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 감각 없는 원칙주의자가 틀어쥔 트럼프 운명
  • 김경민 기자 (kkim@sisajournal.com)
  • 승인 2017.05.19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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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특검’에 임명된 로버트 뮬러 전 FBI 국장

이 정도면 악연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미국 연방수사국 FBI 말이다. 대선 개입과 내통 의혹 등 이른바 ‘러시아 게이트’로 정치적 사면초가에 처한 트럼프 대통령이 결국 특검의 칼날 앞에 섰다. 

 

그런데 특검으로 임명된 인물이 화제다. 로버트 뮬러(73) 전직 FBI 국장이 주인공이다. 트럼프가 ‘서면으로’ 해임한 코미 전 FBI 국장과 각별한 사이로 알려진데다 융통성 없이 원칙대로 일을 처리하는 걸로 정평이 난 인물이다. 트럼프 입장에선 최악의 상황인 셈이다. FBI 국장이었던 코미를 해임한 지 9일 만에, 트럼프의 운명은 또 다른 전직 FBI 국장의 손에 놓이게 됐다. 

 

'트럼프 특검'으로 임명된 로버트 뮬러 전 FBI 국장은 '원칙주의자'로 정평이 난 인물이다. © 사진=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미 법무부의 이 같은 특검 임명 소식을 듣고 꽤나 당황했던 모양이다. 5월17일 (현지시간) 오전 자신의 트위터에도 “미국 역사상 한 정치인에 대한 가장 큰 마녀사냥”이라며 뮬러의 특검 임명을 맹비난했다. 같은 날 콜롬비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뒤에 가진 기자회견에서도, TV 방송국 기자들과의 오찬 자리에서도, 트럼프는 ‘마녀사냥’이란 단어를 반복적으로 언급하며 특검의 부당함을 호소하기에 바빴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 뮬러 특검 임명을 비난하는 건 트럼프 대통령뿐인 듯하다. 오히려 “뮬러는 이번 사건을 맡기에 적임자”, “적절한 임명이다”란 찬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런 호평이 나오는 건 비단 뮬러가 12년 간 FBI 국장을 지낸 베테랑 수사관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 뮬러는 FBI통이다

 

지인들 사이에서 ‘밥(Bob)’이란 애칭으로 불리는 뮬러는 미 법무부 내에서 대표적인 FBI 라인이다. 1973년 법조인으로서 커리어를 시작한 뮬러는 중간에 변호사 활동으로 잠시 외도한 몇 년을 제외하곤 연방검사로 30년 가까운 경력을 쌓았다. 그러다 2001년 아들 부시 정부에서 FBI 수장으로 발탁됐다. 이후 2013년 버락 오바마 정부까지 12년 간 FBI 국장을 지냈다. FBI 설립자인 에드가 후버 초대 국장의 48년에 이어 두 번째로 긴 임기였다. 

 

■ 트럼프가 해임한 코미 전 FBI 국장의 멘토이자 동지다

 

이번 뮬러 특검 임명이 무엇보다 ‘적절한’ 인사로 평가 받는 배경에는 뮬러와 제임스 코미 전 FBI 국장과의 관계 때문이다. 뮬러는 지난주 트럼프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해고를 통보한 코미 전 국장의 전임자이자 그의 ‘멘토’다. 

 

뮬러와 코미는 조지 부시 정부 시절, 함께 ‘항명’한 이력을 갖고 있다. 당시 뮬러는 FBI 국장이었고 코미는 법무부 법무차관이었다. 이 둘은 2004년 조지 부시 대통령이 ‘영장 없는 감청’ 프로그램을 통과시키려 했을 때 자리를 걸고 막아낸 것으로 유명하다. 결국 이 프로그램은 채택됐고 실패한 항명으로 끝났지만 말이다.


■정권에 아첨하지 않는 ‘융통성 없는 사람’이다

 

부시 대통령을 향한 항명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정권에 아첨하지 않기로 악명(?)이 높다. 그의 평판은 그와 함께 일했던 동료들이 이번 특검 임명을 어떻게 평가했는지 보면 알 수 있다. 

“뮬러는 재임하는 12년 동안 FBI를 정치적 영향으로부터 지켜냈다.”

-토머스 피커드 전 FBI 부국장

 

“지금의 정치적 혼란을 수습할 적임자가 임명됐다. 그는 정부, 의회, 언론의 눈치를 보지 않고 목표를 향해 강직하게 수사만 하는 사람이다.”

-필립 무드 전 FBI 부국장

 

“지난 몇 년 간 그를 알고 지낸 사람으로 이번 특검 임명은 매우 잘 한 일이라고 본다. 그는 최고다. 독립적이며 허튼 짓거리가 통하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프리트 바라라 전 뉴욕남부지검 연방검사장 (트럼프 대통령의 사퇴 요구를 거부했다가 해고당함)

 

■ 공화당원이었지만, 초당적 신임을 받아왔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2001년 공화당원 명부에는 뮬러의 이름이 올라있다. 그렇다고 그가 현재 공화당을 지지하거나 공화당의 지지만을 받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사실 그는 정치색 없는 초당적 인물에 가깝다. 

 

뮬러는 이전에도 공화당원의 100% 찬성을 얻어 임기를 연장한 적이 있다. FBI 국장 시절, 그에 대한 2년 임기 연장안이 올라왔을 때 의회에서는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오바마 당시 대통령은 의회에 뮬러의 임기 연장을 요청하며 “그는 법 집행과 국가 안보 수호에 흠잡을 데가 없다”고 평가했다.

 

그가 양당에서 신임을 얻고 있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 가능성과 긴밀히 얽히면서 주요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그것은 미국의 탄핵 절차가 갖는 특성 때문이다.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의 대통령 탄핵은 오롯이 의회의 몫이다. 하원에서 대통령 탄핵안을 발의해 전체 의원의 과반수 찬성을 얻으면 탄핵안이 통과된다. 이 탄핵안이 상원으로 넘어가면 본격적으로 탄핵 심판을 진행한다. 표결에 참석한 상원의원 3분의 2 이상이 대통령 탄핵에 동의할 경우 탄핵안은 가결되고 대통령은 파면된다. 

 

현재 상․하원 모두 공화당이 과반수 이상을 차지하고 있기에 ‘공화당=트럼프 탄핵 반대’라는 단순한 논리로 따지면 트럼프는 탄핵을 걱정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자신을 조사할 특검이 초당적으로 인기가 있다는 점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불편한 진실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트럼프를 둘러싼 여론은 사상 최악의 상태다. 알 그린 민주당 하원 의원이 의회 본회의장에서 탄핵을 공개 촉구하고 나섰고 공화당 일부 의원도 탄핵론에 동조하는 기색이 보이고 있다. 트럼프가 코미 전 국장에게 기밀정보를 보도한 기자들을 구속하라고 주문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언론계도 등을 돌렸다. 우군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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