표는 “(정부는)돈 없다는 이야기만 하는데, 양육경험이 풍부한 주부들의 참여를 독려하는 등 예산을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고 말했다. 

 

공 대표는 누차 ‘아동학대 예방’ 차원으로 범위를 확대해 대책마련을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미 일어난 아동학대의 재발 방지도 중요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그 발생 가능성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지금도 많은 아이들이 가장 안전해야할 집에서 그들의 부모로부터 학대를 당하고 있다. 단순히 학대아동의 실태와 사망 여부를 확인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아동학대 예방의 개념까지 대책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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