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대통령 은혜를 갚자, 박근혜 대통령을 지켜라!”
  • 박혁진 기자 (phj@sisajournal.com)
  • 승인 2017.03.21 09:50
  • 호수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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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보수 기독교계, 탄핵 반대 집회 이끌며 황교안 출마 독려 등 정치 세력화 시도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을 앞뒀던 3월1일 오전 11시 서울 광화문네거리에서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와 한국교회연합(한교연)이 공동으로 개최하는 ‘3·1절 구국기도회’가 열렸다. 한기총 대표인 이영훈 여의도순복음교회 목사는 기도회 이틀 전인 2월27일 기자회견을 열고 “탄핵 정국으로 나라가 혼란 속에 있는데, 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은 모여서 함께 기도하는 것”이라며 기도회 개최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기도회가 탄핵 반대 집회와 같은 장소에서 열리는 것에 대한 비판 여론을 의식해, “기독교가 어느 특정 편에 서지 않고 중간에서 대한민국이 처한 어려움을 놓고 간절히 기도하고자 이번 구국기도회를 개최하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구국기도회는 이 목사의 해명과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됐다. 종교집회임을 내세웠음에도 애국가 제창과 국기에 대한 경례로 행사가 시작됐다. 기도회를 위해 만든 무대에 대형 교회 목사들과 함께 박사모 회장인 정광용 ‘탄핵기각을위한총궐기운동본부’(탄기국) 대변인이 올랐다. 무대 뒤편에는 ‘3·1절 만세운동 구국기도회’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지만, 하단에는 ‘국민총궐기운동본부’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승만 전 대통령과 박정희 전 대통령 초상화를 들거나, 박근혜 전 대통령 사진을 든 참가자들도 손쉽게 찾을 수 있었다. 탄핵 반대 집회에 매번 등장했던 대형 성조기도 보였다. 탄핵 반대 집회에 기독교인들이 참석한 것은 이날이 처음은 아니었다. 1월7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서 열렸던 탄핵 반대 집회에도 다수의 기독교인들이 참석했다. 당시 참석했던 교인들은 찬송가를 부르며 인근 대치동 박영수 특검 사무실까지 행진하기도 했다.

 

3·1절을 맞은 3월1일 오전 서울 광화문네거리에서 한국기독교총연합회를 비롯한 기독교단체 회원들이 ‘3·1절 만세운동 구국기도회’에 참석해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대형 교회 목사들, 黃 지원 대책 마련했었다”

 

3·1절 기도회에 취재차 참석했던 한 기독교 전문매체 기자는 “기도회가 탄핵 반대 집회와 관련이 없다고 강조하지만, 사실상 탄기국 집회에 기독교가 숟가락을 얹은 모양새였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기도회를 위한 집회신고와 무대 설치도 탄기국이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기도회가 진행되는 도중 정광용 대변인이 기도회 단상에 올라 경찰 측의 차선 통제를 요청했고, 빨간 모자를 쓴 참가자들이 단상 주변을 통제했다고 한다. 기도회 무대 바로 옆에 탄기국 모금함도 놓여 있었다. 이날 기도회는 오후 1시10분쯤 끝났지만, 대다수 참가자들은 기도회 자리를 뜨지 않고 2시부터 이어진 탄핵 반대 집회에 참석했다. 이날 참가자 중 상당수는 여의도순복음교회 교인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탄핵 반대 집회 참석을 독려하는 식으로 정치색을 드러내는 교계 인사들이 있는가 하면, 물밑에서 정치인들을 움직이려는 기독교 원로들도 있다. 대표적 사례가 수도권 한 대형 교회의 담임목사인 김아무개 목사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의 대선 출마를 계속 권유한 것이다. 황 대행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한 정치권 관계자는 “교회에서 전도사란 직함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황 대행에게 김 목사를 비롯한 교계 원로들이 여러 차례 대선 출마를 직·간접적으로 권유했다”며 “황 대행이 끝까지 대선 출마 여부를 놓고 고민했던 가장 큰 이유도 이런 목사들의 권유를 물리치기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김 목사를 비롯한 대형 교회 목사들이 황 대행 출마를 위해 이미 수차례 회동을 가졌고, 출마했을 경우 지원 대책까지 다 마련해 놨던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노골적으로 기독교의 정치 세력화를 주도하는 인사들은 대부분 정치적으로 극우 성향을 띠거나, 대형 교회에 기반을 둔 목사들이다. 이들이 유독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우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한국 기독교가 기본적으로 보수 성향이 짙은 데다 반공 이데올로기까지 더해지면서 박근혜 정권과 코드가 잘 맞을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3월1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린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탄기국) 태극기집회에 서석구 변호사(오른쪽)가 참석했다. 이날 집회는 한기총이 주최한 구국기도회가 끝나자마자 시작됐다. © 시사저널 고성준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을 창립한 손봉호 전 동덕여대 총장은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전통적으로 무속적 신앙이 몸에 배어 있는 우리 민족이 ‘기복(祈福)주의’를 강조하는 교회들에 몰려서 대형화된 측면이 있다”며 “이런 교회들은 대부분 미국 보수 교단 선교사들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손 전 총장은 또한 “한국전쟁을 전후해 기독교인들이 공산주의 정권의 핍박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반공이라는 가치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며 “아무래도 박근혜 정권이 북한 공산주의 정권에 대해 적대적이다 보니 탄핵을 반대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손 전 총장의 지적처럼 탄핵 반대 집회에 참여하는 기독교 목사들이 주로 외치는 구호는 ‘공산주의 척결’이다. 3·1절 구국기도회에서 설교한 여의도순복음교회 이영훈 목사는 “집회에 정치적 오해가 없도록 노력하겠다”면서도 “그러나 공산주의는 절대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공산당이 들어오면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은 무너지고, 모든 교회는 문을 닫아야 한다”며 “북한 공산 독재 정권을 지지하는 어떠한 세력도 용납할 수 없는 것이 내 개인 신앙의 입장이고, 우리 교회 입장이다”고 말했다.

 

김진호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오늘날의 보수 기독교를 분석하고 있다. 김 실장은 시사저널에 기고한 글에서 “해방 후 좌익세력에 대한 무차별 테러를 자행했던 서북청년단 역시 기독교에 뿌리를 두고 있다”며 “평안도 출신 월남자들이 모인 영락교회는 서북청년단의 가장 중요한 근거지였다. 테러와 암살을 주도한 이들의 명분이 ‘그리스도의 이름’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서북청년단은 단순한 이민자 집단이 아니라 해방 정국의 가장 중요한 활동가 세력의 하나로 남한을 극우사회로 이끈 장본인이었다. 그 이후에도 줄곧 한국 사회의 가장 핵심적 파워엘리트 인맥의 하나였고 가장 강성의 극우주의 세력을 대표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박근혜 정권에서 서북청년단의 부활을 주장하는 단체가 생겼고, 극우집단들의 활동이 부쩍 활발해졌다”며 “아마도 이명박 정권 시절 권력연합에 참여한 일단의 극우개신교 세력이 그 중심에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1월7일 서울 시내 한 공원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 참석한 목사가 손을 들어 기도하고 있다. © AP 연합

일부 개신교 세력, 군사정권 시절 특혜 받아

 

탄핵 반대 집회에 교인들을 동원하는 교계 인사들이 군사정권과 우호적으로 지내며 사실상의 특혜를 누린 것도 공통점이다. 한때 국내 최대의 대학생 선교단체였던 CCC의 고 김준곤 목사는 1968년 제1회 국가조찬기도회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이룩하려는 나라가 속히 임하길 빈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또 “우리나라의 군사혁명이 성공한 이유는 하나님이 혁명을 성공시킨 것”이라고까지 칭송한 바 있다. 김 목사는 박정희 대통령이 10월유신을 발표한 뒤 열린 국가조찬기도회에선 “민족의 운명을 걸고 세계의 주시 속에 벌어지고 있는 10월유신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기어이 성공시켜야 하겠다. 외람되지만 각하의 치하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군신자화운동이 종교계에서는 이미 세계적 자랑이 되고 있는데 그것이 만일 전민족신자화운동으로까지 확대될 수만 있다면 10월 유신은 실로 세계 정신사적 새 물결을 만들고 신명기 28장에 약속된 성서적 축복을 받을 것”이라고도 했다.

 

뿐만 아니라 광주민주화운동 직후인 1980년 8월6일 고 한경직 목사를 비롯한 유력한 교계 인사들은 서울 롯데호텔 에메랄드룸에서 나라를 위한 조찬기도회를 열었다. 이들은 전두환을 앞에 두고, 전두환의 군권 찬탈에 정당성을 부여했고 그의 앞날을 축복해 줬다. 이 대가로 교회들은 땅을 받아 큰 교회를 짓거나, 대규모 인원이 모여도 중앙정보부의 감시를 받지 않는 특혜를 누렸다. 

이에 대해 한 진보적 교단의 목사는 “3명 이상만 모여도 중앙정보부나 경찰로부터 의심을 받던 시기에 100만 명이 모이는 집회를 정부로부터 허가받는 것은 특혜나 다름없었다”며 “군사정권이 민주주의와 자유를 원하는 민심을 종교를 이용해 무마시킨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 목사는 “정확하게 얘기하면 당시 군사정권 부역자라고 할 수 있는 목사들이 오늘날 탄핵 반대 집회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으로 보인다”며 “극우집회에 교인을 동원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전 대통령을 지키려고 하는 것은 일부 대형 교회 목사들이 가지고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부채의식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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