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의 적’ 되는 TV 출연 연예인 가족
  • 하재근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8.02 15:57
  • 호수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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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 세습 통로 된 ‘가족 예능’ 남발에 시청자들 분노 폭발

 

최근 tvN에서 방영을 시작한 《둥지탈출》이 연예인 가족 예능 비판에 불을 붙이고 있다. 《둥지탈출》은 6명의 젊은이들에게 최소한의 경비만 지급하고 네팔 오지에서 생활하도록 한 리얼리티 예능이다. 그동안 부모에게 의지하며 편하게 지냈던 젊은이들이 자신의 힘으로 어려움을 헤쳐 나가며 자립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극 중 젊은이들을 가리키는 말도 ‘청년독립단’이다.

 

이 프로그램에 비판이 쏟아지는 건 바로 그 젊은이들이 유명인의 자식들이기 때문이다. 김혜선·박미선·박상원·이종원·최민수, 그리고 정치인인 기동민 의원의 자식까지 끼었다. 주로 연예인 2세들인데, 요즘 스타급 연예인은 상당한 부유층이다. 그런 연예인의 자식들에게 돈까지 지급해 가며 여행시켜줄 이유가 있느냐는 비판이 일단 제기됐다.

 

더 본질적인 지적은 단지 연예인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너무 쉽게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유명인이 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금수저’ 대물림인 셈이다. 최민수의 아들 최유성군은 연기자를 지망한다고 알려졌다. 수많은 연기자 지망생의 소원일 TV 출연을 손쉽게 이뤄냈다. 최군은 연기자 지망생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어 발음이 상당히 어눌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정확한 표준어 발음을 구사하기 위해 많은 지망생들이 비지땀을 흘리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연습실을 벗어나지 못하는데, 발음도 어눌한 사람이 시청자에게 먼저 이름을 알렸다. 아버지가 연예인이라서다.

 

tvN 《둥지탈출》(위)과 SBS 《아빠를 부탁해》 © 사진= tvN·SBS 제공

 

온 가족의 연예인화, ‘가족테이너’ 현상

 

얄궂게도 프로그램은 ‘청년독립단’이라며 젊은이들의 자립을 그린다고 했다. 하지만 실상은 부모 덕에 네팔을 여행하며 TV 예능의 자리를 꿰찬 금수저들의 모습이다. 이것을 보고 정말 부모 덕 없이 자립해야 하는, 독립을 강요당하고 있는 ‘흙수저’ 청년들이 분노를 쏟아낸다. 보통 연예계 이슈는 휘발성이 커서 하루 이틀 뜨겁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다른 이슈로 넘어가게 마련인데, 연예인 세습 이슈는 일주일 이상 포털을 달구고 있다. 그만큼 대중의 분노가 크다는 뜻이다.

 

처음부터 연예인 가족에게 대중이 분노한 건 아니었다. 그동안 최무룡-강효실의 아들 최민수, 이예춘의 아들 이덕화, 황해-백설희의 아들 전영록, 허장강의 아들 허준호, 독고성의 아들 독고영재 등 많은 연예인 2세들이 연예계에서 이름을 알렸다. 그렇다고 불편해하는 시각은 없었고, 오히려 부모보다 더 잘되길 응원해 주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연예인 가족 예능의 규모가 너무 커졌다. 과거 이덕화 시절처럼 산발적으로 가업을 잇는 정도나, 《아빠 어디가》와 《붕어빵》이 처음 나왔을 때처럼 그저 연예인의 어린 자녀들이 제한적으로 나와 귀여움을 전해 주는 수준이라면 지금처럼 여론이 악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말 해도 너무했다. 《슈퍼맨이 돌아왔다》 《오 마이 베이비》 《자기야》 《위대한 유산》 《아빠를 부탁해》 《동상이몽》 《유자식 상팔자》 《미운 우리 새끼》 《아빠본색》 등 일일이 헤아리기도 힘들 만큼 연예인 가족 예능이 대거 등장했다. 현재도 연예인의 부인이 등장하는 《싱글와이프》가 방영 예정으로 있고, 추성훈의 가족 등이 등장하는 여행 예능도 준비 중이라고 한다. 아이돌 걸그룹을 뽑는 《아이돌 학교》는 가족 예능이 아니지만 김흥국의 딸이 등장해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도 했다. 자식뿐만 아니라 부모·배우자까지 총출동하는 온 가족의 연예인화다. 이른바 ‘가족테이너’ 현상이다.

 

박남정의 딸 박시은은 예능에서 이름을 알린 후 배우로선 석연치 않은 지점이 있는데도 대작 미니시리즈에 연거푸 출연했다. 조재현의 딸 조혜정도 예능 출연 이후 배우로 떴다. 최민수의 부인도 요즘엔 연예인으로 자리 잡았다. 박수홍 등의 어머니는 CF까지 찍는다. 박명수의 부인은 《무한도전》에 출연해 CF 출연을 원한다고 하더니 바로 예능에 캐스팅됐다. 마치 해일처럼 연예인 가족의 연예인화가 밀어닥친다. 박명수는 그동안 《무한도전》에서 “가족은 건들지 마”라고 강조했다. 자신을 토크 제물로 희생할 순 있어도 연예인도 아닌 아내는 언급하지 말라는 것이다. 대중도 그동안 가족은 지켜주려 했다. 하지만 연예인 스스로 가족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신사협정은 깨졌다. TV에 나오는 연예인 가족이 대중의 공적이 되어 간다.

 

물론 연예인의 끼를 공유한 가족이 같은 직종에 나서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문제는 그런 자연스러움의 수준을 넘어 마구잡이로 연예인 가족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지망생이나 신인은 그런 기회 한 번 잡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도 실패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예능을 휩쓰는 연예인 가족에 대한 불만이 커질 수밖에 없다.

 

MBC 《무한도전》 사진=MBC 제공

 

연예인끼리 쌓은 성, 기득권의 성채처럼

 

근본적으로, 세상이 변했다. 이덕화 등이 부모의 뒤를 이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연예인을 ‘딴따라’라며 우습게 여기는 경향이 있었다. 자식이 연예인 하겠다고 하면 ‘다리몽둥이를 분지르겠다’며 부모가 펄펄 뛰던 시절이었다. 당시엔 연예인이 같은 연예인을 배우자 감으로 생각하지도 않았다.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 연예인들의 소득이 수직 상승해 수십억, 수백억대 자산가 찾기가 어렵지 않다. TV 토크쇼에선 “사업 실패로 수십억원대 빚을 졌지만, 연예활동으로 다 갚았다”는 연예인의 고백이 주기적으로 나온다. 요즘엔 이상민이 69억원의 빚을 거의 다 갚아가고 있는 중이다. 이런 모습을 보며 대중은 ‘아! 연예인들은 돈을 정말 잘 버는구나’라며 부러워한다. 자연스럽게 아이들이 선망하는 직업 1순위가 연예인이 됐다. 부모들도 자식이 조금만 외모가 뛰어나거나 끼가 엿보이면 연예인을 생각한다. 이렇게 선망받는 사람들이니 이젠 배우자를 굳이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다. 그래서 스타가 스타와 결혼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연예인끼리 만나 연예인의 성을 쌓는데, 그게 마치 기득권의 성채처럼 느껴지는 시대.

 

연예계는 신종 사다리가 됐다. 한 방에 기득권의 세계로 뛰어들 수 있는 사다리 말이다. 과거 그 사다리 역할을 했던 것이 수능·고시 등 시험이었다. 이젠 연예인 경쟁률이 치솟아 연예인 고시라는 말이 나온다. 수능이나 고시에서 대규모 부정이 적발되면 나라가 발칵 뒤집히고 부모와 학생들이 궐기한다. 연예인 가족 예능도 점점 그런 부정 사태 비슷한 분위기로 간다. 연예인을 향한 열망이 커질수록, 연예인 가족이 연예인 ‘빽’을 내세워 손쉽게 연예인 고시를 통과하는 모습에 대한 공분도 더욱 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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