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환출자 논란’ 마주한 영풍 3세 경영
  • 박준용 기자 (juneyong@sisajournal.com)
  • 승인 2017.07.12 14:46
  • 호수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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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家 후계자들 (22) 영풍그룹] 영풍그룹, 장씨家와 최씨家의 68년 동업 유지할지도 주목

 

‘한 지붕 두 가족 경영’. 영풍그룹을 두고 업계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이는 영풍의 독특한 소유 구조를 두고 하는 말이다. 영풍은 한국 재벌로는 드물게 두 집안이 힘을 합쳐 공동경영 체제를 유지하는 곳이다. 1949년 지금은 고인이 된 장병희·최기호 두 창업주가 영풍을 만든 뒤 두 집안은 현재까지 공동경영을 하고 있다. 벌써 68년째 두 집안이 동업을 하는 셈이다.

 

두 가문은 그룹 내에서 각자 다른 사업 영역을 이끈다. 전자·비철금속 제련을 맡는 ㈜영풍 관련 회사는 장씨 일가가 주로 맡는다. 아연제련·정련 및 합금 제조업을 하는 고려아연 관련 계열사는 최씨 일가가 담당한다. 현재 ㈜영풍을 총괄하는 이는 장병희 창업주의 아들 장형진 영풍 명예회장이다. 고려아연은 최기호 창업주의 아들 최창근 고려아연 회장이 이끈다.

 

장·최씨 가문의 공동경영은 2세를 넘어 3세로 승계되고 있다. 기업 경영성과 평가 사이트인 ‘CEO스코어’의 조사결과를 보면, 장씨 일가의 지분은 지난해 9월 기준 51.8%가 3세에게 넘어갔다. 같은 시기 최씨 일가 지분은 40.7%가 3세에게 승계됐는데, 이는 5년 전 3세 승계 비율보다 5.8%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최근 5년 새 장씨 일가의 자산 승계율이 크게 변하지 않았던 것과 대비된다. 즉 영풍의 최씨 일가는 최근 활발한 ‘물려주기’를 진행하는 셈이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영풍그룹 본사 © 시사저널 박정훈
최창걸 고려아연 명예회장(왼쪽)과 장형진 영풍 명예회장(오른쪽) ⓒ 사진=뉴시스


 

3세 장세준·최윤범 공동 승계 유력

 

그렇다면 영풍그룹의 지분을 승계받아 후계자가 될 이들은 누굴까. 후보군은 장씨 일가와 최씨 일가에서 모두 거론된다. 3세 후계자를 가늠할 단서는 ㈜영풍의 지분율이다. ㈜영풍은 영풍그룹의 지주사 격이기 때문이다. ㈜영풍은 고려아연 26.91%, 전자 계열사인 영풍전자 100%, 전자부품 생산 계열사인 코리아써키트 37.1%, 반도체 계열사 시그네틱스 31.62%, 대형서점 계열사 영풍문고 24% 등의 지분을 갖고 있다.

 

이렇게 그룹의 핵심 회사인 ㈜영풍의 최대주주가 바로 장형진 명예회장의 장남 장세준 영풍전자 대표(44)다. 그는 ㈜영풍의 지분 16.89%를 갖고 있다. 장세준 대표는 2013년부터 영풍전자 대표를 맡으며 그룹의 의사결정에도 실질적으로 참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그를 영풍그룹의 가장 유력한 3세 후계자로 꼽는다. 장 명예회장의 차남 장세환 서린상사 대표(38)도 후보군으로 꼽힌다. 그는 ㈜영풍의 지분 11.15%를 가지고 있다. 그는 비철금속 사업을 하는 계열사인 서린상사를 이끌고 있다. 장세환 대표는 영풍정밀 지분 4.77%도 가지고 있다.

 

최씨 일가 중에서는 최윤범 고려아연 부사장(43)이 후계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는 최창걸 고려아연 명예회장(최기호 창업주의 장남)의 차남이다. 최윤범 부사장은 이미 10년 전인 2007년부터 고려아연의 경영에 참여했다. 그는 호주 태양광발전소 건립 사업 등 고려아연의 의사결정에도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현재 ㈜영풍 지분 2.18%와 고려아연 1.81%를 가지고 있는데, 2014년 ㈜영풍의 주식 4만235주를 매입하는 등 최근 그룹 내 지분 확보에도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영풍의 3세 승계가 본격화하면서 일각에서는 두 집안이 각자의 회사를 가지고 갈라설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왔었다. 3세로 경영 승계되는 과정에서도 그룹 내 장씨와 최씨 가문이 이끄는 사업 영역이 나뉘어 있다는 점이 이런 관측을 키웠다. 하지만 영풍 측은 이런 주장을 일축하고 있다. 영풍그룹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계열분리 계획은 전혀 없다. 또 3세 경영은 큰 변동이 없는 한 기존에 후계자로 거론되는 인물(장세준 대표, 최윤범 부사장) 체제로 장씨·최씨 가문이 공동 운영할 것”이라고 전했다.

 

영풍그룹의 승계는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보인다. 하지만 영풍그룹의 3세 후계자는 몇 가지 논란과 마주해야 한다. 첫 번째 과제가 순환출자 해소다. 새 정부가 순환출자 규제를 내세우고 있다. 그룹 내 7개의 순환출자 고리는 3세 후계자에겐 ‘풀어야 할 숙제’다. 영풍그룹이 가진 가장 큰 순환출자 고리는 ‘㈜영풍→고려아연→서린상사→㈜영풍’으로 순환하는 출자구조다. 장씨·최씨 가문이 ㈜영풍을 직접 지배하는 지분율이 전체의 41% 수준인데도 전체 그룹을 지배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순환구조 덕분이다.

 

ⓒ 시사저널 미술팀


 

영풍, 일감몰아주기·순환출자 논란 넘을까

 

이외에도 핵심회사 ㈜영풍은 그룹 내 순환출자의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 ㈜영풍→영풍문고→영풍개발→㈜영풍, ㈜영풍→시그네틱스→코리아써키트→테라닉스→㈜영풍, ㈜영풍→영풍문고→시그네텍스→코리아써키트→테라닉스→㈜영풍, ㈜영풍→영풍전자→시그네틱스→테라닉스→㈜영풍, ㈜영풍→코리아써키트→테라닉스→㈜영풍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영풍이 관련돼 있지 않은 그룹 내 순환출자는 7개 중 1개(테라닉스→시그네틱스→코리아써키트→테라닉스)뿐이다.

 

최근 영풍그룹의 순환출자 구조에서 변화의 움직임이 감지됐다. 6월9일 ㈜영풍은 영풍문화재단에 영풍문고 주식 2만 주(약 10%)를 증여했다. ㈜영풍이 가진 영풍문고 지분은 34%에서 24%가 됐다. 영풍문화재단은 영풍그룹이 장학·문화 관련 공익사업을 위해 세운 곳이다. 이사장은 장형진 명예회장이고, 이사는 최창근 고려아연 회장이다. 지분 증여를 두고 일각에서는 순환출자 해소 움직임이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그룹 내에서 ‘㈜영풍→영풍문고’의 순환출자 고리를 끊으면, 두 개의 순환출자 구조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풍 측은 “기존 순환출자 규제에 대해 새 정부가 확정한 것은 아니다. (이번 증여도) 순환출자 규제를 의식한 변화는 아니다. 공익적 목적에서 이뤄진 증여”라고 설명했다.

 

영풍그룹의 ‘일감몰아주기’도 도마에 오랜 기간 오른 사안이다. 영풍그룹의 비상장 계열사 영풍개발은 이 논란의 중심이다. 이 회사는 영풍빌딩을 임대해 수익을 올리는 곳이다. 영풍개발의 지분은 장형진 명예회장의 자녀인 장세준 대표와 장세환 대표, 장혜선씨가 33%를 가지고 있다. 이 회사의 내부거래율은 2013년을 제외하고 최근 10년간 매출의 90%를 넘었다. 한때 이 회사의 매출은 120억원이 넘었지만, 2011년부터 서서히 줄어 지난해에는 약 19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에 대해 영풍그룹 관계자는 “영풍개발의 내부거래가 지속적으로 논란이 됐지만 현재 이 회사 매출은 크게 하락했고, 현재 ‘일감몰아주기’로 보기에 규모가 작다. 합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라고 해명했다.

 

여러 논란 속에서도 영풍은 재계 순위 30위권을 차지하며 사세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영풍그룹의 공정자산은 10조9630억원으로, 4년 전보다 약 10% 늘었다. ‘CEO스코어’ 조사에서는 2012년 30대 그룹에 진입한 뒤 재계순위 26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커진 덩치에 비해 실적은 따라오지 않고 있다. 영풍그룹의 지난해 매출액은 4년 전에 비해 7.4% 감소했고, 지난해 당기순이익은 5600억원으로, 8750억원을 기록한 4년 전보다 적었다. 

 

 

장씨 일가는 재계, 최씨 일가는 정계·언론계와 사돈

 

영풍그룹은 황해도 출신인 고(故) 장병희, 고 최기호 두 창업주의 인연에서 비롯됐다. 둘은 합심해 1949년 영풍기업사를 차렸는데, 이 회사가 영풍그룹의 시초다. 영풍은 1960년대 아연광석을 수출하며 승승장구한다. 1970년에는 경북 봉화군에 아연제련소를 준공, 비철금속 제련업에 진출한다. 국내 아연 공급을 위해 1974년 회사를 세우는데, 이곳이 고려아연이다. 1978년에는 아연제련소를 건립했고, 1990년대 이후 전자·반도체 사업에 뛰어들며 규모를 키운다. 이렇게 영풍은 재계 30위권의 대기업이 됐다.

 

1980년대에 창업주가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뒤 장씨 일가 중에서는 장병희 창업주의 장남인 장철진 전 영풍산업 회장, 차남 장형진 영풍 명예회장이 그룹을 이끌었다. 이후 2000년대 초반 장철진 전 회장은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게 된다. 최씨 일가에서는 창업주 2세 후계자로 최창걸 고려아연 명예회장이 그룹 경영을 주도했다. 2006년부터는 최 명예회장의 동생 최창근 고려아연 회장이 회사의 경영권을 이어받았다.

 

영풍그룹 일가는 재계뿐 아니라 정계·언론계와 혼맥을 맺고 있다. 장철진 전 회장의 장남 장세욱 시그네틱스 대표는 김종욱 전방 부회장의 딸 김현수씨와 결혼했다. 장철진 전 회장의 딸 장세경씨는 허진규 일진그룹 회장의 아들 허정석 일진전기 대표와 연을 맺었다. 최창걸 명예회장은 유중근 전 대한적십자사 총재와 결혼했고, 최창근 회장의 장녀 최경아씨는 천신일 세중 회장의 장남과 결혼했다. 최창근 회장의 차녀 최강민씨는 방성훈 스포츠조선 대표와 혼인했다. 아들 최민석씨는 김부겸 행정자치부 장관 딸인 배우 윤세인(본명 김지수)씨와 결혼했다. 

 

ⓒ 시사저널 미술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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