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北 점령 타깃 서해 최전선 백령도를 가다
  • 조해수 기자 (chs900@sisajournal.com)
  • 승인 2017.09.18 09:48
  • 호수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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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도발에 눈 하나 꿈쩍 않는다”

 

“(백령도) 괴뢰 6해병려단 본부, 연평도서 방어부대 본부를 비롯한 적 대상물들은 순식간에 불도가니 속에 잠기고…(김정은 조선노동당 위원장 겸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이) 오직 총대로 적들을 무자비하게 쓸어버리고 서울을 단숨에 타고 앉으며 남반부를 평정할 생각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시었다.”

 

지난 8월25일 ‘선군절’을 맞아 북한 조선중앙TV에서는 백령도와 연평도 등 서해 최전방 섬들을 점령하는 가상훈련 모습을 대대적으로 방영했다. 화면에는 자주포와 방사포가 집중 포격을 가하고 하늘에서는 낙하산을 탄 북한 공수부대원들이, 바다에서는 고무단정을 탄 특수부대원들이 침투 훈련을 하는 모습이 담겼다.

 

이날 훈련에는 김정은이 직접 현지 시찰을 나와 가상훈련을 지도했다. 김정은은 지난 5월에도 서해 최전방인 장재도와 무도 등 해안포 부대들을 방문해 백령도, 연평도 등에 대한 타격 계획을 승인한 바 있다. 당시 조선중앙TV는 김 위원장의 시찰 모습을 자세히 소개하며 “일단 명령이 내리면 쏠라닥질거리는(못된 장난을 하는) 적들의 사등뼈(척추)를 분질러버려야 한다고 단호히 말씀하시었습니다”라고 김 위원장의 멘트를 전하기도 했다.

 

군사·대북 전문가들은 북한의 국지도발이 있을 경우 그 첫 번째 지역으로 백령도 등 최북단 도서를 꼽고 있다. 백령도는 북한 황해도 장산곶에서 불과 14㎞ 떨어져 있다. 반면 인천항까지의 거리는 200㎞나 된다.

 

9월13일 인천광역시 옹진군 백령도 모습. © 시사저널 고성준

 

백령도는 北의 목에 걸린 가시…끊임없는 국지도발

 

백령도에 대한 북한의 도발 가능성을 얘기할 때 대만 금문도(金門島) 사례가 거론되곤 한다. 1958년 8월 중화인민공화국의 마오쩌둥(毛澤東) 주석은 금문도에 대한 공격을 단행했다. 중공군은 10월5일까지 44일간 계속된 전투에서 47만 발의 포탄을 퍼부었다. 대만은 지하 요새에서 끈질기게 항전해 중공군의 침공을 막아냈지만, 중공군의 금문도 포격은 1979년까지 이어졌다.

 

중국이 금문도에 이처럼 집착한 것은 금문도가 가지는 지리적 특성 때문이다. 금문도는 대만의 섬이지만 중국 본토와 더 가깝다. 금문도와 대만 간 거리는 190㎞나 되지만 중국 본토와의 거리는 1.8㎞에 불과하다. 지리적 특성이 백령도와 흡사하다. 금문도와 마찬가지로 백령도는 우리나라에서 군사적으로 가장 중요한 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한의 턱밑에 자리한 백령도는 ‘공격형 요새’ 역할을 수행한다. 북한에는 목에 걸린 가시나 다름없다. 이 때문에 북한이 국지도발 위협을 끊임없이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백령도는 북한의 도발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았다. 2010년 3월26일 천안함 폭침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같은 해 11월23일에는 연평도 포격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보다 앞서 서해 최북단 해역에서는 1999년 6월15일 1차 연평해전, 2002년 6월29일 2차 연평해전, 2009년 11월10일 대청해전이 발발했다.

 

시사저널은 9월13일 최북단 섬 백령도를 찾았다. 북한이 8월26일과 29일 두 차례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데 이어 9월3일에는 제6차 핵실험을 단행하면서 남북 간 긴장 상태가 최고조로 치닫고 있는 때였다. 북한정권 수립일인 9·9절은 무사히 지나갔지만, 추가적인 도발이 계속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실제로 9월15일 북한은 평양시 순안 일대에서 일본 상공을 지나 북태평양 해상으로 탄도미사일 1발을 발사했다.

 

인청항에서 출발해 뱃길로 4~5시간 걸리는 백령도에는 2000여 가구 5000여 명의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오후 1시에 출발한 여객선은 거의 비어 있었다. 빼어난 자연경관으로 백령도를 찾는 관광객이 매년 수만 명에 이른다. 그러나 남북관계가 급랭할 때마다 백령도를 찾는 관광객은 급감하곤 했다. 여객선 관계자는 “올해 6월에 백령도로 가는 여객선이 1척 추가됐다. 오전에 2척이 출발하고 오후에 1척이 출발한다. 이로 인해 백령도가 1박2일 생활권으로 돌아오게 됐다”면서 “오후에 출발하는 배편에는 상대적으로 탑승객이 적다. 관광객이 줄어들지는 않았다. 오전에 운항하는 여객선에는 손님들이 거의 꽉 찬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백령도를 찾는 관광객들에게서 불안감은 찾아볼 수 없었다. 울산에서 단체관광을 왔다는 한 60대 여성은 “한두 달 전에 예약하고 백령도를 찾았다”면서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고 핵실험을 했다지만 백령도가 특별히 위험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 백령도 숙박시설은 관광객들로 빈방을 찾기 힘들었다. 연평도 포격 사건 당시 백령도의 관광업이 직격탄을 맞은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백령도 숙박업소 관계자는 “주말에는 예약을 하지 않고서는 방을 구할 수 없다. 추석 연휴가 시작되면 관광객들이 더 많이 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면서 “천안함 폭침 사건 때나 연평도 포격 사건 때는 관광객이 뚝 끊겼는데 이번에는 뭍에 있는 사람들도 별 신경을 안 쓰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백령도에 첫발을 내딛게 되면 이 섬이 북한과 바로 맞닿아 있는 최전선임을 실감하게 된다. 용기포 신항 앞에는 해병대 제6여단이 보유하고 있는 탱크와 장갑차 등이 전시돼 있다. 해병대 제6여단 흑룡부대를 나타내는 ‘黑龍(흑룡)’이라는 빨간 글씨는 묘한 긴장감마저 느끼게 했다. 백령도는 군부대를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백령도의 한 주민은 “백령도에는 군인들이 6000명 정도 거주하는데 주민들보다 많다”면서 “백령도는 군부대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보면 된다. 관광이 활성화된 것도 10년 정도밖에 안 됐다. 그마저도 전면 개방은 5년밖에 안 됐다”고 밝혔다.

 

백령도에서 바라본 북한 황해도. © 시사저널 고성준

 

육안으로 보이는 북녘땅…하늘을 수놓는 벌컨포

 

백령도에서는 해병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오후 6시 무렵 도로를 따라 행군하고 있는 해병대가 보이기도 했다. 휴가를 마치고 부대로 복귀한다는 한 해병은 “백령도가 ‘대한민국의 끝’이라는 사명감을 갖고 군복무를 하고 있다”면서 “최근 북한의 연이은 도발 이후 군부대에서도 항상 긴장감을 가지고 임무에 임한다. 며칠 전 백령도 방어훈련을 대대적으로 갖기도 했다”고 말했다. 해병대 6여단은 지난 9월5~7일 코브라 공격헬기(AH-1S), 한국형상륙돌격장갑차(KAAV), 전차(M48A3K), 벌컨포, 제독차량 등을 투입해 주·야간 FTX(야외기동훈련)를 진행했다.

 

백령도 면사무소에서 약 1㎞ 떨어진 뒷산에는 심청각이 있다. 심청전에서 심청이 빠진 인당수가 백령도 근해라 이를 기념해 만든 전망대다. 심청각에서는 맨눈으로도 북녘땅을 볼 수 있다. 백령도가 대한민국의 끝이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는 순간이다. 북한은 백령도에서 가까운 고암포에 특수부대와 공기부양정 등 기습침투 병력을 배치해 놓았는데, 이를 통해 침투를 단행한다면 1시간 내에 백령도에 닿을 수 있다.

 

심청각에서 북녘을 바라보고 있던 저녁 7시쯤 폭죽 소리가 요란하더니 불꽃이 하늘을 수놓았다. 1분 정도 간격으로 폭죽이 몇 차례 계속됐다. 백령도의 한 주민은 “폭죽이 아니고 벌컨포를 쏘는 것이다”면서 “군에서 훈련 차원으로 벌컨포를 쏜다. 최근 북한의 도발이 있은 후에는 종종 시험발사를 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북한이 육안으로 보이고 벌컨포가 쏘아 올려지며, 주민보다 군인이 더 많은 섬 백령도. 북한이 도발을 감행하지 않아도 주민들에게는 상시적인 불안감이 생길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북한이 백령도 등 서해 최북단 도서 지역에 대한 도발을 멈추지 않는 것은 주민들에게 전쟁 공포심을 조성해 섬을 떠나게 하려는 심리적 노림수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연평도 포격 사건이 일어난 후 주민들은 정부에 집단 이주를 요구했다. 당시 연평도 주민들은 집단 이주 장소인 김포 양곡지구에 머물렀는데, 포격 이후 수개월 동안 연평도는 버려진 섬으로 전락하기도 했다. 이런 와중에 북한의 백령도·연평도 점령 훈련이 단행되자 바른정당은 “북한이 대한민국 영토를 공공연하게 무력으로 점령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문재인 정부는 북한의 공격 목표가 된 백령도·연평도 주민들을 위해 아무런 조치도 취하고 있지 않다”면서 “무기력한 문재인 정부를 언제까지 믿고 기다려야 할 것인지 국민들은 벙어리 냉가슴만 앓고 있다”고 비판했다.

 

9월13일 인천광역시 옹진군 백령도 천안함 46용사 위령탑. © 시사저널 고성준

 

백령도 주민 “불안감 전혀 없어…안보 의식 높아”

 

그러나 백령도 주민들은 북한의 어떤 도발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안식 진촌6리 이장은 “뭍에서는 북한의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 때문에 우리 주민들이 두려워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이골이 난 사람들이다”면서 “천안함 폭침 사건이 났을 때는 ‘정말 전쟁이 터지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연평도 포격 사건 때도 불안했다. 그러나 이런 일들을 겪고 나니까 웬만한 일에 대해서는 무신경해졌다”고 말했다. 김복남 진천4리 이장은 “전쟁 불안감 이런 얘기는 다 뭍에서 하는 얘기다. 백령도 사정을 전혀 모르고 하는 유언비어다. 우리는 전혀 불안하지 않다”면서 “9월20일에 옹진 군민의 날 행사를 한다. 2년마다 각 섬에 떨어져 있던 7개 면 주민들이 모두 모인다. 군민의 날 행사를 준비하느라 바빠서 북한 걱정할 틈도 없다”고 밝혔다.

 

백령도 토박이인 정영암 의용소방대장은 “백령도 주민들의 안보 의식은 어느 곳보다 높다”고 강조했다. 정 대장의 아버지는 한국전쟁 피난민이었다. 한국전쟁 당시 황해도에서 가까운 백령도로 피난 왔다가 결국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백령도에는 북한 사투리를 쓰는 주민들이 많다. 피난민 1세대들은 거의 유명을 달리했지만, 섬 주민 절반 이상이 피난민 2·3세대라고 한다. 정 대장은 “지금까지 여기에 살면서 백령도를 떠나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아들, 손자까지 모두 백령도에 살고 있다”면서 “아버지 세대로부터 전쟁의 고통과 무서움을 생생히 전달받았다. 이 때문에 북한에 대한 안보 의식은 백령도 주민이라면 모두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우리 군을 믿는다”고 힘주어 말했다.

 

천안함 폭침 사건, 연평도 포격 사건을 겪으면서 백령도의 방호 시설도 정비를 마쳤다. 연평도 포격 사건이 발생한 2010년 백령도의 방공호는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할 만큼 노후돼 있었다. 67개에 달하는 방공호 대부분이 1960〜70년대에 지어졌기 때문에 첨단화된 현대전에서 별다른 효용이 없다는 점이 지적됐다.

 

백령도 면사무소 인근 주민 대피소. © 시사저널 고성준

그러나 지금의 방공호는 옛날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백령도 면사무소 옆에 위치한 방공호는 460명을 수용할 정도 크기에 흡사 카페를 연상할 만큼 세련되고 청결하게 운용되고 있었다. 백령도 면사무소 민방위 팀장은 “2012년 말~2013년 초에 모두 26개 방공호를 준공했다. 400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방공호와 중형 방공호가 각각 3개, 나머지 20개는 소형 방공호다. 대형 방공호 안에는 컴퓨터가 2대 정도 설치돼 있고, 화상전화를 할 수 있는 공간도 따로 마련돼 있다”면서 “백령도 주민등록상 인구가 5600여 명인데 방공호 수용률은 95%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9월1일부터 시작된 꽃게잡이 조업도 예전과 다름없이 진행되고 있다. 이환선 연지어촌계장은 “북한의 도발 때문에 불이익을 받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중국 불법어선이 더 큰 문제”라면서 “지난 4~6월 꽃게 성어기에는 중국 어선이 거의 보이지 않았는데, 지금은 벌써부터 몰려오고 있다”고 밝혔다. 백령도 면사무소 관계자는 “지난 5월 인천시가 서해평화협력 사업의 일환으로 백령도와 연평도 등 최북단 서해 5도 어장에 대해 ‘남북 공동어로’를 제안했다”면서 “그러나 현재 남북 상황이 악화된 만큼 먼 미래의 일이 되고 말았다. 지금은 중국 어선을 막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9월14일 백령도에서 인천으로 출발하는 배는 관광객들로 가득 찼다. 백령도를 출발한 직후 배 안의 TV를 통해 우리 정부가 800만 달러 규모의 대북 인도적 지원을 결정한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승객들 사이에서 “미사일 쏘라고 우리 정부가 알아서 지원해 주네. 핵폭탄 지원금을 준다는 거냐”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북한은 이튿날인 15일 중장거리탄도미사일(IRBM)을 발사했다. 백령도는 지금도 고요한 긴장감 속에 최북단을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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