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日 ‘삼각공조’로 北 숨통 조이기
  •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전문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5.02 17:17
  • 호수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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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Insight] 中, 북한 군기 잡고 경제 이득 취한 후 삼각공조 깨질 수 있어

 

한반도 ‘4월 위기설’은 때를 넘겼지만 긴장은 여전하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강력한 대북 압박에 북한 김정은 정권은 일단 호흡 조절에 들어갔다. 그렇지만 추가도발에 대한 집착 때문에 연신 핵·미사일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형국이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북한군 창건 85주년을 맞은 4월25일 강원도 원산까지 달려가 장사정포 300여 문을 동원한 화력훈련을 참관했다. 미 핵항공모함 칼빈슨함을 수장(水葬)시키겠다는 대목에서는 허세가 느껴지기도 하지만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반대로 미국은 이참에 김정은의 버릇을 고쳐놓겠다며 고삐를 죄고 있다. 중국도 화약고 앞에서 성냥을 긋지 말라는 메시지를 평양 지도부에 연일 보낸다.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 전선 주도권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거머쥐고 있다. 1월 취임 직후부터 폭풍처럼 몰아쳐온 그의 행보를 두고 외교가에서는 “새로운 보안관 트럼프가 나타났다”는 말까지 나온다. 그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긴밀히 소통하며 촘촘한 대북 압박을 펼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중·일 정상과 긴밀히 공조하며 대북 압박의 고삐를 바싹 죄고 있다. © 연합뉴스

트럼프-아베, 대북정책 찰떡궁합 과시

 

북한 도발의 위기지수가 가장 높이 올라간 북한군 창건일을 하루 앞둔 4월24일에는 중국, 일본 정상과 잇달아 전화통화를 하며 김정은을 향한 강력한 시그널을 보냈다. 아베 총리와의 전화에서 트럼프는 북한의 도발 억제와 유사시 대북 대응을 위해 긴밀히 대응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이때는 칼빈슨함이 일본 오키나와 인근 해상에서 일본 구축함과 공동훈련을 벌이며 한반도 수역 쪽으로 이동하던 시점이다. 또 중국의 전폭기들은 북한의 급박한 상황에 대처한다는 명분으로 비상대기에 들어간 때다.

 

미·일 정상이 북한 핵과 미사일에 이렇게 민감한 모습을 보이는 건 속사정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총리는 2월12일 미 플로리다의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정상회담 만찬을 즐기던 중 북한의 미사일 발사 소식을 접했다. 트럼프 취임 후 미·일 동맹의 찰떡궁합을 과시하던 두 정상의 뇌리에는 ‘북한 도발’이란 변수가 만만치 않게 각인됐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즉각 “북한의 도발은 미국의 안보에 ‘중대한 위협’이며 엄청난 대가가 따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아베 총리의 입장에서도 북한의 도발은 발등의 불이다. 북한이 핵탄두 미사일의 첫 타깃으로 일본 내 미군 기지를 염두에 두고 있음을 공공연히 위협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특히 김정은은 북한의 미사일 개발 수준이 이미 일본 전역을 사정권으로 할 수 있음을 공언하고 있다. 1998년 8월말 북한의 대포동 1호 미사일이 일본 열도 상공을 관통했을 때의 충격파가 약 20년 만에 엄청나게 증폭돼 밀어닥친 셈이다.

 

북한의 후견국을 자처해 온 중국 다루기에 나선 트럼프의 손길은 더욱 치밀하고 섬세해 보인다. 무엇보다 오바마 행정부 8년 동안을 포함해 그동안 미국이 전개해 온 북핵 억제 전략이나 압박이 허사였다는 게 트럼프의 인식이다. 그는 유엔 안보리 제재 또한 외교적 쇼나 눈속임에 불과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결국 북한 경제의 숨통을 쥐고 있는 중국의 협조 없이는 ‘구멍 난 그물로 물고기 잡기’에 불과하다는 판단에서 시진핑과의 담판 쪽으로 무게중심을 급격히 옮긴 것이라 할 수 있다.

 

협상의 달인답게 트럼프는 쥐락펴락하는 접근법으로 중국을 몰아가는 분위기다. 취임 직후부터 그는 대북제재와 관련한 중국의 태도를 강하게 비판했다. 중국이 북한의 도발적 행태를 두둔하거나 대북제재의 핵심인 돈줄 차단에도 미온적이란 지적을 쏟아내며 몰아세워 시진핑 주석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무역적자에 따른 보복이나 환율조작국 지정 같은 대중(對中) 압박카드를 꺼내들며 양국 관계를 위기상황으로 몰고 가는 듯했다.

 

이런 분위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갑작스레 스탠스를 바꿔 시진핑 치켜세우기 쪽으로 돌아섰다. 4월6일과 7일 이틀간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에서 모종의 교감을 한 이후부터다. 트럼프는 중국을 더욱 압박해야 한다는 지적에 “매우 나쁜 상황이 닥쳐오는 걸 막기 위해 애쓰고 있는 이를 상대로 강력한 무역보복이나 환율조작국 발표를 해야 하느냐”고 반문하며 중국 감싸기에 나섰다. 이런 트럼프의 입장변화는 놀랍게도 중국의 입장변화를 이끌어냈다.

 

시진핑 주석은 북한군 창건일 전날 트럼프와의 통화에서 “중국은 안보리 결의를 위반하는 어떤 행위도 반대한다”며 북한을 겨냥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중국 정부의 입장을 반영하는 것으로 알려진 관영 환구시보는 “미국이 북한의 핵 시설을 타격하려 할 경우 (중국은) 외교적 노력에 나서겠지만 군사적으로 개입할 필요는 없다”고 밝혔다. 북한으로서는 충격이다. “대국이라면서 미국의 대북제재 소동에 장단이나 맞춘다”는 평양 매체의 중국 비난은 그래서 나왔다. 중국이 대북 송유관의 밸브를 만지작거리고 있다는 관측이 대두하면서 북한의 주유소는 기름 값이 뛰고 차량이 장사진을 치는 사태가 벌어졌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 © 사진=Xinhua·AP 연합

美·中, 대북 압박 공조 상당기간 이어질 전망

 

이런 미·중 대북 압박 공조 기류는 앞으로도 상당기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뼛속부터 비즈니스맨인 트럼프는 중국 측에 뿌리치기 힘든 당근을 내밀었다. 환율조작국 면제 같은 엄청난 경제적 이득이다. 국제적 지위에 맞게 행동하라는 도덕적 훈계만으로 중국을 움직이려 했던 이전 미 행정부와는 판이 다르다. 시진핑 체제의 중국 지도부도 이참에 트럼프 보안관이 어느 정도 용인할 수 있는 선에서 김정은의 버릇을 고쳐주기를 바라는 듯한 모양새다. 언제까지 북한의 막가파식 핵 개발과 미사일 발사에 중국이 끌려 다닐 수는 없다는 판단도 한몫하는 듯하다.

 

물론 김정은 길들이기 중인 미·일 양국과 중국 측의 생각은 서로 다를 수 있다. 북한 군기잡기에 어느 정도 효과를 보고, 경제적 이득도 취했다고 생각된다면 중국이 북·중 혈맹에 끌려 한반도 영향력 유지·확장 쪽으로 돌아갈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김정은의 핵·미사일 드라이브가 만들어낸 트럼프-시진핑-아베의 삼각공조는 한반도를 휘감은 난기류가 사라질 때까지 상당기간 약효를 발휘할 것이란 전망에도 무게가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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