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이 많이 가는 명절 음식 그래서 명절이다
  • 김유진 푸드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9.27 14:09
  • 호수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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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진의 시사미식] 점점 인스턴트화하는 명절 풍경 속 추석 음식에 대한 추억

 

명절 음식이라는 게 원래 별나게 마련이다. 조상을 기리는 마음을 담고 있어 색조차 함부로 쓸 수 없다. 지극정성을 들여야 후대가 평안해진다는 믿음은 상차림도 바꾸어 놓았다. 햇곡식과 더불어 가장 신선하고 큼직한 특상품이 자리를 차지했다. 어떠한 불경기에도 추석 물가가 꼭짓점을 찍었던 이유는 자손들의 이런 심정 때문이 아니었을까? 물론 지금 명절 풍경은 많이 달라졌고, 차례상도 점점 인스턴트화하고 있지만 말이다.

 

명절이면 늘 어린 시절 살았던 달동네가 떠오른다. 부친과 모친이 주거니 받거니 번갈아가며 망한 탓에 돈은 꽤 버는 듯싶었지만 사는 곳은 늘 달동네였고, 버스 종점 근처 쇼핑센터에서 장사를 했던 부모님 덕분에 걸음마를 떼면서부터 장돌뱅이였다. 라면을 팔던 매점, 사라다빵과 소보로빵을 팔던 양과자점, 계란집, 지물포, 생선가게. 추석이 다가오면 시장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몸이 빨라진다. 온전히 대목을 끌어안기 위함인 걸 우리 모두는 알고 있었다. 학교를 마치고 어머니 가게로 들어서며 가방을 냅다 내던지면 모친의 잔소리가 이어진다. “함씨네 정육점 가서 소고기 국거리 다섯 근만 달라고 해. 집으로 바로 가야 한다. 오락실 들르면 가만 안 둬!”

 

강원도 강릉 지역 다문화가족 주부들이 강릉향교에서 전통음식인 만두를 빚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일 년 내내 돼지고기에서 벗어나는 일이 없는 어머니의 입에서 소고기란 소리가 나왔다. 일 년에 딱 두 번 과소비를 하는 어머니의 이 멘트가 추석연휴를 알리는 신호탄이다. “엄마가 기름 말고 살 많은 데로 달래요. 안 그러면 창전정육점으로 바꾼대요.” 이건 순전히 내 생각이었다. 왜 비싼 돈 주고 기름을 사냔 말이다. 잠시 딴청을 피우는 사이 고기를 싸기 시작한다. 휙휙. 신문을 두어 번 돌리면 덩어리 포장이 완성된다. 건네받은 비닐이 묵직하다. 보통날이었으면 어묵 만드는 포장마차 구경도 가고, 떡집 가래떡 빼는 모습도 지켜봤을 텐데, 한우를 산 날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집으로 냅다 뛴다. 권투선수처럼 슉슉 소리를 내기도 하고, 슈퍼맨처럼 팔을 벌리기도 한다. 산동네에 사는 동안 늘 반복하던 모습이다.

 

냉장고에서 하루 정도 숙성시킨 고기는 네 가지 요리에 쓰인다. 첫 번째는 고기 국물. 두 번째는 잡채. 세 번째는 산적. 네 번째는 만두. 여느 집이라면 사골로 육수를 만들겠지만, 모친인 이 여사가 전혀 뽀얘지지 않는 사골에 한 번 속은 뒤로는 메뉴를 토란국이나 만둣국으로 바꿔버렸다. 삼탕까지 끓였는데 가스비만 이틀 치 나갔다고 억울해하던 그 밤이 아직도 생생하다. 육두문자가 그리도 잘 어울릴 줄이야.

 

 

이북 출신 명절 상엔 늘 만두와 빈대떡이

 

이북 출신 할아버지와 아버지 덕분에 우리 집 명절 때 만두는 필수 항목이다. 밀가루를 반죽하고 도마에서 덩어리를 민 뒤 주전자 뚜껑으로 체중을 실어 내리누른 다음 좌우로 비비면, 동그랗고 두툼한 만두피가 완성된다. 피 다음엔 소다. 두부와 고기·숙주·파를 넣고 썩썩 뒤섞은 뒤 아버지 숟가락으로 양껏 퍼서 만두피에 올린다. 여미는 것도 일이다. 추위에 떨며 늘 먹거리 걱정을 했던 탓인지 만두피에 소 말고 한(恨)도 퍼담는 모양이다.

 

배가 빵빵하다. 이북 만두가 크다는 사실은 다 안다. 서울·개성의 그것과 비교하면 서너 배 정도 크고, 경상도나 전라도 만두와 비교해도 족히 두 배는 된다. 만두소도 지역에 따라 천양지차,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재료가 다채로워지고 간도 세진다. 아무래도 기후 탓이리라. 암튼 커다란 면기에 만두를 두어 알 넣으면 금세 대접이 넘칠 지경이다. 이북식 만두는 먹는 방법이 따로 있다. 만만한 녀석을 하나 골라 앞접시에 담는다. 숟가락으로 반을 갈라 그 틈으로 양념장을 끼얹는다. 종종 초고추장을 곁들여 만두를 먹는 타 지역민을 만나는데, 월남한 피난민들에게는 어림없는 소리다. 국물을 한 모금 삼키며 간장이 배기를 기다린다. 간이 젖어들었다 싶으면 비비듯 재료를 섞는다. 그러곤 크게 한 숟가락 떠서 입으로 욱여넣는다. 숨이 죽은 녀석들이지만 채소는 끝까지 아삭아삭 씹힌다. 두부와 고기가 어우러져 상상할 수 없는 궁합을 만들어낸다.

 

명절 음식의 또 다른 백미는 빈대떡이다. 빠지면 영 섭섭하고 공들여 지져내지 못하면 명절을 망치고 만다. 일단 씻는 것부터 녹록지 않다. 그까짓 거 수돗물 틀어 박박 씻으면 그만이지 하는 생각으로 붙었다가는 여지없이 어느 한구석이 비고 만다. 씻은 녹두를 두 개의 대야에 번갈아 옮겨주면서 바닥의 모래나 돌을 제거해야 일이 수월해진다. 참 손이 많이 가는 이유에 돌을 이는 아주 고역스러운 과정이 들어간다. 기껏 부친 빈대떡 한 점을 입에 넣고 깨무는데 어석어석 돌 씹히는 소리가 들리면 말짱 도루묵이다. 뭔 빈대떡에 그리 몹쓸 힘을 쓰냐며 냉소를 보낼 남도(南道)분들도 분명 계실 것이다. 빈대떡은 피난민들의 DNA다. 몇 대가 지나도 변치 않는 게놈 지도. 잊고 싶어도 뇌에 각인되어 떨쳐낼 수 없는, 생각만으로도 행복하고 또 모진 인연이다.

 

씻고, 일고, 불리고, 전 처리 과정이 완성되면 성기게 갈아 고사리·숙주·김치를 넣고 반죽을 만든다. 김치 양이 굉장히 중요하다. 지나치게 많아지면 녹두빈대떡이라기보다 김치전에 가까워진다. 자르는 데도 공력이 필요하다. 잘게 썰되 나물의 두 배쯤 두께를 유지하는 것이 포인트. 길이도 숙주나 고사리의 그것과 키 높이를 맞춰줘야 제대로 된 맛의 조합을 만든다. 김이 나도록 뜨겁게 달군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른다. 기름은 반드시 돼지기름이어야 한다. 쇼트트랙 선수처럼 프라이팬 위를 뱅뱅 돌게 만든 뒤 뒤집개로 꾹꾹 누르면 맑고 고소한 기름이 줄줄 흐른다. 잠시 기다리면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이때 빈대떡 반죽을 한 국자 들이붓는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서울 종로 광장시장 빈대떡 가게에서 상인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치지직~’ 소리도 영판 다르다. 식용유가 경망스러운 접촉음을 만든다면 돼지기름은 좀 더 묵직하고 느른한 바리톤에 가깝다. 한국인의 뇌와 침샘, 그리고 내장을 자극하는 가장 대표적인 소리. 그래서 명절 음식의 백미를 빈대떡으로 꼽는다. 밑면이 짙은 비스킷 색으로 변하면 뒤집으라는 신호다. 딱 한 번 뒤집은 뒤 느긋하게 수다를 떨다 보면 빈대떡이 작품으로 변한다. 좀비처럼 스산하게 다가와 젓가락을 내미는 식구들 통에 대여섯 장까지는 쟁여둘 엄두를 못 낸다. 가장자리를 떼어 입에 넣는다. 뜨끈한 열기가 기도 어딘가를 거쳐 코로 뿜어져 나온다. 오물오물 깨무는 소리가 귓전에 와 닿는다. 그래 이러면 되는 거다. 반질반질 윤이 나는 잡채, 뭉텅이 갈비찜, 기교 없이 소담스럽게 무친 나물들, 그리고 갓 지어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하얀 쌀밥까지. 글자를 읽는 것만으로도 그림이 그려지고 소리가 들리는 명절 밥상. 이 글을 읽는 동안 양 볼에 침이 고였다면, 그건 아마도 당신이 한국인이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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