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보험에도 누진제가 적용된다면?
  • 이민우 기자 (mwlee@sisajournal.com)
  • 승인 2017.04.14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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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우 기자의 If] 월소득 546만원 미만 근로자 보험료 줄어…250만원 수입자 17만원 감소

 

얼마 전 월급명세서를 받아 봤습니다. 많지도 않은 월급에 뭘 이렇게 많이 떼어 가는지 아쉬웠습니다. 새삼 공제 내역을 살펴봤습니다. 공제액의 40% 정도는 소득세와 주민세 등 세금이었습니다. 기자협회비와 사우회비를 빼고 53% 정도는 국민연금과 건강보험, 고용보험 명목으로 공제를 했더군요. 세금처럼 강제적으로 부담해야 할 사회보험료가 소득세보다 더 많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확인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문득 의문이 들었습니다. “세금에는 누진율이 적용되는데 더 많이 내는 사회보험에는 왜 누진율을 적용하지 않을까.” 이번 회에선 사회보험료에 대해 누진율 적용이 필요할지, 또 근로자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등에 대해 따져보고자 합니다.

 


노부부의 치료비, 누가 더 부담해야 할까요

 

두 자녀를 둔 노부부가 병에 걸렸다고 가정해봅시다. 병원 치료를 위해 매월 100만원이 든다고 합니다. 이 때 두 자녀는 노부부의 병원 치료를 위해 얼마씩 부담하는 게 합리적일까요.

 

일단 두 자녀의 상황을 봅시다. 첫째는 대기업 관리직이어서 월 소득이 800만원에 달합니다. 집도 있고, 차도 있으며, 여유로운 생활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매월 200만원씩 저축도 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비정규직에 소득이 200만원에 불과해 생계유지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저축은 꿈도 못 꾸는 상황입니다.

 

선택지는 총 세 가지입니다. 1) 첫째와 둘째가 공평하게 50만원씩 부담한다. 2) 첫째와 둘째가 월급의 10%(첫째 80만원+둘째 20만원)씩 부담한다. 3)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첫째가 대부분을 부담하고, 둘째가 형편대로 돕는다. 어느 것이 합리적일까요.

물론 2번도 나름 합리적인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한 달 월급으로 가정을 꾸리기도 빠듯한데 20만원씩 부담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매월 200만원이나 저축을 하고 있는 첫째가 90만원을 부담하고, 둘째가 진료비에 보태 쓰라고 10만원을 보태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

 

이 문제를 사회 전체의 문제에 대입해 보면 됩니다. 현행 체제는 2번에 가깝습니다. 사회보험은 보수월액의 몇 %를 일괄적으로 걷도록 돼 있습니다. 국민연금은 근로자와 사업자가 4.5%씩 총 9%를 부담합니다. 건강보험은 보수월액의 3.06%씩 각각 내고 있습니다.

 

물론 사회보험 자체가 간접적인 재분배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건강보험의 경우 보험료를 덜 낸 사람이나 더 낸 사람이나 똑같은 혜택을 받고 있습니다. 국민연금은 나중에 돌려받는 최고수령액을 정해놓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국민연금 보험료 상한선(기준소득월액 434만원)도 정해져 있어 재분배 성격이 약화됩니다.

 


누진 적용 시 근로자 90% 덜 낸다

 

사회보험에 누진제를 적용할 경우 보험료 부담은 어떻게 될까요. 우선 논의의 출발은 국민연금이나 건강보험의 보험료 수입이 줄어들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가뜩이나 갈수록 재정이 악화되고, 가까운 미래에 적자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혜택을 줄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국민연금 보험료 수입은 약 39조원입니다.  2015년 기준 건강보험 보험료 수입(44조원) 가운데 직장가입자가 낸 보험료는 37조원입니다. 국민연금과 건강보험을 합치면 약 76조원에 달합니다.

 

그렇다면 사회보험에 소득세 수준의 누진율을 적용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소득세에 연동하는 방식으로 사회보험료를 책정할 수 있습니다. 근로자 소득세의 1.23배 정도를 부담하도록 하면, 사업자가 동일하게 부담하기 때문에 사회보험료는 근로소득세의 2.4배에 이릅니다. 지난해 근로자가 부담한 소득세(31조원)의 1.23배를 부담하고, 사업자가 동일하게 부담을 할 경우 사회보험료 재정 76조원을 충당할 수 있습니다.

 

소득세와 연동할 경우 월급이 250만원인 사람의 사회보험료는 어떻게 될까요. 2017년 근로소득 간이세액표(공제대상가족 4명 기준)를 기준으로 소득세로 1만3150원을 원천 징수하고 있습니다. 국민연금과 건강보험료는 각각 11만2500원과 7만6500원을 부담하고 있습니다. 누진제를 적용해 소득세의 1.23배를 징수할 경우 국민연금과 건강보험 보험료는 1만6174원에 불과합니다. 17만2800원 정도 적게 냅니다. 반면 고소득자들에게는 큰 충격입니다. 월 소득이 1000만원인 사람은 현재 122만원을 원천징수합니다. 건강보험료는 30만6000원, 국민연금은 19만5300원을 냅니다. 하지만 소득세와 연동할 경우 사회보험료가 150만원 수준으로 크게 오릅니다.

 

당연히 덜 내는 사람이 있으면 더 내는 사람도 발생합니다. 기준점은 월 소득 546만원입니다. 그 이상 되는 사람은 더 많은 사회보험료를 부담하게 됩니다. 현재 월소득 546만원인 사람(공제대상가족 4인 기준)은 소득세로 29만6890원을 원천징수하고 있습니다. 건강보험료 19만5300원과 국민연금 16만7076원을 내고 있습니다. 소득세의 1.23배를 사회보험료로 징수할 경우 비슷한 규모입니다.

 

이 기준점을 적용하면 소득 상위 10%의 사람이 더 내고, 나머지 90%가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2015년 소득분위별 근로자 평균 연봉에 따르면, 연봉 6432만원 이상 소득자는 상위 10%에 속합니다. 공교롭게도 사회보험에 누진율을 적용할 경우 더 내야 할 기준연봉(6552만원)과 비슷한 수치입니다.

 

 

중소기업에도 혜택

 

부수적인 효과도 있습니다. 사회보험료는 근로자와 사업자가 각각 반반씩 부담하도록 돼 있습니다. 이 비율을 조정하지 않는 이상 기업이 부담하는 사회보험료의 총량 또한 그대로입니다. 하지만 사회보험료에 누진제를 적용할 경우 중소기업들의 사회보험료 부담도 크게 줄게 됩니다. 하위 90% 근로자의 사회보험료 부담액이 줄어들면 상대적으로 중소기업이 혜택을 보는 셈입니다. 반면 상위 10분위(연봉 6432만원) 이상 고소득 근로자를 많이 채용한 대기업은 상대적으로 사회보험료 부담액이 증가합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5년을 기준으로 대기업 정규직 평균연봉은 6544만원, 중소기업 정규직 평균연봉은 3363만원으로 조사됐습니다.

 

저소득자의 사회보험료 부담이 늘면 내수를 진작시키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지난 정부에서 가계소득을 늘리기 위해 소득증대 3대 패키지 제도를 시행했지만 효과는 미미했습니다. 저소득 가구일수록 소비탄력성이 높아, 사회보험료로 떼 가는 돈을 줄여줄 경우 소비가 큰 폭으로 늘어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미 사회보험 자체가 간접적인 재분배 기능을 포함하고 있는데, 사회보험 부과 체계에도 누진제를 적용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반론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이미 한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운영되는 소득세제는 누진제 구조를 띄고 있습니다. 사회보험도 마찬가지입니다. 국가가 보조금을 지급하거나 지급보장을 하고 있다면 세수에서도 누진구조를 적용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물론 전문가들의 눈에는 이번 기획의 통계 수치에 허점이 많이 보일 것입니다. 세제가 워낙 복잡해 근로소득세를 원천징수하는 간이세액표를 기준으로 계산했기 때문입니다. 소득세는 돈을 더 쓰면 나중에 연말정산으로 돌려받는데, 이를 어떻게 볼 것이냐의 문제가 남습니다. 부양가족 4인을 기준으로 계산했는데, 부양가족에 따라 원천징수세액이 달라져 보험료 인상 기준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부양가족이 본인 외에 없는 1인 가족을 기준으로 할 경우, 월소득 432만원을 기준으로 보험료가 더 상승할 수 있습니다. 이 외에도 재산 등을 기준으로 책정되는 건강보험 지역가입자의 보험료를 어떻게 볼 것인지, 국민연금 상한선을 없앨 경우 지급액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도 추가적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이 같은 논리적 허점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쓴 것은 기본적으로 소득양극화를 해결해야 한다는 절실함 때문입니다. 소득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갈수록 악화되고 있습니다. 때문에 준조세 성격이 있는 사회보험을 누진제로 개편하자는 상상을 해봤습니다. 상위 10%에게 더 걷어 나머지 90%가 혜택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정부 정책의 방향은 결국 사회 구성원들의 선택에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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