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사람들’은 정말 사라졌을까
  • 이진아 환경․생명 저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7.07 09:19
  • 호수 144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진아의 지구 위 인류사(유럽사 편)] 배에 가족과 가축 싣고 새로운 정착지를 찾아 떠나온 ‘보트 피플’

 

이집트 신왕국을 뿌리째 흔들어놓았던 ‘바다 사람들.’ 이들은 거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이 시기 지중해 문명 전체의 판도를 바꾸어 놓았던 것으로 평가된다. 소아시아 지역의 히타이트(Hittite), 그보다 해안 쪽의 가나안 족 도시국가들(이후 페니키아 본토 자리), 발칸 해역의 미케네와 크레타 등 당시 가장 앞서나갔던 대국들을 모두 몰락시키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역사학에서는 이 과정을 ‘후기 청동기 붕괴’라고 부른다. 대략 기원전 1250년부터 1150년까지의 기간이며, 새로운 세력들이 바다로부터 침범한 결과라고 규정되고 있다. 해안가의 정주지는 끊임없이 약탈당했고, 해안에 가까운 왕도들은 불태워지고 파괴됐다. 

 

사실 지중해 동쪽 및 동남쪽 해안가 거주지에서 이 파괴의 물결에 완전히 무너지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대국의 총력을 기울여 방어해냈던 이집트의 나일 강 델타 지역 정도였다. 그렇게 파괴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당시까지 지구상에서 가장 문명이 앞선 지역의 하나였던 소아시아와 이집트의 패권이 쇠해지고, 지중해의 헤게모니가 동부 해역에서 중부 해역으로 옮겨갔다. 

 

그 이전에는 별로 존재감이 없었던 바다 사람들이 왜 하필 이때 들고 일어나 청동기 붕괴라고 일컫는 소란스런 과정을 일으켰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는 지금까지의 역사학이 밝히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환경역사학적 관점을 도입하면 이 대규모 파워 쉬프트에 기후변화가 작용한 메커니즘을 이해할 수 있다.

 

후기청동기 붕괴 당시의 지중해 판도와 기후변화 ⓒ 이진아 제공

 

‘바다 사람들’이 초래한 ‘후기 청동기 붕괴’

 

왼쪽 지도는 후기 청동기의 지중해 판도를 보여준다. 지도는 당시의 대국들을 표시하고 있는데, 동부 지중해만 표시된 이유는 그보다 서쪽으로는 국가라고 할 만한 문명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중에서 종족 기반 정권이 아예 와해될 정도로 영향을 받은 것은 미케네 문명권의 미케네와 크레타, 그리고 소아시아의 히타이트다. 이집트는 집권 종족이 바뀌지는 않았지만 신왕국이 무너질 정도의 타격을 받았다. 반면 아시리아(Assyria) 바빌로니아(Babylonia)는 후기 청동기 붕괴 과정에서 별 영향을 받지 않았다. 

 

오른쪽 그래프는 후기 청동기 붕괴 당시의 기후변화라는 맥락을 보여준다. 온난기가 절정을 향해 치닫는 기간이며, 기후변화(온난화)의 속도가 매우 빨랐음을 알 수 있다. 

 

두 가지 그림을 종합해보면, 우리는 기후변화라는 거시 환경요인의 작용에 따라 이런 문명의 거대한 변화가 생겨났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온난기에 접어들면서 나무들의 생장이 빨라지고 큰 배를 만들기 쉬워지며 강의 수심이 깊어져 바다 사람들에게 더 활동하기 유리한 조건이 형성되었기 때문에 이들이 득세했으리라.

 

여기서 한 가지 추가적으로 고려해야 할 점은 기후변화에 따른 지중해 해류의 방향 변화다. 지중해에서는 온난기에는 서쪽, 정확히 말하면 약간 북쪽으로 치우친 서쪽에서 약간 남쪽으로 치우친 동쪽으로, 한랭기에는 그 반대로 바닷물의 방향이 바뀐다. 물론 해류는 순환하므로 오던 방향으로 다시 가는 부분도 있지만, 이럴 때는 힘이 현저하게 약해진다. 따라서 온난기가 되면서 바다 사람들이 득세하게 됨은 물론, 지중해 서북쪽, 즉 이베리아 반도 쪽에서 동남쪽 즉 이집트나 그 옆 시나이반도 쪽으로 진출하기가 쉬워진다. 이런 해류의 변화는 기온 변화에 따른 바닷물 온도 변화 때문이다. 

 

2000년대 초를 기준으로 측정한 지중해의 해류. 현재 온난기여서 대서양에서 지중해 안쪽으로 들어오는 방향을 중심으로 흐르고 있으며, 한랭기엔 이 반대 방향의 해류가 형성된다. ⓒ Tomczak & Godfrey

온난기에 바닷물의 온도가 올라가면 엄청난 양의 바닷물 자체의 부피가 늘어나면서 해수면이 높아진다. 그러면 물의 양이 압도적으로 많은 대서양 쪽의 수면이 지중해 수면보다 더 높아지게 된다. 그 결과 지브롤터 해협을 통과해서 동쪽으로, 바닷물이 세차게 흘러들어온다. 이 물살을 거슬러 항해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거꾸로. 이 물살을 타고 북서쪽에서 불어오는 편서풍까지 이용하면, 온난기엔 유럽 해안에서 소아시아 해안 쪽으로 움직이는 게 압도적으로 쉬워진다. 기원전 1500년 무렵부터 급속한 온난화가 시작됐고 그에 따라 제반 생태학적 요인에 변화가 생겨나는 과정을 200~300년쯤 거치는 동안, 지중해의 패권이 소아시아 쪽에서 지중해 중부로 옮겨가게 된 것이다.

 

앞서도 보았지만 바다 사람들은 산지를 이동하는 데 익숙하지 않고 주로 해안에서 강을 따라 움직일 수 있는 지역에 정주하는 편이다. 지중해에서 접근하기 쉬운 히타이트 영토는 처참히 부숴버려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었겠지만, 거기서 아나톨리아 고원 너머로 있는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까지는 가려고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왜 왜 지중해 바다에서 먼 아시리아나 바빌로니아는 히타이트보다 상대적으로 세력이 약했는데도 후기청동기 붕괴를 면할 수 있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렇게까지 심하게 파괴할 필요가 있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이 부분을 이해하는 데는 다음과 같은 이집트 부조(浮彫) 벽화의 한 장면이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집트 카르나크 신전 벽에 새겨진 부조 벽화의 일부 ⓒ antiquatedantiquarian블로그

 

그림은 바다 사람들의 가족을 보여준다. 이집트 병사와의 전투가 시작되자 한 여인이 아들을 급히 수레에 태우려고 하는 장면이다. 이 그림으로 보아, 바다 사람들은 아예 가족까지 데리고 와서 비옥한 나일 강의 델타에 정착하려 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 그림 외에도 이집트 병사들과 싸우는 바다 사람들의 배 안에 가축과 가재도구가 실려 있는 장면도 남아 있어, 더욱 그런 추측을 하게 해준다. 

 

즉 바다 사람들은 단순한 정복욕 혹은 파괴 충동 때문에 청동기 시대의 대국들을 박살낸 건 아니라는 점이다. 적어도 그들 중 상당수는 배에 가족과 가축까지 싣고 새로운 정착지를 찾아 떠나온, 요즘 말로 하자면 ‘보트 피플(boat people)’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기후변화와 그에 따른 생태계 변화를 함께 고려하면 당시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온난기에 해수면이 높아지면, 지중해 같이 좁고 대서양으로부터 상당한 양의 물이 쏟아져 들어오는 해역에서는 상당히 빠른 속도로 변화가 생길 수 있다. 한랭기 동안 육지로 드러났던 부분이 물에 잠기게 되는 것이다. 바다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사람들은 바닷가 가까운 곳에 살았을 터이므로, 이런 상황에서는 생활터전이 수몰되어 사라져버리는 위기에 처하게 된다. 따라서 필사적으로 좀 더 안정된 육지에서 자신들의 거주지를 마련하려 했을 것이다. 

 

(이 지점에서 현재의 지구온난화로 거주지가 물에 잠겨가는 것을 보고 있어야 하는 태평양의 작은 섬나라들의 아픔이 떠오른다. ‘아오시스(AOSIS)’, 즉 군소도서국가연맹이라는 기구를 만들어 지구온난화 저감을 위해 지금도 필사적인 노력을 하고 있을 그들, 하지만 최근 이 문제에 대한 국제적 관심의 쇠퇴로 그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고 있다.)

 

 

기원전 1100년대 이후론 기록서 자취 감춘 ‘바다 사람’

 

이집트가 가만히 앉아 당했을 리 없다. 총력을 기울여 싸웠음은 물론, 전투 과정에서 사로잡은 ‘바다 사람’ 중 뛰어난 자들은 국왕의 근위병 등 요직에 포섭하고, 상당수를 노예로 삼거나 인근 국가에 팔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기원전 1100년대 이후로는 ‘바다 사람’에 대한 얘기가 이집트 공식 기록에서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앞서도 보았듯이, 다른 기록들에는 그보다 100년 이후에까지도 자주 나오는 것으로 보아, 이집트 쪽 공식 주장대로 “완전히 섬멸된 것”은 아닌 듯하다. 이들이 어떻게 됐을까 하는 추론은 이 시기를 연구하는 역사학에서 여전히 논쟁으로 남아 있는 부분이다. 

 

물론 딱히 어디에 소속되지 않고, 온난기 동안 지중해의 해적으로 떠돌았던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바다 사람이 가족도 있고 하니 좀 더 안정적인 전략을 택했을 것 같다. 육지 기반으로 한 까닭에 온난기를 맞아 쇠퇴해가고 있다고는 하나 여전히 막강한 이집트를 차지하려고 소모전을 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은 전략을 택하는 것이다. 이집트에 동화된 바다 사람도 있었음은 앞서도 보았다.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강자로 부상하여 영토를 넓혀가고 있는 페니키아와 그리스에 흡수되어, 자신들이 익숙한 해안 지역에 사는 편을 택하지 않았을까?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