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방황’ 거리 떠도는 가출 청소년들
  • 정락인 객원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5.24 13:57
  • 호수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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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착취 노리는 사냥꾼들 표적…일부 생계형 범죄에 나서기도

 

청소년 가출이 심각한 사회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매년 집을 나와 거리를 떠도는 청소년들은 20만 명을 웃돌 것으로 추정된다. 이 중 30%는 청소년 관련 기관의 보호를 받지만 나머지 70%는 거리에 방치돼 있다. 이들은 크게 가출과 귀가를 반복하는 ‘전환형 가출’과 부모의 학대와 가정불화를 피해 집을 나온 ‘탈출형 가출’로 구분된다. 부모의 이혼으로 인한 가정 해체와 경제적 어려움, 가정불화 등도 복합적인 원인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청소년들의 가출은 많은 위험을 동반한다. 끼리끼리 문화에 익숙한 청소년들은 가출 전에 ‘동반 가출’을 도모하는 경향이 있다. 같은 처지의 친구들에게 상처받은 마음을 의지하려는 심리 때문이다. 또 가출에 따른 외로움과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인터넷 가출 카페나 채팅 앱 등을 통해 가출할 친구들을 찾는다. 포털사이트 카페와 SNS에는 각종 가출 관련 커뮤니티가 개설돼 있다. 페이스북의 경우 회원이 1만 명이 넘는 가출 팸 그룹이 있다. 공개적으로 가출할 일행을 구하는 그룹도 있다. 이곳에서는 가출 관련 다양한 정보들이 오간다. 포털사이트 커뮤니티 등에도 가출 청소년들이 동반 가출할 일행을 찾거나 가출 관련 글이 넘쳐난다.

 

© 일러스트 오상민

 

넘쳐나는 가출 커뮤니티

 

최근 ‘가출했다’는 16살 청소년은 “부모님과 갈등이 너무 심해 가출했다. 혼자 다니면 위험할 것 같고 힘들어서 서로 의지하고 같이 다니실 분을 구한다”는 글을 올렸다. 가출을 생각한다는 중학교 1학년 학생은 “부모님과 너무 안 맞고 아버지가 혼내실 때 때리기도 해서 가출할 계획”이라면서 가출할 때의 준비물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17살 여학생은 가출 팸을 소개시켜 달라는 글을 남겼다.

 

그러나 가출 관련 사이트나 커뮤니티에는 ‘가출사냥꾼’들이 덫을 놓고 있다. 가출 팸의 자유게시판 등에는 ‘재워준다’ ‘용돈도 준다’ ‘숙식제공’ ‘아르바이트로 돈 벌 수 있다’는 글이 올라오기도 한다. 이 중 상당수는 여자 가출 청소년들을 유인해 숙식제공을 명목으로 성(性)착취를 하려는 목적이다. 실제 가출한 청소년을 꾀어 동거한 파렴치한 성인 남성도 있었다.

 

지난  4월17일 광주에서는 가출 청소년을 꾀어 동거한 혐의(실종아동 등의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위반)로 주아무개씨(42)가 경찰에 구속됐다. 주씨는 지인의 물건 구입 부탁을 받고 자신이 운영하는 성인용품점을 찾아온 A양(16)에게 밥을 사주고 영화도 보여주며 호감을 샀다.

 

주씨는 자신의 나이를 30대 초반으로 속이고 머리카락이 많이 빠진 외모를 감추기 위해 가발까지 썼다. A양이 가출 의사를 밝히자 원룸을 얻어주고 6개월간 동거하며 부부처럼 지냈다.

 

주씨는 또 A양이 임신하자 낙태시술을 받도록 했다. 주씨는 ‘실종아동법’으로 구속됐는데, 전국에서 처음이다. 관련 법률은 ‘누구든지 정당한 사유 없이 가출한 아동, 실종아동 등을 경찰관서의 장에게 신고하지 않고 보호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몇 년 전 대전에서는 가출한 초등학생(12)을 꼬드겨 동거를 하며 임신까지 시킨 20대 남성이 구속되기도 했다.

 

가출한 10대 소녀들을 애인으로 만들어 넉 달간 523차례나 강제로 성매매를 시켜 6800만원을 챙긴 일당도 있었다. 이들은 돈을 벌기 위해 가출 소녀 2명에게 피임을 시키고 성병에 걸려 치료 중에도 성매매를 강요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렇듯 ‘숙식제공’ ‘동거환영’ 등의 문구 뒤에는 가출사냥꾼들의 음흉한 속내가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택배 배달원으로 가장하고 아파트에 침입해 50대 주부를 살해하고 금품을 빼앗은 혐의로 체포된 최아무개군이 2016년 6월29일 광주 서부경찰서로 압송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위험한 동거 ‘가출 팸’

 

청소년들이 모여 ‘동반 가출’한 후에는 ‘일행’이 뭉쳐져 함께 다닌다. 마음이 맞는 경우에는 아예 팸(Family)을 이뤄 3~4명이 고시원, 원룸, 모텔 등에서 지내기도 한다. 이른바 ‘가출 팸’이다. 청소년들에게 ‘가출 팸’은 탈출구나 해방구로 인식되기도 한다. 일단 가출 팸이 구성되면 나이 등의 순서에 따라 아빠, 엄마, 오빠, 동생 등을 뽑아 역할을 분담한다.

 

주택가 반지하나 원룸 등을 얻어 숙식을 해결하는데, 이때 보증금은 각자 가출할 때 집에서 갖고 나온 돈으로 해결한다. 그런 다음 PC방, 당구장, 주유소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모아 월세를 내고 나머지는 생활비로 쓴다. 처음에는 자신들만의 공간에서 해방감을 맛보지만 얼마 가지 못한다.

 

가출 팸은 아주 ‘위험한 동거’다. 이런 생활은 일탈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흡연, 음주, 본드 흡입 등을 자연스럽게 경험한다. 일시적으로 해방감을 만끽할지 몰라도 범죄에 노출되거나 직접 범죄에 나서며 ‘비행 청소년’으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 남녀 청소년들이 어울려 동거를 하면서 성폭행, 성추행의 위험도 높다. 팸 안에서 문란한 성관계를 맺거나 조기 임신할 확률도 있다.

 

한 포털사이트 상담코너에 글을 올린 17세 여자 청소년은 “가출한 후 임신했는데 상대 남자는 피하기만 한다”면서 “부모님에게 연락하지 않고 낙태를 하거나 아이를 키울 수 있는 방법이 없겠냐”며 전전긍긍했다.

 

돈벌이가 여의치 않고 생활비가 떨어지면 ‘생계형 범죄’에 빠져든다. 일단 돈이 떨어지면 ‘어떻게 돈을 마련할 것인지’를 고민하게 된다. 나이가 어려 일을 못하거나 벌이가 마땅하지 않을 때는 결국 범죄에 빠져드는 수순을 밟는다. 기자가 만난 가출 청소년들 상당수는 뻑치기, 삥뜯기, 아리랑치기, 소매치기, 절도, 차량털이 등 범죄 경험이 있었다.

 

지난 1월5일 전남 여수에서는 전남과 전북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차량을 털어온 정아무개군(17)과 김아무개양(16)이 불구속 입건됐다. 이들은 여수 지역의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가출한 청소년들이었고, 생활비 마련을 위해 차량털이에 나섰다. 그런데 이들의 수법이 전문 털이범을 뺨칠 정도였다. 차 안에 열쇠가 있던 8대의 차량을 훔쳤고, 문이 잠기지 않은 차량은 금품을 절취하는 등의 수법으로 40여 차례에 걸쳐 3억여원을 털었다.

 

광주에서는 가출 청소년들이 살인을 저지르는 일도 있었다. 지난해 6월 최아무개군(17)은 가출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택배기사로 위장해 광주시 서구 화정동의 한 아파트에 침입했고, 50대 주부를 흉기로 살해하고 금품을 빼앗았다. 이후 최군은 부산으로 이동해 밀항 비용을 마련하고자 추가 범행을 준비하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최군은 경찰에서 “가출해 생활비가 없었다. 나보다 약한 사람을 대상으로 범행을 계획했다”고 진술했다.

 

여자 가출 청소년들은 조건만남 등을 통한 성매매에 나서기도 한다. 최근 여성가족부가 조사한 ‘청소년 성매매 실태조사’에 따르면, 가출 청소년 절반가량은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조건만남 등 성매매를 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6년 3월31일 서울 은평구 물빛공원에서 청소년들을 상대로 한 ‘찾아가는 거리상담’이 열렸다. ⓒ 사진=연합뉴스

 

턱없이 부족한 청소년 쉼터

 

이렇게 가출 청소년들이 범죄에 빠져들고 있지만, 이들을 붙잡을 대안이 마땅치 않다. 어린 나이에 자포자기 심정으로 범죄의 늪에 빠져들면 성인이 돼서도 반복되는 경향이 있다. 범행은 점차 지능화하고 잔인해진다.

 

가출 청소년들은 하나같이 집에서 나온 후 “갈 곳이 없다”고 호소한다. 현재 서울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는 가출 청소년들이 머무를 수 있는 쉼터 119개가 운영 중이다. 이곳에서는 가출 청소년들에게 무료로 숙식을 제공한다. 아울러 가정·학교·사회로 복귀해 정상적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일정 기간 보호하면서 상담·주거·학업·자립 등을 지원한다. 현재 쉼터는 일시·단기·중장기로 나뉘어 있다. 단기는 3〜9개월, 중장기는 최대 3년 동안 머무를 수 있다.

 

하지만 쉼터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최대 수용 인원은 1200여 명에 불과하다. 청소년 전문가들은 쉼터 수가 지금보다 두 배는 더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또 가출한 아이들이 쉼터를 쉽게 찾고 입소할 수 있도록 홍보 등도 필요하다. 어렵게 쉼터를 찾아왔다가 다시 거리로 나가는 청소년들도 적지 않다. 규칙적인 생활을 해야 하는데, 이걸 견디지 못하고 뛰쳐나가는 경우가 많다.

 

가출 청소년이 쉼터에 입소하면 부모에게 연락해 입소 동의를 받고 있다. 법적 친권자가 있는데 쉼터에서 허락 없이 아이들을 데리고 있으면 약취나 납치 혐의가 적용될 수도 있어서다. 아이들은 이에 대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 부모와 싸워서 나왔거나 폭행에 시달려서 나왔는데, 부모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청소년복지 지원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개정안은 가정폭력 또는 친족관계인 사람에게 성폭력 등을 당해 가출한 경우에는 가출 청소년이 원할 경우 쉼터에 계속 머물 수 있도록 하는 게 핵심이다.

 

‘가출해서 쉼터에 가려고 한다’는 한 청소년은 “집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껴 가출했다. 더 이상 집에 있으면 죽을 것 같았다. 죽지는 못해도 크게 다칠 것 같았다. 그래서 밖으로 돌아다니는 건 위험한 데다 돈도 없고 해서 쉼터에 가려고 한다”며 쉼터에 입소할 때 필요한 것과 머무를 수 있는 기간을 물어보기도 했다. 이 청소년의 경우 개정안 통과 이전에는 쉼터에 입소하더라도 이용기간이 만료되거나 보호자의 요청이 있을 경우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강제 퇴소할 수밖에 없었다.

 

가출 청소년들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도 문제다. 현재 우리 사회는 거리로 나온 아이들을 ‘불량 청소년’으로 보는 시각이 다분하다. 아이들이 가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이해하기보다는 우선 ‘문제아’라는 선입견부터 갖기 때문이다. 실상은 ‘가정폭력’이나 ‘가정불화’가 가출의 주된 원인이지만 가출한 청소년들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은 여전하다.

 

청소년 전문가들은 거리의 아이들을 가정과 학교로 돌려보내기 위해서는 ‘사회적인 시스템’이 우선 만들어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위기의 청소년들을 비행청소년, 불량청소년으로 낙인찍는 사회적인 인식을 개선하고 이 아이들을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기 위한 보다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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