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라면, 계란 안 먹인다”
  • 노진섭 기자 (no@sisajournal.com)
  • 승인 2017.08.21 09:13
  • 호수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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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의사 엄마의 솔직한 마음…의사협회 “마트 계란 먹어도 된다”

 

‘살충제 달걀’ 사태의 팩트를 정리하면 이렇다. 정부가 8월15~18일까지 조사한 전국 1239개 농장 가운데 49개 산란계 농장에서 모두 5개의 살충제 성분이 검출됐다. 이 가운데 닭에 사용이 허용된 살충제는 비펜트린 하나뿐이다. 농가에서 흔히 사용하는 살충제인데, 기준치보다 다소 높게 검출됐다. 나머지 피프로닐, 플루페녹수론, 에톡사졸, 피리다벤은 닭에 사용하면 안 되므로 달걀에서도 검출되면 안 되는 살충제다. 국가의 농약 관리 시스템에 구멍이 생겼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불안해진 국민은 달걀을 먹어도 되는지가 무엇보다 궁금하다. 축산물품질평가원은 달걀 정보를 입력하면 ‘살충제 달걀’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집에 있는 달걀 껍데기에 찍힌 난각(卵殼) 정보를 입력하면 먹어도 되는 달걀인지 알 수 있다.

 

마트에서 팔고 있는 달걀은 믿을 만할까. ‘08마리’나 ‘09지현’처럼 암호 같은 난각 표시를 소비자가 기억하고 마트에서 달걀을 선별하면서 구매하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현재 상황에서 달걀을 꼭 먹으려면 눈 딱 감고 정부의 조사 결과를 믿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농림축산식품부는 8월15일 모든 달걀 출하를 금지한 후 전수검사를 진행했고, 그 결과 이상이 없는 달걀만 16일부터 유통시켰다. 마트에서 파는 달걀은 안전하다고 정부가 인정한 것이다. 대한의사협회는 8월18일 ‘살충제 검출 달걀에 대한 대한의사협회 입장’을 발표하고 “현재 잔류 기준치를 초과해 문제가 된 피프로닐과 비펜트린도 가장 민감한 집단인 10kg 미만의 영유아가 하루에 달걀 2개를 섭취한다고 했을 때, 독성실험 결과를 근거로 한 인간에서의 급성독성 참고치에 비하면 20% 이하의 수준이기 때문에 급성독성은 크게 우려할 수준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고 밝혔다.

 

8월15일 경기도 화성시의 한 산란계 농장에서 농산물품질관리원 검사원이 시료채취를 위해 계란을 수거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익혀도 없어지지 않는 달걀 속 살충제

 

그렇지만 마트에서 파는 달걀을 우리 아이들에게는 먹이지 못할 것 같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엄마로서 내 아이에게 당분간 달걀을 먹이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과학적 안전과 심리적 안심은 다르기 때문이다. 정부의 조사 과정을 지켜보는 소비자로서는 안심할 수 없다는 얘기다. 농장당 달걀 한 판 정도만 샘플로 수거해 검사했으므로 사실상 전수검사로 볼 수 없다. 게다가 조사 과정에 부실 논란이 일었다. 검사원이 조사 사실을 농가에 미리 통보하거나, 달걀 샘플을 농가에서 선택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 의혹대로라면 살충제를 사용한 농가는 옆 농장에서 ‘깨끗한’ 달걀을 한 판 빌려서 검사용으로 제출해도 되는 구조다.

 

또 보건 당국은 달걀뿐만 아니라 농장 상태를 전반적으로 점검해야 어떤 살충제를 얼마나 사용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닭 농장주 A씨는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전수조사를 한다기에 담당 직원들이 조사 나올 줄 알았는데 직원들은 오지 않고 마을 대표가 달걀 한 판씩 가지고 마을회관으로 오라고 했다”며 “조사를 나오는 것이 아니라 닭 농가에서 모아준 달걀을 한 번에 싣고 갔다”고 말했다.

 

다른 전문가들도 아이들은 당분간 달걀을 조심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정상희 호서대 임상병리학과 교수는 “허용량을 따져볼 때, 성인은 괜찮고 어린이는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독일연방유해평가원도 “16kg 이하 아동은 24시간 내 오염된 달걀 1.7개 이상을 먹지 않도록 유의하라”고 당부한 바 있다.

 

외국산 달걀도 미덥지 않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8월10일 네덜란드산 달걀에서 피프로닐이 검출됐다고 발표한 바 있다. 친환경 달걀은 더 안전하지 않다. 친환경 인증 농가는 살충제를 사용하면 안 된다. 그러나 이번 ‘살충제 달걀’의 대부분은 친환경 농장에서 나왔다. 정부도 친환경 농가에 대한 관리 부실을 인정했다. 김경규 농림축산식품부 기조실장은 8월17일 국회 현안보고에서 “친환경 인증제 개편을 추진하고 근본적인 개선 대책을 조속히 수립하겠다”고 밝혔다.

 

달걀을 익혀 먹으면 괜찮을까. 그렇지 않다. 달걀을 삶거나 익히면 식중독균은 파괴되지만, 피프로닐은 달걀노른자에 여전히 남는다. 닭고기는 먹어도 된다. 식약처는 “문제가 된 건 산란계(알 낳는 닭)이고, 육계(식용 닭)는 해당 사항이 없다”고 밝혔다. 육계는 통상 30일 정도 키워 출하하기 때문에 농약이 잔류할 시간이 상대적으로 적으므로 과도하게 우려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현재까지 육계에서 피프로닐 등 독성물질이 발견된 사례는 없다. 그러나 산란계가 알을 낳는 역할을 끝내면 ‘노계(老鷄)’로 분류해 식용으로 사용된다. 주로 닭볶음탕이나 닭꼬치, 소시지 등의 재료로 쓰인다. 전체 닭고기 유통량 중 노계가 차지하는 비율은 1% 안팎으로 알려졌다. 산란계 닭에 대한 검사가 필요한 시점이다.

 

닭에는 진드기, 이, 벼룩 등 해충이 있다. 마당에 풀어놓고 기르는 닭은 흙에 몸을 비비는 ‘흙 목욕’으로 해충을 없앤다. 그러나 사육 단가를 낮추기 위해 좁은 공간에 많은 가축을 키우는 ‘밀집 사육’을 하면, 진드기 등 해충이 잘 생긴다. 진드기를 제때 못 잡으면 닭이 스트레스를 받아 산란율이 떨어지고 죽기도 한다. 그래서 밀집 사육하는 닭에게 살충제를 뿌릴 수밖에 없다.

 


 

“건강에 큰 해를 끼칠 정도는 아니다”

 

가금류에 사용이 허가된 살충제는 비펜트린이다. 미국환경보호청(EPA)이 발암물질로 분류하고 있는 성분이므로 잔류허용기준이 있다. 국제식품규격(코덱스)에는 달걀에 0.01mg/kg이 기준이다. 식약처도 이 기준을 따른다. 그런데 농가에서 이 살충제를 뿌리다 보면 다소 기준치를 넘기도 한다. 이번에 경기 광주에 있는 농가에서 나온 달걀에서도 0.02mg/kg이 검출됐다. 이 정도는 건강을 위협할 수준은 아니다. 식약처는 장기간 많은 양을 한꺼번에 섭취하지 않았다면 인체에 크게 유해하지 않지만, 기준치를 초과한 만큼 기존에 산 달걀은 먹지 않는 것이 좋다고 밝혔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비펜트린의 인체 독성을 이야기하려면 1만 배 이상 검출돼야 하고, 적어도 100배는 돼야 인체 독성을 살펴볼 수 있다. 달걀에서 비펜트린이 잔류허용기준보다 다소 높게 검출됐지만, 인체 독성 여부를 따질 만큼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피프로닐은 사정이 다르다. 개나 고양이에 있는 벼룩, 이, 진드기를 없애기 위해 개발한 살충제다. 일반 가정에서 바퀴벌레를 잡기 위해 사용하는 살충제에 이 성분이 들어 있다. 그러나 가축에 사용하면 안 되는 성분이다. 독성이 강해서가 아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독성을 맹독성, 극독성, 고독성, 보통 독성, 저독성, 무독성으로 구분하는데, 피프로닐은 ‘보통 독성’에 해당한다. 적은 양은 별로 독성이 없고 대량으로 노출됐을 때 독성이 나타난다는 의미다. 이덕환 교수는 “이 살충제를 개발한 회사가 가축을 대상으로 한 사용 허가를 받지 않았다. 아무튼, 가금류에 사용하지 못하는 피프로닐이 검출된 것은 살충제 관리에 구멍이 생긴 것”이라고 지적했다. 농가에서 비펜트린 대신 굳이 피프로닐을 사용한 이유에 대해 정상희 교수는 “비펜트린에 대한 내성 때문일 수 있다. 해충이 잘 죽지 않으니까 더 센 살충제를 찾다가 피프로닐을 사용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성분에 많이 노출된 사람은 메스꺼움, 구토, 복통, 어지럼증 등의 증세를 보인다. 장기간 반복 노출되면 간, 갑상선, 신장 등이 손상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그러나 이 성분은 몸에 쌓이진 않고 1~2주일이면 빠져나간다. 따라서 달걀을 먹고 급성독성이 나타날 위험은 크지 않아 보인다. 식약처에 따르면, 단기간에 급성독성이 생길 수 있는 피프로닐 섭취량은 몸무게 60kg 성인 기준 0.54mg 수준이다. 달걀 1개 무게가 대략 60g 정도이므로 남양주 농가에서 발견된 달걀 245개 이상을 한꺼번에 섭취해야 급성독성이 생길 위험이 있다. 1인당 연간 달걀 소비량(2015년 기준 268개)과 맞먹는 양이다. 신현영 명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이 성분으로 어지럼증을 보인 환자는 있었지만, 치명적인 사례는 없었다”고 말했다.

 


농민도 모르고 사용하는 살충제

 

농림축산식품부는 1991년부터 달걀 검사를 해 왔다. 그러나 피프로닐 살충제를 검사 대상에 추가한 것은 지난해부터다. 엄밀하게 말하면, 전수조사가 아니라 산란계 농장 중 60곳만 선별해 조사했고 피프로닐이 검출된 농장은 없었다. 그전에는 피프로닐의 위험성이 지적되지 않아 별도 검사를 하지 않았다.

 

검사 방법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정부는 산란장에 있는 달걀이 아닌 유통하는 달걀을 대상으로 검사했다. 살충제를 사용한 후 시간이 많이 지났으므로 검출되지 않거나 남아 있더라도 소량만 검출된다. 산란계 농가의 살충제 구매자료, 살충제 유통경로, 사용 실태 등을 조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김태민 식품전문 변호사는 “농가를 지원하는 부서인 농식품부가 농가를 제대로 조사할 수 있겠는가. 식품의 안전관리는 생산부터 소비까지 식약처에 책임을 일원화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시기”라고 말했다.

 

‘유정란’ ‘목초 먹은 계란’ ‘무항생제’ ‘인삼 계란’ 등 달걀 제품의 현란한 문구는 안전성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사실이 이번 ‘살충제 달걀’ 사태로 드러났다. 더는 농장주의 양심에만 맡길 수 없으므로 교육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피프로닐 달걀이 나온 A농가 주인은 농식품부 조사에서 “옆 농가에서 진드기 박멸에 효과가 좋다고 해 해당 살충제를 사용했다. 피프로닐인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또 의약품과 동물약품 관리 체계를 통합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추무진 의협 회장은 “의약품과 동물약품(농약)의 관리를 2개 부처에서 하고 있는데, 동물약품은 사람이 섭취하는 동식물을 통해 인체에 영향을 끼치므로 국민의 안전한 먹거리 확보를 위해 동물약품에 대한 안전성과 유효성이 확실하게 보장돼야 한다”며 “문제가 나타날 때 초동 대응이 가능하도록 통합 관리할 수 있는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독감 백신용 유정란은 부족하지 않을까

“이미 백신 생산 끝났다”

 

달걀은 독감 백신을 만들 때도 필요하다. 독감 바이러스를 유정란에서 배양한다. 이번 ‘살충제 달걀’ 사태로 올해 독감 백신의 생산에 차질이 생기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 국내에서 백신을 자체 생산하는 회사는 녹십자, 일양약품, SK케미칼 등 3곳이다. 이 중 SK케미칼은 세포배양 방식으로 독감 바이러스를 배양해 백신을 생산한다. 녹십자는 자체 운영하는 유정란 생산농장 ‘인백팜’에서, 일양약품은 세계적인 유정란 공급업체 지프(GEEP)에서 유정란을 공급받는다. 녹십자 관계자는 “유정란은 의약품 수준으로 관리하며, 살충제를 사용하지 못하는 구조”라며 “무엇보다 이미 올가을 사용할 백신 생간은 끝난 상태이므로 현재 유정란 공급업체엔 달걀이 남아 있지도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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