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통’·‘통제’·‘문고리 권력’… 메이 총리가 보여준 익숙한 그림자
  • 김회권 기자 (khg@sisajournal.com)
  • 승인 2017.06.22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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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하는 메이 리더십, 박근혜 정부와 닮았다

 

2016년 7월,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가 세계 정치 무대에 등장했다. 국내 언론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닮은 점이 많다고 했다. 대표적 여성 보수 정치인이란 점이 그랬고 20대의 젊은 나이에 양친을 모두 잃은 점이 그랬다. 아이가 없는 점도 같았다. 기혼자인 메이 총리는 불임으로 아이가 없었다.

 

인생이 닮았더라도 정치인으로서의 행보는 다를 수 있다. 2016년 7월 브렉시트의 구원 투수로 총리직을 시작해 메이 내각이 한창 달리고 있을 때 박 전 대통령은 국정농단 사태의 주범이 됐고 결국 탄핵당했다.

 

‘The Ice Queen’ (얼음여왕) 

그녀의 별명은 냉정함보다는 강함으로 인식됐고 메이 총리는 ‘영국의 이익에 중심을 둔 강력하고 안정적인 리더십’을 가진 지도자란 점을 내세웠다. 영국의 문제를 인식하고 브렉시트의 성공을 강하게 이끄는 리더의 모습. 아마도 메이 총리가 그린 자신의 모습이었을 터다. 

 

의회를 해산하고 6월8일 조기 총선을 실시한다고 했을 때도 메이 총리는 웨스터민스터에 앉아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보수당을 기대했다. 영국민의 지지를 이전보다 강하게 업고 유럽과의 협상에 나서겠다는 그의 바람은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았다. 여론 조사의 결과가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모든 건 실패했다. 총선에서 보수당은 1당을 겨우 유지했을 뿐이었다. 과반 의석을 확보하지 못했다. 모두가 ‘실패’라고 규정하면서 강하고 안정적인 지도자는 흔들렸다. 불과 1년 만에 일어난 메이 총리의 추락은 여러모로 전임 대통령과 오버랩된다.

 

테레사 메이 총리를 향해 제기되는 리더십 문제들은 우리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제기했던 문제들과 닮았다. ⓒ 사진=EPA연합

 

“약속은 지킨다”며 말 바꾼 총리

 

먼저 신뢰의 추락이다. 그녀는 약속을 지키는 정치인이라고 강조했고 “조기 총선은 없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갑자기 조기 총선을 요청했다. 여기에 더해 조기 총선을 앞두고 영국에서는 ‘치매세’ 논란이 거셌다. 보수당은 전통적으로 노년층의 지지를 받는다. 그런데 ‘65세 이상 고령자 대상 요양서비스’를 대폭 축소하는 공약을 선거 전에 내놨다. 노년층 복지 공약을 후퇴시킨 셈이었다. 

 

요양 장소가 집이냐 외부냐를 따지지 않고 주택 가치를 소득으로 계산해 수급자를 줄이겠다는 게 보수당의 계산이었지만 역풍이 거셌다.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는 “결국 집을 팔아 사회보장을 지불하도록 강요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총선이 다가올수록 유권자들은 메이 총리가 어떤 입장에 서서 얘기하는지 아리송하게 여겼다. 가디언은 “메이 총리가 ‘치매세’ 때문에 코너에 몰렸다”고 설명했다.

 

 

진부하고 모호한 화법

 

“메이가 이야기하는 브렉시트의 정체는 뭘까.” 

이런 반문은 진부하고 애매한 표현이 가득한 메이 총리의 메시지 탓이었다. 그의 화법은 모호함으로 가득했다. 그는 “난 레드․화이트․블루 브렉시트를 원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레드․화이트․블루 브렉시트’가 무슨 뜻인지 정확히 설명할 수 없었다. ‘레드․화이트․블루 브렉시트는 무엇인가? 총리조차도 모른다’는 제목을 뽑은 인디펜던트의 기사는 메이 총리의 브렉시트 주장을 두고 “그녀는 지금 스스로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강하고 안정적인 리더십의 지도자는 점점 우스꽝스럽고 아이러니한 이미지로 변했다. 

 

 

‘테레사 메이비’와 불통

 

정책의 유턴, 그리고 의미 없는 메시지는 메이 총리의 자질 문제로 이어졌다. 그가 무엇을 지지하고 있으며 과거에 무엇을 지지했는지를 되묻게 했다. 여기에 더해 불통도 지적됐다. 그는 토론에 참석하기를 꺼려했고 단지 몇 차례 TV 인터뷰에만 등장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미리 리허설을 치른 것 같은 진부한 얘기와 예상된 의견만을 전달했다. 언론과 대중이 우려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코노미스트는 “메이 총리가 국정운영에서 명확한 비전과 방향을 보여 주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테레사 메이비’(maybe·애매모호하다는 뜻)라고 불렀다.

 

 

통제의 괴물과 문고리 권력

 

반면 메이 총리가 잘하는 것도 있다. 바로 ‘통제’다. 이코노미스트는 “메이의 측근들도 총리를 두고 ‘통제의 괴물’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런 통제는 신뢰와 효율성을 희생한다”고 지적했다. 메이 총리 주변에는 문고리 권력이 있었다. 총리의 보좌진인 피오나 힐(Fiona Hill)과 닉 티모시(Nick Timothy)를 중심으로 작고 강력한 팀이 운영되며 국정을 통제했다. “문고리 권력이 필터 역할을 하면서 정책은 병목 현상을 일으켰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지적했다. 마치 우리네 ‘정윤회 문건 유출’과 같은 사건도 있었다. 메이 총리의 리더십 스타일을 비판하는 컨설팅 회사 딜로이트의 메모가 유출됐을 때 총리는 정보 유출을 문제 삼으며 딜로이트가 처벌 받기를 요구했다.

 

그린펠 타워 화재 현장에서 피해 주민들을 만나지 않고 돌아갔던 메이 총리와 달리 제레미 코빈 노동당 대표는 피해자를 껴안고 위로하며 대비되는 모습을 보였다. ⓒ 사진=PA Wire

 

그린펠 타워에서 제기된 공감 능력의 결여

 

그리고 치명타가 된 게 ‘공감 능력의 결여’였다. 6월14일 영국 런던 그린펠 타워 화재는 참혹했다. 스카이뉴스의 기자인 아담 파슨스는 현장의 기록을 남겼다. “슬픔에 잠긴 가족들은 지쳐있었고 도움을 절실하게 요구했다. 메이 총리는 몇 명의 응급구조 요원을 만날 수 있는 곳에 있다가 떠났다. 그녀는 피해 주민이나 자원봉사자와 전혀 얘기하지 않았다. 그것은 어리석고 끔찍한 결정이었다. 그녀는 ‘연민’이란 감정이 없는 것처럼 냉담해 보였다." 

 

제레미 코빈 노동당 대표가 피해자를 껴안고 위로하는 것과 대비되는 그녀의 행보는 ‘인간성’ 논란까지 불러왔다. 분명한 건 대중과 정서적으로 분리된 그녀의 로봇 같은 모습에 영국민들도 냉담했다는 점이다.

 

메이 총리를 향해 제기되는 문제들은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이다. 마치 얼마 전 우리가 전임 대통령을 향해 제기했던 문제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결국 박 전 대통령은 탄핵됐고 정권은 교체됐다. 영국의 총리는 어떻게 될까. 메이 총리에게 주어진 시간도 그리 길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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