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의 공간’ 한국 서원의 풍수를 들여다보다
  • 박재락 국풍환경설계연구소장· 문화재청 문화재 전문위원 ()
  • 승인 2017.08.20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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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락의 풍수미학] 문화재청, '한국의 서원'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신청 대상으로 선정


지난 7월24일 문화재청 세계유산분과 위원회는 ‘한국의 서원’을 2018년도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신청 대상으로 선정했다. 영주 소수서원, 함양 남계서원, 경주 옥산서원, 안동 도산서원과 병산서원, 장성 필암서원, 달성 도동서원, 정읍 무성서원, 논산 돈암서원 등 9곳이다.

지금의 서원은 조선시대 향촌지역의 사립교육기관으로 강학(講學)과 선현의 제향(祭享)을 담당했던 유교사회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이다. 그러나 지난 2015년에는 유네스코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의 전문가 패널 심사에서 반려판정을 받았다. 서원 9곳과의 연계성과 중국∙일본의 서원과의 차별성이 부각되지 않았고 주변경관이 문화재구역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서원은 우리 민족의 우수한 전통문화, 정신문화의 산실이다. 예학의 산실인 서원은 인류 전체가 보전할 세계유산으로서 전통문화의 가치를 보존할 명분이 있다. 서원에는 조선시대 유교문화의 핵심이 되는 양반사회와 그 정신문화도 담겨 있다.

 

 

도산서원 ⓒ 연합뉴스

 


풍수적으로도 서원의 입지는 의미가 있다. 서원은 대부분 나지막한 산등선을 의지하고 물가와 가까이 마주한 곳에 자리해 있다. 학문을 배양한다거나 선현을 위한 제향공간으로는 더 없이 좋은 공간임을 알 수 있다. 조선 말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많은 서원들이 없어졌지만 유독 지금의 서원들은 훼손되지 않았다. 서원들이 보존될 수 있었던 이유는 풍수적으로 좋은 지기를 받는 명당입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서원의 터 잡이와 건물의 공간구성과 배치는 과연 어떠한 의미를 담고 있을까.

먼저 서원 내 입지공간에 나타난 터 잡이다. 서원은 현무봉(玄武峰)을 의지하고 있다. 현무봉은 대간맥-정맥-지맥-주산으로 이어진 내룡맥이 끊어지지 않고 뻗어오다가 마지막으로 응축된 지기를 머금은 채 형성된 산봉우리다. 이때 현무봉의 형태는 대부분 목형체(솟아오른 모양), 금형체(둥근 모양), 토형체(평평한 모양)의 봉우리를 띠고 있다. 풍수 지리적으로 관직과 명예의 지기를 품은 것으로 입신양명을 위한 좋은 기를 받게 된다. 이러한 현무봉에서 뻗어 내린 용맥의 흐름에 따라 제향공간-강학공간-진입공간 순으로 터 잡이를 하여 지기를 받도록 했다.

현무봉의 중심룡맥이 처음 입수하는 곳에는 제향공간인 사당이 자리한다. 사당 건물은 3칸으로 중앙 칸은 주향(主享)의 위패를 모신다. 사당 위패를 모신 분께 바로 지기를 받도록 함으로써 지속적으로 서원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도록 터 잡이가 이루어진 것이다. 또 사당 출입문도 3칸인데 중앙은 항상 닫혀 있고 제향 시 동쪽으로 들어가서 서쪽으로 나오게 한다. 즉 사당공간에 형성된 지기가 쉽게 빠져나가거나 흩어지지 않도록 역행(逆行)을 함으로써 방향성 비보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서원입지에서 가장 신성시하는 공간은 바로 서당 터임을 말해준다.

강학공간은 사당을 거쳐 뻗어 내린 용맥이 급히 멈추면서 터를 이룬 곳으로 좌우가 평탄하고 토색이 윤이 나며 토질은 단단하다. 이곳의 건물배치는 강당이 1단 높은 중심공간에 자리하고 유생들이 거처하는 건물은 낮은 곳에 강당의 좌측은 동재, 우측은 서재건물이 서로 마주한다. 그리고 강당과 마주하는 곳에는 누마루형태의 2층 출입문이 있다. 이러한 공간배치는 강당(혈)을 중심으로 사당(북현무)-동재(좌청룡)-서재(우백호)-누마루(남주작)가 감싸는 형국으로 땅속에서 분출되는 기(氣)를 보호할 수 있다. 이처럼 서원 내 강학공간은 터와 건물의 공간배치가 항상 구성원들이 생기를 받게 함으로써 학문적 성취를 이룰 수 있도록 터 잡이를 한 것이다.

다음 진입공간의 외삼문과 홍살문의 배치다. 외삼문은 루(樓)형태의 2층 건물로 이루어져 있으며 서원 안으로 출입하는 초입의 대문이다. 외부에서 보면 2층이지만 뒤쪽의 강학공간의 터와 높이가 비슷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즉 강학공간의 지기가 쉽게 빠져나가지 못하고 지속적으로 머물 수 있도록 비보(裨補)를 한 것이다. 홍살문(紅門)은 궁전, 관청, 왕릉 등의 진입부에 세워져 있는 문으로 신성한 지역임을 알리는 상징적인 문이다. 그러나 서원에 세워진 홍살문은 현무봉에서 뻗어 내린 지맥에 의해 생기를 받고 있는 터이므로, 서원공간을 훼손치 말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서원 중 돈암, 무성, 필암서원은 현존하지만 영남지역 6곳은 보이지 않는다.

 

함양 남계서원 배면 전경 ⓒ 연합뉴스



마지막으로 서원 공간의 득수형국을 살펴보자. 풍수지리학에서 용맥이 뻗어나가다가 물을 만나 더 이상 나가지 못하고 머문 공간을 산진처(山盡處)라 한다. 이곳은 생기가 생성되는 곳인데 입지 공간 가까이 내수(지당, 계류수)와 외수(본류천, 강)의 물길이 있어야 득수가 이루어진 것으로 본다. 또 득수가 궁수형태를 이룬 것을 길수라 하며 서원 중 소수, 옥산, 병산, 남계, 필암, 무성서원이 이에 해당한다. 또 큰 강을 끼고 있는 도산, 병산, 남계서원과 서원 안에 지당을 얻은 소수, 병산, 남계서원이 있다. 돈암서원만 연산천이 멀리서 흐르고는 있지만 비켜나가는 흉수이다. 따라서 서원공간은 용맥을 받으면서 지당과 궁수, 합수처를 이룬 곳에 입지를 선정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지금의 서원은 선현들이 입지 선정 시 풍수지리를 적용하여 명당공간에 터를 이루었기에 지금까지도 현존하고 있다. 관할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청소년들의 체험학습장으로 서원을 활용하고 있다. 서원 주위는 늘 푸른 생동감을 간직한 아름드리 소나무가 무성하게 감싸고 있어서 머리를 맑게 해주는 많은 피톤치드를 분출한다. 이곳에서 머문다면 옛 선비들이 맑은 정신으로 학문에 임한 동기감응을 받아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를 수 있을 것이다. 고래 등 같은 집도 사람의 숨길이 머물지 않으면 조만간 허물어지게 된다. 서원의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알려 문화재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보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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