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아버지 이은 ‘임기 없는 경제권력’
  • 감명국 기자 (kham@sisajournal.com)
  • 승인 2017.09.28 13:32
  • 호수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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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경제인] ‘영향력 있는 경제인’ 2년 연속 1위 김동연·김상조 등 경제관료 강세

 

‘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 2000년 이후 ‘한국을 움직이는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위의 변화다. 대통령중심제 권력구조를 채택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이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함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래서 대통령은 5년 임기를 둔다. 제아무리 막강한 힘을 가져도 ‘권불5년(權不五年)’이다. 이에 비하면, 2000년 이후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인 및 경제관료’ 1위 변화는 간명하다. ‘이건희-이재용.’ 이조차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병으로 쓰러진 탓에 지난해 처음 1위가 바뀌었다. 그나마도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으로. 그 전에는 줄곧 이 회장이 1위였다. 무려 16년이다.

 

올해 실시한 시사저널 연중기획 ‘2017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전문가 조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위는 다시 바뀌었다. 문재인 대통령으로. 정권이 바뀐 탓이다. 그러나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인 및 경제관료’ 1위는 여전히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다. 경제권력은 임기가 없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이 나란히 영어(囹圄)의 몸이 됐지만, 대한민국에 끼치는 영향력 면에서는 이렇듯 극명히 대비된다. 지난해 ‘전체 영향력 인물’ 1위 박 전 대통령의 올해 순위는 공동 21위. 반면 이 부회장은 지난해 ‘전체 영향력’ 5위에서 올해 4위로 오히려 한 계단 상승했다. ‘영향력 있는 경제인 및 경제관료’ 부문에선 변함없이 1위다. 그래서 뭇사람들은 대한민국을 ‘삼성공화국’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좋게 말하면, 그만큼 삼성그룹이 대한민국을 넘어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했다는 뜻이 되지만, 국민들의 시각은 삼성을 정치권력도 어찌할 수 없었던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본다. 과연 삼성의 힘은 언제까지 계속될까.

 

© 사진공동취재단

 

‘경제검찰총장’ 김상조 공정위원장 단숨에 3위

 

시사저널이 1989년 창간기획으로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전문가 조사를 실시한 이후, 올해까지 28년째 변함없이 이어오고 있다. 이 가운데 ‘영향력 있는 경제인 및 경제관료’ 조사는 1992년부터 시작됐다. 당시 1위는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이었다. 이듬해인 1993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첫 1위에 등극했다. 1994년은 경제인 조사가 없었고, 1995년 이 회장은 다시 1위를 이어갔다. 이후 3년간 경제인 조사를 하지 않다가 1999년 재개했는데, 이때는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1위, 이 회장이 2위였다. 현대·대우와 함께 재계 서열 1위를 다투던 삼성은 대우의 몰락, 현대의 분열로 이어진 2000년 이후 대한민국 부동(不動)의 1위 대기업이 됐다. 그리고 그 기업의 총수는 임기 없는 ‘경제대통령’의 자리를 이어갔다.

 

‘2017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경제인 및 경제관료 부문 조사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해에 이어 1위를 지켰다. 하지만 지목률은 47.6%로 지난해(60.0%)보다 다소 떨어졌다. 아무래도 현재 수감 중인 그의 상황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지난해, 16년 만에 1위 자리를 아들에게 내주고 2위로 내려온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올해 6위(7.9%)로 더 내려갔다. 이제 세인들은 삼성그룹의 총수를 이건희에서 이재용으로 인식하는 데 어색함이 없다.

 

올해 경제인 조사에서 두드러진 특징은 경제관료들의 강세 현상이다. 역대 조사 결과를 보면, 대개 정권 초기엔 경제관료들의 영향력이 컸던 게 사실이다. 올해도 이런 현상은 이어졌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23.7%의 지목률로 2위에 올랐다. 물론 첫 순위 진입이다. 과거에도 경제부처 수장의 2위 등극은 종종 있어왔다. 그런 면에서 올해 유독 눈에 띄는 건 3위에 오른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다. 13.8%의 지목률을 나타냈다. ‘경제검찰총장’으로 불리는 공정위원장이 문재인 정부에서는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는 전망의 방증인 셈이다. 특히 김 위원장은 대학교수 시절부터 ‘재벌 저격수’로 이름을 알려왔다. 본지 조사에서 경제부총리(장관)·한국은행 총재 외에 간혹 금융위원장·청와대 경제수석(특보) 등이 순위에 이름을 올린 경우는 있었지만, 공정위원장이 10위권 내에, 그것도 단숨에 3위에 진입한 것은 김 위원장이 처음이다. 향후 그를 주목하는 시선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김 부총리와 김 위원장을 포함해 올해 순위에서 경제관료는 10위권 내에 무려 4명이나 포함돼 있다. 이 역시 역대 최다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8.0%의 지목률로 5위에 올랐다. 지난해 6위(4.7%)에서 소폭 상승했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10위(2.6%)에 이름을 올렸다. 향후 경제정책은 정부의 김 부총리와 청와대의 장 실장, 이른바 ‘투톱’ 체제가 될 전망인데, 전문가들도 여기에 동의하고 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도 12위(1.5%)에 올랐다.

 

© 연합뉴스·시사저널 최준필

 

변함없는 위상 과시하는 ‘4대 재벌’ 총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4대 재벌’의 총수들은 역대 순위에서 한 번도 이름을 빼놓지 않았다.(28면 표 참조)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올해 4위(10.0%)에 올랐다. 새 정권 출범 첫해인 올해 경제관료들의 강세 탓에 순위가 다소 하락하긴 했지만, 해마다 이건희 삼성 회장, 경제부처 수장과 더불어 ‘빅3’를 형성해 온 재계 2위 총수의 위상은 아직 여전하다. 지난해 7위로 깜짝 등장하며 세대교체를 예고했던 정 회장의 아들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은 올해 11위(1.6%)로 다소 주춤했다.

 

재계 3위 SK그룹의 최태원 회장은 공동 7위(4.8%)에 올랐다. 재계 4위 LG그룹의 구본무 회장은 9위(4.2%)다. 앞서 밝힌 대로 두 총수는 부친으로부터 그룹 회장직을 각각 승계한 이후부터 본지 조사에서 한 번도 10위권 내에서 빠지지 않고 이름을 올리고 있다. 올해 깜짝 등장한 스타는 공동 7위에 오른 함영준 오뚜기 회장이다. 함 회장은 최근 1000억원이 넘는 상속세를 편법 없이 납부키로 하면서 세간에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여기에 더해져 비정규직을 고용하지 않는 경영원칙과 활발한 사회공헌사업이 알려지면서 지난 7월27일 청와대의 대기업 총수 초청 행사에 중견기업으로는 유일하게 참여하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함 회장은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요즘 젊은 사람들이 오뚜기를 ‘갓뚜기’라고 부른다고 한다”는 칭찬을 듣기도 했다.

 

4대 재벌 총수와 고위 경제관료들의 굳건한 성벽을 아직 뚫지는 못하고 있지만, 10위권 밖을 보면 의미 있는 경제인들이 여럿 눈에 띈다. 특히 선대로부터 기업을 물려받지 않고 자신의 손으로 직접 창업을 일궈내거나 여기에 동참해 대한민국 IT(정보기술) 산업의 선도 역할을 하는 젊은 기업인들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한성숙 네이버 대표이사 사장(13위·1.1%), 김범수 카카오 의장(14위·1.0%),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공동 20위·0.6%), 이재웅 다음 창업자, 이해진 전 네이버 이사회 의장, 김상헌 전 네이버 대표이사(이상 공동 23위·0.4%) 등이 그들이다.

 

 

2000년 이후 한국 경제계를 움직인 인물들

 

시사저널의 연중기획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전문가 설문조사에서 2000년대 들어 ‘경제인 및 경제관료’ 부문 1위는 늘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몫이었다. 그는 2008년 ‘삼성 비자금’ 사건으로 그룹 회장을 사퇴한 후에도 변함없이 1위였다. 직함과 상관없이 사실상 그가 삼성그룹 총수라는 점을 인식 못할 이 땅의 전문가는 없었던 탓이다. 2014년 5월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이후에도 1위는 흔들림이 없었다. 그러나 병상에 누워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그리고 사실상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경영을 승계하면서 2016년 드디어 1위 자리에 변화가 일었다. 하지만 ‘1위 삼성’엔 변함이 없었다. 제아무리 힘 있는 경제부총리가 나와도 삼성의 벽을 넘지는 못했다.

 

역대 2·3위는 대부분 재계 2위 현대차그룹의 총수 정몽구 회장과 경제부처 수장이 번갈아가며 차지했다. 그런데 최근엔 정 회장의 행보가 조금 힘에 부치는 모습이다. 최근 고전을 겪고 있는 현대차 실적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정몽준 현대중공업 최대주주(전 한나라당 대표)는 대권주자로 거론될 정도로 정치적 영향력이 큰 탓에 경제인 순위에도 항상 이름을 올렸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자신의 정치적 부침(浮沈)과 순위가 함께 오르내리고 있다.

 

역시 항상 10위권 내에 이름이 올랐던 전경련 회장은 지난해부터 순위에서 빠져, 최근 급락한 이 단체의 위상을 보여주고 있다. 올해 조사에서는 허창수 전경련 회장(GS그룹 회장)이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과 동률인 공동 15위(0.8%)에 그쳤다. 조만간 전경련의 위상을 대한상공회의소가 대신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경제관료 중에서는 경제부처 수장 외에 한은 총재, 청와대 정책실장 및 경제수석(특보), 금융위원장 등이 자주 순위권 내에서 거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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