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체 없는 8월 위기설, 언론이 만든 자작극인가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17.08.10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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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들어 10일까지 8월 위기설 관련 기사만 400건…전문가들도 의견 분분

 

또 다시 한반도에 위기설이 불거졌다. 이번에는 ‘8월 위기설’이다. 지난 4월 전후로 ‘4월 위기설’이 고조된 지 약 3개월 만이다. 당시 언론에서는 4월15일 김일성 생일을 맞아 북한이 6차 핵실험을 단행할 것이라는 추측이 난무했다. 하지만 말 그대로 ‘설’에만 그쳤다. 4월 들어 북한이 총 3발의 미사일을 쏘긴 했다. 그러나 모두 비행거리가 100km가 채 되지 않거나 실패로 끝났다.

 

8월8일(현지시각) 미국 뉴저지주 베드민스터에서 북한 문제 등과 관련해 행정부 관리들과의 회의 중인 트럼프 대통령(왼쪽)의 격앙된 듯한 표정. © 사진=연합뉴스

 

‘4월 위기설’에 이어 이번에는 ‘8월 위기설’

 

8월 위기설은 어디서부터 시작됐을까. 시사저널은 최근 한 달 동안 네이버에서 ‘8월 위기설’이란 키워드로 검색되는 기사들을 살펴봤다. 북한과 관련된 기사 가운데 가장 먼저 올라온 것은 연합뉴스의 기사였다. 이 매체는 7월26일 오전 10시 39분에 “긴장수위 다시 높아지는 한반도…동북아 정세도 불안”이란 제목의 기사를 띄웠다.

 

해당 기사는 “한국전쟁 휴전협정 체결 64주년인 오는 (7월) 27일을 전후해 북한이 ICBM급 미사일 또는 중거리 미사일을 쏘아 올릴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면서 “미국은 유엔 안보리에서 고강도 제재 드라이브에 박차를 가하고, 북한은 그것을 빌미 삼아 추가 미사일 시험 발사 또는 핵실험으로 내달릴 가능성도 점쳐진다”고 했다. 

 

또 “8월 하순 진행될 연례 한미연합훈련인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을 전후해 한반도의 긴장 지수는 급상승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다만 ‘8월 위기설’이란 단어는 쓰지 않았다.

 

이후 MBN이 7월26일 오전 11시 24분에 연합뉴스의 기사를 받아썼다. 국제신문도 이날 오후 7시 20분에 같은 기사를 실었다.

 

하루 뒤인 7월27일, 뉴스1은 오전 11시 30분에 “정전체결일은 넘겼지만…내달 또다시 ‘위기의 한반도’”란 제목으로 기사를 올렸다. 휴전협정 체결일(정전체결일)인 이날 북한에서 도발 조짐은 나타나지 않았다.

 

 

연합뉴스 “8월 한반도 긴장 급상승”, 동아일보 “8월 위기설”

 

네이버에서 검색되는 언론 가운데 ‘8월 위기설’이란 단어를 처음 쓴 곳은 동아일보다. 이 매체는 7월27일 오후 1시 35분에 “북한의 ICBM 추가 발사가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오고, 트럼프 행정부 고위 관료들이 대북 군사대응 방안을 잇달아 언급하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전쟁 위기감이 또 다시 고조되고 있다”면서 이른바 ‘8월 위기설’을 처음 언급했다. 

 

동아일보는 다음날인 7월28일에도 8월 위기설을 다시 보도했다. “항상 군사적 옵션은 있다(There is always a military option)”는 레이먼드 토머스 미 통합특수전사령관(대장)의 말을 전하면서다. 이날 헤럴드경제와 채널A도 연달아 8월 위기설을 제기했다.  

 

7월28일 밤 북한이 ICBM급인 ‘화성-14형’을 쏘아올렸다. 연합뉴스는 7월29일 이 소식을 전하며 “북한이 지난 (7월) 4일 화성-14형 발사에 성공한 지 한 달도 채 안 돼 ICBM급 미사일을 또 발사함에 따라, 한반도를 둘러싼 군사적 긴장이 급격히 고조되면서 이른바 ‘한반도 8월 위기설’까지 거론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 시험발사 성공을 기념해 북한이 발행한 새 우표. © 사진=연합뉴스


 

7월 28일 북한 미사일 발사 이후 위기설 급속 확산

 

즉 8월에 한반도의 긴장이 높아질 것이란 예측은, 연합뉴스에서 출발해 MBN과 국제신문을 거쳐 뉴스1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예측은 동아일보에서 ‘8월 위기설’이란 단어로 명명됐다. 뒤이어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자 연합뉴스 역시 8월 위기설을 꺼내들었다. 이후 YTN, KBS, 서울신문, 문화일보 등 다른 언론들도 8월 위기설에 관한 기사를 쏟아냈다. 이번 달 들어 10일까지 8월 위기설에 관한 기사만 400건에 달했다. 

 

청와대는 8월에 위기가 닥칠 것이란 가능성을 일축했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3일 국회를 방문해 “전쟁은 없다. 미국도 그렇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9일에는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반도 위기설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안보 상황이 엄중해지는 것은 사실이나 위기로까지 발전했다고 보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정말 8월에 무력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일단 겉으로만 보면 한반도의 긴장 국면은 분명 심화되고 있다. 미국과 북한이 서로 날선 말을 주고받고 있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8일(현지시각) 북한을 가리켜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그러자 북한은 9일 성명을 통해 “괌도 주변을 포위사격하기 위한 작전방안을 심중히 검토 중”이라고 받아쳤다. 앤더슨 공군기지가 있는 괌은 미국의 핵심 전략지대로 꼽힌다.   

 

© 시사저널 디지털뉴스팀

 

정말 전쟁 날까?… 중국과 주한 미국인 때문에 힘들다는 분석

 

그런데 긴장 국면이 물리적 타격으로 확대될 것이란 관측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분석이 있다. 우선 미국이 북한을 선제공격하게 되면 휴전협정을 어기게 된다. 이는 자칫 중국을 끌어들이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중국 전략문화촉진회 부회장 뤄위안(羅援)은 지난해 2월 관영매체 환구시보에 “휴전협정은 중공군 및 관련국 대표들이 공동으로 체결한 협정이다. 중국은 이를 위반하는 행위에 관여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중국이 개입하면 3차 세계대전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된다.

 

대북 선제공격은 미국으로서도 큰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선택이다. 북한이 공격을 받으면 포문을 남한으로 돌릴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주한미군 2만8500명을 포함해 우리나라에 사는 약 23만 명의 미국인이 위험에 빠질 수 있다. 서울을 겨냥하고 있는 북한의 장사정포는 약 340문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생화학 무기와 탄도미사일도 무시할 수 없다. 

 

북한도 섣불리 괌을 공격하지 못할 것이란 의견이 있다. 문성묵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은 10일 시사저널에 “김정은은 의외로 계산적이고 합리적인 인물”이라며 “미국으로부터 반격을 받을 것을 생각하면 함부로 나서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로버트 켈리 부산대 정치외교학과 부교수는 북한의 괌 공격 주장에 관해 9일 알자지라에 “허세를 떠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잘라 말했다.

 

8월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사드대책특별위원회 회의에서 참석 의원 등이 조선일보 유용원 기자로부터 진화된 북한 화성 14형 ICBM급 미사일 발사 과정에 대해 설명듣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제대로 대응하면 위기 없다” vs “반드시 충돌”

 

한반도 위기설 자체에 대해 회의적인 목소리도 있다. 양욱 한국국방안보포럼 수석연구위원은 10일 “매번 한미 연합훈련이 있을 때마다 위기설이 등장했다”면서 “대응을 제대로 하면 실제 위기로 연결이 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나 안심할 수 없다는 반론도 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10일 “유엔도 중재자 역할을 못하는 상황에서 변수가 없으면 반드시 (미국과 북한이) 충돌할 수 있다. 최악의 경우 서울이 공격받을 수 있고, 북한이 괌을 표적으로 명시한 이상 동해나 일본 근해가 접전지가 될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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