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스탄에서 만난 소련의 흔적 ‘록’
  • 박종현 월드뮤직센터 수석연구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6.29 15:51
  • 호수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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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현의 싱송로드] 역사 속으로 사라진 소련, 예술 재료로 여전히 남아

 

- 편집자 주 -

 

시사저널은 이번 호부터 새 연재 ‘박종현의 싱송로드’를 선보인다. 이를 통해 세계 각 지역의 다양한 음악, 그리고 그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역사 및 문화적 맥락 속에서 소개할 예정이다. 필자 박종현 연구원은 ‘생각의 여름’이라는 이름으로 활동 중인 싱어송라이터다. 미국 일리노이대 인류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고, 현재 서울대 비교문화연구소 객원연구원과 월드뮤직센터 수석연구원으로 세계 음악문화에 대한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2016년은 소련 해체 25주년이었다. 구(舊)소련에 속해 있던 여러 나라들에선 독립국으로 세계무대에 나선 지 사반세기가 되는 해를 기념하는 성대한 행사들이 열렸다. 당시 필자는 구 카자흐소비에트연방공화국(KazSSR)이었던 카자흐스탄에 머물고 있었다. 지금은 아스타나에 ‘수도’ 타이틀을 내주었지만, 여전히 카자흐스탄 최대의 도시인 알마티(Almaty)도 독립을 자축하는 여러 행사들로 가득했다.

 

© 시사저널 박정훈·freepik

 

소련 록의 영웅 빅토르 최 음악 카자흐서 울려 퍼져 

 

스물다섯 살 독립국 카자흐스탄은 카자흐의 사람·문화·언어를 점진적으로 국가 정체성과 연결 짓는 정책을 비교적 성공적으로 진행하며, 소련과 러시아의 그늘에서 차근차근 벗어났다. 이른바 ‘카자흐화(Kazakhification)’ 정책이다. 최근에 이곳을 여행하는 여행자들이라면, 유목과 강제이주의 역사가 만들어낸 문화적 다양성, 그리고 익숙한 다국적 브랜드들의 혼재 속에서 딱히 소련이나 러시아적인 느낌을 크게 받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카자흐스탄의 일상 곳곳에서 ‘소련’은 단순한 흔적으로 존재하지만은 않는다. 현재의 일부로 살아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로, 여전히 많은 이들은 알마티를 소련 시절의 이름 ‘알마아타(Alma-Ata)’라 부른다. 소련식 이름의 거리들도 대부분 카자흐어로 바뀐 지 오래지만, 사람들은 계속 예전 명칭을 쓴다. 옛 레닌 거리는 카자흐어로 친선을 뜻하는 ‘더스틱(Dostyk)’ 거리가 되었지만, 시민들 열에 아홉은 세대 고하를 막론하고 ‘레닌 거리’라고 부른다. 버스 안내인들조차 “이번 역은 레닌 거리입니다”라 소리친다. 그만큼 몸에 한 번 익은 것들은 바꾸기 쉽지 않다. 문화화(文化化)의 힘이다.

 

귀에, 손에, 입에 밴 음악도 그런 것들 중 하나다. 소련은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그때의 음악은 풍경 속에 살아 있다. 알마티의 대중음악가들과 음악을 사랑하는 시민들은 현재의 ‘소리경관(soundscape)’ 안에 ‘소련’이라는 유산을 계속해서 꺼내들고 있다. 소리경관은 우리를 둘러싼, 우리가 귀로 감각하는 소리들의 풍경 정도로 이해할 수 있겠다.

 

음악이란 일상 속에 남은 소련의 자취는 ‘아르바트’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아르바트는 예술가들이 전시와 공연을 하는 일종의 ‘문화 거리’로, 많은 구소련 도시들에서 찾아볼 수 있는 공간이다. 아르바트 악사들의 레퍼토리 가운데 가장 흔한 것이 영화 《백야》의 주제가인 《야생마》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블라지미르 비소츠키의 곡이다.

 

소련 록의 영웅 빅토르 최의 음악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의 과거에, 이곳 알마티에서 4500여㎞ 떨어진 러시아 레닌그라드에서 활동했던 빅토르 최와 그의 밴드 키노가 지니는 존재감은 매우 흥미롭다. 소련을 전혀 겪지 않은 나이의 젊은이들이 거리에서 키노의 음악을 메들리로 합창하는 모습을 목격하기도 했다. 심지어 깊은 밤 오픈카를 타고 질주하는 알마티의 젊은 ‘힙스터’들이 온 거리가 떠나가라 틀어놓은 음악은 한국에도 잘 알려진 키노의 대표곡 《혈액형》이었다.

 

빅토르 최는 구(舊) 카자흐소비에트연방공화국과 관련이 깊다. 그는 배우로서도 활동했는데,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이글라》(1988)가 촬영된 곳이 이곳이었다. 그는 고려인 아버지와 러시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그의 부계 친척들이 구 카자흐소비에트연방공화국의 고려인 밀집 거주지인 이곳에 살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1980년대 말 빅토르 최가 이 지역의 예술가들과 함께 공연하고 교류했던 이야기들이 여전히 카자흐스탄 인구에 회자되고 있었다.

 

2016년 알마티의 거리에서 필자는 모스크바 중심으로만 상상해 오던 옛 소련의 음악 씬(scene)에 대한 시각을 확장해 볼 수 있었다. 소비에트연방의 해체 후에도 범(汎)소련권, 특히 러시아어 사용이 지배적인 몇몇 국가들의 대중음악 씬은 따로 또 같이 움직이는 모양새다. 많은 밴드들의 투어가 카자흐스탄과 러시아, 키르기스스탄 등을 한데 포괄한 장 속에서 이루어진다. 카자흐스탄 출신의 원로 음유시인이자 가수 율리 킴이 모스크바에서 여전히 활발히 활동하고 있고, 최근 생긴 글로벌 록클럽 체인 ‘하드록카페’의 오프닝 축하무대에 1980년대 사회주의 진영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소련 록그룹 마시나 브레메니가 상징적으로 등장한 것들이 같은 맥락이다.

 

 

소련 음악 씬, 범소련권의 대중음악 한데 묶어

 

소련 해체 후 1세대 카자흐스탄 밴드로 여전히 활발히 활동 중인 모터롤러는 소련 시절, 혹은 소련 후 상황과 관련한 사회적 테마들을 자신들의 곡에 서정적으로 녹여낸다.

 

 

“비슈케크에서 알마아타로 / 이백삼십사 베르스타(소련에서 쓰이던 거리 단위)라네 / 국경에 걸린 태양이 / 국적을 바꿀 것이네 / 난 다시 널 버리네 / 너의 변함없음도 / 어디론가 가려는 내 마음과 바꿀 수 없네…”

 

모터롤러의 대표곡인 《비슈케크에서 알마아타로》(2003)의 가사다. 이별 노래의 형태를 띠고 있는 이 노래는 한 나라에 속해 있던, 차로 3시간 거리의 두 도시가 하루아침에 타국으로 갈려버린 상황을 노래한다. 한때 소비에트연방 안에 있던 비슈케크와 알마아타라는 두 도시는 이제 키르기스스탄과 카자흐스탄이란 서로 다른 나라의 소속이 됐다. 뿐만 아니라 소련 해체 후 키르기스스탄에서 수많은 이들이 생계를 위해 비교적 여유로운 카자흐스탄으로 넘어오는 ‘냉전 후 신(新)이민’의 역사까지도 “태양조차 국경을 바꾸는” 시공간의 비유 안에 녹여냈다. ‘위대한 조국전쟁(제2차 세계대전)’ 승전 70주년이었던 2015년엔 추모의 의미를 담아 《그는 싸움에서 돌아오지 않았네》 《어두운 밤》 등 소련 시절의 노래들을 당대 록 스타일로 리메이크하고 러시아 지역을 투어하기도 했다.

 

젊은 세대의 밴드로는 몰다나자르를 들 수 있다. 필자 역시 20대 초반의 카자흐인 친구에게 가장 ‘핫한’ 밴드로 이들을 소개받았다. 비트 선택이나 사운드의 톤 만듦새에 있어 1980년대 소련 신스팝(synthpop) 밴드 선배들인 알리안스 등을 직접적으로 연상케 하는 시도가 엿보인다. 이러한 시도는 카자흐스탄의 음악인들이 독립 이후에도 소련 록의 전통을 버리지 않고 그것을 현대적 취향 속에서 새로이 얽고 있음을 보여준다. 몇몇 뮤직비디오들 역시 의도적으로 소련을 시공간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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