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혜경의 시시한 페미니즘] ‘동성애’가 아니다 ‘동성애자’다
  • 노혜경 시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9.26 18:22
  • 호수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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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행위’가 아니다, ‘성적 지향’이다

 

페미니즘과 정치에 대해 글을 쓰려니 뜻밖에 부딪치는 복병이 동성애 문제다. 아무 상관없어 보이는 페미니즘과 동성애가 어떤 관련이 있는가를 지난주에 이어 다시 얘기해야겠다. 지난주에 나는 이 서로 다른 두 주제를 이어주는 것은 차별이라고 말했다. 차별에 대해 반대하는 것은 근대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지탱하는 가장 핵심적 정치원리다.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에 이어 김명수 대법원장의 국회 표결을 앞두고도 동성애 공방이 벌어졌다. 김이수 후보자도, 김명수 후보자도 동성애에 대해 아주 낮은 수위의 인권옹호적 태도를 지녔을 뿐이다. 김명수 후보자는 청문회에서 군 동성애 처벌 문제와 관련해 “개인적으로 동성애(자) 및 성소수자 인권도 우리 사회가 다 같이 중요한 가치로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답변을 했다. 그러면 대법원장 후보가 특정한 성적 지향을 이유로 인간 차별을 해야 한다고 답해야 할까.

 

나는 민주주의가 합리적이거나 완벽한 제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전체주의나 기타 다른 종류의 정치제도에 비해 그나마 덜 잔인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현대사회는 민주주의를 표방한다. 그러므로 차별에 반대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기본자세다.

 

페미니즘을 단순화해 ‘여성이 엄연히 헌법에 보장된 개인의 권리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2등 국민으로 차별받는 일에 반대하는 것’이라고 하자. 그렇다면 동성애자는 헌법에 보장된 권리를 지닌 개인이 아닌가? 동성애자는 세금 안 내나? 매우 단순한 개념이다. 진정한 페미니스트뿐 아니라 진정한 자유민주주의자라면 당연히 동성애자 차별에 반대해야 하는 것이다.

 

9월13일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가 국회에서 이틀째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동성애=성행위’ 명제는 거짓

 

여기서 한 가지를 더 짚고 싶다. 뻔히 동성애자와 동성애를 분리시킬 수 없다는 것을 잘 아는 사람들이 고의로 동성애를 흡사 성행위의 일종인 것처럼 취급한다는 사실이다. 동성애는 ‘다양한 성적 대상 가운데 골라서 동성을 선택할 자유’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므로 동성애라는 말은 반드시 동성애자를 가리키는 말이어야만 한다. 이를 짐짓 눙쳐두고 동성애 옹호, 동성애 반대라고 말하는 것은 문법적 거짓말이다.

 

예컨대, 야당 의원들의 “동성애를 허용한다면 근친상간, 수간, 소아성애도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은 대표적 거짓말이다. 동성애는 성폭력이 아니라 한 개인의 타고나는 성적 지향이고 후자들은 범죄행위다. 이것을 동일선상에 놓을 수 없다는 것을 그분들도 잘 알리라 본다. 명백한 범주 구분의 오류다. 그런데도 저런 문장을 입에서 내보냄으로써 차별과 자유의 문제를 타락한 성적 상상으로 덮어버린다. 스스로의 인격을 모독하면서까지 그런 범죄적 상상력을 동원하는 이유 또한 탐구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페미니즘은 동성애를 옹호하지 않는다. 어떤 정치사상도 동성애를 옹호할 수 없다. 반대로 동성애를 반대할 수도 없다. 다만 동성애(자)를 차별할 것이냐 차별하지 않을 것이냐가 있을 뿐이다. 모든 차별에 반대하는 것은 자유와 평등과 박애라는 근대정신을 실현하기 위한 최소한일 뿐이다. 보다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고자 하는 정치사상으로서 페미니즘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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