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방문, 부산영화제 치료약 될까
  • 김회권 기자 (khg@sisajournal.com)
  • 승인 2017.10.15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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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 갈등과 반목 겪은 BIFF 현장 방문한 까닭

문재인 대통령은 일요일인 10월15일 부산국제영화제(BIFF)를 찾았다. 현직 대통령이 BIFF를 찾은 건 22회째를 맞은 영화제의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문 대통령이 이날 관람한 영화는 《미씽 : 사라진 여자》다. 남편과 이혼한 뒤 딸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워킹맘이 조선족 보모가 딸을 데리고 사라지는 이야기를 다뤘다. 보모의 행방을 추적하면서 주인공이 목격하는 한국 사회의 여러 부조리한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BIFF는 최근 2~3년 간 엄청난 진통을 겪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아시아 최고 영화제’라는 위상에도 타격을 입었다. 그런 어려움에 어떻게 힘을 보탤까 고민했고, 직접 영화제를 찾기로 했다는 게 청와대 측의 설명이다. 관심과 참여로 정치적 메시지를 던진 셈이다.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부산 국제영화제를 찾은 문재인 대통령이 10월15일 오전 부산 해운대구 한 영화관에서 영화를 관람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율성과 독립성 무너진 부산국제영화제

 

BIFF는 어렵게 탄생한 행사였다. 1995년 부산의 첫 민선 시장으로 당선된 문정수 당시 부산시장의 공약 중 하나는 영화제 개최였다. 그런데 막상 시도해보니 그 누구도 경험이 없었고 공무원들은 받아주지 않았다고 했다. 그럼에도 당시 문 시장의 의욕을 보여주는 사례는 많다. 

 

BIFF의 첫 개막식이 열리는 남포동 ‘비프광장’의 보도블록이 당시 문제가 됐다. 영화제를 하기 위해 투스콘으로 깔아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다. 문 시장은 이를 도로과장에게 지시했는데 “어려울 것 같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문 시장은 도로과장을 다른 사람으로 교체했다. 시장의 영화제에 대한 집념은 강했고 그렇게 BIFF는 첫 발을 내디뎠다.

 

그렇게 의욕적으로 시작된 BIFF의 첫출발은 정말 허름했다. 지금이야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진 해운대의 현대식 건물에 레드카펫이 깔리면서 멋들어진 광경을 연출하지만, 1996년의 1회 영화제는 좁디좁은 비프광장의 오래된 극장에서 열렸다, 개막식 다음 날에는 극장 안에 쥐가 출몰해 고양이를 극장 안에 풀었다가 울음소리 때문에 고양이를 다시 잡아대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그런 고난의 행군을 거친 BIFF는 어느새 ‘아시아 최고 영화제’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사이에 여러 차례 고비도 있었다. 특히 행정당국과 영화제 사이에서는 크고 작은 마찰이 종종 발생했지만 그럴 때마다 결국 BIFF의 뜻대로 이뤄졌다. 자율성과 독립성이라는 정언(定言)명령은 고비를 만날 때마다 중요한 잣대가 됐다. 그런데 그런 균형이 무너진 건 2014년의 사건 때부터다. 

 

갈등의 시초는 2014년 19번째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다큐멘터리 《다이빙 벨》이다. 부산시는 상영 중단을 요구했고, 영화제 측은 자율성을 내세우며 상영을 강행했다. 이후 감사원과 부산시는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원회에 대해 강도 높은 감사를 실시했다. 감사원 감사 결과를 토대로 이용관 전 BIFF 집행위원장은 검찰에 고발됐고 물러날 것을 요구받았다. 하지만 영화제 측은 개인적인 부정이나 비리가 아닌 회계상의 미숙과 사소한 잘못으로 사퇴를 요구하는 건 정치보복이라며 일축했다. 

 

《다이빙 벨》을 둘러싼 대립의 결과는 예산 삭감이었다. 그리고 여기에는 박근혜 정부의 지시가 있었다. 지난해 11월,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비망록에서 청와대가 《다이빙벨》 논란에 적극 개입했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나왔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문화계 블랙리스트 수사 과정에서 ‘김 전 비서실장이 BIFF 예산을 삭감하라고 지시했었다’는 문체부 관계자의 진술을 확보했다. 그리고 김 전 실장의 이런 지시는 2014년 10월 BIFF가 세월호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다이빙벨》 상영을 강행한 데 대한 보복이었다. 실제 다음해인 2015년 BIFF의 예산은 14억6000만원에서 8억원으로 줄었고 결국 이용관 전 위원장은 부산시의 압박에 못 이겨 사퇴했다. 

 

 

9월11일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호텔에서 열린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 공식 기자회견에서 강수연 집행위원장(왼쪽)과 김동호 이사장이 사퇴 의사를 재차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관람객 감소와 보이콧...BIFF가 겪은 혹독함

 

《다이빙 벨》 사태를 겪은 후 BIFF를 수습하는 과정은 더욱 혹독했다. 2015년 8월 사태 수습을 위해 취임한 강수연 BIFF 집행위원장과 지난 해 영화제가 민간 조직위원장 체제로 넘어가며 추대된 BIFF 역사의 산증인인 김동호 이사장은 올해 영화제를 마지막으로 사퇴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들이 나란히 사퇴를 선언한 것은 지난 8월8일인데 하루 전인 영화제 사무국 전 직원 일동의 연명으로 성명서가 발표된 직후에 나온 사퇴 입장이었다. 성명서의 핵심은 김 이사장과 강 위원장을 향한 불신임이었다. 이런 갈등의 과정 동안 반목이 거듭되면서 영화제의 실적은 후퇴했다. 지난해 21회 BIFF는 관람객 수가 20회 때보다 27.4% 감소했다. 국내 영화계 9개 단체가 영화제 참가 보이콧을 선언하고 주요 배우들도 행사에 불참하며 반쪽짜리 영화제라는 혹평을 받았다.

 

문 대통령은 2015년 당시 영화제 예산이 삭감되고 《다이빙 벨》 사태가 커지자 부산국제영화제 특별지원을 위한 기자간담회를 열어 영화제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하고 예산 지원을 확대할 것을 얘기한 바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지난해 부산 시민들이 부산영화제 파행으로 힘들어했는데 이에 대한 치유 차원에서 방문을 결정했고, 대통령 본인도 문화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리고 부산영화제가 세계적인 영화제로 발돋움하는데 동참하고 있다는 표시를 하고 싶어 하셨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방문이 BIFF의 잃어버린 3년을 회복하는 전환점이 될 수 있을까. 영화제가 끝난 뒤 그 작업은 다시 시작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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