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 Talk] 대형 은행의 수장은 왜 비트코인을 공격했을까
  • 김회권 기자 (khg@sisajournal.com)
  • 승인 2017.09.14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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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몬 JP모건 CEO “비트코인은 사기” 발언 뒤 폭락한 비트코인

 

불과 일주일 전 500만원을 돌파했던 비트코인의 현재 가격은 이 기사를 쓰고 있는 시점에 447만원 대입니다. 약 10% 정도가 급락했습니다. 중국 정부가 9월4일 “경제 및 금융 질서에 심각한 혼란을 초래했다”며 새로운 가상화폐가 ICO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걸 금지했을 때도 일시적으로 폭락했는데 그건 실체가 분명한 악재였습니다. 규제가 강화됐다는 건 나쁜 소식이니까요. 하지만 비트코인은 곧장 만회하며 다시 상승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러면 지금의 폭락은 무엇 때문일까요. 외신들은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최고경영자(CEO)의 발언을 원인으로 지목합니다. 그는 9월12일 뉴욕에서 열린 투자자 콘퍼런스에서 비트코인 등의 가상화폐를 ‘사기’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비트코인을 튤립버블에 비교했습니다. “튤립버블보다 더 나쁜 결말이 될 것이다”는 비관적인 전망을 언급했는데요. 튤립버블(Tulip mania)은 17세기 네덜란드에서 벌어진 과열 투기현상으로, 사실상 최초의 거품 경제 현상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튤립 파동의 정점은 1637년 2월이었는데 튤립 한 송이가 숙련된 장인이 버는 연간 소득의 10배보다 더 많은 값으로 팔려 나갔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후 버블이 터졌고 튤립에 투자한 상인과 귀족들은 빈털터리가 됐습니다. 당시 잘 나가던 네덜란드가 영국에 경제대국의 자리를 넘겨주는 이유 중 하나로 튤립버블이 거론됩니다. 

 

"비트코인은 사기다" “튤립버블보다 더 나쁜 결말이 될 것이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최고경영자(CEO)의 발언은 비트코인의 폭락을 가져왔다. © 사진=AP연합

 

​비트코인 거래하는 직원 해고하겠다

 

이날 다이먼은 작심한 듯 쏟아냈습니다. “비트코인을 거래하는 직원은 즉시 해고할 것이다. 이유는 두 가지다. 취업 규칙 위반이고, 멍청하기 때문이다. 모두 위험한 일이다”라고 말입니다. 다이먼은 왜 이런 발언을 했을까요. 그의 정확한 속내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다이먼이 비트코인을 비판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줄곧 비슷한 발언을 해왔습니다. 2014년 10월 국제금융협회(IIF)의 연례 회의에서도 그는 “정부와 규제 당국이 장기간 비트코인을 키울 거라고 생각하는가? 나는 아니라고 생각 한다”고 말했습니다. 

 

일단 미국 대형은행의 수장이기에 금융권의 이익을 대변하는 얘기일 수 있습니다. 은행은 해외 송금 등 여러 업무에서 나오는 수수료가 중요한 수익원입니다. 그런데 가상화폐의 가장 큰 매력은 다름 아닌 송금입니다. 은행을 통해 송금할 경우 적지 않은 송금 수수료를 내야하지만 가상화폐는 은행보다 훨씬 낮은 비용으로 송금할 수 있습니다. 다만 지금 가상화폐를 이용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지만 이게 확대될수록 은행은 수익의 기둥을 뺏기게 됩니다. 물론 아직 먼 이야기지만 말입니다. JP모건체이스는 투자은행이니 입장이 좀 다를 수 있습니다만 큰 카테고리에서 은행의 역할이 감소하는 현실이 도래한다면 투자은행이나 증권사 등도 예외일 순 없습니다.

 

아마 올해 초만 해도 대형은행은 비트코인을 별 거 아닌 존재로 취급했을 겁니다. 올해 2월만 해도 채굴된 비트코인 약 1600만개의 시가총액은 160억 달러에 불과했습니다. 160억 달러가 세계 경제에 주는 영향은 거의 없습니다. CIA가 매년 발행하는 ‘월드 팩트 북(The World Factbook)’에 따르면 2016년 12월31일 기준으로 전 세계 화폐 총액은 약 97조 달러에 달합니다. 160억 달러는 전 세계 화폐 총액의 0.02%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하나의 변수가 생겼으니 비트코인의 급등입니다. 2017년 2월 비트코인은 1000달러 수준이었지만 지금 4000달러 수준에서 유지되고 있습니다. 골드만삭스는 “올해 6000달러까지 갈 수 있다”는 보고서를 내놨습니다. 급등도 급등이지만 사람들이 점점 블록체인과 가상화폐, 비트코인에 관심을 가지는 건 신경 쓰이는 일일 겁니다. 그러기 전에 미리 싹을 잘라버리려는 한마디였을 수 있습니다. 

 

CIA가 매년 발행하는 '월드 팩트 북(The World Factbook)에 따르면 2016년 12월31일 기준으로 전 세계 화폐 총액은 약 97조 달러에 달한다. 비트코인의 시가총액은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 사진=연합뉴스

 

비트코인엔 비판, 이더리움엔 관심 

 

다이먼 CEO의 발언이 가상화폐에 악재가 된 만큼 그가 가진 가상화폐에 대한 생각이 궁금해집니다. 흥미로운 건, 그가 비트코인은 비판하지만 이더리움에는 관심을 갖고 있다는 점입니다. 올해 2월 마이크로소프트를 중심으로 블록체인 기술 이용에 협력하는 ‘엔터프라이즈 이더리움 얼라이언스(EEA)’가 만들어졌는데, JP모건체이스는 여기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목표는 글로벌 기업이 서로 협력하고 연구해 비트코인이 아닌 이더리움을 블록체인 기술의 표준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은행들은 비트코인은 반대하지만 비트코인이 보여준 블록체인 기술에는 큰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비트코인의 거래 기록은 관리 주체가 없으며 단지 ‘A에서 B로 비트코인을 송금했다’는 거래 기록만을 보관합니다. 어딘가에 위치한 중앙 서버가 아닌 전 세계 컴퓨터 네트워크에 분산됩니다. 관리기록은 10분마다 업데이트 되는 ‘블록’이라는 단위로 관리되고 새로 생성된 블록의 거래 기록을 포함해 연쇄적으로 쌓입니다. 이런 구조를 ‘블록체인(Blockchain)’이라고 하는데 거래 기록을 확인하려면 엄청난 계산 능력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기록의 위조가 매우 어렵고 거래 기록이 손상되기 어렵습니다. 

 

은행이 노리는 건 비트코인이 아니라 저 수준 높고 저렴한 보안 기술입니다. 채권이나 파생상품 같은 전통적인 금융 상품을 거대한 컴퓨터와 서버 등에 거액을 투자하지 않고 기록하고 보관할 수 있다? 은행 입장에서 군침 도는 얘기입니다. 자산규모 세계 5위권인 스페인 산탄데르 은행은 블록체인에 기술을 도입할 경우 금융 업계의 비용 절감액을 연간 200억 달러(22조 6500억원)로 추산했습니다. 투자비용을 줄이면서 동시에 데이터베이스를 비밀리에 보관할 가능성을 비트코인에서 찾은 거죠.

 

이런 매력적인 구조를 발견했지만 은행이 스스로 블록체인형 시스템을 개발할 수는 없습니다. 여기에 주목한 곳이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소프트웨어 기업입니다. 앞서 언급한대로 마이크로소프트는 은행 등 대기업과 협의체를 만들었고 그들을 위해 블록체인 소프트웨어 개발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금융 데이터를 블록체인을 이용해 보관하고 싶은 은행에 시스템과 클라우드 서버를 제공하는 사업을 새롭게 찾았습니다. 은행 역시 마이크로소프트의 서버라면 신뢰할 수 있으니 서로 윈윈하는 셈입니다. 비트코인과 다른 점은? 비트코인의 거래 기록은 공개된 네트워크에 분산 보관되지만 은행은 그들의 관리 아래 둘 수 있는 기업형 서버에 보관하는 게 다릅니다.

 

사람들의 투기 열풍을 진심으로 우려해서? 가상화폐의 영향력 확대를 우려해서? 아니면 이더리움을 블록체인의 표준 기술로 만들기 위해서? 다이먼 CEO가 비트코인을 비판한 이유는 아마 이 속에 있지 않을까요. 다만 JP모건의 수장이 직접 작심하고 발언할 정도로 가상화폐의 영향력은 꽤 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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