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남북 대화 채널 복원해 한·미 관계 주도권 잡아라!”
  • 유지만 기자·김원식 국제문제 칼럼니스트 (redpill@sisajournal.com)
  • 승인 2017.05.08 11:41
  • 호수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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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안보 전문가들이 말하는 트럼프 美 행정부 다루는 법

 

‘장미대선’의 막이 5월9일 내려갔다. 이날 치러진 제19대 대통령선거 이후 대한민국호는 새로운 선장을 맞이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으로 인해 열린 조기대선이니만큼 정권인수위원회 과정 없이 곧바로 새 정부가 출범하게 된다.

 

새 정부와 새 대통령 앞에 놓은 과제는 녹록지 않다. 우선 지난해부터 불거진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의 뒷수습이 필요하다. 권력기관과 재벌에 대한 강도 높은 개혁은 이미 예고돼 있다. 경제도 만만치 않다. 오랜 저성장을 극복하고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 늘어나는 가계부채와 양극화 문제도 골칫거리다.

 

눈을 밖으로 돌리면 더 시급한 문제가 똬리를 틀고 있다. 바로 외교·안보 분야다. 지난해 미국에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는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고 있다. 미국은 연신 북한을 압박하고 있다. 북한 역시 미국에 강한 태도로 맞서면서 한때 ‘전쟁위기설’이 나올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다. 이뿐만이 아니다. 국내에 배치되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문제로 인해 미국과 중국의 힘겨루기가 시작됐다. 이 역시 외교력이 요구되는 부분이다. 또 트럼프 행정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재협상도 시사하고 있다. 미국 공화당의 ‘아웃사이더’였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탄생한 뒤의 변화다. 과연 새 정부는 예전과 다르게 미궁 속에 빠진 한·미 관계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

 

© 일러스트 신춘성

“누가 자료를 줬나?” 5월1일(현지 시각) 미국 백악관과 국무부 실무자들 사이에선 일상적으로 쏟아져 나오던 볼멘소리가 또 나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과 통화하면서 백악관 초청 의사를 밝히고, 또 언론 인터뷰를 통해서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의 만남도 ‘영광’이라고 밝힌 사실이 알려진 다음의 일이다. 사전에 준비된 자료에는 그러한 내용이 전혀 없었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즉석에서 내뱉은 말에 미국 행정부의 실무자들이 우왕좌왕한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FTA에 대해 “아마 폐기될 것(maybe terminated)”이라 말했고, 또 “사드 비용 10억 달러도 한국이 부담하라고 통보했다(informed)”며 한·미 관계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협상의 귀재(鬼才)인 장사꾼 트럼프가 막 내뱉은 말이라고 치부하기도 힘들다. 그는 엄연히 미국의 대통령으로 5월9일 한국 대선으로 출범한 새 정부에 막대한 짐을 지우고 있다.

 

 

“예전 한·미 관계가 아니다”

 

“우리의 위대한 함대(Armada)가 지금 가고 있다”면서 북한에 대한 선제타격도 배제하고 있지 않다고 말한 트럼프 대통령의 “적절한 상황이 된다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는 것은 영광”이라는 횡설수설 발언이 큰 논란을 낳고 있다. 또 사드 한국 배치에 관해 비용부담을 한국에 떠넘긴 발언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는 단순하게 내뱉은 일회성 발언이 아니라, 트럼프가 예전부터 준비한 외교에 관한 입장과 공약을 나름대로 실현하고 있는 행보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7월21일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협상에 임하는 자신의 속내도 어느 정도 드러냈다. 트럼프는 “제대로 된 거래를 할 수 없다면, 모든 부담을 혼자 알아서 져야겠지”라며 “(힐러리) 클린턴은 절대 일본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런 말을 뱉어버리면, 그다음은 어떻게 될 것 같으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거래를 할 때는, 언제든지 협상 테이블을 떠날 자세가 돼 있어야 한다”면서 “한국 측이었다면, ‘어차피 미국은 우릴 못 버려. 그렇다면 우리가 굳이 돈 낼 필요가 있냐’고 말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한·미 동맹에 의존하는 한국 국민의 생각도 꿰뚫고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온탕냉탕 전략을 구사하는 이유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사드 배치와 북한 문제로 인한 외교적 긴장관계 못지않게 중요한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할 것으로 예상되는 ‘한·미 FTA 재협상’ 여부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FTA 재협상은 물론 종료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취임 100일을 맞은 4월29일(현지 시각)에는 한·미 FTA를 포함한 모든 무역협정에 문제는 없는지 전면 재검토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기도 했다. 이보다 앞선 4월27일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끔찍한(horrible) 한·미 FTA를 재협상하거나 종료(terminate)하길 원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100일을 맞아 4월29일(현지 시각) 펜실베이니아주 해리스버그의 지지자 집회에서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고 있다. © EPA 연합

‘오락가락’ 美 행정부의 속내 정확히 읽어야

 

트럼프 행정부는 그동안 공공연히 무역협정의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피력해 왔다. 펜스 부통령과 로스 상무부 장관 역시 트럼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한·미 FTA의 재검토를 언급해 왔다. USTR(미국무역대표부)이 4월31일 ‘무역장벽보고서’를 통해 한·미 FTA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상호 이득을 볼 수 있다고 내다봤지만 트럼프는 이와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우리 정부 입장에서는 예상치 못한 돌발변수를 만났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일단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발언과 행정명령 서명 배경을 파악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주형환 산업부 장관을 비롯해 양국 통상 당국 간 여러 차례 만남이 있었지만 한·미 FTA 재협상 혹은 종료에 대한 이야기는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정부 관계자는 “한·미 FTA 재협상 등과 관련해 공식 요청받은 바 없다”며 “모든 가능성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는 한편, 미국에 꾸준히 한·미 FTA의 호혜성을 알릴 것”이라고 말했다.

 

한·미 FTA의 폐기는 이론적으로 가능하다. FTA 협정문 제24조 제5항은 ‘협정은 어느 한쪽 당사국이 다른 쪽 당사국에 이 협정의 종료를 희망함을 서면으로 통보한 날부터 180일 후에 종료된다’고 명시돼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처럼 미국 정부가 일방적으로 한·미 FTA 종료(terminate)를 원한다면 현실적으로 가능하다는 뜻이다.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실제로 재검토까지 갈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한·미 FTA가 종료될 경우 미국이 더 큰 타격을 입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현정택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은 “한국은 적극적 FTA 정책을 통해 미국뿐 아니라 유럽연합, 중국 등 52개국과 15개 FTA를 체결했다”며 “한·미 FTA가 없다면 미국 기업도 제조업·서비스 시장에서 경쟁 우위를 잃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련의 모든 상황은 비단 오바마 행정부에서 트럼프 행정부로 정권이 바뀌었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과거부터 흘러온 한·미 관계가 이제 큰 전환점을 맞이하게 됐다는 의미다. 기존의 한·미 관계가 계속 이어질 것으로 예측하는 것은 너무 순진한 생각이라는 지적이기도 하다.

 

박근혜 정부는 물론이고 이명박 정부나 역대 정부들은 늘 “한·미 동맹은 철통(ironclad)같이 굳건하다”는 말로 한·미 관계가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점을 강조해 왔다. 그런데 이제 세상이 바뀌었다. 정확하게는 한·미 관계의 한 당사자인 미국 행정부가 바뀌었다. 새로 들어선 트럼프 행정부는 쉽게 말해 굳건한 한·미 동맹에 한국이 돈을 더 부담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트럼프가 한·미 FTA도 폐기할 수 있다고 강경발언을 하는 것도 이에 다름 아니다. 막대한 무역 적자로 인해 미국만 특히, 미국의 백인 노동자만 피해를 당하고 있다는 주장으로 트럼프는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러나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해 무역전쟁을 벌여서라도 이를 해결하겠다는 트럼프는 이를 잠시 멈추고 북한에 압박을 가하라는 목적으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도 칭찬하는 모양새로 돌아섰다. 이 와중에 정작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인 한국에는 돈을 더 부담하라는 청구서를 던지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행정부의 공백 상태가 원인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상황이 그리 녹록지 않다. 따라서 새 정부는 동맹인 미국의 비용 부담 증가 요구는 물론 사드 배치로 인해 불거진 중국의 경제 보복도 해결해야 하는 이중고에 놓인 셈이다. 또 ‘코리아 패싱(Korea Passing)’이라는 말이 상징하듯 한반도 문제 해결의 당사자로서 지위도 확보해야 하는 막중한 부담을 안고 출범하는 신세가 됐다.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이 2월3일 방한해 한민구 국방부 장관(왼쪽)과 서울 국립현충원을 방문했다. © EPA 연합

“중국과 미국 사이 줄타기 잘해야 한다”

 

사드 배치 비용 문제를 두고 나오는 한·미 간의 엇박자는 현재의 한·미 관계의 실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이는 남북 관계는 물론 강력히 반발하고 있는 중국의 입장을 고려해도 새 정부가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한반도 문제의 상징적 이슈다. 워싱턴의 한 한반도 전문가는 이에 대해 “한국의 새 정부는 돈을 더 부담하라는 미국의 경제적인 압박은 물론 중국으로부터도 경제적인 보복을 당하는 궁지(stalemate)에 몰렸다”고 지적했다. 이 전문가는 “한국 새 정부의 급선무는 미국과 중국의 틈바구니에서 자기 자리를 되찾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박근혜 정부 임기 말에 레임덕(권력 누수)이 아니라 아예 탄핵이라는 공백 상태가 한·미 관계는 물론 한반도 문제에서 당사자인 한국이 주도권을 쥐지 못하고 변방으로 밀려나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특히 북한 문제를 둘러싸고 요동치는 미·중 간의 수싸움에서 한국은 완전히 외톨이 신세로 전락한 꼴이 되고 말았다는 평가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에는 남북 관계의 단절도 주요한 원인이 됐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특히 박근혜 정부 시절 남북 간 대화채널이 완전히 끊어진 것이 한·미 관계에서도 미국에만 의존도를 높이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이에 관해 “새 정부가 가장 먼저 추진해야 하는 것은 남북 간의 대화 채널을 복원하는 것”이라며 “그것이 없어지는 바람에 한반도 문제 당사자인 우리는 변수도 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홍 위원은 “남북 대화를 통해 상호 평화공존의 의지를 재확인하고 분단 비용을 상호 최소화하는 의지를 표명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를 바탕으로 미국에도 북·미 대화를 하라고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 위원은 또 미국이 한·미 FTA 재협상이나 방위비 분담금 증액 등 경제적인 요구를 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남북이 대결을 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이 한국을 도와주고 있다는 인식이 강해서 계산서를 보내는 것”이라며 “남북 대화에서 미국의 도움이 덜 필요한 구도를 만들면 트럼프가 계산서를 보낼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따라서 새 정부가 다시 남북 대화를 추진할 경우 이는 단순한 남북 관계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미 정책에서 우리가 주도권을 쥘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부승찬 연세대학교 통일연구원 전문연구원은 “미국의 국가이익 관점에서 본다면 트럼프의 행동이 일면 이해된다”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의 태도는 ‘미국의 국익만 생각한다’는 입장이다. 다른 가치들을 조금 내려놓고 미국 이익을 우선시하겠다는 얘기”라며 “미국이 공공재인 안보를 주변 국가에 제공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즉 ‘무임승차’(Free Riding)를 하게 해 줬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제 한국을 포함해 안보를 제공받은 국가들이 살 만해졌으니 ‘돈을 내야 한다’는 태도로 변한 것이다. ‘먹고살 만해졌으니 비용을 내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소성리 마을회관 앞에서 5월3일 열린 사드 반대 집회에서 주민들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사드 장비 추가 반입 반대 집회를 마치고 성주골프장으로 행진하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코리아 패싱’ 근본 이유는 남북 관계 단절”

 

부 연구원은 현재 한국의 외교 상황을 “활동 폭이 매우 좁아진 상태”라며 “중국과 미국 사이의 줄타기를 잘해야 하는 어려움에 빠졌다”고 진단했다. 미국과 중국이라는 강대국 사이에서 어디 한쪽에 쏠리는 모습을 보일 경우 상당한 손해를 감수해야 할 것이란 의미다. 그는 “어떤 현안에서 중국에 쏠리는 모습을 보이더라도, 미국과의 동맹 관계를 고려해 미국을 설득하는 작업은 반드시 필요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워싱턴의 한 외교 전문가는 “트럼프 대통령이나 그를 뒷받침하는 측근들의 입장은 사드는 물론이고 앞으로 모든 한국 방위활동에 돈을 더 내라는 것”이라며 “기존 협정이나, 동맹 관계에만 몰두하고 있는 한국 정부의 근시안적인(short-sighted) 태도가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새로 출범한 한국 정부는 트럼프 행정부의 의중을 파악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문제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최근 오락가락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발언에서 드러나듯이, 미국 행정부가 아직 명확하게 대북 정책을 수립하고 있지 못하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5월2일,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인 허버트 맥마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트럼프의 외교정책에 관해 ‘분열적(disruptive)’이라고 인정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외교 원칙을 놓고 토론할 충분한 시간이 없다”고 말한 것이 그 이유다. 물론 맥마스터 보좌관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를 둘러싸고 오락가락하는 트럼프의 이러한 ‘분열적인’ 태도가 궁극적으로는 중동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애써 강조했다. 하지만 이는 일각에서 주장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불확실성(uncertainty)’을 그대로 드러낸 발언으로 볼 여지도 충분하다.

 

결국 새로 출범한 한국 정부는 트럼프 행정부의 이러한 ‘불확실성’도 제거하고 속내를 정확하게 읽어야 한다는 부담도 동시에 껴안게 됐다. 또 한·미 동맹만 바라보는 기존의 낙관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로서 제자리를 찾고 발언권을 강화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어찌 보면 지금 다시 논란이 되고 있는 사드 처리 문제가 한국 새 정부의 향후 방향을 알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가능성이 그만큼 커진 셈이다. 곧 개최하게 될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트럼프 행정부와 한국에 새로 출범한 정부가 어떤 해결책을 내놓을지, 또 어떠한 방향으로 한·미 관계를 진전시켜 나갈지에 세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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