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개혁’ 외치는 정치권, 칼자루만 잡으면 마음 바꿔
  • 조해수 기자 (chs900@sisajournal.com)
  • 승인 2017.04.17 12:55
  • 호수 143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검찰은 잘 드는 칼” 역대 정권, 검찰 개혁 천명했지만 결국 공염불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대한민국 검찰이 ‘우병우 라인’임이 다시 한 번 확인됐다. 검찰은 국민 여론을 의식해 영장은 청구했지만, 그 부실한 내용으로 볼 때 실제 구속까지는 바라지 않았음이 드러났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에 대한 수사가 결국 부메랑이 돼 검찰을 덮쳤다. 100% 발부될 것이라고 자신하던 우 전 수석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검찰의 ‘고의적인’ 부실수사 의혹이 제기됐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는 “박근혜 정부의 국정 농단이 우병우의 검찰 장악을 통해 뒷받침됐다는 것은 국민 모두가 알고 있다. 우병우에 대한 수사가 검찰의 개혁 가능성을 재는 가늠자였다”면서 “이제 검찰은 개혁의 주체가 아니라 대상임이 명확해졌다”고 검찰을 정조준했다.

 

다른 대선후보 역시 마찬가지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국민의 신뢰를 저버린 검찰은 새 정부의 개혁 대상 1호”라고 못 박았고,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역시 “대선 다음 날인 5월10일부터 검찰 개혁과 우병우 라인 청산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검찰 출신인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조차 “우병우 라인과 같은 정치검사는 철저히 색출하겠다”면서 검찰 개혁을 약속했다.

 

그러나 검찰 개혁이 실제로 이뤄질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물음표가 붙는다. 검찰 개혁은 역대 대선 때마다 ‘단골손님’이었고, 유권자 역시 이를 지지했다. 그러나 새 정부가 들어선 후에는 누구도 검찰 개혁에 대한 칼을 과감하게 꺼내지 못했다.

 

김수남 검찰총장(왼쪽)과 이철성 경찰청장(오른쪽) © 시사저널 최준필·시사저널 박은숙

 

검찰 개혁 첫 단추 ‘수사권 조정’도 산 넘어 산

 

“검찰은 잘 드는 칼이다. 칼끝에 섰을 때는 이보다 두렵고 싫은 존재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칼자루를 잡았다고 생각해 보라. 이보다 든든한 존재가 없을 것이다. 예리한 데다 길도 잘 들어 있어 빗나가는 일도 없다.”

 

수사권 조정 문제를 담당하고 있는 한 경찰 간부는 새 정부에서 검찰 개혁의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이와 같이 답했다. 대선후보들이 너나 할 것 없이 검찰 개혁을 천명하고 있고 여론 역시 검찰에 등을 돌렸지만 검찰 개혁의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한마디로 말하자면 화장실 갈 때 마음과 나올 때 마음이 다른 것과 같다. 정치권은 믿을 수 있는 존재가 못 된다. 기댈 곳은 여론밖에 없다”면서도 “검찰은 새 정부가 출범하면 전(前) 정권인 박근혜 정부에 대한 대대적인 사정 작업에 착수할 것이다. 일정 부분 성과를 내게 되면 언론은 또다시 검찰을 칭송하면서 ‘그래도 검찰’이라는 분위기를 만들 것이다. 검찰 역시 이를 잘 알고 있다”고 한탄했다.

 

검찰 개혁 가능성에 대해 경찰이 품고 있는 불안감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후보 시절 검찰 권한을 축소하고 정치검찰을 척결하겠다는 공약을 수차례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이는 공염불(空念佛)에 불과했고, 박근혜 정부는 오히려 ‘검찰공화국’이라는 오명까지 받았다. 현직 검사의 청와대 파견이 이를 잘 보여준다. 검찰청법 제44조2항에 따르면, 검사는 대통령 비서실에 파견되거나 대통령 비서실의 직위를 겸할 수 없다. 박 전 대통령도 “현직 검사의 청와대 파견을 제한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에서 검찰에 사표를 내고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근무하다 재임용된 검사만 15명에 이른다. 이 중 13명은 우병우 전 수석과 함께 근무한 검사들이다. 이들은 청와대의 ‘회전문 인사’를 거쳐 대검 범죄정보기획관실, 법무부 인권국, 법무부 검찰과 등 요직을 차지했다.

 

검찰 개혁의 첫 단추로 여겨지는 수사권 조정 문제에 대해서는 단 한 발도 나아가지 못했다. 박근혜 정부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 때부터 경찰의 수사권 독립에 대해 사실상 부정적인 입장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시사저널은 인수위의 ‘공약 이행 로드맵 및 입법 추진 계획’을 단독 입수해 이를 보도한 바 있다(2013년 5월6일 “‘경찰 수사권 독립’은 애당초 없었다” 기사 참조). 이 문서에는 정책 공약 216개를 비롯해 시·도별 공약 추진 일정이 상세히 나와 있다.

 

검·경 수사권 조정과 관련해서는 2013년 상·하반기 중 ‘2011년 형사소송법 및 대통령령 개정 이후의 수사 실태 분석’이라고 나와 있다. 또 2014년에는 ‘해외 입법 추세 연구 및 전문가 의견 수렴’이라고만 돼 있다. 2015년 이후 계획은 별도로 나와 있지 않다. 다른 공약들의 경우 법령 개정 시한과 제도 개선 방안 등을 구체적으로 적시하고 있는 것과 달리 경찰의 숙원 과제와 관련한 공약의 구체적인 이행 계획이 없었던 것이다.

 

 

검찰 감싸는 분위기는 여전

 

문제는 박근혜 정부가 비선실세 국정 농단 사건으로 불명예 퇴진했지만 정부 고위층을 중심으로 검찰을 감싸고 도는 분위기는 여전하다는 것이다. 김수남 검찰총장은 4월7일 “검찰은 경찰국가 시대의 수사권 남용을 통제하기 위해 준사법적 인권옹호 기관으로 탄생한 것”이라며 경찰의 수사권 독립에 대해 반대 입장을 밝혔다. 정치권과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검찰 개혁에 대한 목소리가 높지만, 검찰은 수사권조차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한 것이다.

 

반면 경찰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이철성 경찰청장은 김 총장의 발언에 대해 “지금은 경찰국가 시대가 아니다. 소이부답(笑而不答·웃을 뿐 답하지 않음)하겠다”고 말했을 뿐이다. 이와 관련해 경찰 고위 간부는 “차기 정부 출범이 한 달도 남지 않았고 대선 주자들도 검찰 개혁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그러나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는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가 불거지는 것을 극도로 꺼리고 있다”면서 “정부 고위층이 직·간접적으로 경찰 수뇌부에 압력을 넣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수사권 조정 문제를 놓고 언론 접촉을 피하고, 검찰을 자극할 수 있는 말을 자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결국 경찰의 입을 막고 검찰 편을 들고 있는 것 아닌가”라면서 “황 대행이 검찰 개혁에 대한 국회 질의에서 ‘검찰 제도 자체는 문제가 없는데 일시적으로 구성원이 잘못을 저질렀다. 이번 시기만 지나가면 정상으로 돌아올 것으로 본다’는 식으로 얘기했다. 검찰 개혁을 바라보는 정부 고위 관료들의 생각이 이 정도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