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차 통상임금 소송 후폭풍에 재계 떨고 있다
  • 이석 기자 (ls@sisajournal.com)
  • 승인 2017.09.01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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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법원 계류 중인 통상임금 소송만 115건…“소모적 분쟁 막기 위한 조치 시급” 지적도

 

“우려했던 일이 현실화됐다. 최악의 시나리오다.”

 

8월31일 오전 기아차 통상임금 관련 선고가 난 직후 한 재계 임원이 한 말이다. 법원은 이날 “기아차는 원금 3126억원과 이자 1097억원 등 4223억원을 근로자들에게 지급하라”며 사실상 노조의 손을 들어줬다. 정기상여금과 중식비는 정기적․일률적․고정적으로 지급되는 만큼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었다.  

 

당초 노조는 “원금 6588억원에 이자 4338억원이 붙은 합계 1조926억원을 지급해 달라”며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판결 금액이 노조가 청구한 액수보다 40% 정도 깎였음에도 노동계는 환영의 목소리를 냈다. 민주노총 등은 “이번 통상임금 소송분은 노동자들에게 당연히 지급했어야 할 임금체불 채권이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시 서초구 양재동에 위치한 현대기아차 본사 © 사진=연합뉴스

 

판결 이후 노동계와 재계 표정 ‘극과 극’  

 

반면 재계는 우려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대한상공회의소 등 주요 경제단체들은 성명서를 통해 “대법원이 지난 2013년 제시한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을 무용지물로 만들었다”며 “그 동안 노사가 합의해온 임금관행을 무시하고 기업에게만 과도한 부담을 안기면서 경쟁력이 크게 떨어지게 됐다”고 밝혔다. 

 

당장 기아차의 경우 올해 영업이익 적자 전환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1심 판결에 대해 항소의 뜻을 밝혔지만, 법원이 인정한 4223억원을 공탁금을 즉시 예치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아차의 한 관계자는 “4223억원은 2만7424명의 근로자가 제기한 집단 소송의 일부다. 이번 판결로 회사가 실제 부담할 잠정 금액은 최소 1조원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기아차가 거둔 연간 영업이익(1조9470억원)의 절반을 넘는 금액이다.  

 

특히 기아차의 상반기 영업이익률은 3%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5.2%)에 비해 절반 가까이 하락했다. 당기순이익 역시 2013년까지 4조원에 육박했다. 하지만 2014년 2조원대로 무너진 후 계속 하락하고 있다. 올해는 당기순이익이 2조1700억원까지 추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내수 부진과 함께 중국 정부의 사드 보복 여파로 판매가 급감하면서 경쟁력이 크게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1조원 규모의 충당금을 적립해야 할 상황이어서 내부적으로 우려가 더하다. 기아차의 한 관계자는 “청구금액 대비 부담액이 일부 감액되긴 했지만 현 경영상황은 판결 금액 자체도 감내하기 어려운 형편”이라며 “특히 신의칙이 인정되지 않은 점은 매우 유감이다. 즉시 항소해 법리적 판단을 다시 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자동차업계에서는 기아차의 상여금 등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면 최소 10% 이상의 실질 임금 상승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업계 일각에서는 기아차의 손실이 하도급 업체로 전가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기도 한다. 중소기업중앙회의 한 관계자는 “법원의 기아차 통상임금 소송 판결에 대해 우려가 크다”며 “완성차 업계에서 늘어난 인건비 부담을 협력업체로 전가하게 되면 중소․중견 부품업체는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2심에서 판결이 뒤집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일례로 금호타이어도 현재 노조와 통상임금 소송을 진행 중이다. 1심에서는 기아차와 마찬가지로 법원이 노조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8월18일 항소심 재판부는 1심 판결을 취소하고 원고 패소 판결을 했다. 재판부는 “단체협약에서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원고들도 상여금이 통상임금에서 제외되고 있는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전에 진행된 아시아나항공이나 현대중공업, 현대미포조선의 통상임금 소송 역시 2심에서 뒤집힌 바 있다. 

 

하지만 2심에 이어 3심에서도 재판부가 노조의 손을 들어줄 경우 ‘후폭풍’이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바른정당 하태경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3년 이후 4년간 전국 100인 이상 사업장 1만여 개 중 192곳이 통상임금 소송을 벌였다. 이중 77곳은 소송이 마무리됐지만, 나머지 115곳은 여전히 통상임금 소송을 진행 중이다. 서울메트로와 기업은행, 현대모비스, 두산인프라코어, 현대제철, 쌍용자동차, 효성, 두산중공업 등이 줄줄이 판결을 앞두고 있다. 기아차 사건을 맡은 상고심 재판부가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따라 나머지 사건 역시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유사한 통상임금 소송도 잇따를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2013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으로 인정되면 기업이 떠안아야하는 추가 비용은 최대 38조5509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는 통상임금 판결의 영향으로 완성차 및 부품사에서만 2만3000명 이상이 일자리를 잃을 것으로 예상하기도 했다. 

 

기아자동차 근로자들이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해 달라며 회사를 상대로 낸 소송의 1심 선고가 내려진 8월31일 기아차 김성락 노조 지부장을 비롯한 노조관계자와 변호인들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일부 승소 판결을 받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통상임금으로 38조원대 추가 비용 우려

 

재계 안팎에서는 관련 법규정을 명확히 해서 혼란을 줄이는 것이 시급하다고 조언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기업의 임원은 “2013년 터진 갑을오토텍 임금 청구소송에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회사 경영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경우 신의칙에 따라 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며 “하지만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이나 ‘신의칙’에 대한 법원의 해석이 다르다 보니 판결이 제각각이다. 기업들의 혼란 역시 커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런 혼란을 막기 위해서는 관련 법개정이 시급하다는 얘기다. 

 

정치권 역시 비슷한 시각이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통상임금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정립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손금주 국민의당 수석대변인은 “통상임금 개념이 불분명해 사법부로 넘어가고, 대법원 판단이 미뤄지는 사이 하급심 판결이 엇갈리는 등 사회적 갈등이 확산되고 있다”며 “통상임금의 3요소인 정기성․일률성․고정성과 신의칙에 대한 기준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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