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역 못하고 공포만 키운 정부 “외래종 대책 걸음마 단계”
  • 이민우 기자 (mwlee@sisajournal.com)
  • 승인 2017.10.13 18:43
  • 호수 145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붉은불개미 사태가 남긴 교훈

 

역대 최장 연휴로 행복한 한가위를 만끽할 무렵, 살인 개미가 한반도에 상륙했다. 학명 ‘솔레놉시스 인빅타(Solenopsis Invicta)’. 직역하면 ‘불패의 열마디개미’란 의미로, 한국에선 붉은불개미로 부른다. 붉은불개미는 해상 화물선 컨테이너에 묻은 흙과 함께 부산 감만부두로 들어왔다. 검역 당국은 9월28일 처음 붉은불개미를 발견한 직후, 추석 연휴 내내 초비상 상태에 돌입했다. 11일간의 숨바꼭질 끝에 정부는 붉은불개미가 모두 사멸한 것으로 잠정 결론지었다.

 

사태는 일단락됐지만 후폭풍은 여전하다. 붉은불개미 유입으로 검역 체계를 손봐야 한다는 의견이 거세다. 정부의 섣부른 대응으로 붉은불개미의 위험성이 지나치게 과장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사람들 사이에선 쉽게 불안감이 가시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다. 여왕개미가 발견되지 않은 데다 또다시 유입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붉은불개미뿐 아니라 위협 외래종 유입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붉은불개미 사태가 시사한 점을 다각도로 분석해 본다.

 

10월9일 부산 남구 감만부두 일대에서 곤충전문가들이 붉은불개미 정밀조사를 벌이고 있다. 이날 농림축산검역본부·환경부·산림청 관계자, 외부전문가 등 47명이 정밀조사를 벌였다. © 사진=연합뉴스


 

대응 빨랐지만 공포 키운 정부

 

붉은불개미 공포는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검역 당국은 부산항을 포함한 전국 주요 항만과 내륙 컨테이너 기지 등 34곳에 대한 민관합동조사를 벌인 결과, 최근 한 달 사이 국내로 유입된 여왕개미가 항만 아스팔트 균열 지점에 알을 낳고 개미 집단을 형성한 것으로 보고 있다. 여왕개미는 통상 교미를 위한 ‘결혼비행’을 끝낸 뒤 날개를 떼고 땅속에 산란한다. 실제 부산항 감만부두에서 발견된 개미집에서는 여왕개미가 알을 낳는 방 2개와 유충들이 발견됐다. 붉은불개미가 감만부두 이외 다른 곳으로 확산됐을 가능성은 현저히 낮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여왕개미가 이미 날개를 떼고 산란 중이었다는 점, 개미 분포 범위가 발견 지점으로부터 30cm 이내인 점, 총 개체 숫자가 1000개 안팎인 점 등을 근거로 제시했다.

 

이번 사태는 사실상 예고됐다는 평가다. 발견 직후 검역 체계에 구멍이 뚫렸다는 지적도 나왔다. 1996년 관리해충으로 지정됐음에도 불구하고 검역망에서 차단하지 못했다는 지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다. 애초부터 차단할 수 없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검역은 ‘식물방역법’에 근거해 식물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물품을 통해 옮겨온 해충은 검역망을 피할 수 있다. 이번처럼 컨테이너에 묻은 흙을 통해 유입될 경우, 이를 차단할 방법이 전무한 실정이다.

 

정부부처 간 공동 대응 매뉴얼조차 없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정부는 9월15일 붉은불개미 대책회의를 열고 환경부·농림축산식품부·해양수산부 등이 향후 공동 대응 협의체를 구성해 초기대응 매뉴얼을 수립하기로 했다. 처음 발견됐던 시점보다는 빨랐지만, 중국을 통해 일본에서 붉은불개미가 발견되며 국내 유입 가능성이 커진 지난 5월보다 넉 달 가까이 늦은 셈이다.

 

정부의 대처 과정에서는 과도한 공포가 조장됐다. 정부는 붉은불개미가 가축을 물어 눈을 멀게 하고, 사람에게도 치명적이라고 했다. 초반에는 ‘살인 개미’란 표현까지 썼다. 북아메리카에서 한 해 평균 100명이 이 개미에 물려 사망했다고 알려졌다. 모두 정부의 발표 자료였다. 민관합동조사에 참가한 류동표 상지대 산림과학과 교수는 “꿀벌의 독성을 1로 가정하면 붉은불개미는 0.2 이하”라며 “살인 개미라는 표현은 지나치다”고 지적했다. 류 교수는 “면역력이 약한 사람이 물릴 경우 치명적일 수 있으나 붉은불개미의 독성은 국내에 서식하는 꿀벌보다 약해 사망 위험은 낮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한 해 평균 100명이 사망한다는 내용은 어디에서 시작됐을까. 농림축산검역본부가 당초 인용한 자료에 오류가 있었다. 앞서 붉은불개미 사태로 혼란을 겪었던 일본 환경성의 자료를 그대로 인용했지만 사실과 달랐다. 나중에 일본도 해당 자료를 삭제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수현 검역본부 식물검역부장은 “피해 자료를 찾아본 결과, 1999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3만3000여 명이 불개미에 물려 이 중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사람은 660명으로 0.02% 정도였다”며 “과민 증상을 보인 사람도 전체의 0.6〜6%였다는 자료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각국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외래종의 침입은 이제 익숙한 일이 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 7년간 전국 공항·항만의 수입 검역 과정에서 검출된 해외 병해충이 7만 건에 육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 소속 위성곤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농림축산검역본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해외 병해충 검출 건수는 6만9445건이었다. 2010〜14년에 검출된 해외 병해충은 해마다 7000〜9000여 건이었지만, 2015년 1만2075건을 기록한 데 이어 2016년에는 1만3529건으로 증가했다. 위 의원은 “2000년 이후에만 34종이 유입된 것으로 확인되는 등 해외 병해충 유입 피해가 현실화하고 있다”며 “붉은불개미도 예견된 사태”라고 설명했다.

 

물론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9월29일 미국의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2011년 동일본대지진 이후 발생한 쓰나미 때 아무도 예상치 못한 생물의 대규모 이주 사태가 벌어졌다. 생물학자인 제임스 칼턴 미국 윌리엄스대학 연구원이 분석한 결과, 한 번도 태평양을 건너온 적이 없는 289종의 생명체가 상자나 폐기물 등을 타고 미국에 도착했다. 북아메리카 해안에 도착한 이들 동물이 외래종으로서 해안 생태계를 교란할지는 몇 년 더 조사해야 알 수 있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한국에서도 뉴트리아 등 외래종 침입으로 인한 생태계 파괴 문제가 심각하다. 사진은 발목트랩에 포획된 뉴트리아 © 사진=연합뉴스


 

작년 해외 병해충 검출 1만3000건

 

외래생물의 위협은 생태계 특성을 무질서하게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 막대한 피해를 준다. 미국에 유입된 유럽산 홍합은 전역으로 퍼져 호소(湖沼) 생태계를 교란했다. 피해액만 1989년부터 2000년까지 7억5000만~10억 달러로 추정된다. 일본은 2009년 미국너구리에 의해 전국적으로 2억8000만 엔의 농가 피해가 발생했다. 이탈리아는 1995년부터 2000년까지 농작물 피해를 일으키는 뉴트리아(늪너구리)를 잡기 위해 2600만 유로를 투입해 20만 마리 정도를 잡았다. 한국에서도 외래종의 침입은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귀에 익숙한 배스·뉴트리아·황소개구리 등이 생태계를 망가뜨리고 있다. 블루베리혹파리·갈색날개매미충·미국선녀벌레 등 외래 해충으로 인해 농작물과 과수 피해가 이미 심각하다.

 

주요 선진국들은 외래종 침입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이미 파악하고 외래종 연구를 자생종 연구만큼 부지런히 하고 있다. 외래종의 정확한 목록과 분포지도는 물론 그것이 미치는 영향과 관리방법 등 체계화된 정보를 구축해 놓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외래종 목록을 겨우 작성해 놓은 정도다. 자료 축적이나 연구 투자에 소홀했다. 전문가 육성도 부족했다. 전문가들은 붉은불개미 사태를 계기로 근본적인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