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북한 ‘셋째 뚱보’도 싫고, 한국 사드도 싫다”
  • 중국 옌볜=유지만 기자·모종혁 중국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9.19 09:58
  • 호수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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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핵실험’ ‘南 사드 배치’에 대한 북·중 접경민들의 불만

 

한반도의 긴장상태가 좀처럼 가라앉을 줄 모르고 있다. 9월3일 북한이 6차 핵실험을 한 이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가 12일 통과됐다. 북한은 대북제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9월15일 중거리탄도미사일을 또 발사했다. 유엔은 16일 안보리를 개최하고 추가적인 대북제재 논의에 나섰다.

 

한국의 상황도 녹록지 않다. 북한의 도발로 인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추가 배치가 결정된 이후, 해빙 무드를 보였던 한·중 관계가 급속히 냉각되기 시작했다. 중국 언론은 연일 한국을 비난하고 나섰으며, 중국 정부는 김장수 주중 대사를 불러 따져 묻기도 했다. 중국은 유엔 안보리의 추가 대북제재에 동참하기는 했지만, 국경을 맞대고 있는 북한을 방치할 수만은 없는 입장이다. 중·미 간 정치적 완충지대인 북한을 관리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중국의 추가 대북제재에 세관을 통한 무역은 움츠러들었다. 9월13일 중국 지린성 훈춘시에 있는 권하 세관. 북한 입국 대기 중인 트럭(오른쪽)이 1대만 있다. © 시사저널 유지만

 

“핵실험 하는 날, 옌지도 흔들려”

 

시사저널은 9월11~14일 중국 지린성(吉林省) 옌볜조선족자치주(延邊朝鮮族自治州) 옌지시와 훈춘시 등을 다녀왔다. 현지에서 최근의 한·중 관계 및 북·중 관계에 대한 여러 의견을 들을 수 있었다. 특히 최근 한·중 관계가 다시 냉각되면서 한국인에 대한 검문·검색이 강화된 사실도 확인했다. 북·중 접경지역 주민들은 북한에 대해서도 매우 비판적이었다. 문재인 정권이 외교적인 방안을 잘못 추진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중국 옌지시에 사는 조선족 김아무개씨(65)는 옌볜대학 근처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다. 북한이 6차 핵실험을 실시한 함경북도 풍계리 길주군 일대와 옌지시는 직선거리로 200㎞가량 떨어져 있다. 하지만 김씨는 그날을 똑똑히 기억했다. 핵실험으로 인해 발생한 지진의 여파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는 이렇게 기억했다.

 

“내 사무실이 14층인데, 그날(9월3일) 오전에 갑자기 열어놓은 창문을 통해 세찬 바람이 밀려들어오는 것 같았다. 창가에 놓은 화분이 흔들렸기 때문이다. ‘무슨 바람이 이렇게 강한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건물이 흔들린 것이었다. 직감적으로 북한이 무엇인가를 했다고 느꼈다.”

 

옌지는 옌볜에서 조선족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지역이다. 이곳에서 만난 조선족 인사들은 하나같이 북한을 좋아하지 않았다. 한 지역 원로 인사는 “여기서는 아무도 ‘김정은 위원장’이라 부르지 않는다. 모두들 ‘싼팡’(三胖·셋째 뚱보)이라 부른다. 코앞에서 핵실험을 하고 있으니 불안하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과거 김정일이 만경대에 가서 ‘우리 최대의 적은 중국이 될 것’이라 말한 적이 있다더라. 남한이나 미국 정권은 위협은 될지언정 북한 정권을 무너뜨리지는 못하겠지만, 중국은 마음만 먹으면 북한을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인지 김정은이 집권한 후에는 북·중 관계가 상당히 굳었다. 대대로 중국 주석이 취임 직후 평양을 방문하던 관례도 깨졌다”고 말했다.

 

옌볜의 북·중 접경지역 주민들은 김정은 정권에 대해 강한 반감을 보였으며, 문재인 정권에 대한 불편한 기색도 숨기지 않았다. 특히 사드 추가 배치에 대해 “외교적 패착”이라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정치적 카드로만 활용했어야 할 사드 배치 문제를 직접 실행해 버려 한·중 관계를 굳어지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옌지시에서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리아무개씨(55)는 “현재 중국은 어느 때보다 강한 대북제재에 동참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때에 주변국을 설득하지는 않고 사드 배치에만 열중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중국의 대북제재 동참은 겉으로 보기에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 듯했다. 13일 찾은 훈춘시 권하(圈河) 세관에는 북한으로 들어가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트럭이 한 대밖에 없었다. 기자를 안내한 현지인은 “이곳은 중국 동쪽 국경 끝에 위치한 세관이라 평소에는 트럭들이 줄지어 서 있는데, 대북제재 이후 물량이 급격히 줄었다”고 말했다.

 

한국인에 대한 검문·검색은 상당히 강화됐다. 권하 세관에서 동쪽 국경 끝인 방천(防川)전망대로 이동하는 사이에 있는 검문소에선 기자가 탑승한 차량에 탄 일행들의 신분증을 검사했다. 그중 기자가 한국 여권을 소지하고 있자 “무슨 용무로 온 것이냐”며 “함께 탑승한 이들과 어떤 관계냐”고 캐물었다. “혹시 한국에서 온 기자 아니냐”며 차량 트렁크를 열고 검문한 뒤, 이상한 점을 찾지 못하자 그때서야 통과시켰다. 기자의 안내를 담당한 조선족 김아무개씨(69)는 “평소에는 검문을 잘 하지 않았는데, 최근에 검문이 부쩍 늘었다. 한국인이 섞여 있을 경우에는 오랜 시간 붙잡아놓고 조사한다”고 말했다.

 

지린(吉林)성 지린시의 롯데마트 매장 앞에서 중국인들이 반(反)사드, 반롯데 시위를 벌이고 있다. © 바이두 캡쳐

 

中 정계서도 “북한 제재 충분치 않아”

 

중국 언론은 북한의 핵실험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하는 한편, 한국의 사드 추가 배치엔 발끈하고 나섰다. 북한 핵실험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했던 중국 매체들은 한국을 맹폭했다. 그 선봉에 국수주의 매체인 환구시보(環球時報)가 나섰다. 환구시보는 “사드 배치를 지지하는 보수주의자들은 김치만 먹어서 멍청해진 것이냐”면서 “사드 배치를 완료하는 순간, 한국은 북핵 위기와 강대국 간 사이에 놓인 개구리밥이 될 것”이라며 막말을 쏟았다. 실제 신화통신, 인민일보, CCTV 등이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시위대 모습을 위주로 한국 내 움직임을 전달했다. 환구시보는 핵실험 직후 북한에 대한 원유 공급 중단을 반대했었다.

 

그러나 중국인들과 전문가들의 반응은 중국 정부나 언론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사드 배치 뉴스는 중국 최대 포털사이트인 신랑(新浪)에서 가장 많은 클릭 수와 댓글 수를 달성하며 큰 관심을 드러냈다. 다만 댓글 내용이 이전과 차이가 있었다. “북한 핵무기의 위험성이 사드보다 훨씬 더 높다”는 댓글이 가장 높은 호응을 얻었다. 이는 웨이신(微信), 웨이보(微博) 등 SNS도 마찬가지였다.

 

학자들은 ‘대북 강경론’을 앞다퉈 내놨다. 그동안 중국 주류학계는 한반도 위기의 유일한 해결책은 중국이 북한과 경제적 유대를 강화해 변화를 유도하는 것이라는 기조를 지켜왔다. 그에 따라 북한이 핵보유국이 되는 길도 묵인해야 한다는 주장도 득세했다. 하지만 북한의 핵실험으로 중국 동북지역에 피해를 주는 데다, 중국을 위협하는 북한 정권의 도발이 계속되자 분위기가 바뀌었다. 장롄구이(張璉瑰) 중앙당교 교수는 핵실험 직후 “북한에 대한 제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그 강도도 충분치 않다”며 중국 정부를 간접적으로 비판했다.

 

자칭궈(賈慶國)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장도 ‘동아시아포럼’ 기고문에서 “전쟁이 현실적 가능성으로 변한다면 중국은 미국·한국과 대응계획을 논의해야 한다”면서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젝트가 중단돼야 한국·미국이 배치한 사드를 철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자 원장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상무위원으로, 중국 외교정책에 큰 영향을 미치는 학자다. 이들 주류학자들의 목소리에 일반인들도 과거보다 더 깊이 공감하고 있다.

 

중국 두만강 일대에서는 여전히 밀무역이 이뤄지고 있다. 중국 지린성 훈춘시 두만강변 국경에 설치된 현수막. © 시사저널 유지만

 

“‘1인 체제’ 앞둔 시진핑, 추가 보복 힘들어”

 

그렇다면 중국 정부는 변화하는 민심에 귀를 기울일까. 당분간은 한국에 대한 사드 보복은 추가조치 없는 현상유지를, 대북제재는 9월12일 결정된 유엔 안보리의 결의를 이행하는 선에서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그 이유는 중국 최대의 정치행사인 19차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전당대회)가 10월18일 거행되는 데다, 미국의 대대적인 압박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리커창(李克强) 총리를 제외하고 장더장(張德江)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 위정성(兪正聲) 정협 주석 등 상무위원 5명은 퇴임해야 한다. 67세 이하는 유임하고 68살이 넘으면 퇴진하는(七上八下) 공산당의 관례 때문이다. 중앙위원도 절반 가까이 교체된다. 시 주석은 이번 전당대회에서 마오쩌둥(毛澤東) 사망 후 폐지된 당주석제를 부활해 ‘1인 지도체제’를 완전히 굳히려 하고 있다. 또한 자신의 심복들을 상무위원과 중앙위원으로 앉히려 한다. 이렇듯 거대한 권력투쟁을 앞둔 중국 최고지도부가 대외정책에 변화를 주기란 어렵다.

 

중국인들 사이에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에 대한 적대감이 상상 이상으로 높은 현실을 최고지도부도 인식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중국사회과학원의 한 교수는 “중국인들의 눈에 김정은은 그저 겁 없이 날뛰는 애송이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여기에 중국 정부와 언론의 ‘사드 몰이’가 반년을 넘기면서 현재는 중국인들에게 잘 먹혀 들어가지 않고 있다.

 

미국 정부가 대북제재를 내세워 향후 꺼낼 카드도 중국 정부로선 상당히 신경 쓰이는 일이다. 이번 유엔 안보리 결의에서 가장 강력한 조치는 대북 유류 공급량의 30%를 차단한 것이다. 그러나 북한에 공급되는 유류 대부분을 제공하는 중국이 충실히 이행한다는 보장이 없다. 이에 미국 정부는 북한과 거래하는 국가와 기업을 강력히 규제하는 세컨더리 보이콧(제3자 제재)을 추진하고 있다. 이미 미국 정부와 의회는 전 세계에서 영업 중인 중국 금융기관 12곳을 제재 기업 명단에 올렸다. 미국 정부는 “중국이 미국 및 국제 달러화 시스템에 접근할 수 없도록 할 것”이라고 위협하며 언제든 제3자 제재 카드를 꺼내들 기세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한국과 미국을 자극할 사드 보복 조치를 추가로 내놓기란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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