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모른 채 죽어가는 아기들
  • 정락인 객원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6.28 14:15
  • 호수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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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출생신고제’ 구멍 숭숭 뚫려…병원에서 의무신고 하도록 법 개정돼야

 

지난 6월17일 부산 남구 문현동의 한 아파트에서 충격적인 상황이 벌어진다. 오빠 집에 놀러온 동생이 음식 재료를 찾으려고 냉장고를 뒤지다 비닐봉지에 싸인 이상한 물체를 발견했다. 자세히 보니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영아의 사체였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집주인 A씨를 상대로 조사를 벌였다. A씨에 따르면, 5년 전인 2012년 김아무개씨(여·34)를 알게 돼 연인 사이로 발전했고, 지난해 4월부터 동거를 시작했다. 그 사이 김씨는 임신이나 출산 사실이 없었다고 한다.

 

경찰은 다시 A씨의 동거녀인 김씨를 불러 조사했다. 그녀는 숨진 영아는 자신이 낳았으며 냉동실에 신생아 사체 1구가 더 있다고 추가로 자백했다. 이렇게 해서 냉장고 안에 있던 영아  사체의 엄마가 드러났다. 두 사람이 동거하는 아파트에는 거동이 불편한 A씨의 어머니(78)도 살았으나 이런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고 한다.

 

© 일러스트 오상민

경찰 조사에 따르면, 김씨가 첫 번째로 아기를 출산한 것은 2014년 9월 대연동 원룸에서다. 김씨는 “병원에서 아기를 낳아 집에 데려왔으나 얼마 뒤 숨졌고 냉동실에 보관했다”고 진술했다. 그녀는 아기가 숨지자 냉장실에 보름가량 보관했고, 시신이 부패하자 냉동실로 옮겼다. 그런데 의아한 것은 첫째 아기를 출산할 때도 김씨와 A씨는 교제 중이었다는 사실이다. A씨는 김씨의 임신 사실을 몰랐을까.

 

A씨는 경찰에서 이런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진술했다. 김씨가 약간 배가 나온 데다 품이 넓은 옷을 입고 다녀 체형 변화를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기 아빠가 A씨가 아니라면 김씨는 다른 남성과의 사이에서 임신했다는 것이 된다.

 

둘째 아이 출생에도 의문점이 적지 않다. 김씨에 따르면, 지난해 1월 직장에서 근무하다 하혈이 있어 집으로 왔고, 샤워하던 중에 둘째 아이를 낳았다. 그녀는 “2시간 정도 정신을 잃었다 깨어나 보니 아이가 숨져 있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둘째 아이도 첫째와 같은 방법으로 사체를 유기했다. 둘째를 낳은 지 3개월 후 김씨는 A씨의 아파트로 들어와 동거를 시작한다. 이때 냉동실에 숨긴 아기의 시신도 갖고 왔다. 김씨가 시신을 직접 포장해 이사업체 직원들도 아기 시신의 존재를 알 수 없었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원에 의뢰해 영아들의 시신을 부검했지만 첫째 아기의 사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부패가 상당히 진행된 상태에서 냉동실로 옮겼기 때문이다. 둘째 아기의 경우엔 얼굴에 양막이 씌워져 호흡장애가 발생했고, 체온 관리와 수유가 안 돼 숨진 것으로 확인됐다. 외상이나 외부충격을 받은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은 김씨를 ‘영아살해 및 사체유기’ 혐의로 구속했다. 그녀의 범행 동기에 대해서는 “당시 동거남을 사랑하고 있었으며 생부가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동거남이 알게 되면 헤어지자고 할까 봐 출산과 시신 유기 사실을 숨겼다”고 설명했다. 현재 숨진 아기들의 생부는 누구인지 정확하지가 않다. 동거남을 사랑했다는 김씨는 정작 아기들의 생부가 누구인지는 모르고 있다.

 

이렇듯 김씨의 진술에는 여러 가지 모순이 존재한다. 경찰은 이런 부분에 중점을 두고 수사할 방침이다. 이번 사건의 경우 A씨의 여동생이 신고하지 않았다면 아기 시신의 존재는 까맣게 모를 뻔했다.

 

 

출생신고제 허점 보완해야

 

이런 비슷한 사건이 한두 건이 아니다. 지금도 어디에서 어떻게 아기들이 죽임을 당해 사라지는지 알 수 없다. 2015년 12월14일 경기 안산시에서는 여고생 A양(18)이 자신의 집 화장실에서 딸을 낳은 뒤 고무줄로 목을 졸라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범행 후 A양은 아기 시신을 비닐봉지에 담아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남자친구 B씨(20)에게 넘겼고 B씨는 같은 날 오전 2시10분쯤 집에서 1㎞가량 떨어진 하천에 아기 시신을 유기했다.

 

지난해 7월 경남 창원에서는 20대 미혼모가 모텔 화장실에서 남자 아기를 낳은 후 천장에 유기했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사건은 이후 다른 방에 투숙한 손님들이 “어디서 악취가 난다”고 모텔 주인에게 말해 방 점검에 나서면서 알려지게 됐다. 이런 사례들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알려지거나 발견되지 않은 아기의 죽음이 더 많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발생하는 이유 중 하나는 우리나라가 채택하고 있는 ‘출생신고제’에 구멍이 숭숭 뚫렸기 때문이다. 현행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아기를 출산하면 병원에서 출생증명서를 발급받아 1개월 내에 주민등록지 기초단체에 신고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신고의무자가 의도적으로 출생신고를 하지 않을 경우 이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게 문제다. 이번 부산 사건의 경우처럼 김씨는 두 아이를 출산했지만 관할 자치단체에 출생신고를 하지 않았다.

 

첫째 아이의 경우 병원에서 출생증명서까지 발급받았지만 그때뿐이었다. 출생신고를 하지 않으면 아기가 태어나서 죽임을 당해도 알 수가 없다. 출생신고를 늦게 하면 과태료가 부과되지만 금액이 미미하기 때문에 출생미신고 자체를 막기에는 한계가 있다. 

국회는 지난해 ‘허위 입양’에 악용된 인우보증제를 대폭 손질하고, 출생신고 의무자가 신생아 출산 후 한 달 이내에 신고하지 않으면 해당 지방자치단체장이나 검사 등이 대신 신고할 수 있도록 보완했다.

 

여고생 A양이 목졸라 살해한 아기 시신을 넘겨받은 B씨가 시신을 유기한 후 걸어가는 장면 ⓒ 사진=연합뉴스

인우보증제는 병원 밖에서 출산해 출생증명서를 첨부할 수 없다면 보증인 2명을 세워 출생신고를 하는 방식이다. 누구든지 보증인으로 세우면 출생신고가 가능하기 때문에 ‘허위 신고’도 비일비재했다. 실제 지난 4월에는 40대의 항공사 승무원이 아이를 낳지 않고 3명이나 허위로 출생신고를 해 정부지원금 등 4000여만원을 챙겨 잠적한 사건도 있었다.

 

개정안은 의사 등이 발급한 출생증명서를 첨부할 수 없으면 가정법원에서 확인서를 받도록 규정했다. 관할 가정법원이 신생아 출생과 사망 등을 확인하도록 해당 법률을 개정한 것이다. 인우보증제 폐지와 관련법 개정으로 ‘허위 입양’의 폐단에 획기적인 개선을 가져왔다. 법이 개정되기 전에는 출생신고를 안 해도 입양 동의서나 양육권 포기각서를 제출하면 입양이 성사됐다. 그러나 이제 입양을 위해서는 출생신고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인우보증제 폐지와 법 개정으로 인터넷을 통한 아기 매매를 막는 효과도 있었다. 성 개방 풍조가 확산되면서 미혼모가 증가하고 덩달아 아기 매매의 수요도 팽창시키는 원인이 됐다. 아기의 인생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임신과 출산 사실을 숨기려는 데 급급해 아기를 팔아넘기는 일이 많아졌다. 심지어 인터넷에서는 입양 브로커들까지 활개를 치는 실정이었다.

 

하지만 관련법이 개정돼 아기를 입양하려면 출생신고부터 해야 한다. ‘아기 밀매’나 기관을 거치지 않는 ‘비밀 입양’은 사실상 어렵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영아 살해’와 같은 범죄를 막는 데는 한계가 있다. 요즘 출산은 대부분 병원에서 이뤄지고 있다. 병원에서 출생증명서를 발급받았다고 해도 부모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으면 ‘출산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다. 현재는 병원에서 출생신고를 할 의무가 없다.

 

 

아기에게 최소한의 인권 보장해야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병원에서 의무적으로 출생신고를 하도록 법이 개정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미국, 영국, 독일 등 선진국들은 의료기관 등이 출생사실을 정부 기관에 통지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의료기관 등이 출생통보를 하도록 법 개정이 추진됐었지만, 관련 기관들의 이견으로 무산됐다. 미혼모 등이 의료기관에서의 출산을 기피하게 돼 태아에게 위험을 초래할 수 있고 병원에서 출산하지 못한 국민에게 불편을 초래한다는 등의 이유였다.

 

유엔 아동권리협약은 아동은 출생 후 즉시 등록돼야 하며, 출생 시부터 성명권과 국적 취득권을 갖는다고 선포하고 있다.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우리나라 정부를 향해, 부모의 법적 지위나 출신에 상관없이 모든 아동에게 출생등록이 가능하도록 보장하기 위한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했다. 모든 아기에게 출생신고가 보장돼야 한다는 의미다.

 

임신과 출산은 누구에게는 축복이지만, 또 누구에게는 불행일 수 있다. 하지만 누구에게서 태어났든지 생명은 소중하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세상에 태어났지만 태어난 기록조차 없이 죽어가는 어린 생명들이 있다. 말 못하는 아기들에게도 최소한의 인권을 보장하는 제도 마련이 시급한 이유다. 

 

 

“출생신고는 아동 보호의 최소 장치”

김은희 대구미혼모가족협회 대표

 

© 사진=김은희 제공

현행 출생신고제에 허점이 많은 것 같다.

 

현행 출생신고제는 아기가 출생한 사실을 부모가 신고하는 제도다. 부모가 아기가 출생한 사실을 신고하지 않는다면 아이는 대한민국에 살고 있지만 성명권과 국적 취득권을 갖지 못한다. 하물며 경찰이나 아동보호기관이 아이를 대신해 출생신고를 하려 해도 불가능하다.

 

 

어떻게 개선해야 한다고 보는가.

 

병원, 조산원에서 아기가 출생하면 의사나 조산사 등 출생 장소의 소유권자가 의무신고자가 돼야 한다. 아기의 출산에 직접 개입한 의료인이 출생 즉시 출생신고를 해야 아동의 생명권 등을 보호할 수 있게 된다. 부모만이 출생신고가 가능하기 때문에 살아 있으나 존재하지 않는 아기들이 생긴다. 이들 아기의 경우 예방접종이나 교육을 받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서류절차의 번거로움 없이 매매 입양되거나 심한 경우 인신매매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미혼모의 경우 출생신고가 꺼려질 것 같다.

 

미혼모의 경우는 출산 사실 자체가 알려지는 것을 꺼리기 때문에 출생신고 없이 크는 아이들도 상당수다. 아동의 권리가 우선될 수 있도록 출생신고는 강제돼야 한다. 출산기록이 꺼려지는 것이 아이의 생명권보다 우선돼서는 안 된다. 현재는 출생신고를 하지 않아도 아무 제재 방법이나 출생신고를 강제할 방법이 없다. 부모가 마음을 바꿔 10년, 20년 뒤 출생신고를 하더라도 벌금액수가 최대 5만원에 불과하다. 현행 제도로는 경찰조차 출생신고를 강제할 권리가 없다.

 

 

출생신고가 안 된 아이가 학대를 받으면 어떻게 되는가.

 

단순히 벌금을 물리는 것 외에는 처벌조항이 없다고 봐야 한다. 출생신고가 돼야 법 테두리 안에서 학대받는 아이를 격리·보호할 수 있다.

 

 

출생신고가 안 되면 어떤 불이익이 있는가.

 

우선 출생한 지 한 달이 지나면 예방접종을 못한다. 또 학교에 가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현재 호적 없는 아이들이 상당히 많다. 어떻게 보면 살아 있는 것 자체가 대단하게 느껴질 정도다. 출생신고가 돼야 감시망이 생기고 처벌 근거가 생긴다. 출생신고는 아동 보호의 최소 장치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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