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과 밀월 택한 홍준표의 딜레마
  • 소종섭 편집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4.13 09:10
  • 호수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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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은 4강 구도, 불리한 구도 아니다”…현재 같은 지지도 계속되면 ‘결단’ 압박 받을 수도

 

풍경 1 

“이 정부의 일부 양박(양아치 친박)들과 청와대 민정수석실 주도로 내 사건을 만들었다. 아무 이념도 없이 그냥 국회의원 한번 해 보기 위해 박근혜 대통령 치맛자락을 잡고 있던 사람들이 친박이다. 그 사람들이 무슨 이념이 있고 대한민국 보수 우파에 대한 이론적 정립이나 생각이 있느냐. 난 친박은 궤멸할 것이라고 진즉부터 봤다. 친노는 이념으로 뭉쳐 부활할 수 있지만, 이념이 없는 집단은 정치집단이 아닌 이익집단이기에 자기들의 이익이 없어지면 당연히 붕괴된다.”(2017년 2월16일 경상남도 서울사무소 기자간담회)

 

풍경 2

“친박 계파는 없어지고 저는 친박에 얹힐 사람이 아니다. 독고다이로 있다가 지금 자유한국당이라는 세력을, 이 땅에 보수 본당 모든 사람의 세력을 얻었는데 거기서 친박이냐, 아니냐 그런 식으로 하는 것은 맞지 않다.”(2017년 4월5일 부산 삼광사 방문 뒤 기자들과 만나)

 

친박(친박근혜)계에 대한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의 태도가 확 바뀌었다. 지난 4월4일 JTBC 인터뷰에서는 손석희 앵커와 이런 문답을 주고받기도 했다.

 

손석희: 이제 당에 친박은 없다고 하시니까 좀 헷갈리는 측면이 있습니다.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홍준표: 친박이 있었다면 제가 이 친박 정당에서 책임당원 투표의 61.4%를 득표할 수 있었겠습니까? 친박이 없어진 거죠. 이제는 자유한국당 당원들만 남은 거죠.

 

손석희: 예를 들면 강원 쪽을 맡은 김진태 의원은 그러면 친박은 아니라고 보시는 건가요?

 

홍준표: 본인이 토론 과정에서 친박 아니라고 수차례 이야기를 했어요. 친박이 아니라고 봐야죠.

3월31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대통령 후보 선출을 위한 제1차 전당대회에서 홍준표 경남지사가 후보로 선출된 직후 손을 흔들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대선후보로 확정되기 전만 해도 친박계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홍 후보는 후보 확정 이후 친박계를 감싸는 모습이다. ‘밀월 관계’라는 말도 나온다. 지난 4월4일 대구에서 열린 대구·경북 선대위 발대식 겸 필승대회에는 최경환·조원진 의원 등 핵심 친박들이 참석했다. TK(대구·경북)지역 선거대책위원회에 친박 인사들이 배치되기도 했다. 경북 선대위원장으로 김광림·백승주 의원을, 총괄선대본부장으로는 이만희 의원을 임명했다. 대구 선대위원장은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와 윤재옥 의원이 맡았다. “5월9일 홍준표 정부가 들어서면 박근혜는 산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친박들의 태도도 달라졌다. 잔뜩 움츠려 있던 데서 벗어나 기지개를 펴는 모습이 역력하다. 최경환 의원은 “보수적자(嫡子) 후보인 홍 후보의 당선에 작은 힘이나마 보태려고 왔다. 대통령이 탄핵되고 구속까지 됐는데 지금 친박, 비박(비박근혜)이 어디 있느냐. 지금은 당이 하나가 돼서 좌파 포퓰리즘 세력의 집권을 막는 것이 급선무다”라고 강조했다. 윤상현 의원도 “홍준표 후보가 보수적통 후보임에는 누가 봐도 이견이 없다”고 가세했다.

 

홍 후보는 비박계다. 지난 2014년 경남지사 선거를 앞둔 경선에서 친박 인사와 치고받은 일은 유명하다. 친박계는 당시 공공연하게 창원시장을 지낸 박완수 후보(현 자유한국당 의원)를 지원했다. 경남지역 의원들 상당수도 박 후보를 도왔다. 두 사람은 당시 맞고발전까지 벌이며 “깜도 안 되는” “중앙정치판 퇴물” 등 날 선 말을 주고받았다. 경남지사 후보 경선에서 총 4506표를 얻어 불과 400여 표 차로 박완수 후보를 힘겹게 이긴 뒤 “친박계가 총궐기한 경선이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조원진 자유한국당 의원이 4월5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박사모 등 친박 단체 주도로 열린 ‘새누리당(가칭) 중앙당 창당대회’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우파 총결집으로 승부수

 

이런 과거가 있기 때문에 자유한국당 안팎에서는 홍 후보가 대선후보가 되면 친박 일부를 쳐내고 바른정당과 통합을 도모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그것은 바른정당 인사들이 ‘보수단일화’를 위해 내건 최소한의 조건이기도 했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보면 홍 후보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인다. 오히려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에게 “4월16일까지가 (중앙선관위) 대선후보 등록 기간인데 유 후보가 후보 등록을 안 하고 (자유한국당에) 들어오면 간단하다”며 무조건 들어오라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바른정당이 곱게 응할 리 없다. 유 후보는 “홍준표 후보는 대통령이 돼도 법원에 재판을 받으러 가야 하고, 만약 유죄 판결로 확정되면 그 즉시 대통령직을 상실하게 된다. 자격이 없는 후보다”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두 당이 한 후보를 낼 가능성은 점점 멀어지고 있는 흐름이다.

 

홍 후보는 왜 친박계와 밀월 관계를 형성하는 선택을 한 것일까. 어떤 이들은 홍 후보의 언급에서 답을 찾는다. 홍 후보는 “이번 대선은 4강 구도로 갈 것이다. 좌파 두 명, 얼치기 좌파 한 명, 우파 한 명으로 끌고 가면 불리한 구도가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문재인·심상정·안철수 후보와 자신이 맞붙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의도적으로 유승민 후보를 무시하는 것이지만 홍 후보 주장대로라면 우파를 잘 결집시키면 이길 수 있다고 본다는 것이다. 이런 논리에서 보면 친박계든 누구든 우파를 총결집해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일각에서는 홍 후보가 ‘대선 이후’에 더 관심이 있기에 친박계와 우호적 관계를 형성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대선 이후 당권의 향방 등과 관련해 자유한국당의 최대 세력인 친박계와 공존하기로 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홍 후보로서는 딜레마다. 친박계를 계속 끌어안고 가자니 ‘자유한국당은 친박당’ 이미지가 신뢰를 떨어뜨린다. 변화한다는, 혁신한다는 느낌을 주지 못하고 있다. 홍 후보 지지도가 약진하지 못하고 있는 데는 이런 부분도 한몫하고 있다. ‘친박은 살지만 지지자는 빠져나가는’ 형국이다. 바른정당과의 단일후보 논의도 진전을 보기 힘들다. 현재와 같은 지지도가 계속 이어질 경우 홍 후보로서는 ‘결단’을 압박 받는 시점이 올 수도 있다. ‘대선 이후’에 더 관심이 있지 않다면 말이다. 시간이 그리 많지는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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