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때 꽃피웠던 인권위, MB·박근혜 정부가 무력화시켰다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17.05.26 14:14
  • 호수 144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권변호사 출신 대통령이 인권위 강화 지시…과거 정부는 어땠나

 

문재인 대통령이 전 정권 때 무너졌던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위상을 재건에 나섰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5월25일 ​브리핑을 통해 “문 대통령은 이전 정부와 달리 국가의 인권 경시 및 침해 행위를 적극적으로 바로잡고, 기본적 인권 실현이 관철되는 국정운영을 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문 대통령은 인권위 권고사항 수용 실태 관련 조사를 민정수석실에 지시했다.

 

이전 정부에서 인권위의 위상은 어땠을까. 인권위는 1997년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대선공약이었다. 인권위는 다양한 논의와 입법을 거쳐 DJ 임기 4년차인 2001년 11월25일 출범했다. ‘1세대 인권변호사’인 고 김창국 변호사가 초대위원장을 지냈다. 인권위는 독립된 국가기관으로, 국가권력으로부터 인권을 보호하는 최후의 보루 역할을 자임했다.

 

조국 민정수석이 5월25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국가인권위원회의 위상 강화를 골자로 한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사항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노무현 정부 때 양심적 병역거부 인정 등 대표적 사례 나와

 

노무현 정부 당시 인권위 역할은 꽃을 피웠다. 정부의 인권 침해 문제와 개선문제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노무현 정부가 결정했던 이라크 파병에 대해 인권위는 철회를 권고했다. 2005년에는 쌀 수입 협상 반대 시위에 참여했던 농민 2명이 경찰 진압과정에서 숨지자 “사망 원인은 경찰의 과잉진압 탓”이라며 경찰 수뇌부를 문책하는 권고안을 채택했다. 다음 날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고, 이틀 뒤 허준영 당시 경찰청장이 사태에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국가보안법 폐지와 사형제 폐지 권고, 양심적 병역 거부 인정과 대체복무제 입법 권고 등 인권위의 대표적 사례들이 노무현 정부 때 나왔다. 인권위법에 명문화된 대통령 특별보고도 정례적으로 열렸다. 이런 노력을 바탕으로 대한민국 인권위는 2004년 세계 120여개국의 인권기구 연합체인 ‘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ICC)에 가입했다.  첫해 A등급 평가를 받았고, 2008년 정기 심사에서도 A등급을 유지했다. 2007년에는 ICC​의 부의장국 지위까지 오르기도 했다.  

 

 

MB 정부 당시 조국 비상임위원(현 민정수석) 사임

 

그러나 이명박 정부 등장 뒤 인권위는 고초와 수난을 겪었다. 대통령 특별보고도 형식적인 명맥만 유지했다. 이명박 정부는 노골적으로 인권위의 무력화를 시도했다. 인권위를 독립기관에서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바꾸려 시도했지만 인권단체 등의 반대로 실패했다. 그러자 정부는 인권위 조직을 일방적으로 대폭 축소했다. 당시 인권위원장이었던 안경환 서울대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009년 7월 청와대 조치에 항의하며 위원장직을 사퇴하기도 했다. 

 

인권위를 무력화하는 방안은 또 있었다. 자격이 없는 인사들을 위원장과 인권위원 자리에 배정한 것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안 전 위원장 사퇴 이후 인권과 무관한 경력을 쌓아온 현병철 한양대 법학과 교수를 위원장에 임명했다. 이후 인권위는 용산참사나 민간인 사찰 등 국가기관의 인권침해 사안에 대해 아무런 의견을 내지 않았다. 현 전 위원장의 발언도 논란이 됐다. 인권위를 ‘행정부 소속기관’이라 칭했고, 2009년 12월에는 용산참사를 다루던 회의를 강제 폐회하며 “독재했다고 해도 좋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2010년 11월에는 유남영·문경란 상임위원과 조국 당시 비상임위원(현 청와대 민정수석)이 사임했다. 조 수석은 사퇴하면서 “현 위원장이 정파의 잣대로 인권위를 운영하면서 본연의 역할을 방기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물러난다”고 언급했다. 당시 인권위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물러났던 조 수석이 ‘인권위 강화’라는 문재인 정부의 과제를 다시 실행하게 된 것이다.

 

인권위 구성원들의 사퇴와 인사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는 현 전 위원장을 재임시켰다. 2014년에는 현재 박근혜 전 대통령의 변론을 맡고 있는 유영하 변호사가 상임위원으로 임명돼 ‘무자격 반인권 인사’라는 비판을 받았다. 박근혜 정부는 시민단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동성애 차별 발언을 하고 차별금지법에 반대해 온 최이우 목사를 비상임위원으로 임명하기도 했다. 

 

2005년 12월  쌀 수입 협상 반대 시위에 참가한 농민2명이 경찰 진압과정에서 숨지자 인권위는 경찰 수뇌부를 문책하는 권고안을 채택했다. 다음 날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고, 이틀 뒤 허준영 당시 경찰청장이 사태에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 사진=연합뉴스

 

박근혜 정부, 대통령 특별 보고 한 차례도 없어

 

결국 인권위는 지난 2014년 4월 상임위원 임명 절차의 불투명 등을 이유로 ICC로부터 ‘등급 보류’ 판정을 받았다. 최고 등급을 유지하면서 ICC의 부의장국 지위에까지 오르기도 했던 인권위의 국제적 망신이었다. 2014년 11월과 2015년 3월에도 ‘등급보류’ 판정이 내려졌다. 인권위는 지난해 5월에야 다시 A등급을 받았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발생과 진상규명 활동 과정에서도 인권위는 침묵했다. 단식농성과 세월호특별법 이슈에 대해서도 직권조사를 하지 않은 것은 물론 성명조차 내지 않았다. 육군 28사단에서 일어난 윤일병 사망 사건 당시에는 윤일병의 순직 등을 이유로 진정을 각하처분 했다. 군인권센터의 사건 폭로로 여론이 들끓고 나서야 윤 일병 사건을 포함한 병영 부조리 문제 등에 대해 직권 조사를 하겠다고 밝혀 ‘때늦은 조사’라는 지적을 받았다. 문 대통령이 첫 번째로 강조한 대통령 특별 보고는 박근혜 정부에서 단 1차례도 이뤄지지 않았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