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무서운 집착 ‘의처증 살인’
  • 정락인 객원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6.01 09:28
  • 호수 144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의심의 밑바닥에는 ‘열등감’…한 번 발병하면 치료 힘들어

 

최근 몇 년 사이 의처증으로 인해 아내를 살해하는 참극이 연이어 벌어지고 있다. 의처증은 남편이 아내의 정조를 의심하는 ‘질투형 망상 장애’ 중 하나다. 다른 정신과적인 증세가 없는데도 배우자가 성적(性的)으로 부정한 행동을 한다고 의심한다. 급기야 살인 등으로 이어지며 비극적 결말을 맺기도 한다. 질투형 망상 장애는 주로 여성보다 남성에게서 많이 발생한다.

 

지난 5월5일 경남 김해에서 남편이 아내를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남편 A씨(64)가 아내 B씨(56)의 외도를 의심해 부부싸움을 하다 벌어진 사건이다. A씨는 범행 직후 경찰에 자수했다. 그는 10여 년 전부터 의처증 증세를 보였고, 3년 전부터 증세가 심해졌다고 한다. 결국 남편의 아내 살해 뒤에는 ‘의처증’이 있었던 것이다.

 

지난 1월 부산 남구 문현동의 한 주택에서는 강아무개씨(72)가 아내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후 자신은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강씨의 딸은 “집에 잠시 들르라”는 아버지의 전화를 받고 부모의 집으로 갔다고 한다. 그런데 아버지 강씨는 딸을 흉기로 위협해 집 밖으로 내보냈고, 그 뒤 목을 매 목숨을 끊었다. 가족들은 강씨가 의처증 관련 질환을 앓았다고 진술했다.

 

지난해 8월 전북 익산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외도를 의심한 C씨(79)가 자택 욕실에서 아내 D씨(74)의 머리를 아령으로 수차례 내리쳐 살해했다. 법원은 C씨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C씨는 범행을 숨기려고 욕실 타일에 묻은 혈액을 수건으로 닦고, 며느리에게 전화해 “아내가 머리에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었다”고 거짓말까지 했다. 그는 평소에도 의처증 증세로 아내 D씨와 자주 말다툼을 벌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 일러스트 오상민


남편의 끊임없는 의심

 

우리 사회에서 의처증은 ‘사랑’과 ‘질투’로 포장돼 왔다. 단순한 가정 내의 문제로 치부돼 온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의처증이 가정 폭력과 살인으로 이어지면서 심각한 사회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아내의 외도를 의심한 남편에게 애먼 이웃 남성이 살해되는 일도 있었다. 가정의 담장을 넘어 누군가는 범죄 피해자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의처증을 단순히 ‘부부의 문제’로 치부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의처증 환자들은 평상시에는 아주 멀쩡하다. 겉으로는 정상인과 다르지 않다. 다만 배우자의 부정을 단정하거나 확신하면서 망상을 계속 키운다. 배우자가 남편의 의심을 해소하고 증거를 내보이더라도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의심과 집착은 더해 가고 증상도 심해진다. 여기에 폭력이 동반되면서 가정이 파탄에 이르는 결과를 낳는다.

 

포털사이트의 부부상담 코너에도 남편의 ‘의처증’을 호소하는 여성들이 적지 않다. 30대 기혼여성 E씨는 “의처증으로 이혼이 가능하냐”고 물었다. 그녀는 남편의 심각한 의처증 때문에 도저히 살 수 없을 정도라고 하소연했다.

 

E씨는 “회사 사람들한테 연락해서 내가 수상한 것 같지 않으냐, 동료 남자 직원과 이상한 분위기가 없느냐고 묻는 등 창피해서 얼굴을 들고 회사를 다닐 수가 없다”고 말했다. E씨의 남편은 아내에게 어떤 행동을 보인 것일까. 먼저 24시간 그녀를 감시한다. 아내의 휴대전화에는 위치추적 앱을 깔아놓았고, 퇴근할 때는 회사 앞으로 데리러 간다.

 

만약 회사 일 때문에 퇴근이 1분만 늦어도 전화해서 “딴 놈이랑 바람피우는 거 아니냐”며 다그친다. 조금이라도 자신의 감시망을 벗어나면 폭언이 뒤따른다. E씨는 “처음에는 나를 사랑해서 그런다고 생각했는데 점점 도가 지나쳐 일상생활을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E씨는 남편과의 이혼을 고심하고 있다.

 

아빠의 의처증을 호소하는 자녀들도 있다. 20대 여성 F씨는 의처증이 있는 아빠가 갈수록 엄마에 대한 의심이 심해지고 폭력적으로 변한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F씨에 따르면 “아빠는 (엄마가) 이모부에게 생일 선물을 받아도 화를 내고, 행인들이 엄마에게 길을 물어보고, 술 취한 사람이 대문을 잘못 두들겨도 의심부터 한다”며 “이것 때문에 자주 부부싸움을 하는데 말로만 하는 게 아니라 폭력도 동반돼 경찰에 여러 번 신고했다”고 말했다.

 

 

의처증 대물림 확률도 높아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1~4% 정도가 의처(부)증을 갖고 있다고 한다. 연령대는 주로 35~55세 사이에 많이 발병한다. 하지만 18세부터 90대까지 골고루 증상이 나타난다. 의처증은 꼭 결혼한 남성에게만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결혼 전에도 사귀는 이성에게 강한 집착을 보이며 질투형 망상 장애를 보이는 경우가 있다. 70대 이후의 노인들도 예외는 아니다. 노년기에 생기는 망상 장애는 치매의 전조 증상이라는 시각도 있다. 치매는 기억력 저하로 증상이 시작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망상이나 성격변화 등의 증상이 먼저 나타나면서 치매가 시작된다고 보는 견해다.

 

나이를 불문하고 의처증은 왜 생기는 것일까. 의학계는 유전적 요인과 생물학적 신경전달물질의 이상에서 원인을 찾고 있으나 아직 정확하게 밝혀진 것은 없다. 정신과 전문의들은 의처증의 밑바닥에는 ‘열등감’이 깔려 있다고 지적한다. 배우자에 대한 열등감이 심한 남성에게서 의처증 증세가 많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아내와 대비되는 외모, 학력, 경제적 능력, 사회적 역할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여기에다 실직 등으로 경제력을 아내에게 의지해야 하는 경우, 성기능 장애 등의 문제가 생긴 경우 열등감 때문에 망상이 생기기도 한다. 의처증 남성들의 특징 중 하나는 열등감의 모든 원인을 배우자에게 돌리는 것이다. 평소에는 마음속에만 담아두다가 술을 마시거나 감정 대립이 생길 때 한꺼번에 폭발한다.

 

아버지가 의처증이 있으면 그 자식에게서도 발병 확률이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유전적·생물학적인 측면에서 인과관계가 깊다는 뜻이다. 의처증이 대물림으로 이어질 수 있는 셈이다. 실제 의처증 환자들을 보면 어렸을 때 부모와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했거나 가정폭력을 당한 경우가 많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가족에 대한 신뢰감이 없다. 때문에 상대에 대한 의심이 깊어지고, 나중에는 망상에 사로잡혀 현실을 분간하지 못하게 된다. 또 알코올 중독이나 편집증이 있는 부모, 권위적이고 지배적인 부모 밑에서 자란 사람에게서 많이 나타난다.

 

의처증 환자는 완치가 쉽지 않다. 약물치료와 심리치료를 받아야 하지만 정작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지 못한다. ‘치료’라는 말만 꺼내도 극도의 거부반응을 보인다. 치료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부부관계는 사실상 지속하기 어렵다. 이럴 경우 배우자는 ‘의처증 감옥’에 갇혀 살면서 온갖 의심과 폭언, 폭력을 감당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남편이 의심할 소지를 갖지 않도록 아내가 처신을 잘해야 한다”고 조언하지만 아내가 처신에 신경 쓰고 주의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의처증이 결혼생활을 지속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각한 경우에는 결국 이혼 수순을 밟아야 한다.

 

여자친구를 죽이고 시신을 장롱 속에 유기한 혐의를 받고 있는 강아무개씨가 2015년 9월11일 법원의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송파경찰서를 나서며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이혼 등 가정 파탄으로 이어져

 

그러나 이혼 과정도 순탄치 않다. 남편이 이혼에 동의하지 않으면 소송을 해야 한다. 이혼을 결심한 후에는 필연적으로 재산 분할 등의 문제를 따지지 않을 수가 없다. 법조계에서는 단순히 의처증 증세를 보이는 것만으로 재판에서 승소할 가능성은 낮다고 말한다. 재판부는 남편의 의처증으로 인해 혼인관계를 유지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해도 증상이 가볍고 회복 가능한 경우에는 이혼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본다.

 

의처증에서 폭언·폭행으로 이어진다거나 사회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의 영향을 끼칠 경우에만 이혼 판결이 나올 수 있다. 의처증으로 인해 이혼을 결심할 경우 피해에 대한 증거를 수집해서 재판부에 제출해야만 이혼 사유 중 하나인 ‘기타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yk법률사무소 유상배 변호사는 “의처증으로 인해 더 이상 부부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어렵다면 의처증 이혼소송을 청구해 관계를 해소할 수 있고, 배우자의 의처증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에 대해 손해배상으로 위자료 청구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만약 이혼이 아닌 ‘치료’를 선택한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때는 남편의 의심에 대해 비판이나 비난을 해서는 안 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상대방이 또 다른 의심과 경계심을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부부 상담을 통해 서로 신뢰감을 충분히 얻은 뒤에 치료 수순을 밟는 것이 좋다.  

 

 

이런 사람이 의처증 환자

 

의처증은 여러 가지 복합적인 원인에 의해 생기는 증상이다. 나도 모르게 내가 의처증 환자가 될 수 있다. 의처증의 초기 증상을 보면 평소와 다르게 감정의 기복이 극심하게 나타난다. 아내에게 한없이 다정다감하게 잘해 주다가도 사소한 것에 정색을 하고 신경질을 내거나 화를 낸다.

 

아내에 대한 집착이 심해진다. 평소와 같이 외출 준비를 하는 모습만 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옷을 고르거나 화장하는 모습만으로도 마치 불륜 상대를 만나러 나간다는 착각에 빠져든다. 이때 “누굴 만나러 가냐” “어디 가냐” 등 질문을 끊임없이 한다.

 

아내가 외출한 후에는 전화하는 빈도가 점점 늘어난다. 만약 곧바로 전화를 받지 않거나 전원이 꺼진 상태가 되면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는 망상에 사로잡힌다. 같이 길을 가다가도 다른 남성을 쳐다보거나 말을 하는 것만으로 불륜 상대로 오해한다. 

 

평소 혼잣말이 늘어나고 환청을 경험한다. 의처증이 심해지면 정신분열증상까지 동반하기 때문에 초기에 적절한 상담과 치료가 매우 중요하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