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덕꾸러기 신세 된 계란? 그래도 ‘국민 먹거리’
  • 김유진 푸드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8.28 13:22
  • 호수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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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진의 시사미식] 살충제 계란 파동 속, 더욱 따뜻하게 살아나는 ‘계란의 추억’

 

인간의 뇌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단어를 들으면 자연스럽게 이미지가 떠오른다. 개인차는 있겠지만, 사랑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하트 모양·붉은색·데이트·키스하는 장면 등 연관 이미지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단어가 이어져 문장이 되면 뇌는 무의식 속 추억들을 이어 붙이느라 바빠진다. 말하는 사람이 뜸을 들이면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같이 간 거야? 아무도 모르게?” 추궁이 속사포처럼 이어진다. 상상을 확인하고 싶어서다. 그러니 내 주위의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고 싶다면 그들 각각의 뇌에 각인되어 있는 호감을 끌어내고, 불행하게 만들고 싶다면 네거티브와 관련된 단어를 자주 가져다 쓰면 된다.

 

© 사진=Pixabay

 

계란 비빔밥과 계란프라이, 계란찜

 

간단한 실험을 해 보자. 다음 단어를 들으면 어떤 이미지들이 떠오르는가? ‘살. 충. 제.’ 굳이 강요하지 않아도 털 빠진 닭과 파기되는 계란, 방독면을 쓴 검역인들, 붉은색 경고문이 차곡차곡 줄을 선다. 2017년 8월의 한반도는 살충제 계란으로 공포에 휩싸여 있다.

 

매스컴에서는 연일 살충제라는 단어가 거론된다. 네거티브는 또 다른 네거티브를 부르는 법. 위기를 극복하고자 음식점에서 살충제 검사 결과서를 복사해 붙이는 순간, 모든 노력은 수포로 돌아간다. 이미 언어의 바이러스를 살포한 뒤라 연관 이미지들이 삽시간에 고객의 뇌를 사로잡는다. 한발 더 나아가 ‘우리 업소는 살충제 계란을 사용하지 않습니다’라고 적으면 고객은 네거티브한 이미지에 교환가치까지 셈하게 된다. “그럼 가격을 깎아주나? 계란 대신 다른 서비스를 주나?” 질문은 다른 질문에게 바통을 넘겨준다. 판매가격은 고객과의 약속이고 계약이다. 아무리 살충제 계란이 위험하다 해도 고객은 순두부에서 김밥에서 샌드위치에서 이 녀석을 빼버리면 배신감을 느낀다. 차라리 선택을 포기한다. 그러니 무엇 무엇을 안 한다고 헛노력을 하지 말고 고객들을 위해 구체적으로 무엇을 애쓰고 있는지 보여주어야 거래가 성사된다. 계란 하면 떠오르는 가장 긍정적이고 따뜻한 추억을 고객의 뇌에 심어주어야 한다.

 

시장통에서 장사를 하시던 어머니는 퇴근길이면 어김없이 계란을 사오셨다. 재활용을 위해서인지 계란집 아저씨는 늘 종이판 위의 계란을 비닐에 담아 주셨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퀴퀴한 김치 냄새로 가득한 냉장고로 직행해서 한 알 한 알 대포알 장전하듯 쟁여 놓으신다. 그 모습을 기웃거리고 있노라면 마가린 간장 비빔밥이 아른거리고, 폭폭 소리를 내며 지져지는 계란프라이도 생각나고, 푸딩처럼 몽글거리던 계란찜도 떠올랐다. 단어와 이미지 하나가 무의식을 자극해 시각·청각·후각을 건드린다.

 

우리 집 계란 비빔밥은 여느 집과는 많이 달랐다. 커다란 스테인리스 대접에 마가린을 크게 두 숟가락 떠 넣고 계란을 톡 깨서 넣었다. 우윳빛 기름덩어리를 노란 계란이 덮치는 형국이 된다. 여기에 간장을 서너 숟가락 두르고 갓 지은 냄비밥을 양껏 퍼 담는다. 새하얗던 밥이 이내 갈색으로 젖어든다. 젓는 횟수가 반복될수록 윤기가 더해진다. 백반의 반지르르함과 계란비빔밥의 광택은 확실히 차이가 난다. 비빈 녀석은 밥알 하나하나가 코팅되어 형광불빛을 반사한다. 여기에 스멀스멀 코를 찌르는 고소한 향과 달큰한 온기가 침샘을 건드린다.

 

날계란의 향이 부담스러울 때는 기름을 넉넉하게 두르고 부친 프라이로 대신하는데, 이 경우에는 나물이 좀 필요하다. 같은 계란인데도 물리적·화학적 변화를 거치고 나면 어울리는 파트너도 변한다. 계란프라이를 바닥에 깔면 예의가 아니다. 밥과 나물을 차곡차곡 쌓아올린 뒤 맨 위에 폼 나게 얹어줘야 제 몫을 한다. 여기서 계란은 밥과 나물을 섞는 윤활유 역할을 한다. 둘이 거칠게 부딪히는 걸 완화해 주는 접착제 기능을 가진 윤활유. 입맛은 온도와 습도, 그리고 심리상태에 따라 변한다.

 

© 사진=Pixabay

많지는 않았지만, 시험 성적이 좋은 날은 으레 찾는 메뉴가 있었다. “엄니~ 파 많이 넣고 계란찜 좀 해 주세요.” 그깟 계란찜, 할 독자들도 있겠지만 전자레인지가 등장하기 전까지 솥 밥에 얹힌 계란찜을 먹어본 분이 아니라면 말 섞는 걸 참고 싶다. 간은 육젓이어야 한다. 살이 통통한 녀석을 사기대접 바닥에 깔고 계란 물을 휘휘 섞어 김이 화끈하게 오르는 밥솥에 넣고 십여 분간 뜸을 들이면 상상할 수 없는 맛이 나온다. 적당히 중탕한 찜은 위아래의 질감이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밥솥 찜은 삼중구조를 가지고 있다. 가장 윗부분은 두텁고 탄탄하다. 가운데는 공기층을 머금고 있는 스펀지 구조, 맨 아래층은 공기구멍이 좀 더 치밀한 수세미 구조를 하고 있다. 밥물이 넘쳐들어 탄수화물 막까지 형성하고 있는 이 덩어리를 숟가락으로 꾸욱 눌러 내린 뒤 욕심껏 밥공기로 옮긴다. 한국인이라면 열에 아홉은 뇌가 지시한다. “비벼!”

 

머리가 커지면서 계란에 대한 감흥이 좀 떨어졌다. 삼겹살이 차돌박이로 바뀌고, 백반이 정식으로 바뀌고, 라면이 국수전골로 바뀌면서 효용가치가 덜해진 게다. 서른 즈음부터 그랬다. 그렇듯 흔하디흔해 보였던 계란이 귀해진 지금, 계란 한 알이 우리에게 주는 따뜻한 추억이 다시 우리를 각성시킨다.

 

전주를 취재하던 어느 날, 수란이라는 친구를 만났다. 콩나물국밥을 시켰는데 작은 스테인리스 종지에 중탕한 계란을 내오는 것이 아닌가. 눈치 빠른 식당 이모의 코치가 시작된다. “일단 김 찢어 넣고 국물 몇 숟가락 집어넣어서 비비면 숙취들이 다 도망간다니까.” 그날 필자는 두 번을 더 청해 수란을 탐했다. 요즈음도 술이 과한 날은 수란을 직접 제조하는 데 딱히 그날의 맛이 되살아나지는 않는다. 그래도 뇌로 해장하는 셈이니 아쉬움이 길지는 않다.

 

온 나라가 계란 때문에 어수선하다. 기왕 고객을 잡아두고 싶다면 절대로 살충제라는 단어는 사용하지 말지어다. 대신 환하게 웃는 노모의 사진과 계란밥 이미지를 같이 디밀어 보자. 웃는 사진은 고객에게 호감을 산다. 살충제 검사 결과서보다 훨씬 강한 신뢰를 만들어준다. 그래도 굳이 검사 결과서를 붙여 증거하고 싶다면, ‘적합’이라는 단어에 노란색 형광펜으로 밑줄 쫙! 안전이라는 이미지는 노랑색과 결합하면 핵폭탄급 파워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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