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정부 재벌개혁’ 약발이 먹혔을까
  • 송응철 기자 (sec@sisajournal.com)
  • 승인 2017.08.23 13:38
  • 호수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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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경영권 승계 핵심 한화S&C 지분 매각 속사정

 

한화그룹 계열사인 한화S&C가 지분을 매각하기로 했다. 존속법인과 사업법인으로 물적분할한 뒤, 사업법인 지분 44.6%를 스틱인베스트먼트가 운용하는 스틱스페셜시츄에이션펀드 컨소시엄에 넘긴다는 계획이다. 이번 지분 매각이 주목을 받는 것은 한화S&C가 그동안 경영권 승계의 핵심으로 지목돼 온 회사이기 때문이다.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세 아들인 한화가(家) 3세들의 사실상 개인회사인 한화S&C는 그동안 그룹 계열사들과의 내부거래를 통해 사세를 확장해 왔다. 향후 3세들이 한화S&C를 활용해 지주사인 ㈜한화의 지배력을 확보하리란 것이 재계의 지배적인 견해였다.

 

한화S&C는 일감몰아주기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됐을 때도 내부거래를 중단하지 않았다. 이를 금지하는 내용이 담긴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시행됐을 당시에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대기업들이 규제 대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각종 노력을 기울인 것과 상반된 모습이었다. 이 때문에 한화S&C는 공정거래위원회 ‘블랙리스트’에 사명(社名)을 올리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갑작스레 지분 매각 결정을 내린 것은 문재인 정부가 강한 재벌개혁 의지를 천명한 것과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의 철퇴를 피하기 위해 선제적 대응에 나섰다는 것이다.

 

한화S&C는 2001년 ㈜한화에서 분할 설립된 시스템통합(SI) 업체다. 현재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세 아들의 지분율이 100%다. 장남 김동관 한화큐셀 전무가 50%를, 차남 김동원 한화생명 상무와 삼남 김동선 전 한화건설 차장이 각각 25%씩을 보유하고 있다. 2001년 설립 당시 주주 구성은 ㈜한화(66.67%)와 김승연 회장(33.33%)이었다. 이후 김 회장은 2005년 4월 동원·동선 형제에게 16.7%(10만 주)씩을 각각 10억원(액면가 5000원)에 넘겼다. 같은 해 6월에는 ㈜한화가 김동관 전무에게 보유한 지분 전량(66.67%)을 20억4000만원(액면가 5100원)에 매각했다. 이후 수차례의 유상증자를 거치면서 현재의 지분율이 완성됐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장남 김동관 한화큐셀 전무, 차남 김동원 한화생명 상무, 삼남 김동선 전 한화건설 차장(왼쪽부터)과 서울 중구 장교동 한화빌딩 © 시사저널 고성준·한화그룹

 

한화S&C, 화학·에너지 소그룹의 정점

 

한화S&C는 매년 절반 이상의 매출이 그룹 계열사와의 거래에서 발생했다. 이런 지원은 설립 직후부터 시작됐다. 설립 이듬해인 2002년 한화S&C는 총매출 832억원 가운데 54%에 해당하는 452억원을 내부거래를 통해 올렸다. 이어 2003년과 2004년의 내부거래율도 각각 44.7%(총매출 1067억원-내부거래액 477억원)와 45.9%(1267억원-582억원)에 달했다. 특히 삼형제에게 지분이 넘어간 2005년 이후부터는 매출과 내부거래 규모가 수직상승했다. 연도별 구체적인 현황을 보면 △2005년 58.1%(1222억원-711억원) △2006년 52.2%(1656억원-865억원) △2007년 52.2%(2237억원-1169억원) △2008년 55.4%(2742억원-1521억원) △2009년 54.2%(3608억원-1959억원) △2010년 61.5%(5194억원-3194억원) △2011년 57.9%(5750억원-3332억원) 등이었다.

 

이런 증가세에 제동이 걸린 것은 2012년, 일감몰아주기를 통한 총수 일가의 사익편취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부상하면서다. 그해 매출은 5758억원으로 전년(5750억원)에 비해 소폭 증가했지만, 내부거래액은 전년 3332억원에서 2680억원으로 줄었다. 그러면서 내부거래율도 57.9%에서 46.5%로 감소했다. 이후 한화S&C의 매출과 내부거래 규모는 △2013년  55.3%(4602억원-2546억원) △2014년  52.5%(4116억원-2163억원) △2015년  54.1%(3987억원-2158억원) 등으로 50%대를 유지했다. 그러나 지난해 내부거래액이 2570억원으로 전년 대비 412억원가량 증가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지난해 내부거래율은 70.5%(총매출 3641억원)까지 치솟았다.

 


이처럼 김 회장의 세 아들이 한화S&C의 대주주가 된 2005년 이후 그룹 계열사들이 지원해 준 매출 규모는 2조5000억원에 육박한다. 한화S&C는 이를 바탕으로 에너지 관련 업체들의 연이은 인수·합병(M&A)을 통해 사세를 확장해 왔다. 2010년 6월 여수열병합발전(현 한화에너지)을 인수했고, 한화에너지는 2014년 ‘삼성-한화 빅딜’ 과정에서 삼성종합화학(현 한화종합화학) 지분 39.16%를 보유한 최대주주가 됐다.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한화S&C는 현재 ‘한화에너지→한화종합화학→한화토탈·한화큐셀코리아’로 이어지는 소그룹의 정점에 오르게 됐다.

 

그동안 ‘일감몰아주기를 통한 부(富)의 대물림’은 재벌가의 오랜 관행이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중소기업의 사업 기회가 원천 차단되는 등 폐해가 적지 않았다. 앞서 정부가 일감몰아주기 규제에 나선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시행된 2014년 이후 대기업들은 저마다 규제 대상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했다. 여기엔 계열사 간 사업구조 재편이나 회사 청산, 지분 매각 등의 방법이 동원됐다. 한화그룹 역시 규제 대상 계열사들을 차례로 정리했다. 2014년 비상장사인 한화관광을 청산했고, 2015년 광고회사인 한컴과 경비업체 한화에스테이트의 총수 일가 지분을 전량 매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화S&C만큼은 예외였다. 내부거래 규모를 꾸준히 줄여 나갔지만, 여전히 규제 대상에 머물렀다. 자산총액 5조원 이상의 대기업 중 총수 일가 지분이 30%를 초과하는 상장 계열사(비상장사 20%)는 내부거래 금액이 200억원을 넘거나 연매출의 12% 이상인 경우 규제 대상에 포함된다. 그동안 한화S&C는 기업 보안성에 위험이 있다고 인정될 경우 규제 대상에서 예외를 인정해 준다는 법조항을 중심으로 대책을 마련해 왔다. 한화S&C가 그룹 계열사의 IT 보안을 담당하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킨 것이다.

 

이런 가운데 한화S&C가 결국 지분 매각을 결정하며 ‘백기투항’한 것은 문재인 정부가 출범 이후 강도 높은 재벌개혁 의지를 보였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사실 한화S&C는 지분을 매각하지 않고 사업법인을 물적분할하기만 해도 공정위 사정권에서 벗어날 수 있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총수 일가가 직접 지분을 소유한 계열사만 규제 대상으로 하고, 계열사를 통해 보유한 간접 지분은 따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화S&C가 지분을 매각하기로 한 것을 두고, 자칫 ‘편법 논란’에 휩싸일 경우 오히려 정권에 밉보일 수도 있다는 우려가 반영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한화 최대주주는 지분 22.65%를 보유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사진 가운데)이다. © 사진=연합뉴스

 

한화S&C 주축 소그룹의 사업 확장 예상

 

이제 관심은 한화가(家) 경영권 승계 문제로 옮겨가고 있다. 한화그룹 경영권 승계의 핵심인 한화S&C의 지분을 매각한 뒤, 그룹 경영권이 어떤 식으로 3세들에게 이양될지에 대한 관심이 그것이다. 동관·동원·동선 삼형제가 경영권을 물려받기 위해서는 지주사인 ㈜한화에 대한 지배력 확보가 필수다. 현재 ㈜한화의 최대주주는 지분 22.65%를 보유한 김승연 회장이다. 김동관 전무(4.44%)와 김동원 상무(1.67%), 김동선 전 차장(1.67%) 등의 지분율은 그룹 전반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기엔 부족한 수준이다. 삼형제가 향후 어떻게든 ㈜한화에 대한 지분율을 늘려야 하는 상황인 셈이다. 현재 투자은행(IB) 업계에서는 한화그룹의 승계 시나리오가 몇 가지 거론되고 있다. 그 내용은 제각각이지만, 모든 시나리오의 중심에는 공통적으로 한화S&C가 있다.

 

먼저 한화S&C와 ㈜한화를 합병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합병이 마무리되면 ‘한화가 3세→합병 ㈜한화→그룹 계열사’로 이어지는 지배구조가 완성된다. 또 한화S&C가 ㈜한화의 지분율을 대거 끌어올리는 방법으로 경영권을 넘겨받을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 경우 ‘한화가 3세→한화S&C→㈜한화→그룹 계열사’로 이어지는 ‘옥상옥(屋上屋)’ 구조가 만들어진다. 한화S&C를 통해 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방식이다. 이외에 한화S&C 지분과 ㈜한화 신주를 맞교환하거나, 한화S&C를 상장시킨 뒤 삼형제의 지분을 매각해 마련한 자금으로 ㈜한화의 주식을 매입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이 모든 시나리오의 전제조건은 한화S&C의 기업가치 상승이다. 한화S&C의 기업가치가 높아야 합병 때 삼형제의 합병회사 지분율이 확대되고, 그만큼 지배력도 견고해진다. 따라서 향후 한화그룹은 한화S&C를 주축으로 한 소그룹의 사업 확장에 힘을 실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한화그룹 경영권 승계의 핵심이 한화S&C의 기업가치 상승이니만큼, 향후 한화S&C와 그 산하 계열사들의 공격적인 사세 확장이 예상된다”며 “다만 내부거래가 사실상 차단된 상황이어서 몸값을 끌어올리는 데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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