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계 블랙리스트 감사결과에 감사(感謝)할 수 없다”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17.06.14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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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 “블랙리스트 444건 관계자 징계 요구”…문화·예술계 “감사원 감사 매우 부실” 반발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대표적 사례 중 하나였던 ‘문화계 블랙리스트’의 전모가 감사원 감사 결과 드러났다. 이로써 지난 3월 박영수 특검의 수사 기간 종료와 동시에 주춤한 듯 했던 블랙리스트 수사가 또 한 번 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6월13일 감사원은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4년부터 2016년까지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가 청와대 문화체육비서관실의 지시를 받아 지속적으로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작성해왔다는 사실을 포함해 총 79건의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는 지난해 12월 국회가 최순실 국정개입 의혹에 대해 감사를 요구해, 감사원이 1월19일부터 3월10일까지 두 달간 문체부를 상대로 기관운영감사를 진행한 결과다.

 

4월19일 오전 헌법재판소 앞에서 '문화계 블랙리스트 헌법소원 청구서 제출' 기자회견이 열렸다. ⓒ 사진=연합뉴스

 

감사 결과 박근혜 정부 당시 부당하게 문화예술인·단체에 대한 지원을 배제한 사례는 문화·예술 417건, 영화 5건, 출판 22건 등 총 444건으로 이전에 특검이 수사를 통해 발표한 374건보다 더 많았다. 당시 특검은 실제 청와대가 ‘민간단체 보조금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문화·예술계 3000여개 단체와 8000여명을 리스트화해 감시·관리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해당 리스트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작성됐다고 공소장에 적시한 바 있다.

 

감사원 발표에 따르면 2014년 3월부터 청와대 대통령비서실은 문체부를 통해 지원 사업 신청자 명단을 사전에 송부 받았다. 그리고 특정 인사나 단체를 선정하거나 명단에서 배제한 후 한국문화예술위원회(문예위)·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출판진흥원) 등 10개의 산하기관에 그대로 이행하도록 지시했다. 특히 문예위는 기관들 중 가장 많은 364개 문화예술인 및 단체에 대해 사업계획서 부실 등의 이유를 들어 지원을 배제했다. 

 

그런가하면 영진위는 문체부 지시에 따라 2014년 4월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를 상영한 전용관에 ‘시설’ 관련 평가 항목 등의 배점을 불리하게 줘 재심사에서 탈락시켰다. 출판진흥원 역시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와 세월호 참사를 다룬 《잊지 않겠습니다》등 22종의 작품을 세종도서(선정 도서를 구매해 공공 도서관에 배포하는 사업)에서 배제하기도 했다.

 

 

감사원 “김종 수사, 관계자 28명 징계 요구”

 

감사원은 문체부가 블랙리스트를 통해 특정 대상에 부당한 제재를 가해온 것과 반대로, 특정업체에 대해선 위법을 범하면서까지 무분별한 지원을 해왔다는 사실도 지적했다. 국정농단 사태 중심에 있던 미르·K-스포츠 재단이 대표적 수혜 대상이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체부는 2015년 10월과 2016년 1월 대통령비서실로부터 미르와 K-스포츠재단 설립에 협조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 후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이들 재단에 대한 설립을 신청했고, 이에 문체부는 재단대표자가 재산을 출연하지 않고 정관에 찍혀야 할 날인이 제대로 찍혀 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신청 바로 다음 날 설립 허가를 강행했다. 

 

설립 첫발부터 부실하게 세워진 이들에 대한 문체부의 조력행위는 재단 운영 과정에서도 계속됐다. 그리고 그 일엔 문체부 내에서도 김종 당시 제2차관이  앞장섰다. 김 전 차관은 K-스포츠재단을 돕기 위해 재단 직원과 각 지자체 담당자들을 연결시켜주는가 하면, 관련 경력이 전무한 재단 사무총장을 대한체육회 ‘스포츠클럽육성위원회’ 자문위원으로 선임하도록 압박하기도 했다. 

감사원은 그 외에도 김 전 차관이 2014년 문체부가 내놓은 ‘늘품체조’에 깊이 개입하는 등 문체부 관련 다양한 사업에서 대대적인 전횡을 저질렀음을 지적했다. 감사 자료에 따르면 2014년 6월부터 문체부가 국민체조로 보급하기 위해 ‘코리아체조’를 개발하던 중이었는데도 김 전 차관은 담당자에게 늘품체조 개발자를 만나보고 그 해 11월 문화의 날 행사에 이를 시연하도록 했다. 이후 담당자로부터 늘품체조의 운동 역학적 분석 및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보고를 받았지만 이를 무시하고 보급을 지시하기도 했다. 

 

감사원은 이러한 감사 결과를 토대로 지난 4월25일 김종 전 차관을 직권 남용 혐의로 수사 요청했다. 더불어 감사원은 79건의 감사 결과에 연루된 문체부 직원 19명, 한국관광공사 직원 2명, 한국마사회 직원 3명 등 관계자 28명에 대한 징계와 문예위 등 4개의 산하기관장에 대한 주의를 요구했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김종 전 문체부 차관 ⓒ 시사저널 고성준·최준필

 

“감사원이야 말로 감사(監査) 받아야할 곳”  

 

그러나 정작 피해 당사자인 문화·예술계에선 벌써부터 이번 감사원 감사 결과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새어나오고 있다. 한마디로 ‘이미 나온 얘기들의 반복’이자 ‘연루자들에 대한 솜방망이 조치’라는 것이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촛불정국 내내 광화문광장 문화·예술인 텐트촌을 지키며 블랙리스트 반대 운동에 앞장섰던 송경동 시인은 6월13일 시사저널과의 전화통화에서 “우리 문화·예술인들을 이번 감사원 감사 결과에 조금도 감사(感謝)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송시인은 “국정농단 연루자들의 재판 과정에서 나온 사실에도 못 미칠 만큼 매우 부실한 감사”라며 “그동안 가만히 있다가 올해 1월에서야 국회 요구로 감사를 시작해, 이 같은 결과를 내놓은 감사원이야말로 감사가 필요한 곳”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또한 그는 “이후 정부 차원의 엄격한 블랙리스트 조사가 다시금 이뤄져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마찬가지로 촛불정국 동안 광화문광장에 검은 텐트를 설치하고 블랙리스트에 반대하는 연극을 운영했던 조재현 ‘블랙텐트’ 운영위원은 “감사 결과에 대해 연극인들 대체로 불만족스러운 상황”이라며 “연극인들이 다 같이 모여 이번 감사원 결과에 대한 논의를 거친 이후 기자회견 등 일련의 행동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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