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함도 없는 20대 장남이 10조원대 하림그룹 ‘꿀꺽’
  • 송응철 기자 (sec@sisajournal.com)
  • 승인 2017.06.21 09:29
  • 호수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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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家 후계자들 (19) 하림그룹] 급성장 하림그룹, 문재인 정부 ‘재벌개혁’ 첫 대상 되나

 

‘시가총액 10조5000억원, 국내외 74개 계열사, 재계 순위 30위권’. 곡물유통·해운·사료·축산·도축가공·식품가공·유통판매 등 7대 사업영역을 아우르는 거대 기업으로, 농·수·축산업을 기반으로 한 기업 가운데 유일하게 대기업 반열에 오른 하림그룹의 현주소다. 그러나 하림그룹의 지배구조는 이런 위상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림그룹의 지배주주는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의 장남 준영씨다. 올해 불과 26살로 경영 참여 경력이 전무한 그는 한국썸벧(37.14%)과 올품(7.46%)을 통해 지주사인 제일홀딩스 지분 44.6%를 소유하고 있다. 부친인 김 회장(41.78%)의 지분보다 2.82% 많은 것이다. 문제는 그룹의 지배권을 넘겨받으면서 낸 증여세가 100억원 남짓이라는 데 있다. 사실상 그룹 전체를 거저 넘겨받은 셈이다. 그마저도 자신의 주머니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하림그룹이 현재 편법승계 논란에 휩싸여 있는 이유다.

 

하림그룹에서 본격적인 승계 작업이 시작된 것은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하림그룹은 계열사이던 한국썸벧을 한국썸벧과 한국썸벧판매로 물적분할했다. 이를 통해 김홍국 회장은 ‘한국썸벧판매→한국썸벧→제일홀딩스→주요 계열사’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를 만들었다. 이후 김 회장은 자신이 100% 보유하던 한국썸벧판매 지분 전량을 장남 준영씨에게 증여했다. 2세가 지배고리의 정점에 서게 된 것이다. 이듬해인 2013년에는 한국썸벧판매가 올품을 흡수합병했고, 간판도 올품으로 바꿔달았다. 이를 통해 2012년 861억원이던 연매출은 2013년 3464억원으로 증가했다.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 동안 올품이 올린 매출은 1조4807원에 달했다.

 

© 시사저널 고성준·Pixabay

 

계열사들 승계 작업 위해 온갖 방법 동원

 

그러나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준영씨가 올품과 한국썸벧을 통해 보유한 제일홀딩스 지분율은 각각 1.48%와 7.35%로 그리 많지 않았다. 김 회장이 보유한 8.14%를 더해도 오너 일가의 지분율은 18.48%에 불과했다. 이는 제일홀딩스의 자사주가 80%에 달했기 때문이다. 제일홀딩스가 자사의 최대주주였던 셈이다. 준영씨의 지분율이 높아진 것은 지난해 11월, 제일홀딩스가 자사주 전량을 무상소각하기로 결정하면서다. 이후 액면분할을 거치면서 김 회장(41.78%)과 준영씨(44.6%) 등 오너 일가의 지분율은 93.43%로 급증했다.

 

이를 통해 준영씨는 사실상 10조원대 그룹의 지배권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준영씨가 납부한 증여세가 100억원 수준이라는 점이 문제가 됐다. 과세표준이 30억원 이상인 경우 증여세율은 50%라는 점을 감안하면, 터무니없이 적은 액수라는 평가가 나온다. 비근한 예로, 함영준 오뚜기그룹 회장이 자산총계 1조6500억원인 그룹을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으면서 납부하기로 한 상속세는 1500억원대에 달했다.

 

증여세 규모도 문제지만, 이를 마련한 방법도 논란이다. 준영씨는 지난해 1월 올품이 유상감자를 단행, 주식 6만2500주를 주당 16만원에 매수해 전량 소각하면서 제공한 100억원으로 세금을 납부했다. 이를 통해 준영씨는 올품 지분율 100%를 유지하면서 증여세도 납부할 수 있게 됐다. 올품은 유상감자 직후 NS쇼핑 주식을 담보로 100억원의 금융권 대출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와 관련, 하림그룹 관계자는 “증여 당시인 2011년은 팬오션을 인수하기 전이어서 그룹의 자산총액이 3조5000억원 정도에 불과했다”며 “올품을 공정가치로 계산해 국세청에 신고한 뒤 정상적으로 증여세를 납부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외에도 하림그룹 계열사들이 준영씨가 승계자금을 확보할 수 있도록 조직적으로 지원한 정황이 포착된다. 준영씨가 2015년 올품을 통해 인수한 금융 계열사 에코캐피탈이 수익을 올리도록 도와준 것이 대표적이다. 여기엔 그룹 계열사 자금을 빌려준 뒤 이를 다시 또 다른 계열사에 대출하는 방법이 이용됐다. 실제, 에코캐피탈은 지난해 한강CM(100억원)·하림식품(70억원)·제일사료(50억원) 등으로부터 220억원을 차입했다. 2.72~2.92% 수준의 저금리였다. 또 제일홀딩스로부터 192억원의 보증을 제공받아 금융권으로부터 220억원을 대출받기도 했다. 에코캐피탈은 이렇게 마련한 자금 중 230억원을 순우리한우와 싱그린에프에스 등 계열사에 6.5%의 금리로 신용대출했다. 이를 통해 에코캐피탈은 지난해에만 40억원에 달하는 당기순이익을 냈다. 이와 관련해 하림 측은 향후 시정해 나가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장남에 대한 그룹 지원사격은 ‘현재진행형’

 

여기에 올품과 에코캐피탈이 합병이나 인수를 준영씨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성사시키기 위해 모종의 작업을 벌였다는 의혹도 나온다. 합병과 인수 직전 약속이라도 한 듯, 합병 조건이나 인수가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재무 성적이 악화됐기 때문이다. 승계 작업을 위해 의도적으로 실적을 악화시킨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 올품의 경우 2010년 187억원, 2011년 68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으나, 한국썸벧판매 합병 전년인 2012년 영업이익은 돌연 적자로 돌아섰다.

 

올품이 에코캐피탈을 인수하는 과정에서도 이런 현상이 반복됐다. 에코캐피탈은 2013년 113억원의 매출과 57억5000만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그러나 인수 전년인 2014년에는 매출이 130억원으로 증가한 반면, 영업이익은 7억5000만원 수준으로 대폭 축소됐다. 특히, 에코캐피탈의 경우 단순 매수액만 놓고 봐도 저가에 인수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올품의 에코캐피탈 매입대금은 440억원이었는데, 이 업체의 2014년 자산총계와 순자산은 각각 1304억원과 512억원에 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림 측은 순자산과 평가금액이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하림그룹 관계자는 “관련법에 따라 기업가치를 평가했으며, 이후 세무조사 과정에서도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2015년 이뤄진 NS쇼핑의 상장도 준영씨 지원을 위한 행보라는 지적을 받은 바 있다. 통상 상장을 앞둔 기업은 신주를 발행해 투자를 받지만, NS쇼핑은 주주가 보유 지분 일부를 일반인들에 공개적으로 파는 구주(舊株)매출로 상장을 진행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올품이 보유하던 NS쇼핑 주식 30만650주 가운데 13만1650주를 주당 23만5000원에 매도해 309억원가량의 현금을 손에 쥐었다. 이는 공모주식수(17만5637주)의 75%에 달하는 규모였다. 이를 두고 당시 시장에서는 준영씨의 경영 승계 재원을 마련해 주기 위해 ‘구주매출’을 동원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그러나 하림 측은 NS쇼핑의 상장은 경영권 승계와는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준영씨에 대한 그룹 차원의 ‘지원사격’은 현재진행형이다. 우선, 제일홀딩스가 오는 6월30일 상장을 추진하고 있다. 공모주식수는 전체의 28.8%(2038만1000주)다. 제일홀딩스는 6월12일 국내외 기관투자가들을 대상으로 한 수요예측 결과를 토대로 공모가를 2만700원으로 확정지었다. 따라서 제일홀딩스의 시가총액은 1조4600억원대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 상장이 정상적으로 마무리될 경우 준영씨는 4600억원대의 주식을 보유하게 된다. 지분율이 44.6%에서 31.7%로 줄어들긴 하지만, 김 회장 소유 지분까지 더하면 66%대에 달해 오너가의 경영권이 흔들릴 가능성은 사실상 전무하다.

 

또 성장동력 사업을 주도적으로 추진해 향후 막대한 성장이 예고되는 계열사의 지분을 준영씨에게 넘기기도 했다. 하림그룹은 계열사인 제일사료의 축산용 사료와 펫푸드 사업 등을 성장동력으로 삼고 적극적으로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이를 위해 400억여원을 투자해 충남 공주시 정안에 공장을 건립하기도 했다. 이런 로드맵에 발맞춰 준영씨는 최근 올품을 통해 제일홀딩스가 보유하던 제일사료 지분 11.89%를 확보했다. 그 대가로 올품은 한국썸벧의 동물의약품 사업부문을 제일홀딩스에 넘겼다. 하림그룹은 향후 제일사료에 대한 상장을 추진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상장이 성공할 경우 준영씨의 자산가치는 더욱 커지게 된다.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사진)은 올해 26살에 불과한 장남 준영씨에게 그룹 지배권을 편법승계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정치권, 하림 편법증여 등 직접 언급해 

 

김홍국 회장은 사업인생에서 세 번 위기를 맞았다고 말한다. 1982년 닭값 폭락파동과 1997년 IMF 외환위기, 2003년 공장 화재 등이다. 그러나 이번 편법승계 논란은 이전의 위기를 뛰어넘는 핵폭탄이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제 막 출범한 문재인 정부가 재벌개혁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하림그룹 입장에서 가장 부담스러운 것은 이번 정부에서 재벌개혁을 주도할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다. 공정위는 최근 하림의 편법승계와 일감몰아주기로 인한 사익 편취에 대해 검토할 여지가 있다며 조사 의지를 내비친 바 있다. 자칫 새 정부 재벌개혁의 첫 타깃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재벌 ‘저승사자’로 통하는 김상조 위원장이 공정위를 이끌고 있다는 점도 하림그룹 입장에서는 걱정거리다. 앞서 특히, 김 위원장은 편법승계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한 바 있다. 6월2일 청문회 모두(冒頭)발언을 통해 “대기업 집단으로의 경제력 집중과 총수 중심 왜곡된 지배구조가 온전하다. 내부거래를 통한 사익추구 방식을 통해 부를 축적하고 부당하게 경영권을 승계하는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고 밝힌 것이다.

 

현재 청문회를 앞두고 있는 김영록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후보자가 선임될 경우도 하림그룹에 암운이 드리울 것으로 보인다. 김 후보자가 치킨 프랜차이즈 업체와 계열화 업체를 최우선 개혁 대상으로 꼽고 있기 때문이다. 계열화 사업이란 대형 기업들이 농가와 계약을 통해 사육·도축·유통·판매를 일괄 운영하는 시스템을 말하는데, 하림이 여기에 해당된다. 계열화 업체는 완벽한 유통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사육농가를 상대로 절대적인 갑(甲)으로 군림해 왔다는 지적을 받은 바 있다. 여기에 하림은 치킨 프랜차이즈 업체인 멕시칸을 계열사로 두고 있기도 하다. 김 후보자의 최우선 개혁 대상에 모두 포함된 것이다.

 

여기에 정치권도 하림그룹을 정조준하고 있는 상황이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6월8일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이번 대선에서 여·야 모두 일감몰아주기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한 만큼 관련 법률 개정을 통해 즉각 규제를 강화하겠다”고 밝히면서 하림그룹의 편법승계 사례를 직접 언급했다. 그는 “편법증여에 의한 몸집 불리기 방식으로 26세 아들에게 그룹을 물려준 하림 등을 보며 ‘일감몰아주기’에 대한 규제 필요성을 느낀다”고 강조했다. 

 

 

김 회장의 네 자녀들, 아직 경영에 참여 안 해

 

하림그룹 창업주인 김홍국 회장은 부친 김주환씨와 모친 이완경씨 슬하의 4남2녀 가운데 3남으로 태어났다. 김 회장은 교육자 집안에서 자랐다. 김주환씨는 전북대 농대 교수였고, 이완경씨는 공주 사범대를 나와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했다. 이런 영향을 받아 김 회장의 형제들 상당수도 교편을 잡았다. 김 회장의 큰형 김기만씨는 백석예술대 총장을, 큰누나 김기옥씨와 작은누나 김홍래씨는 중등교사를 지냈다. 둘째형 김재관씨와 막내 동생인 김홍재씨는 각각 일반 기업과 공기업에서 재직했다.

 

그러나 유독 김 회장만 축산업에 몰두했다. 계기는 초등학교 4학년이던 1968년, 외할머니로부터 병아리 10마리를 받으면서다. 이후 병아리는 200마리까지 늘어났고, 돼지와 염소를 키우기도 했다. 이후 김 회장은 이리농업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그리고 18세 되던 해 김 회장은 자본금 4000만원으로 황등농장을 설립했다. 그러나 1982년 닭값 폭락 사태로 사업을 접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이후 식품회사의 영업사원으로 일하다 1986년 사표를 내고 하림식품을 설립했다. 이후 사업은 승승장구했다. 1997년 코스닥 시장에 주식을 상장시키며 몸집을 불렸고, 2001년에는 NS쇼핑을 출범시켰다. 또 프리미엄 계육회사인 올품을 설립하고, 동물의약품 제조회사인 한국썸벧을 계열사로 편입시키는 등 그룹의 면모를 갖춰나갔다. 하림은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자산총액 3조5000억원의 중견기업으로 성장한 데 이어, 2014년에는 자산가치 4조7000억원을 돌파했다. 이후 김 회장은 공격적인 인수·합병(M&A)을 통한 사세 확장에 나섰다. 2015년에는 자산가치 4조원에 달하는 팬오션을 인수했고, 지난해엔 4500억원 규모의 양재동 파이시티 부지를 사들이면서 대기업 반열에 올라섰다. 이를 통해 하림그룹은 자산총액 10조5000억원, 재계순위 30위권의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김 회장은 아내 오수정씨와의 슬하에 1남3녀를 뒀다. 김 회장의 자녀들은 아직 누구도 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장녀는 미국 에머리비즈니스스쿨을 나와 현재 외국계 기업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차녀와 삼녀는 아직 학생 신분인 것으로 알려졌다. 장남 준영씨도 에머리비즈니스스쿨에 입학한 뒤 비교적 최근에야 군복무를 마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그를 중심으로 한 승계 작업이 한창이지만, 아직 경영수업은 받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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