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PD가 대통령도 임명할 판
  • 하재근 문화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8.10 11:45
  • 호수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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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들, TV 예능 출연 위해 러시…‘정치인 이미지 세탁쇼’ 우려

 

요즘 SBS 《동상이몽2-너는 내 운명》에선 현직 단체장이며 지난 대선 당시 대권주자였던 이재명 성남시장의 가정사를 볼 수 있다. 마치 연예인들처럼 부부 생활을 그대로 공개하는 관찰 리얼리티 포맷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출근길에 뽀뽀하거나 밥 차리는 문제로 신경전을 벌이는 등 기존 정치인들이 공개하지 않았던 사적인 부분까지 그대로 보여줘 화제다. KBS2 《냄비받침》은 연예인들이 작가가 되어 책을 내는 과정을 담는 예능프로그램이다. 여기에선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 안희정 충남지사를 비롯해 유승민·심상정·나경원·손혜원 의원 등 현역 의원들이 대거 등장했다.

 

이혜훈 바른정당 대표는 MBN 토크쇼 《아궁이》에, 표창원 의원은 JTBC 추리예능 《크라임씬3》에 출연했다. 새누리당(지금의 자유한국당) 혁신위원장 출신에 총선 출마도 했었던 이준석씨(현 바른정당 소속)는 연예가 토크쇼인 채널A 《풍문으로 들었쇼》 등 다양한 예능프로그램에서 활약한다. 유시민 전 장관은 이제 거의 예능스타 반열이다. JTBC 《차이나는 클라스-질문 있습니다》와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을 거쳐 tvN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에 이르러선 예능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나영석 PD 사단에까지 합류했다. 합류도 보통 합류가 아니라 심지어 프로그램의 중심 역할까지 맡았다. 정치예능 토크쇼 성격인 《썰전》(JTBC)까지 포함하면 가히 ‘시청률 제조기’라 할 만하다.

 

이젠 정치인의 자녀까지 예능에 등장한다. tvN 《둥지탈출》은 연예인 스타의 자녀들을 출연시킨 여행 관찰예능인데 여기에 기동민 민주당 의원의 아들 기대명씨가 낀 것이다. 기 의원은 스튜디오에 출연해 다른 연예인들과 함께 자식의 모습을 보고 토크를 나눈다. 이외에도 요즘 인기를 끄는 시사토크쇼에 출연한 정치인들은 일일이 헤아리기도 힘들 만큼 많다. 정치인들이 예능계의 ‘핫 아이템’으로 떠오른 것이다.

 

© 사진= SBS·KBS·tvN 제공

 

예능 출연이 웬만한 유세투어보다 훨씬 효과적

 

정치인이 예능에 등장한 건, 처음엔 인생사를 다루는 토크쇼에 초대손님으로 등장하는 식이었다. 《무릎팍도사》나 《힐링캠프》에 안철수·박근혜·문재인 등이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당시 방송가는 방송가대로, 정치권은 정치권대로 깊은 인상을 받았다. 방송가 입장에선 정치인이 새로운 시청률 자원이란 깨달음을, 정치권 입장에선 예능 출연이 웬만한 유세투어보다 훨씬 효과적인 선거운동이라는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양자의 거리가 가까워지는 건 필연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종합편성채널(종편)의 탄생이 기폭제가 됐다. 연예인 스타의 출연료가 부담스러웠던 신생 방송사는 각 분야 전문가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는데, 그중에 정치인도 있었다. 종편의 주 시청층이 정치에 관심 많은 중·노년층이기 때문에 정치인 패널의 효용이 특히 컸다. 예능이 지식 전달, 특정 주제 해설 토크 위주로 흘러가면서 다양한 주제를 대중의 눈높이로 간단하게 설명하도록 훈련된 대중정치인이 더 유용해졌다.

 

원래 젊은 층은 정치인에 대한 불신·혐오 정서가 크고 정치에 아예 관심 자체가 없었지만, 최순실 사태와 청문회, 그리고 대선을 거치면서 관심이 대폭 상승했다. 촛불 민심을 대변한 몇몇 정치인들은 뜨거운 팬덤을 거느린 스타 반열에 오르기도 했다. 그래서 정치인이 중·노년층만이 아닌 젊은 시청자에게도 어필할 수 있는 예능자원이 됐다. 이런 분위기를 가장 반긴 건 방송가다. 대중의 이목을 끌고 심지어 팬덤까지 거느린 정치인은 예능계가 애타게 찾던 새 젖줄이었다. 그러다보니 시사토크쇼를 넘어서서 일반 예능에까지 정치인들의 영역이 확장되는 것이다.

 

《썰전》이 상승가도를 달릴 당시 강용석 변호사가 예능 인기를 발판으로 총선 출마를 노리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많았다. 강 변호사도 크게 부정하지 않았고, 지역구 사무실을 알아본다는 보도까지 있었다. 정작 국회의원이 된 사람은 함께 출연했던 이철희 정치평론가다. 사생활 스캔들만 아니었다면 강 변호사의 여의도 컴백 가능성이 높았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이 평론가의 국회 입성이나, 강 변호사의 컴백 가능성이 높게 평가받았던 것이 예능프로그램에서의 인기와 무관하지 않다. 바로 이것이 예능의 파괴력이다. 시사토크쇼를 넘어서서 일반 예능까지 나아가면 더욱 출연 정치인이 시청자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것이다.

 

 

예능감이나 이미지로 정치인 호감도 좌우될 우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는 콘텐츠 부족을 많이 지적받는다. 새 정치의 실체가 없다는 지적도 있다. 그런 안 전 대표를 띄운 건 예능 출연 이후의 신드롬이었다. 이것으로 예능의 이미지와 실제 정치적 경륜 사이에 매우 큰 거리가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나마 안 전 대표가 뜬 건 토크쇼를 통해서였다. 하지만 일반 리얼리티 예능까지 오면 완전히 이미지만 남는다. 유권자의 표심(票心)을 심각하게 왜곡할 수 있는 것이다. 자식까지 등장하면 더욱 왜곡이 커질 수 있다. 지난 총선 당시 매체들이 몇몇 후보의 자녀들을 연예인처럼 띄우는 보도를 해 문제가 됐었다. 그렇게 이름을 알린 정치인 자녀가 예능에 나와 손쉽게 스타가 되고, 그렇게 만들어진 스타 자녀와 함께 부모 정치인이 예능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다가 선거철에 본격적으로 자녀 인기의 수혜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연예인 토크쇼는 흔히 ‘이미지 세탁쇼’라는 비판을 받는데, 여기에 정치인이 끼어들면 ‘정치인 이미지 세탁쇼’가 될 수 있다. 홍준표 대표가 예능에서 돼지발정제나 장화 논란 등을 해명했을 때 불편하단 반응이 나왔다. 씨스타의 효린 팬이라며 인간미를 드러낸 것에도 부정적 반응이었다. 진지하게 논의할 사안을 이미지로 대충 넘긴다는 지적 때문이었다.

 

근본적으로 정치인은 정책·이념과 ‘어느 집단의 이해를 대변하는가’로 국민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 예능감이나 이미지로 호감도가 좌우된다면 정치 수준이 후퇴할 우려가 있다. 인지도와 친근감이 투표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방송사 PD의 캐스팅이 사실상 국회의원의 선출이나 대선판을 좌우하는 선거 왜곡도 우려된다. ‘나라 살림할 정치인이 몇 시간 동안 예능 녹화할 여유가 어디 있느냐’는 비판도 있다. 방송사·정치인·시청자 모두 정치인 예능에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하는 이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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