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이유 없는 대학살’로 끝나나
  • 김원식 국제문제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10.13 18:31
  • 호수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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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행 동기 보이지 않는 美 라스베이거스 총기 참사

 

“우리는 정말 그가 왜 총격을 가했는지, 동기(motive)를 알 수 없다. 심지어 그가 왜 총격을 멈췄는지도 알 수가 없다.” 10월11일(현지 시각)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미 역사상 최악의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한 지 10일이 지난 시점에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현지 경찰이 언론에 털어놓은 말이다. 10월1일 밤 10시5분쯤 스티븐 패덕(64)은 라스베이거스 중심가에 있는 만델레이 호텔 32층에서 건너편 콘서트장을 향해 약 10분간 수백 발의 총알을 자동 난사했다. 이 끔찍한 범행으로 현재까지 58명이 사망하고 500여 명이 넘는 부상자가 발생했다. 언론에서 ‘대학살(massacre)’이라고 부를 정도다. 그런데 이 사건은 최악의 참사일 뿐만 아니라 ‘최대의 미스터리’로도 남을 전망이다. 그 이유는 범인이 이러한 참극을 벌인 이유나 동기가 하나도 밝혀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FBI 요원들이 총기난사 현장인 라스베이거스 만델레이 호텔 앞 콘서트장에서 증거를 수집하고 있다. © 사진=AP연합


 

“패덕, 도박 즐기는 평범한 인물”

 

새롭게 드러나고 있는 참사 당시의 사건 정황도 의문투성이다. 패덕은 총을 난사하기 약 6분 전에 자신이 투숙한 방을 살펴보려던 호텔 경비원을 사살하고 이내 약 10분간 수백 발의 총알을 2만여 명이 모여 있는 공연장을 향해 발사했다. 그 후 약 한 시간이 지난 밤 11시20분에야 특공대(SWAT)가 패덕이 투숙한 방의 문을 폭파하고 급습했지만, 패덕은 이미 자살한 뒤였다. 참사 당시 어디서 날아오는 총알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피해가 속출했지만, 패덕은 딱 10분간만 자동으로 총격을 가한 다음 멈췄다. 그가 강제로 제압될 때까지 계속 사격했다면, 더 끔찍한 ‘대학살’이 발생할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그가 왜 이러한 끔찍한 범행을 저질렀는지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는 점이다. 패덕이 사전에 이러한 대량살육을 준비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범행 장소인 32층 호텔 방과 패덕의 자택에서는 모두 40여 정의 총기가 발견됐다. 또 일반 총기를 자동 난사하기 위한 개조 부품인 ‘범프 스탁(bump-stock)’도 2개나 발견됐다. 또 사격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한 조준경과 거치대는 물론 공연장에 모인 인파까지의 거리와 탄도 등을 계산한 숫자가 적힌 메모도 발견됐다. 그만큼 사전에 치밀하게 범행을 준비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범행 동기가 무엇이었는지는 하나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미 언론들은 대체로 이번 사건을 이른바 ‘외로운 늑대(a lone wolf)’의 범행이라고 보도하면서도 스스로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 대체로 사회에 불만을 가진 ‘외로운 늑대’는 범행을 저지르기 전에 무언가 불만의 ‘흔적’을 남긴다. 하지만 패덕이 이러한 끔찍한 범행을 저지르기 얼마 전까지도 주변에서 그러한 냄새를 맡지 못할 만큼 패덕은 평범한 인물이었을 뿐이다.

 

참사가 발생하자, 사람들의 시선은 패덕의 동거녀였던 마리 루 댄리(62)에게 쏠렸다. 당시 필리핀을 여행하고 있었던 댄리는 자진해 미국으로 돌아와 연방수사국(FBI)의 조사에 협조했다. 하지만 그녀 역시 패덕이 그러한 일을 벌일 것이라고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고 증언했다. 단지 가족이 있는 필리핀에 다녀오라고 패덕이 사준 항공권으로 필리핀에 여행을 갔고, 그 사이 패덕이 10만 달러에 달하는 돈을 송금해 이를 헤어지자는 뜻으로 알았다는 것이 전부였다는 것이다. 댄리는 2013년부터 라스베이거스 인근의 모스키트에서 패덕과 함께 살았고, 수차례 해외여행도 같이 다닐 만큼 패덕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알았으나, 그가 그런 범행을 벌일지는 필리핀으로 떠나는 날에도 몰랐다고 했다. 실제로 수사기관이 패덕을 조사해도 그가 고액의 베팅을 즐기는 은퇴한 도박꾼이라는 것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특정한 종교나 정치 단체에 가입한 적도 없고 폭력적인 성향을 드러낸 바도 없으며, 특별한 전과도 없었다. 패덕은 총기난사를 하기 위해 투숙한 호텔에서도 도박을 즐겼지만, 많은 재산이 남아 있어 참사 희생자들이 재산 동결을 요청할 정도였다. 패덕의 형제들도 모두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가 “도박을 즐기는 평범한 인물이었을 뿐”이라며 “왜 그런 일을 벌였는지 모르겠다. 그저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또 “수백만 달러의 재산을 가진 부동산 투자자여서 하고 싶은 것은 모두 할 수 있는 재정적 여유가 있었다”고 말했다.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총기난사범 스티븐 패덕(오른쪽)과 그의 동생 에릭 패덕 © 사진=연합뉴스


 

‘이유 없는 범죄’가 더 큰 공포

 

수사기관은 물론 언론까지 나서서 과거 패덕의 일거수일투족을 추적하고 있지만, 범행 동기의 단서가 될 만한 내용은 아직 하나도 나오지 않고 있다. 패덕이 과거 도박으로 인해 신경안정제를 복용했다는 사실도 밝혀졌지만, 이것이 그가 정신이상이었음을 증명하는 것도 아니다. 패덕의 아버지인 벤자민 홉킨스 패덕이 1970년대에 FBI의 중요한 지명수배 은행강도였다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이미 몇 해 전에 사망한 아버지의 40년 전 과거가 범행 동기라고 보긴 어렵다. FBI가 모든 인력을 동원해 주변을 탐문수사하고 과거를 추적하고 있지만, 범행 동기가 될 만한 흔적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평소 사회에 대해 불만의 목소리 한 번 내지 않았던 그가 미국 최악의 총기난사범으로 등장한 미스터리한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평소 노골적인 표현으로 유명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마저도 이번 참사를 ‘테러’라고 언급하지 못하고 있다. 트럼프는 단지 이번 참사를 “완전한 악의 행위”라며 패덕을 “매우 아픈(sick) 미친 사람”이라고 언급했을 뿐이다. 언론들도 범행 동기가 오리무중이라 ‘테러’라는 표현 대신 ‘대학살’ 등으로 표현하고 있을 뿐이다. 워싱턴의 한 사회심리학자는 공공장소에서 무차별로 대량살육이 벌어졌다는 것도 공포지만, 너무 평범했던 사람이 도저히 알 수가 없는 범행 동기로 이러한 참사를 저질렀다는 것이 미국 국민에겐 더 큰 공포로 다가오고 있다고 말했다. 아주 평범했던 옆집 아저씨가 어느 날 희대의 살인마가 될 수 있는 극단적인 공포가 미국 사회를 짓누르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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