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뚫은 칼끝 박근혜로 향한다
  • 송응철 기자 (sec@sisajournal.com)
  • 승인 2017.08.26 16:39
  • 호수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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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 판결에서 이재용 부회장의 ‘뇌물공여’ 혐의 인정돼

 

성역(聖域)은 깨졌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법원이 실형을 선고하면서, 삼성 내에서 ‘노조 설립’과 함께 한 번도 깨지지 않았던 ‘총수 구속’이라는 금기가 무너졌다.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돼 올해 2월28일 구속 기소된 이 부회장은 50여 차례 이상 구치소와 재판장을 오가며 재판을 받아왔다. 그런 이 부회장에게 특검은 8월7일 징역 12년의 중형을 구형했고, 8월25일 1심 재판부는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이로써 이 부회장을 뚫은 검찰의 칼끝은 박근혜 전 대통령으로 향할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과 삼성은 물론, 박 전 대통령의 향후 험로(險路)가 예상되는 대목이다.

 

 

이미 대형 로펌 중심으로 실형 기류 감지돼

 

이재용 부회장이 ‘옥살이’를 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2015년 단행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다. 특검은 합병의 목적을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로 봤다.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최순실 일가에게 뇌물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특검은 이 부회장에게 뇌물공여·횡령·재산국외도피·범죄수익 은닉·국회 위증 등 5개 혐의를 적용했다. 핵심은 뇌물공여 혐의다. 이 부회장의 뇌물죄가 성립돼야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제3자 뇌물죄’를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특검이 그동안 뇌물죄 성립의 전제조건인 ‘대가성’을 입증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온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5년 5월 경기도 평택 국제화계획지구에서 열린 삼성전자 반도체 평택공장 기공식에 참석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이야기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이 부회장 측은 양사의 합병이 경영권 승계와 전혀 무관하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계열사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순환출자 구조 정리 작업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이 부회장은 또 최순실 일가에 대한 지원은 미래전략실에서 주도했는데, 이런 사실을 자신은 전혀 몰랐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에 힘을 싣기 위해 삼성전자는 지주사 전환 계획을 전면 폐기하기도 했다. 삼성전자의 지주사 전환은 ‘이재용 체제’로의 세대교체의 핵심 절차로 거론돼 왔다. 만약 지주사 전환을 강행할 경우, 경영권 승계가 ‘현재진행형’임을 자인하는 형국이 된다.

 

당초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 부회장의 무죄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기됐다. 재판 과정에서 뇌물공여 혐의와 관련된 결정적인 증거가 나오지 않아서다. 그러나 다양한 정황 증거들과 국민 여론 등을 감안하면 실형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의견이 대체적인 시각이었다. 대형 로펌을 중심으로 이런 기류가 사전에 포착되기도 했다. 이 부회장은 그동안 법무법인 태평양을 중심으로 초호화 변호인단을 구성해 재판에 대응해 왔다. 그러나 일부 유명 로펌 소속 변호사들은 이 부회장 재판에 방청객으로 참석해 재판 내용을 분석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 부회장이 1심에서 실형을 면치 못할 것으로 판단, 2심 재판을 수임하기 위한 대형 법무법인의 사전작업이라는 것이 법조계의 해석이다.

 

재판부가 이 부회장에게 징역 5년을 선고하면서 예상은 현실이 됐다. 이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의 도움을 기대하고 뇌물을 제공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재판부는 “이번 사건은 정치와 자본권력의 부도덕한 밀착이라고 판단된다”며 “정경유착이 과거사가 아닌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에서 충격을 줬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이어 “대통령의 지원 요구에 따라 뇌물을 건넨 것이 명백하다”며 “이재용 부회장은 승계 작업의 주체이자 최다 이익을 얻게 된다”고 덧붙였다. 다만, 재판부는 “대통령의 요구에 수동적으로 뇌물을 건네고, 그 요구를 쉽게 거절하거나 무시하기는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고 참작사유를 밝혔다.

 

 

선고문에 ‘박 전 대통령의 적극적 개입’ 담겨

 

이번 판결로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그룹 창사 이래 첫 구속된 총수가 됐다. 삼성 측은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지만,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그간 삼성 측은 이 부회장 구속으로 생긴 경영공백의 어려움을 호소해 왔다. 그룹 계열사들은 현재 자체적인 경영을 하고 있는데, 삼성의 경우 전문경영인 체계가 잘 잡혀 있어 각 계열사들의 경영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삼성 측이 우려하는 점은 이 부회장의 부재로 기업 인수·합병(M&A) 등 대규모 자금이 투입되는 결정이 신속하게 이뤄지지 않으리란 것이다. 이 때문에 차세대 먹거리를 발굴하는 작업에도 악영향이 있으리란 것이었다.

 

그러면서 삼성은 이 부회장 구속 이후 그동안 진행해 온 기업 M&A 계획이 전면 중단된 점을 내세웠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11월, 9조원을 들여 미국 전장기업 하만인터내셔널을 인수한 바 있다. 차세대 사업으로 떠오른 자율주행과 인공지능(AI) 등에 대한 투자를 강화한 것이다. 이후 삼성은 미래 먹거리 발굴을 위해 AI(인공지능) 관련 기업 몇 곳을 물망에 올려 M&A를 추진 중이었다. 그러나 이 부회장이 구속되면서 계획이 전면 중단됐다. 그러면서 삼성 측은 글로벌 경쟁사들이 적극적인 M&A를 통해 신(新)성장동력을 확보하고 있는 상황이니만큼, 경영 공백이 장기화할 경우 자사가 경쟁 우위에서 밀릴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내비쳐왔다.

 


이번 세기의 판결로 가장 당혹스러운 상황에 놓인 쪽은 박근혜 전 대통령 측이다. 이재용 부회장의 뇌물죄가 인정되면서, 박 전 대통령의 뇌물수수 관련 재판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뇌물공여자의 혐의가 인정되면, 수뢰자 역시 유죄 판단을 받을 공산이 크다. 특히 이 부회장에 대한 선고문에 박 전 대통령이 최순실 일가에 대한 삼성의 지원에 적극적으로 개입한 사실이 담겨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삼성그룹의 승계 과정에 관심을 가졌을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에게 승마 지원을 구체적으로 요구하고, 지원이 이뤄진 후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이 부회장에게 최순실의 동계영재센터 계획서를 직접 전달했다’ 등이 그것이다.

 

한편, 재판부는 이 부회장과 함께 재판에 넘겨진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 실장(부회장)과 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차장(사장)에게는 각각 징역 4년씩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또 박상진 전 삼성전자 사장에게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황성수 전 삼성전자 전무에게는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각각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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