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두용 감독 “세계 유일 분단국가의 현실 그리고파”
  • 송응철 기자·손구민 인턴기자 (sec@sisajournal.com)
  • 승인 2017.07.28 15:02
  • 호수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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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션영화 1세대 巨匠 이두용 감독, 다시 메가폰 잡는다

 

“홍콩 액션영화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이두용 감독에 대해 얘기를 하면 누구든 영화 《뽕》(1985)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그는 60여 편에 달하는 영화를 연출한 베테랑 감독이자, 국내 최초로 베니스영화제에서 특별상을 수상한 감독이기도 하다. 이 감독은 특히 영화계에서 액션영화 1세대로 분류되기도 한다. 그는 1970년대의 ‘쿵푸영화 돌풍’에 대항하는 한국만의 액션 장르를 개척하며 한국 액션영화의 문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시사저널은 7월17일 오후 서울 강남구 갤러리세인에서 이 감독을 만났다. 올해 77세의 노장(老將)은 열정적으로, 때론 담담하게 그간 영화인으로서 살아온 삶을 얘기했다. 또 오랜 공백 끝에 다시 메가폰을 잡기로 했다는 근황도 전했다. 대담은 앞서 배우 안성기와의 인터뷰(시사저널 1445호 ‘내 배우 인생에 은퇴란 없다’ 참조)를 진행했던 서영수 감독이 맡았다.

 

이두용 감독 © 시사저널 이종현

 

“당시엔 베니스영화제 뭔지 잘 몰라”

 

37년 전 개봉한 《최후의 증인》이 올해 베를린영화제에 초대를 받았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BIFF)에 온 베를린영화제의 디렉터가 내 영화를 보고 베를린으로 빨리 보내 달라고 했다. 10여 년 전 영상자료원에서 《최후의 증인》 원본을 찾아서 지난해 부산에서 상영했고, 이젠 그 영화를 해외까지 출품하게 됐다. 감회가 새롭다.

1981년 《피막》으로 국내 감독 중 최초로 베니스영화제에서 수상을 했다.

 

《피막》은 《최후의 증인》을 만든 직후에 찍었다. 전작을 만들 때 너무 고생해 이번엔 편안하게 만들어보려고 했다. 한 달 만에 완성한 영화다. 다른 영화에 비해 비교적 쉽게 촬영했다. 그때 제작사에서 《피막》을 베니스영화제에 출품했는데, 그게 덜컥 본선에 올라가게 됐다. 그땐 베니스영화제가 어느 정도의 위상을 갖는지도 몰랐다. 편안한 마음으로 만들었던 영화가 잘돼서 다행이었다.

 

 

당시 베니스에선 반응이 어땠나.

 

많은 해외 영화인들이 내 영화를 좋아해 줬다. 당시 심사위원장이 나를 업고 무대로 올라가기도 했다. 당시에 동양인은 나밖에 없었다. 동양인 감독을 희귀하게 봐서 예의상 하는 것인 줄로만 생각했다. 나중에 영화제 측 사람들이 얘기해 주더라. 《피막》이 실제로 상당한 호평을 받았다고 말이다.

 

 

《피막》 외에도 토속물 영화를 많이 만들었다.

 

내가 만든 토속물의 시작은 사실 1976년 《초분》이었다. 그 후에 《물도리동》 《피막》 《물레야 물레야》 등을 만들었다. 1970년대만 해도 우리가 갖고 있는 토속신앙이 우리 실생활에 깊이 배어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그런 영화가 우리에게 정서적으로 맞았던 것 같다. 《피막》 같은 경우에는 베니스영화제 수상작이지만 처음 개봉했을 때는 국내에서 흥행하지 못했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그때는 다들 예술영화라 하면 재미없는 영화라고 생각했다.

 

 

1970년대엔 예술영화보다 주로 멜로드라마가 인기였다.

 

나는 솔직히 예술영화라는 게 따로 없다고 생각한다. 결국 영화란 예술이라는 메커니즘으로 만들어지는 것 아닌가. 예술영화와 상업영화는 다른 개념이 아니다. 모든 장르의 영화에는 예술이 있는 것인데, 한국이나 일본 등 일부 국가에서만 이를 구분 짓는 것 같다.

 

 

영화인들 사이에선 액션영화 1세대로 통하는데, 액션물을 찍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1970년대 홍콩의 쿵푸영화가 한국 영화시장을 휩쓸고 있었다. 극장 문이 터질 정도로 관객이 몰려들었다. 그만큼 한국영화가 설 자리는 점점 작아졌다. 홍콩영화의 성공을 보고 있자니 영화인으로서 샘이 났다. 그래서 나는 쿵푸액션영화와 경쟁할 수 있는 한국의 액션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국내에서 인기를 끌면 해외에도 수출할 계획이었다.

 

이두용 감독이 제작한 영화 《뽕》 《최후의 증인》 《초분》 《피막》(왼쪽 상단부터 시계 방향)

 

“홍콩 쿵푸영화에 대항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온 게 태권도 영화 시리즈인 걸로 안다.

 

일본의 가라테, 홍콩의 쿵푸와 달리 태권도는 다리를 쓰는 무술이다. 그것이 태권도의 독특한 강점이다. 그 차이를 살려서 양질의 액션영화를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당시 제작사에 이런 제안이 받아들여졌고, 투자를 받게 돼 몇 년 동안 태권도를 기반으로 한 액션영화 10여 편을  만들게 됐다.

 

 

다양한 장르 가운데서도 특히 액션영화를 수출하는 데 집중했는데.

 

국적을 불문하고 공감할 수 있는 장르는 액션밖에 없다. 200개가 넘는 나라들 중에 문화나 정서를 공유하는 경우는 없다. 우리가 1000억원을 투자해 춘향전을 만들어 수출한다 하더라도 성공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해외 극장에서 안 틀어주는데, 우리 문화를 알리겠다며 공감 못할 영화를 보라고 강요할 수도 없는 것 아닌가.

 

 

액션의 핵심은 ‘권선징악’이어서 문화권을 막론하고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것 같다.

 

바로 그거다. 액션영화의 백미는 권선징악의 구도다. 선인이 악인을 때려부수는 것. 악인은 클수록 좋고, 선인은 허약할수록 좋다. 그 선이 악을 무너뜨리면, 우리는 인간이 가진 선에 대한 추구를 실현하며 감동을 느끼는 것이다. 액션은 그런 순수한 마음을 자극하는 영화 장르다.

 

 

권선징악 구도에 따라 사실상 결말이 정해져 있는 영화를 만드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것 같다.

 

여러 장르를 연출해 봤지만, 액션을 만드는 게 제일 어렵다. 다른 장르는 영화의 소재만 잘 잡으면 된다. 하지만 액션은 권선징악이라는 주어진 소재를 바탕으로 관객에게 감동을 줘야 한다. 영화는 원래 보면서 결말을 몰라야 하는 것인데 말이다. 이미 끝이 나와 있는 영화를 손에 땀을 쥐며 보게끔 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가.

 

 

태권도 영화 제작을 중단하게 된 이유는 뭔가.

 

서울극장 제작사는 당시 국내 제작사들의 인식과 달리 한국 액션영화의 전망을 좋게 봤다. 그럼에도 투자가 부족했던 건 사실이다. 그때 내가 쓸 수 있는 제작비로는 할리우드와 홍콩의 액션영화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우린 자금도, 기술력도 부족했다. 내가 제작사 측에 홍콩의 절반만큼이라도 투자해 줘야 한다고 계속 말했지만, 결국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결과물은 영양실조 걸린, 우스꽝스러운 영화같이 느껴졌다.

 

 

당시 영화계에서 액션영화를 무시하는 경향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

 

내가 싫어했던 말 중 하나가 ‘으악새’였다. 액션배우 대사 중 대부분이 ‘으악’이라고 해서 액션배우들을 조롱하는 말이었다. 돈도 많이 못 받고 수십 번 다치는 배우들이 무시까지 당하는 걸 보니 마음이 아팠다. 배우들을 데리고 계속 영화 하는 게 의미가 없어 보였고, 미래가 불투명했다. 해외 액션배우들은 멜로드라마 배우들보다 돈도 훨씬 많이 벌었는데, 우린 반대였다. 한국영화계의 제작풍토에서 액션을 고집하는 건 더 이상 불가능해 보였다. 초반에는 《무장해제》라든가 《해결사》라든가 하는 태권도 영화들을 자신 있게 만들었는데, 갈수록 나도 자신이 없어졌다.

 

 

긴 공백 끝에 최근 다시 메가폰을 잡기로 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 가제는 《DMZ》다. 남북군사분계선을 오가는 특수부대의 이야기다. 이데올로기적 관점은 배제하고 특수부대와 여기에 소속된 인간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싶다. 할리우드 쪽 제작사가 관심을 갖고 투자를 약속한 상황이다. 할리우드와 한국 측 제작사가 ‘코프로덕션(co-production)’을 해야 하는데, 한국 제작사로부터 투자를 이끌어내는 작업에 시간이 걸리고 있다.

 

 

차기작, 할리우드가 투자 약속…국내선 난항

 

어떤 발상에서 이번 영화를 만들기로 했나.

 

서울에서 군사분계선까지의 거리는 70여km밖에 안 된다. 비무장지대에는 수많은 지뢰가 깔려 있다. 서울에 사는 1000만 명 넘는 사람들이 그 지뢰로부터 불과 몇 십 km 떨어져 있다는 사실은 섬뜩하면서도 비극적이다. 우린 세계적으로 찾아볼 수 없는 위험한 상황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우리 땅에 북한이 목함지뢰를 심고 갔다는 뉴스가 들려오긴 했지만, 우린 평소에 전쟁의 위험을 잊어버리고 있다는 게 문제다. 이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이 진행 중이라는 점에서 이번 영화를 착안하게 됐다.

 

 

특수부대 얘기라면 이번 영화도 액션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다.

 

영화의 기반은 액션이다. 하지만 액션을 넘어 나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무시무시한 상황을 보여주는 데 더 집중할 것이다. 사실 특수부대 얘기라면 할리우드가 훨씬 더 잘 만든다. 하지만 DMZ를 소재로 한 영화라면 얘기가 다르다. 한국인 감독보다 더 잘 만들 사람은 없다. 할리우드는 사람 죽이는 것을 마치 스포츠처럼 만들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나는 좀 더 현실적으로 접근해 보고자 한다. 영화의 중심은 액션이 아니라 휴전선을 오가는 사람들의 독특한 이야기다. 우리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남북관계 문제를 새삼 다시 느끼게끔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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