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살 터울 형제간 공동경영으로 순항 중인 현대백화점그룹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17.07.25 15:43
  • 호수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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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家 후계자들 (24) 현대백화점그룹] 3세 경영승계 마무리…덩치는 큰데, 미래는 불투명한 공룡 유통재벌

 

현대백화점그룹은 범(汎)현대가(家)에서도 보수적인 기업문화를 갖고 있는 회사다. 유행에 민감한 유통업을 주력으로 삼지만, 경쟁사에 비해 시장 대응력이 빠르지 않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는 오늘날 기업환경에서 독(毒)이 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까지 현대백화점그룹에 있어서만큼은 약(藥)이 된 측면도 있다.

 

그런 면에서 현대백화점그룹은 선도자보다는 추격자 이미지가 강하다. 백화점은 물론 홈쇼핑·복합쇼핑몰·면세점 사업에 진출하는 것 모두가 그랬다. 롯데·신세계 등 경쟁사가 먼저 치고 나가서 어느 정도 시장이 조성됐다고 판단되면, ‘물량 공세’라는 후발주자의 이점을 잘 살려 성공가도를 달렸다. 하지만 앞으로도 현대백화점 앞날에 추격자의 성공 신화가 계속 이어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단적으로 주력인 백화점 유통업은 이미 사양세로 접어들었다. 롯데나 신세계처럼 온라인·대형할인점·편의점 등 유통채널의 다변화도 꾀하지 못하고 있다.

 

주력인 현대백화점이 주식시장에서 호평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도 이런 데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올 1분기 실적이 발표된 직후 현대백화점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기대 이하’란 평가가 많았다. 5월11일 NH투자증권은 ‘실적 모멘텀이 약하다’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기존 점포의 성장이 정체되어 인건비 등 고정비 상승분을 커버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연간 실적 모멘텀은 크지 않을 것”이라면서 “2분기 백화점 업황도 1분기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2010년 8월26일 현대백화점 킨텍스점 개점식에 참석한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 우경숙 상임고문, 정교선 부회장(왼쪽부터) © 사진=뉴스뱅크이미지

이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 천호점의 경우 리뉴얼 공사로 매출이 감소하고 있고, 울산점과 울산동구점 등 지방점포도 고전하고 있다. 부산점·무역센터점·대구점은 인근에 위치한 경쟁사의 점포 확장 및 신규 출점으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올 5월에 입점한 서울 문정동 가든파이브 아웃렛을 마지막으로 내년까지 신규 점포 오픈 계획이 없어 당분간 매출이 늘어나기 힘든 것도 약점으로 지적됐다. ‘상대적인 모멘텀은 둔화’(하이투자증권), ‘어려운 터널을 통과 중’(한화투자증권), ‘아직까지는 뚜렷한 돌파구가 없다’(현대차투자증권) 등 여러 증권사가 같은 시기에 내놓은 보고서 역시 내용은 비슷하다. 현재 그룹의 전반적인 컨트롤타워 역할은 기획조정본부가 맡고 있다. 올 초 해체된 삼성의 미래전략실과 비슷하게 기획 조정과 신규 사업 발굴이 주된 업무다. 분야는 HR(인사)·투자·사업 개발·홍보·법무·경영관리 등이다.

 

현대백화점그룹은 경영권 승계가 많이 진행됐다. 그룹 총수인 정지선 회장(46)은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손자다. 그의 부친은 정주영 창업주의 3남인 정몽근 명예회장이다. 정 명예회장은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바로 아래 동생이다. 대외적인 활동이 없어 재계에서는 ‘은둔의 경영자’로 불린다. 서울 경복고와 한양대 토목공학과를 나온 정 명예회장은 1974년 금강개발산업(현대백화점 전신) 사장에 취임한 이후 줄곧 백화점 경영에만 힘썼다. 일찍부터 한 분야에만 집중해 그런지 경영승계 작업도 비교적 일찍부터 시작했다.

 

© 시사저널 미술팀


 

汎현대家 중 3세 경영승계 가장 빨라

 

정지선 회장은 1997년 현대백화점 경영관리팀 과장으로 입사해 2003년 그룹 총괄부회장, 2007년 그룹 회장에 올랐다. 회장에 오른 나이는 불과 36세였다. 올해로 정확히 10년째다. 유통업계는 물론 현대가에서도 CEO(최고경영자)급으로는 가장 나이가 어리다. 지배구조는 안정적이다. 정 회장은 올 1분기 현재 현대백화점 지분 17.09%, 현대그린푸드 지분 12.67%를 보유하고 있다. 동생 정교선 부회장(44)은 현대그린푸드 지분 15.28%, 현대홈쇼핑 지분 9.51%, 현대HCN 지분 3.00%를 갖고 있다. 형제가 나란히 그룹 핵심 계열사의 최대주주로 있다. 부친 정몽근 명예회장은 한무쇼핑의 대주주(10.38%)로만 있을 뿐 핵심 계열사인 현대백화점(2.63%)·현대그린푸드(1.97%) 지분은 자식들보다 적다. 이로써 경영권 승계는 일단락되는 분위기다.

 

경영 성적표만 놓고 보면 3세 경영 실적은 그다지 나쁘지 않다. 평균 부채비율은 34.6%다. 차입금도 1년 사이 30% 줄었다. 롯데·신세계가 해외에서 고전하는 것과 대비된다. 올해 재계 서열은 23위며, 5월말 현재 산하 계열사는 29개다. 하지만 실적 안정이 곧 미래 성장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회장 취임 직후 2~3년간 정지선 회장이 이렇다 할 외형 성장을 보이지 못한 것은 기업 가치를 깎아먹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2010년에 접어들면서 정 회장은 ‘2020년 그룹 매출 20조원 달성’이라는 중장기 목표를 발표했다. 작년 말 기준 그룹 전체 매출은 14조5000억원이다.

 

최근 현대백화점그룹은 굵직한 기업 M&A(인수·합병)에 적극 나서고 있다. 2011년 리바트를 인수한 것을 시작으로, 이듬해에는 현대홈쇼핑을 통해 한섬을 사들였다. 올 1분기 현재 현대홈쇼핑은 한섬 지분 34.64%를 보유하고 있다. 한섬은 타임·마인·시스템·SJSJ 등의 브랜드를 지닌 여성의류 업체다. 올 4월에는 SK네트웍스의 패션사업부문을 인수, 한섬의 해외 패션부문을 강화했다. 이에 대한 시장의 평가는 엇갈린다. 실적만 놓고 보면 ‘순항 중’이라는 평가가 앞서지만, 산하 브랜드가 노후화돼 중장기적으로 실적 개선으로 이어지기 힘들다는 의견도 있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압구정본점 © 시사저널 최준필

 

정몽근·정지선 부자, 모두 ‘은둔형’

 

현대리바트는 원래 현대종합목재라는 이름의 옛 현대그룹 계열사였다. 그룹에서 떨어져 나온 것은 1999년이다. 2006년(5.15% 지분)부터 꾸준하게 주식을 매입한 퍼시스그룹이 2010년 회사 지분율을 14.08%까지 높이자 현대백화점그룹은 현대그린푸드를 통해 11.84%의 지분을 매입했으며, 이듬해 지분율을 23.1%까지 끌어올리면서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이 때문에 가구업계에는 현대리바트 인수를 신규 사업 진출이 아닌 잃어버린 현대가(家) 자산을 되찾은 행보라는 시각도 있다.

 

2015년 현대렌탈케어를 설립해 정수기·비데·공기청정기 등 렌털케어 시장에 뛰어든 것도 다소 늦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교롭게도 큰 기대를 걸었던 면세점 사업은 최근 공급 과잉 논란이 커지면서 돌파구를 찾기 힘들어 보인다. 현대백화점그룹은 지난해 말 면세점 사업권을 따냈으나, 업황 불황에다 관련 사업에 대한 감사 등으로 연내 개장이 힘들 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정지선 회장 역시 부친을 닮아 대외적인 활동에 적극적이지 않다. 4살 연상인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과 여러 면에서 비교된다. 한 재계 관계자는 “정몽근 명예회장 집무실이 현재 서울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단지 내 상가에 있을 정도로 현대백화점그룹은 외형보다는 내실을 중시하는 보수적 기업문화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회장 취임 이후 단 한 번도 언론과 단독 인터뷰를 가진 적이 없다. 동생 정교선 부회장도 마찬가지다. 그렇다 보니 그룹 내에서는 ‘소통 중시’라는 최근 사회 분위기와 맞지 않는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에 대해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언론과의 인터뷰에만 나서지 않을 뿐, 사내 ‘주니어보드’ 제도 등을 통해 직원과의 소통에 적극 나서고 있다”고 해명했다. 주니어보드는 2003년부터 매년 40명씩 부장에서 사원급까지 다양한 직급의 직원들을 선발해 매월 한 번씩 애로사항과 건의사항을 듣는 제도다.

 

그룹 내에서 정지선 회장과 정교선 부회장 간 역할 구분은 뚜렷하지 않다. 재계에서는 정 회장이 백화점을 비롯해 그룹 전반의 경영을 책임진다면, 정 부회장은 현대홈쇼핑을 중심으로 한 홈쇼핑·방송사업 쪽에 집중하는 것으로 본다. 물론 두 사람 모두 아직 40대여서 계열분리를 논하기는 이르다.

 

서울 송파구 문정동 현대시티몰 가든파이브점 © 시사저널 최준필

 

현대그린푸드로의 지주사 변경 여부 관심

 

현대백화점그룹 역시 순환출자 구조를 깨는 것이 당면 과제다. 현대백화점그룹은 현대백화점이 현대쇼핑 지분 100%를, 현대쇼핑은 현대그린푸드 지분 7.76%, 현대그린푸드는 또다시 현대백화점 지분 12.05%를 보유하고 있다. 가장 많은 계열사를 보유한 곳은 식자재 납품 전문기업 현대그린푸드다. 2010년 현대푸드시스템, 2011년 현대F&G를 합병하면서 몸집을 키웠다. 이 회사 아래에 현대리바트 등 11개 자회사가 있다. 또 현대리바트는 에버다임락톨 등 3개 자회사를 두고 있다.

 

때문에 증권가에서는 현대그린푸드를 지주사로 삼고 순환출자 구조를 깨는 것을 현실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로 본다. 이 회사 지분은 동생인 정 부회장이 형 정 회장보다 다소 많다. 현대그린푸드는 현대백화점을 비롯해 현대HCN(5.79%), 현대홈쇼핑(15.50%) 등 핵심 계열사 지분 다수를 보유하고 있는 핵심 중의 핵심 계열사다. 현대HCN을 통해서는 방송사업, 현대홈쇼핑을 통해서는 한섬 등 의류사업을 안정적으로 경영하고 있다.

 

순환출자 구조를 깨기 위해서는 현대쇼핑 지분 7.76%를 정지선 회장과 정교선 부회장이 어떻게 인수하느냐가 관건이다. 기업정보사이트 CEO스코어는 지난해 8월26일 종가 기준, 현대백화점그룹이 △현대쇼핑→현대그린푸드→현대백화점→현대쇼핑 △현대쇼핑→현대그린푸드→현대A&I→현대백화점→현대쇼핑 △현대A&I→현대백화점→현대쇼핑→현대A&I 등 순환출자 고리 3개를 끊어내는 데 총 2552억원이 든다고 발표했다. CEO스코어는 “이를 위해서는 현대쇼핑이 보유한 현대그린푸드 지분 7.76%, 현대A&I의 현대백화점 지분 4.31%를 특수관계자가 사들이거나 시장에 내놓으면 된다”고 분석했다.
 

이런 상황에서 현대A&I도 주목받는 계열사다. 2008년 현대푸드시스템으로부터 인적분할 된 현대A&I는 지난해 7300만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이 회사는 부동산 등에 대한 투자를 전담하는 회사로만 알려져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자산 총계의 거의 대부분은 매도가능금융자산(1231억)으로 구성돼 있다. 지난해에는 현대기업금융의 최대주주 현대미래로 유상증자에 참여해 지분 9.7%를 확보했다. 그런 면에서 사촌 기업의 우호지분을 매입하는 ‘백기사’ 역할을 하는 곳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현대기업금융은 정몽근 명예회장의 동생 정몽일 회장이 대표로 있다. 지난해 자산 총계는 1255억원이었다.

 

이 회사는 현재 현대백화점 지분 4.31%를 보유하고 있다. 그룹 지배구조 측면에서는 나름 상당한 비중을 갖고 있다. 최대주주는 지분 52.05%를 가진 정지선 회장이다. 현대그린푸드가 10.41%, 현대쇼핑은 21.34%며, 현대차그룹 계열사인 현대글로비스가 16.20%를 보유하고 있다. 정 회장은 현대A&I와 자신의 것을 합쳐 현대백화점 지분 21.40%를 보유한 상태다.  현대백화점 측은 공식적으로 “현재 지주사 전환 계획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시장에선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취임 이후 새 정부가 재벌 개혁을 국정개혁의 중요한 과제로 삼은 이상, 복잡한 순환출자를 깰 여러 가지 대책들이 나올 경우 현대백화점그룹도 지주사 전환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현대백화점그룹 가계도

정지선 회장, 황산덕 前 법무장관 손녀와 결혼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3남 정몽근 현대백화점그룹 명예회장은 우경숙씨(현대백화점그룹 상임고문)와 결혼해 슬하에 정지선·정교선 형제를 뒀다. 정 명예회장은 형인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똑같이 경복고·한양대를 졸업했다.

 

장남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은 경복고를 졸업한 뒤 연세대 사회학과를 다니다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대 스페셜 스튜던트 프로그램을 수료했다. 스페셜 스튜던트 프로그램은 정규 과정이 아니다. 때문에 정식 학력으로 인정받지도 못한다. 석사 과정을 밟지 않는 대신 전문성을 이유로 석사 수준의 연구는 가능하다. 필요하다면 대학원 내 모든 수업을 수강할 수 있다.

 

정 회장은 1997년 현대백화점 경영관리팀 과장으로 입사해 만 10년 만에 회장 자리에 올랐다. 그의 부인은 1970년대 법무부 장관과 문교부 장관을 지낸 황산덕 변호사의 손녀 황서림씨다. 황씨는 서울예고와 서울대 미대를 나와 대학원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했다. 두 사람 사이에 1남1녀가 있다.

 


차남 정교선 부회장은 경복고와 한국외대(무역학과)를 졸업했다. 정 부회장은 만 30살에 입사한 후 4년8개월 만에 사장 자리에 올랐다. 부인은 허재철 대원강업 회장의 장녀 허승원씨다. 대원강업은 현대차에 40년간 자동차 스프링을 납품해 온 부품 전문기업이다. 허씨는 이화여대를 졸업한 뒤 미국 컬럼비아대 치대를 나왔다. 두 사람 사이에는 아들 3명이 있다. 정 부회장은 현재 현대홈쇼핑 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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