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주엽 감독 “제일 잘할 수 있는 ‘본업’으로 돌아왔다”
  • 이영미 스포츠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6.14 16:16
  • 호수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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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미의 생생토크] ‘농구대잔치 스타플레이어’ 현주엽 창원 LG 감독 인터뷰…“관중들이 보고 즐길 수 있는 농구를 하고 싶다”

 

프로농구 창원 LG의 7대 사령탑에 선임된 현주엽 신임 감독(42)은 선수 시절 ‘매직 히포’ ‘한국의 찰스 바클리’로 불리며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스타플레이어 출신이다. 파워와 개인기, 패스 능력 등을 두루 겸비하며 휘문고-고려대-SK 나이츠-골드뱅크-코리아텐더-KTF 매직윙스(골드뱅크, 코리아텐더, KTF는 팀명만 바뀌었을 뿐 같은 팀이다)를 거쳐 2005년부터 LG에서 4시즌을 뛰고 2009년 은퇴했다. 3년간 농구 해설위원과 방송인으로 활약했지만 프로팀 지도자 경력은 전무하다. 그래서 LG 감독으로 현주엽이 선임됐다고 발표됐을 때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무엇보다 스타플레이어 출신 지도자들이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는 사실이 현 감독의 지도력에 의문점을 갖게 한 것이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현 감독은 코칭스태프를 구성하면서 지난 시즌까지 원주 동부를 이끌었던 김영만 전 감독을 코치로 ‘모셔오는’ 신의 한 수를 발휘했다.

 

6월7일 LG 이천 챔피언스파크에서 만난 현주엽 감독은 선수단 훈련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었다. 지도자로선 모든 게 처음이다 보니 그에 대한 부담이 만만치 않다고 토로했다.

 

현주엽 창원 LG 감독 © 시사저널 임준선

 

감독 부임 후 선수단 훈련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걸로 아는데 선수들과 부대끼며 훈련하는 소감이 어떤가.

 

“시즌 마치고 선수들이 약 두 달가량 휴식을 취하고 소집됐는데 모든 선수들이 너무 푹 쉬고 온 것 같다. 그런 점에선 엄청난 팀워크를 발휘하고 있다(웃음). 훈련을 앞두고 나름 체력 훈련을 하고 왔겠지만 지금은 훈련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그런지 여기저기서 곡소리가 난다. 몸이 쑤신다고.”

 

벌써 선수들 군기를 잡기 시작한 건가.

 

“전혀 그렇지 않다. 선수를 ‘잡는다’는 표현은 맞지 않다. 그러고 싶지도 않고. 단, 신임 감독과 처음 시작하는 훈련인데 선수들이 제대로 준비하지 않고 온 것 같아 살짝 아쉬움이 남았다. 준비를 많이 하고 온 선수들과 그렇지 못한 선수들 차이가 꽤 큰 편이다.”

 

그동안 해설과 방송인으로 활발한 활약을 펼치다 농구 코트로 돌아온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인가. 혹시 감독이 아닌 코치 제의를 받았어도 같은 결정을 했을 것 같나.

 

“감독이든 코치든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게 농구 아닌가. 방송과 해설은 ‘부업’이었고, 지금은 내가 제일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본업’으로 돌아온 것이다. ‘본업’에서 제안이 들어왔기 때문에 크게 고민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언론에 공식 발표가 나고 지인들로부터 엄청난 축하를 받았다. (서)장훈이형도 여러 차례 전화해선 격려해 줬다. 그렇게 3일 정도 구름에 붕 뜬 기분으로 지냈는데 4일째부터 서서히 걱정이 되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부터 잠이 안 오더라.”

 

선수단을 이끌어갈 걱정 때문이었나.

 

“그렇다. 이전 김진 감독님이 이끌었던 스타일에 선수들이 익숙해져 있을 텐데 그걸 어떻게 하면 지혜롭게 서서히 변화를 이뤄갈지 고민이 된 것이다. 내가 원하는 농구 스타일로 바꾸려면 시간이 많이 걸릴 텐데 조급해하지 말고 서로 부대끼면서 맞춰가자고 마음먹었다.”

 

해설위원 신분이었을 때 창원 LG의 장단점이 눈에 보였을 것이다. 밖에서 예상했던 팀 전력과 직접 확인한 팀 전력에 차이가 있는 편인가.

 

“흔히 단점이 있으면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보완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지금 우리 팀 전력은 예상했던 것보다 안 좋은 부분이 더 많다. 물론 이전에 LG가 좋은 모습을 보인 적도 있었지만 지난 시즌에는 경기력이 상당히 떨어진 상태라 모든 면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어느 순간 선수들이 지는 데 익숙해졌고, 뭘 해도 대충 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이전에는 감독이나 코치의 의견을 자기 걸로 만들려 노력했는데 지금은 형식적으로 흉내만 내는 선수도 있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선수들도 보이고, 노력을 통해 지금의 모습을 보이는 선수들도 있는데, 우리가 농구할 때처럼 악착같이 달려드는 ‘독종’은 보이지 않더라. 우리 때보다 체격도 좋고 화려한 플레이를 선호하지만, 개인기 부족이 눈에 띈다. 개성 강한 선수도, 노장 선수도 있지만 이 모든 걸 한꺼번에 바꾸기란 결코 쉽지 않다. 시간을 두고 나타난 문제점들을 깊이 고민하면서 조금씩 변화를 줄 계획이다.”

 

사실 LG에서 은퇴할 때 구단과 좋은 감정으로 헤어진 게 아니었다. 부상으로 어쩔 수 없이 그만둔 건데 그래도 지도자의 첫발을 LG에서 시작하게 됐다.

 

(현주엽은 2009년 6월 왼쪽무릎 수술을 받고 재활 중 은퇴를 결정했다. 당시 LG는 현주엽이 구단 지원하에 지도자 연수를 받기로 했다고 밝혔지만 이후 현주엽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아예 미국에서 살려고 출국했었다”라고 설명한 바 있다. 현주엽은 은퇴 결정이 자신이 아닌 구단의 결정이었고 그로 인해 농구에, 농구인들한테 배신당한 느낌이 컸다고 토로했었다.)

 

“물론 좋았던 기억만 있는 건 아니었지만 이 팀에서 마지막 선수 생활을 보냈고, 모든 선수들이 은퇴한 팀에서 지도자 생활을 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LG로부터 제안이 들어왔을 때 거부감은 들지 않았다. 무엇보다 당시 한상욱 국장님이 지금 단장으로, 과장님이 지금 국장님으로 계신다. 선수단을 지원해 주는 프런트에 내가 잘 알고 있는 분들이 계시니까 낯선 감정이 들지 않았다. 팀이 잘되려면 선수단과 프런트의 소통이 중요한데 우리 팀은 이 부분에선 걱정이 없다. 한 단장님도 다양한 방법으로 도와주고 계시고, 구단 직원들도 열심히 뛰고 있다. 내가 선수였을 때보다 지금 팀 분위기가 더 좋은 것 같다.”

 

김영만 전 원주 동부 감독을 코치로 영입한 건 누구의 아이디어였나.

 

“원래 박재헌, 강혁 코치는 미리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 감독 제안을 받고 원주 동부와 재계약하지 않은 영만이형이 생각나더라. ‘혹시 내가 도와달라고 하면 오실까?’ ‘감독하셨던 분인데 코치로 오실 수 있을까?’하고 고민하다가 직접 연락을 드렸다. 영만이형이 하루만 시간을 달라고 하셔서 기다렸고, 다음 날 전화가 와서 LG로 오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잘 아시다시피 내가 지도자 경험이 없기 때문에 영만이형이 도와주면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형은 코치부터 감독까지 두루 경험이 많으시기 때문에 내게 더 많은 도움을 주실 수 있다고 봤다. 그런데 구단에서도 코치 김영만을 생각하고 있었다고 해서 이후부턴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됐다.”

 

선수들 앞에서도 ‘영만이형’이라고 부르나.

 

“아니다. 당연히 김 코치님이라고 부른다. 사석에선 형이라고 하고. 지난 시즌 원주 동부가 창원 LG를 상대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자연스레 당시 동부 감독이었던 김 코치님은 LG에 대해 많은 연구를 했을 것이다. 나보다 더 우리 팀을 잘 파악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조언을 구하는 편이다.”

 

감독보다 나이가 많은 코치, 그것도 프로팀 감독을 했던 코치에 대한 부담이 분명 존재했을 것 같다.

 

“나이의 많고 적음에 대해선 생각하지 않았다. 코칭스태프를 구성하면서 포지션을 먼저 고려했다. 우리 팀에는 조성민, 김종규, 김시래 등이 주전들인데 이 선수들을 지도할 만한 코치들이 포지션별로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1~2번(포인트가드, 슈팅가드)은 강혁, 3번(스몰 포워드)은 김영만, 빅맨은 박재헌 코치가 맡는다. 김 코치와 박 코치가 굉장히 가까운 사이다. 나와 코치들의 관계가 모두 편하고 친숙해서 선수들을 이끄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

1995년 4월3일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MBC배 대학농구대회에서 고려대 현주엽(왼쪽)이 한양대 선수들의 집중 마크를 뚫고 레이업 슛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방송 해설을 하면서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했었다. 그런 경험이 선수들 지도하는 데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거라고 보는지 궁금하다.

 

“(김)종규가 나만 보면 자꾸 웃는다. 아무 말도 없이. 방송할 때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자꾸 웃기려고 했던 버릇이 있다. 그걸 지금도 못 버려서 난감할 때가 있다. 그러나 좋은 쪽으로 생각하고 싶다. 감독이 권위와 위엄만 내세우던 시대는 이미 지나지 않았나. 선수들 눈높이에 맞게끔 자세를 낮추고 소통하는 감독이 늘어나고 있다. 오히려 방송했던 이미지가 선수들에게 다가가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믿는다. 코트에선 농구에 집중하고, 코트 밖에선 편하게 얘기 나눌 수 있는 지도자의 모습으로 (선수들에게) 비춰지길 바란다.”

 

본격적인 훈련을 앞두고 선수단 전체 워크숍을 다녀온 걸로 알고 있다. 워크숍에서 선수들과 대화를 많이 나눴다고 들었는데.

 

“워크숍 이후 선수들과 처음으로 술자리를 가졌는데 끝까지 남은 선수가 고참들 외엔 없었다. 모두 뻗었다. 술자리 이전에 선수들과 개별적인 얘기를 나눴는데 한두 선수가 트레이드 요청을 해 오기도 했다. 흥미로운 점은 그런 얘기를 꺼낸 선수들이 지금은 가장 열심히 훈련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선수들은 일주일 정도 쉬면 불안해진다. 같은 포지션의 경쟁 상대가 운동하고 있다면 자신은 그보다 더 열심히 하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그런 부분이 훈련 시작 후 조금씩 보이고 있다. 앞으로 우리 팀에선 이름값에 얽매이는 농구를 하지 않을 것이다. 설령 실력이 부족해도 최선을 다해 열심히 노력하는 선수에게 먼저 기회를 주려 한다. 그들의 잠재력을 이끌어내는 게 지도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건강한 내부 경쟁을 통해 팀 전체가 적극적으로 변화에 대응해 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 이건 꼭 지켜나갈 예정이다.”

 

코치 경험 없이 감독을 맡았다는 게 보약이 될 수도, 또 독약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지도자 경험이 없다는 건 불리한 요소다. 그러나 다른 9개 구단 농구팀 감독들의 농구 실력만 갖고 따진다면 난 밀리지 않는다고 자신한다. 선수와 지도자의 영역은 엄연히 다르다. 보는 관점도 다르고. 그 부분을 해설하면서 많이 보완했다고 생각한다. 해설위원으로 활약하며 팀의 장점보다는 단점을 더 자세히 살폈다. 9개 팀의 단점을 충분히 파악했는데 여기에 3명의 든든한 코치들이 도움을 준다면 지도자 경험이 없다는 사실이 흠으로만 남진 않을 것이다.”

 

일부 팀에서는 여름에 산으로 전지훈련을 떠난다. 종종 산악훈련을 하는 장면이 언론에 소개되기도 하는데 창원 LG는 어떤 계획을 갖고 있나.

 

“산은 보라고 있는 거지 오르내리라고 있는 게 아니다. 그건 산악인의 몫으로 남겨둬야 한다(순간 폭소가 터졌다). 선수들이 산악훈련을 하다 보면 무릎에 큰 부담이 온다. 그런 훈련은 지양해야 한다는 게 내 의견이다. LG 훈련장은 코트도 넓고 밖에는 인조잔디에 트랙을 설치해 놔서 체력훈련, 전술훈련을 모두 이곳에서 소화할 수 있다. 외부로 전지훈련을 떠나는 건 계획에 없다.”

 

취임식에서 “재미있는 농구를 하겠다”고 밝혔다. 어떻게 해야 재미있는 농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선수만이 아닌 관중들이 보고 즐길 수 있는 농구를 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성적이 우선시되겠지만 팬들이 함께 즐기고 좋아할 수 있는 농구를 펼쳐 보이는 게 목표다. 서장훈, 우지원, 이상민 등을 잇는 스타플레이어가 나와야 한다. 얼마 전 살짝 충격받은 일이 있었다. 선수들과 함께 식사하러 외출했다가 사람들이 나한테만 사인 요청을 해 왔다는 점이다. 그 사인은 선수들이 해 줘야 하는 게 아닌가. 그만큼 농구가 대중적인 인기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지금보다 더 많은 스타플레이어들이 등장했으면 좋겠다.”

(현주엽은 앞으로 서장훈, 우지원 등 농구대잔치 시절의 스타플레이어들이 코트로 돌아와야 한다고 말했다. 그들이 지도자로 팀을 맡게 된다면 또 다른 재미와 볼거리를 선사하지 않겠느냐는 얘기였다. 현주엽은 “다른 팀 감독을 의식해서 한 말이 아니라 순수하게 농구의 흥행을 위한 의견일 뿐”이라고 단서를 달았다.)

 

 

선수들의 개인 기량이 점점 후퇴하고 있다는 의견이 있다. 이 점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 

 

“이전에는 키가 크면 모두 농구를 하려 했다. 지금은 배구로 더 많이 가고 있다고 들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난 개인적으로 프로농구가 더 재미있어지길 바란다. 뛰어난 경기력으로 화끈한 플레이를 선보인다면 농구도 이전의 인기와 흥행을 이어갈 거라고 믿는다. 이와 관련해서 젊은 감독들이 좀 더 책임감을 갖고 선수들을 이끌어야 할 것이다.”

 

현 감독이 펼쳐 보이는 농구는 어떤 색깔인가.

 

“아직은 색깔을 내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내 색깔을 보여주려면 2, 3년은 걸릴 수 있다고 본다. 선수들이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되찾아주는 게 우선시돼야 한다. 모두 실력이 뛰어난 선수들이다. 그걸 하나로 만들어 강한 팀으로 만드는 게 중요하다. 이번 시즌부터 성적을 내겠다고 자신할 수는 없지만 두 번째 시즌부터는 좋은 성적을 내는 것 또한 목표다. 외국인 선수들도 새로 영입해야 한다. 열심히 비디오 보면서 찾고 있는 중인데 일단 올 시즌은 LG만의 강력한 팀워크를 만드는 데 중점을 두면서 부족한 점들을 보완해 나갈 것이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농구 스타의 은퇴 후 인생은 시끌벅적했다. 믿었던 친구에게 수십억원의 투자사기를 당해 소송이 불거지면서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선수 시절의 화려함을 뒤로하고 농구계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췄던 현주엽 감독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건 방송에서였다. 그는 방송 해설이 농구와 다시 인연을 잇게 해 준 ‘다리’라고 말한다. 은퇴 후 2년간 농구를 보지 않았을 정도로 회한이 많았던 그. 이제 지도자로 돌아왔으니 그 한을 코트에 다시 쏟아 부을 차례다. ‘본업’인 농구를 통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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