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태용의 신나는 아이들, 한국 축구가 살아났다
  •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5.30 10:25
  • 호수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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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20 월드컵 스타들, 유럽 축구 3세대 될까

 

침울해 있던 한국 축구에 새로운 전기(轉機)가 왔다. 20세 이하의 어린 선수들이 변화의 발판을 만들었다. 5월20일 개막한 FIFA U-20(만 20세 이하) 월드컵 코리아 2017에 나선 대한민국 U-20 대표팀이다. 공식 개막전에서 기니를 3대0으로 제압하며 첫 승을 올린 한국은 5월23일 열린 아르헨티나와의 2차전에서도 2대1로 승리하며 16강 진출을 조기에 확정지었다. 한국 축구가 FIFA 주관 대회에서 아르헨티나를 꺾은 것은 1991년 포르투갈 세계청소년선수권(현 U-20 월드컵) 이후 무려 26년 만이다. 조별리그에서 초반 2연승으로 16강행을 확정 지은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최근 한국 축구는 침체 상태였다. 2018 FIFA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에서는 기대 이하의 경기가 거듭됐다. A매치인데도 관중석의 70%도 차지 않는다. K리그는 세계적인 선수를 영입하는 중국 슈퍼리그 앞에서 초라한 모습이다. 승부 조작과 오심 논란으로 그나마 있던 팬들마저 외면하고 있다. 역대급 시즌을 보낸 손흥민(토트넘)의 활약 정도가 축구계의 위안이었다.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U-20 대표팀은 지난 4월까지만 해도 거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차범근 U-20 월드컵 조직위원회 부위원장은 “탄핵 정국과 조기대선 때문에 국민들이 국제대회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며 어려움을 호소한 바 있다. 개막전에 문재인 대통령이 아닌 유일호 총리 대행이 참석할 정도로 국가적 관심이 떨어졌지만 어린 태극전사들은 멋진 경기력과 잇단 승전보로 국민의 눈과 귀를 자신들에게 끌고 왔다.

 

ⓒ 사진=뉴시스

 

‘바르셀로나 듀오’와 ‘K리그 유스’의 시너지 효과

 

신태용호(號)의 쾌속 질주가 연일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아시아보다 더 강한 대륙의 강자들을 잇달아 제압한 선수들의 빛나는 기량이 화제다. 신태용 감독이 추구하는 ‘창의성을 살리는 신나는 공격 축구’는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즐길 줄 아는, 이른바 한국 축구의 신인류가 등장했다는 찬사가 이어지고 있다.

 

이번 신태용호의 에이스는 누가 뭐래도 백승호와 이승우다. 1997년생 백승호와 1998년생 이승우는 7년 전 유럽 명문 클럽 FC바르셀로나의 눈에 들어 일찌감치 스페인으로 건너갔다. 바르셀로나는 ‘라 마시아(스페인어로 농장이라는 뜻)’로 불리는 세계 최고의 유스 시스템을 갖고 있다. 카를레스 푸욜, 사비 에르난데스, 안드레 이니에스타, 리오넬 메시, 제라드 피케 등을 줄줄이 배출했다. 2000년대 들어 UEFA 챔피언스리그만 3번 우승할 정도로 클럽 역사상 최고의 황금기를 구가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바르셀로나가 점찍은 재능은 승승장구했다. 내부의 치열한 경쟁을 이기며 연령별 A팀을 거친 그들의 성장에 한국 축구도 큰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2013년 위기를 맞았다. 바르셀로나가 유소년 선수 이적조항을 위반했다는 FIFA의 해석에 의해 2년간 출장 정지 징계를 당했다. 한창 경기를 뛰며 성장해야 할 시기에 훈련만 소화해야 하는 시련을 겪었다.

 

실제 이번 대회를 앞두고 신태용 감독은 실전 감각이 떨어진 두 선수의 발탁에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게다가 전임 감독 시절 두 선수는 국내 선수들과 잘 섞이지 못한다는 편견에 시달리기도 했다. 1월 포르투갈에서 진행된 전지훈련에 백승호와 이승우를 부른 신 감독은 편견 없는 시선으로 평가했다. 둘은 진지한 훈련 자세와 U-20 월드컵에 나가겠다는 열망을 보여줬고 신 감독은 확신을 가졌다.

 

백승호는 3년6개월 가까이 제대로 경기에 나서지 못하며 떨어진 체력을 끌어올렸다. 스페인으로 돌아가지 않고 2개월간 한국에 머물렀다. 신 감독은 브라질 출신의 베테랑 피지컬 전문가인 루이스 플라비우 코치를 붙여주며 백승호의 몸 상태를 완성시켰다. 이번 대회에서 백승호는 자신감 넘치는 플레이로 빌드업을 책임지고 있다.

 

이승우와는 심리적 밀당에 나섰다. 개성 넘치고 자아가 강한 이승우는 많은 감독들이 다루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신 감독은 일체의 터치 없는 신중한 관찰을 했다. 그는 “승우에게 하지 말라는 얘기보다 하라고 얘기했다. 경기장에선 적극적으로 드리블하고, 염색도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 대신 네가 하고 싶은 걸 하는 만큼 팀을 위해 헌신하고 수비에 가담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신 감독에게 마음을 연 이승우는 공격적인 재능을 마음껏 발휘했다. 아르헨티나전에서 40m 폭풍 질주에 이은 칩슛으로 만든 골은 리오넬 메시를 연상시킨다며 세계적인 화제를 모았다.

 

신 감독은 두 선수의 재능에만 의존하지 않았다. 그들과 함께하는 선수들도 탁월한 기량을 갖고 있다. 이승모·우찬양(이상 포항), 임민혁·윤종규(이상 서울), 이유현(전남), 이상헌(울산)은 K리그가 일찌감치 육성한 선수다. 이상민(숭실대), 정태욱(아주대), 송범근(고려대), 이진현(성균관대), 이정문(연세대)도 K리그 유스 출신으로 우선 지명을 받고 대학으로 진학한 케이스다.

 

 

스카우트들 한국 집결, 유럽 축구 3세대 낳을까

 

K리그는 지난 2013년 신생팀을 제외한 전 구단의 초·중·고 유스 체계를 완성했다. 이번 세대는 그 시스템의 수혜를 처음부터 끝까지 입은 선수들이다. 학원 축구에 비해 성적 지상주의에서 비교적 자유롭고 개인의 능력을 끌어내며 일찌감치 프로 의식을 함양한 선수들은 신 감독이 원하는 창의적인 공격 축구에 금방 녹아들었다. 프로 출신은 아니지만 조영욱(고려대), 김승우(연세대), 강지훈(용인대) 등도 학원 축구를 포함한 한국 축구의 선수 육성 시스템이 정상 궤도로 진입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선수들이다.

 

‘신태용의 아이들’은 이제 유럽 축구팀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U-20 월드컵은 세계 축구의 미래를 미리 보는 대회로 불린다. 디에고 마라도나를 시작으로 루이스 피구, 티에리 앙리, 리오넬 메시, 폴 포그바 등이 이 대회를 통해 본격적으로 유명세를 탔다.

 

숨은 진주를 찾기 위한 유럽 클럽의 스카우트와 에이전트들이 한국에 집결한 상태다. 맨체스터 시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인터밀란, FC포르투, 벤피카, PSV 에인트호번 등이 한국과 아르헨티나의 경기에 모습을 드러냈다. 자연스럽게 이번 대회를 통해 기량을 마음껏 발휘 중인 조영욱, 이상민, 정태욱 등의 유럽행 이야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바르셀로나 1군 데뷔를 목표로 하고 있는 백승호, 이승우를 향한 러브콜도 계속되는 중이다.

 

스무 살 선수의 가치는 높다. 2002 한·일월드컵에서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유상철, 김태영, 최진철 등 핵심 선수들의 유럽 진출이 좌절된 것은 30세를 넘은 많은 나이에 발목이 잡혔기 때문이다.

 

2002 한·일월드컵의 성공이 박지성, 이영표, 송종국, 차두리 등 유럽 축구 2세대를 낳았다면 이번 U-20 월드컵은 3세대 탄생의 신호탄이 될 전망이다. 신태용 감독은 “말은 하지 않아도 선수들에게 자연스럽게 동기부여가 된다. 이 선수들이 한국 축구의 새로운 선물이 됐으면 좋겠다”며 기대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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