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콧대 높은 칸영화제를 뒤흔들다
  •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6.02 09:05
  • 호수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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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투자 영화 봉준호 감독의 《옥자》 둘러싼 반응

 

올해 제70회 칸국제영화제에서 연일 국내외 뉴스 페이지를 장식한 뜨거운 감자는 ‘넷플릭스(Netflix)’였다. 현재 190여 개 국가에서 약 9300만 명의 가입자를 보유하고 있는 글로벌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다. 기존 영상 콘텐츠 제공뿐 아니라 자체 제작 시리즈를 꾸준히 선보이면서 넷플릭스의 영역은 최근 몇 년 사이 폭발적으로 넓어졌다. 이는 올해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처음으로 자체 제작 영화 두 편을 올리는 쾌거로 이어졌다. 봉준호 감독의 신작 《옥자》와 미국 감독 노아 바움백의 《더 마이어로위츠 스토리》가 그 주인공. 《옥자》를 위시한 ‘넷플릭스 영화’에 쏟아진 반응, 그리고 넷플릭스가 바꿔놓은 칸영화제의 풍경들은 흥미로웠다.

 

영화 《옥자》에서 산골 소녀 ‘미자’역을 맡은 안서현양이 열연하고 있다. © NEW

 

극장 개봉 안 한 ‘넷플릭스 영화’에 대한 반발

 

《옥자》는 봉준호 감독의 글로벌 프로젝트로, 브래드 피트의 제작사로 유명한 ‘플랜B 엔터테인먼트’가 제작하고, 넷플릭스가 600억원을 투자한 영화다. 칸영화제 경쟁부문 상영작으로 발표되자마자 이 영화를 둘러싼 크고 작은 잡음이 일었다. 전통적 극장 배급이 아닌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이라는 새로운 배급 방식의 영화이기 때문에 발생한 이슈들이다.

 

우선 ‘프랑스 극장협회(FNCF)’가 영화제 시작 전부터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극장 개봉을 거치지 않는 넷플릭스 작품이 극장 상영을 원칙으로 하는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것 자체가 규정 위반이라는 이유에서였다. 프랑스에서는 극장 개봉 후 3년이 지나야 넷플릭스 같은 스트리밍 업체에서 영상을 제공할 수 있다. 논란이 일자 칸영화제 측은 올해 초청은 유지하되 내년부터는 프랑스 내 극장 개봉작에 한해서만 경쟁부문에 진출할 수 있도록 규정을 변경했다. 넷플릭스 측이 뒤늦게 프랑스 내에서 약 일주일간 제한 상영의 가능성을 타진하며 비자를 신청했지만, 프랑스 국립영화위원회 측이 거절했다. 제작 초기 단계부터 《옥자》의 극장 상영이 확정된 국가는 한국과 미국, 그리고 영국 정도다. 국내 배급은 NEW가 담당한다.

 

올해 영화제 심사위원장인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발언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현지 시각으로 지난 5월17일 열린 칸영화제 심사위원 기자회견에서 “극장에서 볼 수 없는 영화가 황금종려상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발언한 것. 이는 곧 넷플릭스 작품을 영화로 인정할 수 없다는 해석을 낳은 셈이어서, 심사위원장으로서 부적절한 발언이었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 해프닝은 이틀 뒤 알모도바르 감독이 매체 인터뷰를 통해 “넷플릭스 영화와 다른 영화들을 차별 없이 심사할 것”이라고 말하며 일단락됐다.

 

이어 영화가 처음 공개된 19일 오전 프레스 스크리닝에서는 시작 8분 만에 상영이 중단되는 소동도 있었다. 마스킹(각 영화가 촬영된 방식 그대로의 온전한 화면비율에 맞춰 스크린의 상하 공간을 가리는 것) 처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스크린 상단부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취재진이 불만을 터뜨렸기 때문이다. 이토록 숱한 우려와 우여곡절 끝에 상영한 《옥자》에 쏟아진 반응은 상영 전까지 이어졌던 잡음을 다행히 어느 정도 가라앉혔다.

 

《옥자》는 강원도 산골 소녀 미자(안서현)와 유전자 조작 돼지 ‘옥자’의 우정을 그린 영화다. 미자는 유전자 조작 돼지의 대량 생산을 목표로 하는 다국적 기업 대표 루시 미란도(틸다 스윈튼), 옥자를 이용하려는 동물학자 조니(제이크 질렌할), 비밀 동물보호단체 등으로부터 옥자를 구하기 위해 뉴욕 한복판을 가로지른다. 봉준호 감독은 칸 현지 기자회견을 통해 “자본주의 시대에 동물이 느끼는 피로와 고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스티븐 스필버그, 미야자키 하야오의 모험극이 연상된다는 반응들이 나온 것도 무리는 아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만점에 해당하는 별 다섯 개를 《옥자》에 주며 ‘넷플릭스가 사람들이 이 영화를 작은 화면에서만 보도록 하는 건 아깝다’고 평했다. ‘유쾌하고 자신감이 넘치는 작품’(베니티 페어)이라는 호평도 있었다. 반면 ‘대사와 주제는 성인을 위한 것인 반면, 영화적 요소들은 아동용 같다’(할리우드 리포터), ‘풍자적 의도가 과도하게 드러난다’(스크린 인터내셔널) 등의 평도 나왔다. 영화제 소식지 ‘스크린 데일리’가 공개한 《옥자》의 공식 매체 평점은 2.3점(4점 만점)이다.

 

5월19일 칸영화제 《옥자》 프리미어 현장에서 봉준호 감독과 출연 배우들이 관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넷플릭스와 아마존, 유명 감독들 공격적으로 끌어모아

 

올해 칸영화제는 넷플릭스가 화제였지만, 지난해의 최고 화두는 아마존 스튜디오였다. 세계적 인터넷 쇼핑몰 아마존이 만든 영상 콘텐츠 제작·배급 회사 ‘아마존 스튜디오’의 활약이 그 어떤 제작사보다 두드러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칸영화제에는 아마존이 북미 판권을 가진 영화가 무려 다섯 편이나 초청됐다. 개막작이었던 우디 앨런 감독의 《카페 소사이어티》를 비롯, 경쟁부문에 올랐던 니콜라스 윈딩 레픈 감독의 《네온 데몬》과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 그리고 짐 자무쉬 감독의 《패터슨》,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된 짐 자무쉬의 또 다른 영화 《김미 데인저》가 그 주인공이었다. 아마존은 올해도 경쟁부문에 토드 헤인즈 감독의 《원더스트럭》을 올렸다. 넷플릭스와 달리 크게 논란이 일지 않은 건, 해당 영화들이 아마존의 자체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플랫폼인 ‘아마존 비디오’에 유통되기 전 극장 상영을 먼저 거치는 것이 원칙이었기 때문이다.

 

현재 넷플릭스와 아마존은 전 세계의 재능 있는 감독들을 공격적으로 끌어모으고 있다. “600억원의 제작비를 운용하는 데 있어 넷플릭스의 간섭이 전혀 없었다”라는 봉 감독의 말에서도 짐작 가능하듯, 자신의 비전을 아낌없이 지원해 주는 업체와 유명 감독들이 조우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넷플릭스는 마틴 스콜세지와 손잡고 갱스터 영화 《아이리쉬맨》을, 데이비드 핀처가 연출하는 오리지널 드라마 《마인드헌터》 등을 진행하고 있다. 아마존은 《문라이트》의 베리 젠킨스 감독, 지난해 칸의 영광을 함께한 니콜라스 윈딩 레픈 감독 등과 손잡고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오리지널 시리즈 제작에 돌입했다. 한번 칸영화제의 높은 문턱을 넘은 이상, 공격적인 투자를 기반으로 한 탄탄한 오리지널 드라마 및 자체 제작 영화를 얼마든지 더 선보일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넷플릭스와 아마존의 비약적 성장, 그리고 칸영화제 진출은 전통적 극장 상영을 기반으로 하는 영화 매체에 대한 상징적 도전이라 할 수 있다. 70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칸영화제가 플랫폼을 떠나 작품의 가치에만 집중해 평가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이처럼 ‘피할 수 없는 물결’을 받아들이는 자세로 보인다. 대형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업체들이 일으킬 이후 칸영화제, 나아가 전 세계 영화 시장의 변화에 이목이 더욱 집중되는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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