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 회장 사면되자 ‘금고지기’도 슬쩍 자수
  • 송응철 기자 (sec@sisajournal.com)
  • 승인 2017.06.14 11:07
  • 호수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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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 비자금’ 사건 핵심인물 김승수 前 부사장 3년 넘게 해외 도피하다 귀국해

 

CJ그룹 비자금 사건의 핵심인물로 지목된 김승수 전 CJ제일제당 중국총괄 부사장이 뒤늦게 재판에 넘겨졌다. 그는 검찰수사가 본격화된 2013년 5월 종적을 감춘 뒤 오리무중이었다. 김 전 부사장은 비자금 운용이 시작된 1998년부터 2004년까지 회장 비서실장과 그룹 재무팀장을 지낸 인물이다. 따라서 비자금 조성에 누구보다 깊숙이 관여했을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주목받았다. 그의 진술이 수사의 향방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란 전망도 자연스럽게 제기됐다. 검찰이 수사 초기부터 그를 주요 수사 대상으로 지목하고, 신병 확보를 위해 애를 써온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그러나 검찰은 김 전 부사장을 체포하지 못했다. 모든 사태가 일단락된 지난해 말에야 모습을 드러냈다. 3년이 넘도록 도피생활을 이어온 것이다. 김 전 부사장이 체포되면서 이재현 CJ그룹 회장에 대한 추가적인 혐의가 드러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그러나 검찰은 김 전 부사장에 대해 구속영장도 신청하지 않았고, 앞서 법원에서 확정된 혐의만 공소장에 담았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검찰이 소극적인 대응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오랜 도피생활로 수사 시기가 늦어져 실익을 거둘 수 없을 것이라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분석됐다.

 

© 시사저널 포토

 

검찰이 소극적 대응한다는 지적 제기

 

CJ그룹 비자금 수사 당시 검찰의 칼끝이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재무2팀’이었다. 그룹 자금을 관리·운영하는 재무1팀과 달리 이재현 회장의 사재(私財)를 담당하는 부서였다. ‘관재팀’으로도 불리며 2~3명의 소수 정예 요원들에 의해서만 운영돼 왔다. 김승수 전 부사장은 여기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1990년대 초부터 회장 비서실장과 그룹 재무팀장 등을 지내며 2004년 중국총괄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기기까지 이 회장의 초기 비자금을 관리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때문에 그는 또 다른 금고지기인 신동기 CJ글로벌홀딩스 부사장과 함께 비자금 수사의 핵심 인물로 거론됐다.

 

검찰도 2013년 5월 시작된 수사 초기 그를 불러 한 차례 조사를 진행한 바 있다. 그러나 수사가 본격화된 이후 김 전 부사장은 돌연 중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계속된 출석 요구에도 응하지 않았다. 검찰은 김 전 부사장에 대한 체포영장을 신청하고, 주중 한국대사관을 통해 소재 파악에도 나섰다. 그러나 검찰은 김 전 부사장의 신병을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 결국 수사는 김 전 부사장을 배제한 채 진행됐고, 검찰은 2013년 7월 이 회장을 횡령 및 배임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이 회장의 지시로 해외 비자금을 조성·관리한 재무팀장과 해외 법인장들도 기소했다. 그러나 잠적한 김 전 부사장에 대해서는 기소중지를 했다.

 

검찰에 따르면, 김 전 부사장은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도피생활을 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CJ그룹 비자금 수사가 한창이던 시점, 시사저널은 검찰 고위 관계자로부터 "김 부사장의 마지막 행선지가 미국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는 증언을 확보했다. 당시 검찰 안팎에서는 CJ그룹이 김 전 부사장의 도피에 관여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비자금 조성에 대한 사항을 잘 알고 있는 김 전 부사장이 압박에 못 이겨 검찰에 사실을 털어놓을 경우, 수사 상황이 이 회장에게 불리하게 돌아갈 수도 있다는 점을 의식해 그를 숨겼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검찰수사 대상에 오르며 여권이 만료된 김 전 부사장이 미국으로 건너갈 수 있었던 배경이나,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이 회장이 차명 보유한 것으로 의심되는 저택이 있다는 점 등이 근거로 제시되기도 했다.

 

그러나 CJ그룹 측은 전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당시 김 전 부사장은 미국에 입국할 경우 공항에서 즉시 체포될 수밖에 없던 상황"이라며 "최근 검찰 수사 과정에서도 김 전 부사장이 중국에만 머물렀던 사실이 확인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이 회장이 지난해 8월 광복절 특사로 출소한 이후에야 그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는 점도 이런 의혹에 무게를 실었다. 검찰은 김 전 부사장을 계속해서 추적했지만, 신병을 확보하지는 못했다. 그러다 이 회장이 출소한 이후 김 전 부사장은 자수 의사를 밝히고 귀국해 검찰에 체포됐다. 그는 사건을 마무리 짓기 위해 귀국했다고 검찰에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2015년 5월15일 서초동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파기환송심 선고공판을 마치고 법원을 나서고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검찰은 이후 김 전 부사장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다. 당시 검찰 안팎에선 이 회장에 대한 추가 혐의가 불거질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이후 검찰은 5월초 김 전 부사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그러면서 CJ그룹이 도피에 관여했는지에 대한 조사는 물론, 김 전 부사장의 공모자에 대한 추가 기소 여부도 검토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공소장에도 앞서 법원 판결을 통해 이미 유죄가 인정된 혐의에 대해서만 담았다. 김 전 부사장은 이 회장과 공모해 57억원대 세금을 포탈한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조세포탈)가 적용됐다.

 

공소장에 따르면, 김 전 부사장은 CJ그룹 459명 임직원 명의를 차용해 개설한 636개 증권계좌로 이 회장의 CJ 주식을 관리했다. 이 과정에서 수십억원대의 양도차익과 배당 및 이자소득이 발생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과세표준 신고를 하지 않으면서 모두 30억원대의 세금을 포탈한 혐의가 적용됐다. 김 전 부사장은 자금 추적을 피하고 차명계좌의 재산이 이 회장 소유인 사실을 숨기기 위해 편법도 동원했다. 여기에는 소액 현금 입·출금, 주식 매각대금을 이용한 묻지마 채권, 무기명채권, 미술품 구입 등의 방법이 사용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전 부사장은 같은 시기 회계장부를 조작해 CJ 법인 자금으로 170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법인세를 탈루한 혐의도 받았다. 그는 CJ에서 판매촉진비·복리후생비·회의비·교제비·조사연구비 등을 정상적으로 지급한 것처럼 전표와 증빙을 조작해 법인 경비를 허위로 계상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통해 법인세 과세표준 신고에서 해당 금액을 누락시키면서 2003년과 2004년 총 26억원 상당의 법인세를 포탈했다는 것이다.

 

자칫 소극적으로 비춰질 수 있는 검찰의 김 전 부사장에 대한  대응은 다시 재수사를 벌일 경우 실익을 거두기 어려울 것이라는 자체 판단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검찰의 칼끝이 향했던 이 회장은 이미 형이 확정된 데다, 특별사면까지 받은 상황이다. 김 전 부사장에 대해 강도 높은 수사를 벌이더라도 이렇다 할 실익을 거두기 어려운 상황인 것이다.

 

 

재수사 벌여도 실익 없을 것으로 판단한 듯

 

검찰이 김 전 부사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은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해석된다. 검찰이 김 전 부사장을 불구속 기소한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의아하다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 김 전 부사장이 수사의 핵심인물이었던 데다, 앞서 도피 전력까지 있기 때문이다. 시사저널 확인 결과, 검찰은 또 다른 금고지기로 지목된 두 사람에 대한 재판 결과 집행유예가 내려졌다는 점을 감안해 불구속 기소를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 이 회장과 함께 재판에 넘겨진 신동기 부사장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재무2팀장 출신의 성용준 CJ헬로비전 부사장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각각 선고받았다.

 

이렇다 보니, 이재현 회장도 김승수 전 부사장에 대한 수사를 의식하지 않고 경영 복귀 수순을 밟은 것으로 보인다. 출소 이후 희귀병 치료를 위해 미국에 머물던 이 회장은 올해 4월 귀국해 지난 5월17일 경영 복귀를 공식화했다. 경기도 수원 광교신도시에서 열린 CJ그룹 연구개발센터 ‘CJ블로썸파크’의 개관식을 겸한 ‘2017 온리 원 콘퍼런스’에서다. CJ그룹 관계자는 “이번 건으로 이 회장의 새로운 범죄 사실이 나올 가능성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며 “그렇다 보니 김 전 부사장이 기소된 건은 파악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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