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독상(獨床) 차려주길 바랐나
  • 남상훈 세계일보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7.24 14:11
  • 호수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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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여야 대표 회담 불참한 홍준표의 ‘몽니 정치’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문재인 정부에 몽니를 부리고 있다. 과거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김대중 정부에 내각제 개헌을 압박하기 위해 활용했던 몽니를 홍 대표가 벤치마킹한 모양새다.

 

홍 대표는 7월19일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5당 대표의 청와대 오찬 회동에 불참했다. 청와대가 삼고초려했지만 그는 끝내 거부하고 이날 청주 수해지역 현장을 방문해 자원봉사활동을 했다. 이번 회동은 문 대통령이 정상외교 성과를 설명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다. 하지만 국회의원 107명이 소속된 제1야당 대표의 불참으로 ‘반쪽짜리 회동’이 됐다.

 

홍 대표는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청와대 회동에 불참했으나 그의 태도는 매우 궁색해 보인다. 우선 2011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당시 문 대통령과 민주당의 비판을 문제 삼았다. 그는 “2011년 한나라당 대표 시절 (국회 비준을) 강행한 한·미 FTA를 두고 문 대통령과 민주당이 제2 을사늑약이니 매국노니 하며 극렬히 비난했다”면서 “회담에서 그 문제가 제기될 텐데 첫 대면에서 얼굴을 붉힐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것은 이 정부가 FTA 협상을 어떻게 하는지 반드시 지켜보고 불리하게 협상한다면 분명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이런 FTA를 슬쩍 넘어가려는 이런 들러리(회담)에는 참석하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문 대통령이 각종 현안에 대한 야당 대표의 입장을 듣고 국정을 함께 논의하자는데 홍 대표는 굳이 한·미 FTA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표명하지 않겠다고 억지를 부린 것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홍 대표의 불참에 대해 “속 좁은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우상호 의원은 “비록 홍 대표와 문 대통령이 경쟁자였다고 해도 얼굴을 맞대고 국정 논의를 할 줄 알아야 한다”며 “아예 안 만나겠다는 것은 제1야당 대표다운 태도는 아니라고 본다. 안 만나는 특별한 이유도 없다”고 지적했다.

 

우 의원은 홍 대표가 문 대통령이 과거 자신을 향해 매국노라고 비난했던 것을 불참 이유로 제시한 것에 대해 “그렇게 말하면 홍 대표가 문 대통령을 욕한 것은 더 심했다”면서 “무슨 애들도 아니고 나라의 국정을 책임져야 할 제1야당 대표가 만나지도 않겠다는 것은 너무 속 좁아 보인다”고 비판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 © 시사저널 이종현

 

洪 “여야 회담은 권위주의 시절 산물”

 

이혜훈 바른정당 대표는 “애들도 아니고 감정풀이를 하며 토라져 있을 한가한 때가 아니다”면서 “저는 좀 답답하다”고 지적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도 홍 대표의 ‘여당의 1·2·3중대’라는 표현에 대해 “이런 표현은 각 당 대표들뿐만 아니라 그 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에 대한 막말이다”면서 “너무 배배 꼬아서 이 상황을 보는 게 아닌가”라고 비난했다.

 

홍 대표는 대통령과 여야 대표 회담을 권위주의 시대의 산물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당 대표 취임 기자회견에서 “얼마든지 언론을 통해서 소통을 할 수 있는데, 둘이 만나서 문 잠가 놓고 무슨 말을 하는지 국민들이 궁금하게 하는 그런 회담을 하는 것은 과거 권위주의적인 정부 시절의 산물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대통령과 당 대표 간 회담에 부정적 입장을 공개적으로 표명한 것이다.

 

홍 대표의 이 같은 사고는 잘못된 것이다.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가 만나 허심탄회한 대화를 통해 정국을 풀어가는 기회를 원천 봉쇄하는 ‘불통 행위’이기 때문이다. 홍 대표가 한·미 관계와 대북 문제 등 보수정당이 중시하는 외교·안보를 비롯해 원전 건설 중단, 인사검증 부실 등 다양한 현안을 논의하고 개선점에 대해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자리를 걷어찬 셈이다.

 

박지원 국민의당 의원은 “정치를 살리자며 소통을 강조하면서 대통령의 모임에 가지 않는 것은 옳지 않다”며 “대통령이 성공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은 돕고, 또 야당이니까 견제할 것은 견제해야지 무조건 가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국민을 무시하는 행위”라고 일갈했다.

 

정치 구도상 불리한 점도 고려된 듯하다. 국민의당이 ‘문준용 특혜채용 의혹 제보 조작’ 사태로 여권에 각을 세우기 어려운 처지이고 바른정당도 자유한국당과의 차별화를 위해 협치에 나선 터라 홍 대표가 자칫 문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다간 정치적으로 손해를 볼 수 있다는 관측이다.

 

홍 대표는 페이스북에 “뱁새가 아무리 재잘거려도 황새는 제 갈 길을 간다”며 “저들이 본부중대, 1·2·3중대를 데리고 국민 상대로 아무리 정치쇼를 벌여도 우리는 우리 갈 길을 간다”고 적었다. 여당과 다른 야당들을 ‘본부중대’와 ‘중대’라고 주장하고, 대통령과 여야 대표 회동을 ‘사진찍기용 정치쇼’로 폄하하면서 들러리를 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7월19일 청와대에서 정상외교 성과 설명회를 하기 전에 여야 4당 대표들과 환담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정미 정의당 대표, 추미애 민주당 대표, 문 대통령, 박주선 국민의당 비대위원장, 이혜훈 바른정당 대표 © 사진= 청와대 제공

 

洪, 말로는 ‘소통’ 행동은 ‘불통’

 

선명성 있는 강한 제1야당으로서 여당인 민주당과 일대일 구도를 추진하는 데 5당 대표가 함께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도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보수적통 경쟁을 벌이고 있는 바른정당에 대한 무시 전략과 맥을 같이한다. 실제로 홍 대표는 69주년 제헌절을 맞아 정세균 국회의장과 여야 5당 대표, 원내대표가 모두 참석한 사전환담식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후 경축식 본행사에 참석해서는 이혜훈 바른정당 대표에게 눈길 한 번 건네지 않았다. 7월 초 대표 취임 이후에는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을 건너뛰고 추미애 민주당 대표만 만났다.

 

문 대통령과 단둘이 만나는 ‘영수회담’을 염두에 둔 정치적 계산도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민병두 민주당 의원은 홍 대표의 회동 불참과 관련해 “제1야당 대우해 달라는 것인데 단독회담 하자는 투정이고 독상 받겠다는 건데 정치 참 후지게 한다”고 꼬집었다.

정치인의 몽니는 정치적인 주장이나 뜻이 잘 통하지 않을 때 존재감을 극대화해 극적인 반전을 노리는 수법이다. 하지만 홍 대표의 몽니는 자신의 뜻을 관철하기 위한 행위라기보다는 그냥 생떼를 쓰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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