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거래 악용된 도의회 재량사업비 논란
  • 정성환 호남지역본부 본부장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17.08.02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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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지역 수해 상황에서 해외 연수를 떠난 4명의 충북도의원들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주민의 고통을 외면하고 외유를 떠났기 때문이다. 여기에 김학철 도의원의 경우 국민을 ‘레밍(lemming․쥐의 일종)’에 비유하며 비난 여론이 더욱 불붙었다. 현지 주민들이 당차원의 징계와 함께 도의원직 사퇴까지 요구할 정도였다. 

 

전북 재량사업비 비리는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는 격이 됐다. 검찰 수사가 급물살을 타면서 생색용 사업과 검은 거래의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는 재량사업비에 대한 논란도 도마 위에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의원들은 재량사업비를 사용하기 위해 페이퍼컴퍼니를 만들거나 자신과 관련된 회사에 일감을 몰아주고 리베이트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재량사업비 커넥션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후폭풍’이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상황에 따라서는 내년으로 예정된 지방선거에서 ‘지각변동’이 올 수 있다고 예상하고 있다.

 

일부 의원들은 타 지역 의원과 ‘품앗이 집행’을 하거나 지역구가 없는 비례대표 의원 몫을 가져다 사용하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전북도의회 등에 따르면, 상당수 의원들이 자신의 지역구가 아닌 다른 지역구에 재량사업비를 지원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에만 도내 학교에 8개 사업을 지원한 B의원은, 이 가운데 6건을 다른 지역구에 썼으며 공사를 담당한 업체도 모두 같은 업체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강영수·노석만 전 도의원은 업체들에게 일감을 몰아주고 리베이트를 받은 혐의(뇌물수수 등)로 기소돼 법의 철퇴를 맞기도 했다. 전북도의회는 지난 6월 재량사업비가 자칫 비리의 온상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 의원들의 재량사업비를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7월24일 충북지역 시민단체 회원들이 충북도의회 입구에 사퇴촉구 항의 글을 붙이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한 전직 전북도의원 K씨는 “상당수 의원들이 재량사업비를 놓고 업자들과 짬짜미를 통해 10%가량 리베이트를 주고받는 것은 상식”이라며 “나 역시 업자가 찾아와 거래를 제안했을 때 자괴감이 들었다. 동료 의원들이 이래선 안 된다는 생각과 함께 ‘재량사업비’를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을 예전부터 가졌다”고 털어놓았다.

 

한 전직 군의원도 “의원들의 본연 임무는 행정에 대한 견제와 감시인데, 행정기관으로부터 예산을 받아내 쓰는 의원들이 과연 행정에 대해 날카로운 견제와 감시 기능을 수행할 수 있겠느냐”며 “이번 일을 계기로 ‘재량사업비’라는 그릇된 관행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지적했다.

 

가장 큰 문제는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을 감사 또는 심사해야 하는 지방의회의 기능을 상당 부분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지방의회가 자치단체 예산 집행 과정에서 ‘거름막(필터)’ 역할을 못하게 막고 지방의회의 행정 종속을 심화시킨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한때 전북도의회에서는 재량사업비로 의원들을 통제하는 이른바 ‘집행부 장학생’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다.

 

일부 지자체의 경우 ‘재량사업비’는 사라졌지만 지방의원들의 생색내기용 지역구 사업비 챙기기는 여전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전남의 한 도의원은 “지역구 사업을 외면할 수 없어 시·군과 상의해 전남도에 건의했다”고 털어놨다. 물론 이 도의원의 말처럼 소규모 주민숙원사업 예산 편성 절차는 예전과 다르다. 재량사업비가 폐지되기 전까지만 해도 도의원들이 자신의 재량사업비 몫에 맞춰 작성한 사업 목록을 집행부에 전달하면 그대로 예산이 세워졌다. 집행부의 가장 중요한 권리인 ‘예산 편성권’을 도의원들이 침해한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 이유다.

 

그러나 최근에는 각 시·군이 사업 추진을 건의하면 도가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이 과정에 도의원들이 개입, 자신의 지역구 사업을 챙기면서 유권자들에게 생색을 내는 것이다. 일선 자치단체 관계자들은 “의원 재량사업비를 편성하지 않을 경우 행정이 마비된다”며 “‘재량사업비’라는 명칭은 사라졌지만, ‘주민 숙원사업비’ 등의 명칭으로 여전히 존재하고 있으며 이를 없앨 수는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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