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과 돌아온 조선 왕실 어보…다른 어보 반환의 역사는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17.07.03 14:20
  • 호수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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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과 어보는 아직도 행방불명…‘어보 판매’ 놓고 논란도

 

불법 반출돼 미국에 있던 문정왕후어보와 현종어보가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국내로 돌아왔다. 이 어보들은 6월30일 미국 워싱턴DC에 있는 한국대사관에서 한미 양국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환수식을 거쳐 7월2일 대통령 전용기편으로 국내에 도착했다. 문화재청은 “문정왕후어보와 현종어보를 미국에서 한국으로 되찾아 오는 절차가 마무리됐다”며 “8월 국립고궁박물관의 특별전시를 통해 어보를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조선시대 왕실의 의례용 도장인 ‘어보’는 ‘국새’와는 다르다. 국새는 왕이 외교문서나 각종 국내 행정문서에 사용하기 위해 제작한 도장인 반면, 어보는 왕실 사람들에게 새로운 작위를 내리거나 왕실의 정통성과 기강을 세우기 위해 제작됐다. 국가의 권위를 나타내는 도장이었기 때문에 제작 및 관리는 엄격하게 이뤄졌다. 금, 은, 옥, 백철 등으로 만들어진 어보에는 왕의 업적을 기리는 각종 존호나 시호, 묘호 등을 새겼다. 조선왕조와 대한제국에서 제작된 어보는 총 375과(顆·도장을 세는 단위)에 이른다. 

 

7월2일 반환된 문정왕후 어보(왼쪽)와 2015년 4월에 반환된 덕종어보(오른쪽). ⓒ 사진=연합뉴스

 

6∙25 전쟁 당시 미군에 의해 약탈

 

그러나 이렇게 만들어진 어보 중 일부는 6∙25 당시 전쟁 과정에서 미군에 의해 약탈됐다. 미군의 약탈기록은 한국전쟁 직후 당시 우리 정부의 반환 요청으로 미 국무부가 펼친 조사를 통해 남아 있다. 이 같은 사실은 혜문 스님(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과 김정광 미주한국불교문화원장 등이 2009년 메릴랜드 국립문서보관소에서 찾아낸 ‘아델리아 홀 레코드’를 통해 상세히 밝혀졌다. 

 

그 내용에 따르면 1953년 미 국무부 자문관인 아델리아 홀은 미군이 훔쳐간 어보 등 도난품 리스트를 작성하고 반환에 협조했다. 당시 주미 대사였던 양유찬 박사는 미군이 훔쳐간 47개의 어보를 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어보들의 반환과정에서 일부가 사라졌다. 그중 하나가 2008년 LA카운티 미술관에서 발견됐는데, 바로 그것이 문정왕후어보였다. 문정왕후어보는 명종 2년(1547년) 중종비인 문정왕후에게 ‘성렬대왕대비(聖烈大王大妃)’의 존호를 올리는 것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된 것이다. 

 

문화재제자리찾기는 이후 100인 위원회를 구성하고 백악관에 청원서를 제출하는 등 캠페인 을 전개하고, 어보가 보관돼 있던 LA카운티박물관과 협상을 하는 등 어보 반환을 위해 노력해왔다. 그러나 협상 도중 우리 정부가 수사를 의뢰하면서 어보는 미 국토안보수사국에 압수됐다. 지난 2014년과 2015년 오바마 대통령 방한 당시 환수 조짐이 보였지만 법적 절차 문제로 무산됐고, 마침내 올해 반환 최종 결정이 나와 국내로 환수됐다. 

 

현종어보는 효종 2년(1651년)에 현종이 왕세자로 책봉되는 것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된 것으로,'왕세자지인'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이 어보는 문정왕후어보를 2000년 LA카운티미술관에 판매했던 고미술 수집가 로버트 무어씨가 소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2013년 문화재청은 미 국토안보수사국(HSI)에 수사를 요청했고, 그 해 9월 민사몰수 방식을 통해서 압수한 뒤 3년 이상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반환이 결정됐다.

 

앞서 2014년 4월에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방한하면서 국새와 어보 등 조선시대 인장 9점을 반환한 바 있다. 대한제국의 국새 11과 중 하나인 황제지보를 비롯해, 고종 황제가 수강태황제로 받들어지는 의식을 치르는 것을 기념해 제작된 어보인 수강태황제보가 반환됐다.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문화재 반환 행사에서 “한국전 당시 한국의 인장과 옥새를 미국의 해병대 병사가 가지고 돌아갔다. 그 병사가 이 문화재의 역사적 중요성을 몰랐었던 것 같다”면서 “이것은(반환은) 미국이 한국과 한국 국민을 존경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미국 방문을 마친 문재인 대통령이 7월2일 서울공항에 도착해 함께 전용기편으로 들어온 조선현종어보, 문정왕후 어보를 보며 인사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장렬왕후옥보 판매 두고 논란…문화재청 "돌려주거나 구입해줄 수 없다"

 

2015년 4월에는 덕종어보가 반환됐다. 덕종어보는 성종 2년(1471년) 제작된 것으로, 성종이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사망한 자신의 아버지 덕종에게 ‘온문의경왕(溫文懿敬王)’이라는 존호를 올리면서 만든 도장이다. 덕종어보 역시 1943년 이후 누군가에 의해 해외로 반출됐다가 1963년 미국 시애틀미술관이 한 수집가로부터 기증 받아 소장해왔다는 것이 지난 2013년 확인됐다. 이후 문화재청이 반환협상에 나섰고, 미술관과 수집가의 후손이 기증에 동의하면서 70년 만에 우리나라에 반환됐다. 

 

그러나 아직도 어보 중 40여과는 행방이 묘연하다. 지난해에는 한 문화재 수집가가 미국의 한 경매 사이트에서 구매한 장렬왕후옥보를 국립고궁박물관에 판매하려는 일이 벌어져 논란이 일기도 했다. 장렬왕후옥보는 행방불명된 것으로 알려져 있던 어보 중 하나로, 숙종 2년(1676) 인조의 비인 장렬왕후에게 ‘휘헌(徽獻)’이라는 존호를 올리면서 제작됐다. 

 

문화재청은 최근 문화재 수집가가 한 방송사 보도를 통해 “어보를 우리 정부가 사겠다고 해서 줬더니 사지도 않고 돌려주지도 않아서 갈등을 빚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 2일 공식 보도 자료를 내고 “정씨가 미국에서 구입한 어보는 도난문화재로, 당초부터 국가 소유의 문화재이기 때문에 박물관에서는 현행법에 따라 다시 돌려주거나 구입해줄 수 없다”고 반박했다. 또  “이번 한미정상회담을 계기로 들어오는 문정왕후어보 등도 모두 도난문화재였기 때문에 국내에 아무 조건 없이 반환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2014년 4월25일 청와대에서 열린 '우리 문화재 인수행사'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우리 측에 반환한 대한제국 국새인 황제지보(맨 앞), 공문서용 인장인 준명지보(가운데 줄 오른쪽), 고종어보인 수강태황제보(가운데), 유서지보(왼쪽). ⓒ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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