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정부 ‘공공기관 낙하산’ 끊을 수 있을까
  • 유지만 기자 (redpill@sisajournal.com)
  • 승인 2017.06.02 18:00
  • 호수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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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공공기관 경영평가’ 후 인적 교체 바람 불 듯

 

출범한 지 채 한 달이 되지 않은 문재인 정부의 인사가 한창이다. 이낙연 국무총리 임명을 시작으로 ‘1기 문재인 내각’이 출범했다. 새 정부의 방향을 가늠한다는 점에서 1기 인사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새 인사가 들어설 분야는 공공기관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문제가 된 것이 바로 공공기관의 낙하산 인사였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코드에 맞지 않는 인사는 스스로 물러나거나 교체되기 일쑤였다. 사실상 대선에서의 ‘논공행상’이 공공기관장 인사로 이뤄진다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박근혜 정권은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지난해 12월9일부터 새 정부가 들어선 올해 5월9일까지 공공기관장 47명을 새로 임명하기도 했다.

 

정권이 바뀌게 되면서 공공기관의 운명에도 많은 변수가 생기게 됐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은 공공기관의 ‘경영 효율화’를 외쳤지만 사실상 실패로 돌아갔다는 평가가 대다수다. 문재인 정부는 이와 반대로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및 공공성 강화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이 때문에 새로운 인사들로 공공기관을 구성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6월에 발표될 공공기관 경영평가가 인적 교체의 분수령이 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 일러스트 정찬동

 

올해 안 98개 공공기관장 임기 끝나

 

공공기관 경영정보공개시스템인 알리오에 따르면 올해 임기 만료로 물러날 예정이거나 임기가 끝나 공석인 공공기관장은 총 98명에 달한다. 전체 332개 공공기관의 약 30%가 올해 안에 공석이 되는 셈이다.

 

연말 이전에 임기가 끝나 물러나게 되는 기관장은 69명이다. 김성주 대한적십자사 총재, 함승희 강원랜드 사장, 최재식 공무원연금공단 이사장, 성상철 국민건강보험 이사장, 김학송 한국도로공사 사장 등이 해당된다.

 

김학송 한국도로공사 사장은 3선 의원을 역임한 친박계로 분류된다.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의원을 지낸 이상권 한국전기안전공사 사장, 박근혜 캠프 중앙선대위 공동위원장을 지낸 김성주 대한적십자사 총재, 전 정부 싱크탱크 안민정책포럼을 이끈 이승훈 가스공사 사장 역시 친박계다. 성상철 국민건강보험 이사장 역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경남고등학교 선후배 사이로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이사를 맡은 이력이 있다.

 

임기가 만료됐는데도 후임 인사가 나지 않아 직을 유지하는 기관장은 21명에 이른다. 김윤기 별정우체국연금관리단 이사장과 박보환 국립공원관리공단 이사장은 지난해 9월, 박구원 한국전력기술 사장은 지난해 10월 임기가 만료됐는데도 재직 중이다. 기관장이 물러난 뒤 공석인 기관은 8곳이다. 박근혜 정부 국정 농단 사태로 문형표 전 이사장이 구속된 국민연금공단과 송성각 전 원장이 구속된 한국콘텐츠진흥원 등이다.

 

임기가 만료되지 않았지만 박근혜 정부 ‘낙하산 인사’ 중 일부가 교체 대상에 오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외교안보수석 출신인 주철기 재외동포재단 이사장, 고용복지수석을 지낸 최성재 한국노인인력개발원 원장, 고용노동부 장관을 거친 방하남 한국노동연구원 원장이 박근혜 정부에서 임명됐다. 금융공기업 중에선 이전 정부 인사로 분류되는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 정찬우 한국거래소 이사장 등이 임기와 상관없이 교체 대상으로 거론된다.

 

공공기관 낙하산 논란이 끊이지 않는 원인으로는 공공기관장 자리를 ‘전리품’으로 생각하는 그동안의 관행과 과도한 민영화 등이 꼽힌다. 이명박 정권 시절부터 정부는 공공기관의 공공성 강화보단 인력감축과 경영효율화에 매진했다. 김철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실장은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낙하산 인사, 코드인사 등을 통해 발생하는 정책적 비능률성 문제를 개선하는 데 소홀했다”며 “공공기관 선진화 정책, 공공기관 정상화 정책 등이 평가지표화돼 공공기관들은 기관의 주요 사업과 본질적 목표보단 정부의 요구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해 수행하도록 강제됐다”고 지적했다.

 

부적절한 민영화의 한 예로 한국기업데이터를 들 수 있다. 한국기업데이터는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년 금융위원회 산하 기관으로 설립됐다. 당시 설립 취지는 S&P, 무디스 등 해외 신용평가사의 국내 시장 잠식에 대응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2012년 공공기관 민영화 흐름 속에서 국책기관 지분을 47%로 낮추고 시중은행 지분 53%를 참여시키며 민영화했다.

 

 

실패로 끝난 공공기관 민영화

 

민영화된 한국기업데이터에는 낙하산 인사가 내려왔다. 2014년 9월 상임감사로 임명된 장병화씨는 당시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매제이자 보좌관 출신이었다. 같은 해 12월에는 최 의원과 같은 대구 출신인 조병제 전 하나은행 부행장이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또 주요 임원 자리는 신용보증기금 출신 인사들이 꿰차고 앉았다. 내부에서는 “최경환 라인과 신용보증기금 출신 마피아들이 회사를 집어삼켰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이후 회사는 갈등의 연속이었다. 지난해에는 경영진이 직원들의 이메일을 몰래 들여다본 것으로 드러나 법정 분쟁을 치르기도 했으며 임원들에 대한 마땅한 검증 수단이 없어 견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상임감사인 장씨의 경우에는 올해 3월15일자로 임기가 만료됐지만 후임 인선에 대한 얘기가 없어 현재까지 감사직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자리 문제도 악화됐다. 민영화 직후인 2013년 이 회사의 비정규직은 43.2%였지만 올해 5월1일 기준으로 비정규직은 58.7%로 전체 직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게 됐다. 고용이 보장되는 무기계약직 비율은 변화하지 않았지만, 2년 미만 계약직과 파견직, 청년인턴 등은 비정규직 전체의 약 80%에 육박했다. 조 대표의 임기 동안 신입 직원 채용은 거의 없었다.

 

현재 한국기업데이터 노조는 이 같은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경영진 교체와 임원추천위원회 도입, 임원 축소 등을 요구하고 있다. 윤주필 한국기업데이터 노조위원장은 “비정규직 양산을 막기 위해서라도 경영진을 교체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영효율화를 위해 민영화했지만 오히려 실적과 회사 상황만 악화된다는 비판이다. 이어 “비전문 낙하산 인사를 선임하지 않기 위해서는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에 준하는 제도를 도입해 최소한의 검증절차를 갖춰야 한다”며 “과도한 공공기관 민영화로 인해 국가의 감시망을 벗어나 낙하산들이 내리꽂히는 관행을 근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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