갇힌 主君 대신해 家臣들이 뜬다
  • 송창섭·송응철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17.08.26 16:39
  • 호수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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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형 선고 받은 이재용 삼성 부회장 대신할 ‘JY맨’들의 면면

 

절대 권력은 없다. 대통령도, 총리도, 심지어 일당 독재국가인 중국의 주석도 10년이 되면 권력에서 물러나야 한다. 제왕적 권력으로 불리는 대한민국 대통령도 ‘권불오년(權不五年)’이다. 그런데 예외가 있었다. ‘경제권력’으로 불리는 재벌 총수다. 이들에겐 임기가 없다. 특히 최대 재벌 삼성그룹의 총수는 ‘성역(聖域)’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성역이 끝내 무너졌다. 8월25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뇌물공여 혐의 등으로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또 하나의 획이 그어졌다. 시대가 변하고 있고,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번 사건의 본질은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의 부도덕한 밀착이다.”

 

8월25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김진동)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삼성 전·현직 임원 5명에 대한 선고공판에서 판결문을 읽어 내려가는 순간, 이 부회장은 멍하니 정면만 쳐다봤다. 실낱같은 희망이었던 ‘무죄’는 끝내 희망에 불과했다. 두 권력의 부도덕한 밀착이라는 재판부 판단은 우리 재벌의 민낯을 상징하는 말이 됐다. 이번 판결에서 1심 재판부는 삼성과 박근혜 정권의 야합을 ‘부정’으로 규정했다.

 

우리나라의 재벌(財閥)은 세계사적으로도 독특한 기업 구조다. 자유시장경제 시스템이 발달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기업 구조로 볼 수 있지만, 다른 개발도상국가와 비교할 경우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렇다고 국가 주도형 자본주의의 산물로 보기도 힘들다. 고도성장 과정에서 국가 주도형 모델과 시장자본주의가 합쳐진 것이 기형적인 모습인 것만은 분명하다. 기형적 야합은 시장 왜곡을 만들면서 우리 사회의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정경유착이 대표적 산물이다. 어느 한 분야 가릴 것 없이 문어발식으로 사세를 키우면서 그 밑단의 생태계는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그러면서 재벌의 지배구조는 세습 형태를 띠고 있다. 때문에 형태적으로 봤을 때 재벌은 복합기업(Conglomerate)과 가족기업(Family Company)의 ‘불편한 결합’이다.

 

삼성은 우리의 재벌 체제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기업이다. 기업 위상은 국내를 넘어 세계 일류를 지향하지만, 취약한 지배구조는 불안요인으로 지적 받아왔다. 때문에 이 과정에서 특혜·편법이 동원됐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1심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정경유착은 과거형이 아닌 현재진행형의 모습”이라고 규정했다. 이로써 이재용 부회장의 옥중경영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변호인단은 선고 직후 기자들과 만나 “법리 판단, 사실 인정을 모두 받아들일 수 없기에 즉각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석방을 기대했던 삼성은 이 부회장 구속이 장기화되면서 비상경영에 돌입한 상태다. 하지만 재계에선 이번 판결을 계기로 오히려 ‘이재용 삼성’ 체제가 더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8월25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CEO 세대교체 가속화…전문경영인 중용될 듯

 

이재용 부회장은 옥중에서도 자신의 경영 스타일에 드라이브를 걸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그동안 이 부회장은 부친 이건희 회장과는 차별화된 경영 스타일을 보여주려 애써왔다. 지난해와 올 초 사이 삼성생명이 보유한 서울 태평로 삼성생명 본사와 태평로빌딩, 종로타워 등을 매각한 것이 대표적인 일이다. 서울시청 옆에 있던 삼성화재 빌딩도 부영그룹에 매각했다. 이들은 삼성의 상징과 같은 자산이다. 이 회장이 정상적인 경영활동을 했다면 매각은 꿈도 꾸기 힘들었겠지만, 이 부회장은 과감하게 ‘과거와의 단절’을 시도했다. 삼성의 한 전직 고위 임원은 “삼성생명 본사는 모친인 홍라희 관장이 애착을 갖던 플라토 미술관(구 로댕갤러리)이 있던 곳이기에 이 회장의 관심이 높았는데, 그런 곳까지 팔아치우는 걸 보면서 이 부회장의 대단한 야심을 엿봤다”고 말했다.

 

병석에 누워 있는 이 회장의 공백 이후 이 부회장의 행보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효율성’이다. 연구·개발(R&D) 인력을 사업부로 보낸 것도 마케팅에 치중하기 위해서다. 그 과정에서 이 부회장의 논리는 ‘필요한 기술은 M&A(인수·합병)를 통해 사들이면 된다’는 것이었다. 이는 미국 실리콘밸리 IT(정보통신) 기업 스타일을 삼성에 이식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노무현 정부 때 여러 국가적 어젠다를 제안했던 삼성경제연구소가 2013년 이후 연구보고서를 공개하고 있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현재 삼성경제연구소는 그룹을 위한 싱크탱크로 축소된 상태다. 매출보다 이익을 중시하는 기업 문화는 기술보다 마케팅 CEO(최고경영자)의 선전(善戰)으로 이어졌다. 이기태·진대제·황창규·이윤우 등 기술전문경영인이 물러나고 무역학을 전공한 최지성 부회장이 오랫동안 삼성전자 대표이사를 역임한 것이 좋은 예다. 한 대기업 임원은 “최지성·장충기·박상진 등 미래전략실(미전실) 일부 인사의 말만 들었던 것이 ‘최순실 게이트’라는 화근을 만들어낸 것”이라면서 “구속 이후 가장 먼저 미전실 해체부터 지시한 것을 볼 때 이 회장 체제와는 다른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 부회장의 옥중경영이 이어지면서 계열사별 각자도생은 더욱 빨라졌다. 미전실 해체로 구심점은 사라졌다. 이 과정에서 옥석을 가리는 작업은 본격화될 가능성이 높다. 비상경영 체제에서 모두를 다 떠안고 가기보다는 확실한 수익원이 있는 계열사만 골라내는 작업이 본격화될 거라는 것이다. 또 1심 판결 이후 ‘클린 삼성’을 위한 대외적 이미지 변신도 본격 시동을 걸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은 이 부회장의 구속 직후 일정 금액 이상의 사회공헌 예산은 모두 이사회 승인을 받도록 관련 규정을 바꿨다.

 

 

5월 부사장 인사에 ‘이재용 사람’ 대거 포함

 

총수 구속에 따른 대대적인 인사도 예상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이 전문경영인의 역할이다. 보는 시각에 따라 이재용 부회장 시대의 전문경영인은 대리인과 책임자 두 가지로 나눠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부회장 입장에서는 비상 체제에서 경영을 책임지는 동반자 수준으로 위상을 격상시킬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두 선대 회장이 비서실을 통해 전문경영인을 견제하는 방식을 취한 것과 달리, 이 부회장은 미전실을 없애면서 생긴 권한을 임원에게 상당부분 넘겨줄 것으로 예상된다. 과거처럼 문어발식으로 50여 개가 넘는 계열사를 거느리지 않고 전자·금융·바이오 등 세 축을 중심으로 그룹의 성장 구도를 잡는다면 책임자급 전문경영인은 충분히 가능성 있는 시나리오다. 그렇다면 ‘이재용 체제’에서 주목받을 인사는 누구일까. 삼성그룹 내 복수의 관계자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이재용 시대 인재는 △선대 회장 체제에서 중용되지 않았고 △글로벌 감각을 갖춘 △실무형 인재로 압축된다.

 

그런 면에서 올 5월 단행된 삼성전자 인사를 주목하는 시선이 많다. 5월 인사는 당초 지난해 연말에 계획돼 있었다. 그러나 이 부회장에 대한 검찰수사 등 대내외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계속 미뤄졌다. 그러다 이 부회장이 구속된 이후에야 진행됐다. 사실상 ‘총수 부재’를 감안한 인사란 얘기다. 5월 부사장 승진 인사의 특징은 실무형·글로벌 인재의 중용이다. 황정욱 무선사업부 부사장이 대표적 인물이다. 황 부사장은 1984년부터 삼성전자 연구실 등을 거쳐 2001년 VD(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로 자리를 옮긴 실무형 인사이자, 한때 북미개발팀 등 해외 연관 부서에서 근무하며 국제적 감각을 키웠다.

 

김석기 VD사업부 부사장과 이상훈·이재승 생활가전사업부 부사장 모두 공학도 출신으로 입사 이래 계속 R&D 파트에 몸담아온 실무형 인사로 분류된다. 김석기 부사장은 삼성전자 연구실에 입사한 후 30여 년간 VD사업부를 이끈 디스플레이 전문가다. 이상훈 부사장은 개발팀으로 입사해 2009년 생활가전사업부로 자리를 옮겼고, 이재승 부사장은 삼성전자 냉동공조연구실에서 시작해 2006년부터 생활가전사업부에서 근무 중이다.

 

김정환 중남미총괄 부사장과 홍현칠 서남아총괄 부사장은 계속 해외파트를 담당해 풍부한 글로벌 감각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정환 부사장은 1984년 삼성전자 수출관리부를 시작으로 구주총괄 SESA(스페인)법인장 등을 거쳐 2014년부터 중남미총괄을 맡고 있다. 홍현칠 부사장은 1987년 삼성전자 음향수출2과로 입사, 중남미총괄 등을 역임하고 2014년부터 서남아총괄 및 SIEL-S판매부문장을 겸하고 있다. 구주지역 총괄을 맡게 된 김문수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 전략마케팅팀장 부사장도 ‘이재용의 남자’로 통한다.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 고동진 무선사업부 사장, 손영권 전략혁신센터 사장, 데이비드 은 넥스트삼성 사장, 김태한 삼성바이오로직스 사장, 안민수 삼성화재 사장, 윤용암 삼성증권 사장, 정현호 전 미래전략실 인사팀장(왼쪽부터) ⓒ 시사저널 임준선·연합뉴스

 

데이비드 은·손영권 사장 M&A 진두 지휘

 

전도유망한 기술 기업을 발굴해 M&A에 나선다는 것 역시 이재용식 경영의 특징이다. 밑그림을 그리는 작업은 손영권 삼성전자 전략혁신센터(SSIC) 사장과 데이비드 은 넥스트삼성 사장이 담당할 것으로 보인다. 두 사람은 모두 이재용 부회장이 영입한 인재들이다. 손 사장은 인텔·퀀텀·하이닉스반도체(현 SK하이닉스) 등 글로벌 기업을 거쳤다. 전장(電裝)기업 하만인터내셔널 인수를 성사시킨 주역이기도 하다. 손 사장은 현재 하만의 이사도 맡고 있을 정도로 삼성전자 미국법인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데이비드 은 사장은 2012년 삼성에 합류한 이후 글로벌이노베이션센터(GIC) 수장을 맡아 상당한 성과를 냈다. 2014년 ‘스마트싱스’와 2015년 ‘루프페이’를 인수한 게 대표적이다.

 

이재용 체제의 또 다른 성장축인 금융 부문에서는 안민수 삼성화재 사장과 윤용암 삼성증권 사장이 대표주자로 거론되고 있다. 윤 사장은 1979년 삼성물산에 입사해 삼성물산 미주본사 그룹지원팀 팀장과 뉴욕지사 관리담당을 거쳐 삼성전자 북미총괄 전략기획팀장 등을 지냈다. 이후부터는 금융 계열사에 주로 몸을 담아왔다. 2001년 1월 이건희 회장이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에 위치한 MD앤더슨 암센터에서 폐암 수술을 받았을 때 윤 사장은 삼성물산 상사부문 뉴욕지사 관리팀장으로 근무하면서 삼성가(家) 사람들의 눈에 들었다. 당시에는 이재용 부회장도 학업을 끝마치고 병원에 상주하며 이건희 회장의 병수발을 도왔다. 윤 사장은 2012년 정기 인사에서 삼성자산운용 사장으로 승진했고 2년 뒤 삼성증권 사장에 선임되면서 이 회장 사람으로 보일 수 있지만, 이 부회장의 신임 또한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안민수 사장도 해외 금융 전문가로 분류된다. 삼성전자에 입사한 뒤 한동안 비서실에서 근무하다 삼성생명으로 자리를 옮겨 뉴욕투자법인 법인장과 자산포트폴리오 운영팀장, 자산운영 본부장 등을 지냈다. 이후 국내로 복귀해 삼성생명 금융사장단협의회 부사장을 거쳐 2013년 12월부터 삼성화재 사장을 맡아오고 있다. 올해 2월 연임이 확정되면서 앞으로도 계속 삼성화재를 이끌게 됐다.

 

바이오 부문에서는 김태한 삼성바이오로직스 사장이 눈에 띈다. 김 사장은 삼성그룹의 소재산업 계열사인 제일합섬(현 도레이케미칼)에 입사해 삼성종합화학 부장과 삼성토탈 전무, 삼성전자 부사장 등을 역임했다. 2011년 삼성바이오로직스 출범과 동시에 사장에 취임한 뒤 두 차례 연임에 성공했다. 이 부회장이 직접 챙기던 바이오 부문을 초기단계부터 맡아왔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재용 사람’으로 분류하기에 손색이 없다.

 

 

최근 사표 낸 정현호 前 인사팀장 ‘복귀설’

 

그렇다고 이재용 부회장이 현재의 경영진을 대폭 바꾸는 전면적인 쇄신책을 펼 가능성은 낮다. 그런 면에서 현재 이 부회장을 대신해 대외활동을 전담하고 있는 권오현 부회장도 당분간 자리를 지킬 것으로 보인다. 당장 그를 대체할 무게감 있는 인사를 찾기가 쉽지 않고, 올해 상반기 반도체 부분이 사상 최대 실적을 내는 등 괄목할 경영 성과를 냈기 때문이다.

 

최치훈 삼성물산 사장과 고동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사장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이들은 모두 이건희 회장의 측근인 동시에, 국제 경험과 실무 감각이 뛰어나다는 점에서 이재용 부회장의 인사 코드에도 부합한다. 최 사장은 1985년 삼성전자에 입사했지만, 1988년부터는 외국계 회사인 제너럴일렉트릭(GE)에 건너가 18년간 근무했다. 최 사장이 삼성과 인연을 맺은 것은 2007년 삼성전자가 그를 고문으로 영입하면서부터다. 이듬해 삼성전자 디지털프린팅사업부장(사장)을 시작으로 삼성SDI(2010년)와 삼성카드 사장(2011년)을 거쳤다. 선친은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고(故) 최경록 교통부 장관이다. 최 전 장관은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와 각별한 사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고동진 사장은 실무적인 면에서 상당한 주목을 받는 인물이다. 그는 삼성전자 무선개발실에서 10년 넘게 근무하며 갤럭시 시리즈 개발을 실질적으로 총괄해 왔다. 신종균 삼성전자 IM부문 사장이 하드웨어 전문가라면, 고동진 사장은 소프트웨어 방면에서 걸출한 능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뿐만 아니라 고 사장은 앞서 유럽연구소장과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해외상품기획그룹장 등을 역임하면서 글로벌 감각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일각에서는 올 2월말 미전실 해체와 함께 삼성을 떠났던 정현호 미래전략실 인사팀장(사장)의 복귀를 조심스럽게 점치는 시각도 있다. 정 전 사장은 덕수상고를 졸업한 뒤 연세대 경영학과와 미국 하버드대에서 경영학석사(MBA) 학위 과정을 밟았다. 공식 프로필에는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국제금융그룹 그룹장을 역임한 것으로 나오지만, 실질적으로는 이재용 부회장의 유학 시절 곁에서 실무 제반 사항을 책임진 ‘집사’ 역할을 했다는 게 삼성그룹 안팎의 공통된 설명이다. 그가 미전실에서도 핵심인 인사팀장에 중용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난번 미전실 해체 당시 팀장급 전원에게 사표를 받는 과정에서 삼성을 떠났지만, 조만간 이 부회장이 다시 부를 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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