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김해시의 ‘가야’란 역사유산 이어받기
  • 김지나 도시문화칼럼니스트(서울대 도시조경계획 연구실 연구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10.13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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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나의 문화로 도시읽기] 가야테마파크․가야의 거리 등 볼거리 가득

 

고구려, 신라, 백제 3개 나라가 경쟁적으로 문명을 꽃피웠던 삼국시대. 비록 신라에 흡수됐지만, 500년의 역사를 자랑했던 가야도 삼국시대의 주인공 중 하나였다. 강력한 권력을 가지는 왕을 중심으로 체계적인 ‘국가’로서 기반을 다졌던 삼국과 달리, 가야는 6개의 부족국가들로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에 ‘삼국’에 포함하지 않는 것이 정설이다. 그래서 이름도 ‘가야연맹왕국’ 정도로 불리고 있다.

 

하지만 가야는 꽤나 번성한 나라였다. 무엇보다 ‘철의 왕국’이라 불릴 정도로 철 생산 능력이 압도적으로 우월했다. 낙동강을 끼고 바다를 면하고 있었기 때문에 교통과 해운이 발달했고, 그 덕분에 문화적으로도 크게 성장할 수 있었다고 한다. ‘삼국시대’라는 이름에 가리고, 패권싸움에 밀려 잊혀져간 비운의 나라로 치부하기에는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감이다.

 

가야테마파크의 정문 앞에 조성된 분수. 가야의 대표적인 토기인 가야기마인물상(국보 275호)을 모델로 만들어졌다. © 사진=김지나 제공

 

경남 김해시는 가야의 후손 지역들 중 가장 눈에 띄게 성장한 도시다. 가야연맹 전기에 우두머리 역할을 했던 금관가야가 바로 지금의 김해 지역에 있었다. 제대로 된 국가로 발전하지도 못했던 서러운 과거를 뒤로 하고, 김해시는 최근 10년 간 무서운 속도로 성장해 오고 있다. 김해시는 이제 ‘부산의 위성도시’라는 이름보다는, 독자적인 역사와 문화를 가진 도시로 기억되길 꿈꾸는 중이다.

 

 

김해시에게 가야라는 고대의 역사는 그래서 더 중요하다. 가야사 연구에 대한 새 정부의 관심도 커진 가운데, 김해시에서는 고대 가야부터 현재까지의 도시 역사를 집대성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도시의 뿌리를 가야에서 찾겠다는 의지가 보인다. 가야사 연구는 국가적인 차원에서도 중요한 과업이지만, 김해시가 고유한 도시로서 위상을 드높이기 위한 문화적 기반을 다지는 일이란 의미도 있다.

 

가야의 수로왕과 허왕후, 그리고 건국신화를 테마로 한 조형물 © 사진=김지나 제공

 

이와 함께, ‘가야’를 테마로 한 김해시의 도시마케팅 역시 다채롭게 펼쳐지고 있다. 2015년에 개장한 ‘가야테마파크’는 가야의 건국신화, 김수로왕과 허왕후의 결혼이야기, 토기문화 등, 가야의 역사를 대중적인 문화콘텐츠로 풀어낸 복합문화공원이다. 야간조명과 아기자기한 조형물들로 볼거리를 더했고, 피크닉 테이블도 넉넉하게 마련돼 있어 나들이 장소로 손색없어 보였다. 박물관이나 일반 유적지보다는 딱딱하지 않게 역사를 즐길 수 있는 곳임엔 분명했다. 가야테마파크는 개장 1년만에 방문객 50만명을 달성하며 성공적인 시작을 알렸다. 다녀온 사람들의 반응도 호의적이다.

 

 

다만, 좀 더 세월의 깊이를 고려한 공간으로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가야는 무려 2000년 전에 존재했던 나라다. 분명 실재했던 우리의 역사지만,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유적은 많지 않다. 그래서 고대국가의 실체는 신화와 역사가 미묘하게 섞여 있다. 더군다나 가야는 삼국에 비해 역사적인 주목을 덜 받은 탓에 더 신비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 고대의 문명을 시각적인 어메니티(amenity, 위락시설)에만 의존해서 재현한다면, 2000 년 시간의 유구함을 채 다 표현할 수 있을까? 역사가 테마파크를 치장하는 도구에 그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보다 세심한 프로그램이 필요할테다.

 

김해시 봉황동과 구산동 일대에는 ‘가야의 거리’라 불리는 곳이 있다. 2005년에 김해시에서 국립김해박물관과 주변 유적지들을 연결하는 길을 따라 시민들을 위해 여가공간을 만든 것이다. 가야시대의 생활 유적지, 조개무덤 전시관, 수로왕과 왕비의 능, 수로왕의 탄생신화가 얽힌 산봉우리인 구지봉, 그리고 가야시대 왕의 무덤을 발굴하고 연구한 성과를 엿볼 수 있는 고분박물관 등등, 걸어서 2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에 고대 가야의 흔적들이 펼쳐져 있다. 가야의 거리는 북쪽의 수로왕비릉에서부터 남쪽의 봉황동 유적에 이르기까지, 도시의 자연과 문화재가 리듬을 타듯이 연결되고 있었다. 수로왕과 허왕후가 거니는 정원을 상상하며 만든 수릉원과 시내를 가로지르는 해반천은 자연스러운 도보여행을 이끌어주는 이음매가 돼주었다.

 

김해시 봉황동과 구산동 일대의 '가야의 거리'를 둘러볼 수 있는 도보길 안내도 © 사진=김지나 제공

 

수로왕릉 옆에 조성돼있는 수릉원. 허왕후의 동상 뒤로 수로왕을 기리는 산책길이 있다. © 사진=김지나 제공

 

김해시는 고대국가의 역사를 품고 있으면서도, 신흥도시이기 때문에 도시 자체가 오래됐다는 인상은 받기 어렵다. ‘가야의 거리’도 옛길이라기 보단 도시 내의 쾌적한 산책길이란 느낌이었다. 유적을 복원하고 고대의 모습을 상상하여 재현하는 방식도 좋겠지만, 김해시의 경우에는 현대 신도시의 맥락을 살려 좀더 스펙트럼을 넓혀서 창의적으로 역사를 재해석하는 것도 방법이다.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은 그런 관점에서 좋은 시도라 생각된다. 2006년에 만들어진 이 미술관은 가야의 토기와 조선의 분청사기가 발달했던 역사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전통과 현대, 순수미술과 응용미술이란 이질적인 장르들이 교류하고 혼합돼, 더 큰 가치를 생산해낼 수 있다는 것이 이 미술관의 비전이다. 김해시의 도시마케팅도 늘 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다른 예술이나 공간디자인 분야와 콜라보레이션을 시도해보는건 어떨까. 김해시는 젊은 도시다. 젊은 도시다운 기발한 아이디어들이 많이 나올 수 있기를 응원한다.​ 

 

김해시 진례면에 위치한 클레이아크 미술관의 메인 전시관 © 사진=김지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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